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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수리 Aug 04. 2015

마츠코

어디에도 없는 사모님


마츠코는 귀엽다. 마츠코는 예쁘다.
나는 마츠코를 사랑한다.


남자가 가르쳐 준 한국어가 그렇게나 다정하고 달콤했다. 24년 전, 일본에서 비서로 일하던 마츠코는 같은 회사에 다니는 한국 남자와 눈이 맞았다. 마츠코는 곧장 회사를 그만두고 남자를 따라 한국으로 왔다.


마츠코의 시댁은 경상도 저어기 산골짜기에 있었다. 시부모님은 촌동네 촌사람들이었다. 시어머니가 말했다. "마츠코, 아들을 많이 낳아야 해." "아... 소까?" 그래서 마츠코는 딸 하나 아들 셋을 낳았다. 처음에 딸을 낳았을 땐 화난 얼굴이던 시어머니가 줄줄이 아들 셋을 낳자 마츠코를 예쁘다 예쁘다 해줬다. 마츠코는 그렇게 아이 넷을 낳고 조신한 가정주부로 살았다. 마츠코는 남편을 지극정성 내조했다. 24년이 지나자 남편은 내로라하는 기업의 해외지사 부사장이 되었다. 마츠코는 마흔아홉 살에 돈 많은 집 사모님이 되었다. 타고나길 사과같이 예쁜 마츠코는 약간의 군살과 주름만 늘었을 뿐, 여전히 예쁜 아줌마였다. 그래도 내가 결혼은 잘했어. 마츠코는 흡족한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마츠코가 변한 건, 2년 전부터였다.


먼지 한 톨 없었던 마츠코의 집에 쓰레기가 쌓이기 시작했다. 쓰레기는 주방에서부터 찼다. 마츠코는 요리를 하지 않았다. 배달음식이나 인스턴트만 먹기 시작했다. 냉장고에 인스턴트 식품들이 차고, 싱크대에 음식물그대로 남은 그릇들이 쌓였다. 식탁 위에는 눌어붙은 국물 자국과 포장 쓰레기가 쌓였다. 벌레가 꼬이고 냄새가 났다. 하지만 마츠코는 그냥 내버려 뒀다. 셋째와 넷몇 번 치우긴 했지만 금방 지치고 말았다. 그나마 음식물 쓰레기가 많이 안 나오는 과자 같은 걸 먹자. 자기들끼리 입을 맞췄고 그 후부턴 바닥에 과자봉지나 과자상자 같은 것들이 뒹굴기 시작했다. 그래도 주방에는 쓰레기 냄새가 진동했다. 그때부터 마츠코는 향수를 모으기 시작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향수부터 뿌렸다.


마츠코는 옷도 빨지 않았다. 소파나 텔레비전, 옷걸이에 옷들이 쌓이는 걸 그냥 내버려뒀다. 마츠코는 빨래를 하지 않고, 매일 새 옷을 샀다. 한 번 입은 옷은 소파나 텔레비전, 옷걸이에 버렸다. 옷장은 일찍이 가득 찼고, 거실에는 옷들이 이불처럼 쌓였다. 마츠코는 내일 무슨 옷을 입을까, 오늘도 쇼핑을 나갔다.


마츠코는 성형수술을 했다. 필러와 보톡스를 맞고, 주름을 팡팡 폈다. 티 안 나는 시술들은 며칠이면 부기가 가라앉았다. 마츠코는 처진 가슴도 봉긋하게 키웠다. 늙어도 돈만 있으면 다 되는구나. 거울 앞에서 아가씨 같은 제 가슴을 비춰보며 감탄했다. 탱탱하네! 소싯적 마츠코의 미모가 다시 살아나는 것 같았다. 마츠코는 비싼 화장품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향수부터 뿌리고, 공들여 화장을 했다.


마츠코는 예쁘게 화장을 하고 아가씨처럼 차려입고선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백화점 일대를 돌아다니면서 쇼핑을 했다. 점원들은 마츠코를 보고 감탄사를 연발했다. 어머, 사모님 오늘도 예쁘시네요! 마츠코는 그 말이 기분 좋았다. 옛날에 우리 남편도 그랬는데. 마츠코 예쁘다, 나는 마츠코를 사랑한다고. 점원들은 마츠코에게 상냥했다. 오늘의 신상을 추천하며 마츠코의 쇼핑을 도왔다. 마츠코는 명품백, 향수, 화장품, 귀걸이, 원피스, 구두까지 손에 들 수 있는 한 최대한 빵빵하게 쇼핑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쇼핑은 마츠코의 하루, 전부였다. 마츠코는 고된 하루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쓰레기 더미 사이에 벌렁 누웠다.


마츠코는 눈을 감고 생각했다. 내일은 또 어디서 돈을 쓰지. 어디선가 쓰레기 냄새가 풍겨왔다. 마츠코는 아! 하고 벌떡 일어났다. 오늘 록시땅 포밍 배쓰를 사 왔지?


마츠코는 욕실로 달려갔다. 커다란 욕조 위에 테두리를 따라서 크고 작은 수십 개의 바디용품들이 산호처럼 돋아나 있었다. 세면대에는 칫솔과 비누, 샘플용 세안 용품들이 따개비처럼 빈틈없이 붙어 있었다. 먼지와 머리카락이 켜켜이 쌓인 바닥을 맨발로 걸어가, 마츠코는 욕조에 뜨거운 물을 채웠다. 입욕제를 넣자 보글보글 거품이 일었다. 금세 하얀 거품이 욕조를 가득 채웠다. “예쁘다!” 마츠코는 알몸으로 욕조에 누웠다. 좋은 냄새가 났다. 물비린내와 곰팡내를 죽일 정도로 독하고 진한 좋은 냄새였다. 덜 잠긴 샤워기에서 똑똑 물방울이 떨어졌다. 누운 채 올려다본 천장에는 곰팡이가 별처럼 피어있었다. 모락모락 더운 김이 피어오르자 곰팡이는 안개 낀 하늘에 떠오른 별자리처럼 아득하고 환상적으로 보였다. 마츠코는 몸을 더욱 깊숙이 눕히고, 지느러미처럼 손을 저어봤다. 마치 깊은 바닷속을 헤엄치는 것처럼 아늑하고 향기로웠다. 부드러운 거품이 마츠코의 턱까지 몽글하게 차올랐다. 마츠코는 하마터면 울 뻔했다.


마츠코는 새벽 4시에 잠이 들었다. 그녀는 새벽 2시부터 4시까지 클래식을 들려주는 라디오 프로그램의 애청자였다. 마츠코는 책이 쓰레기처럼 쌓여 있는 서재에 들어가 컴퓨터 전원을 켰다. 라디오 온에어에 접속하자 15분짜리 바이올린 협주곡이 막 시작되었다. 마츠코는 볼륨을 높였다. 그리고 시청자 게시판에 사연을 올리기 시작했다. 마츠코는 타가 서툴렀다. 한국에서 산 지 24년이 되었지만, 글을 쓰는 건 여전히 어려웠다. 생각해보니 마츠코는 한국말도 글도 따로 배운 적이 없었다. 그래도 마츠코는 매일 같은 시간에 사연 하나씩을 올렸다. ID Matsuko, 대부분 짧은 글이었다.

                                     


나는 애를 넷이나 낳았어요. 그래도 날씬해요. 하하하 


옛날에는 안 그랬는데 남편은 화를 잘 내요. 원래 화내는 사람이었습니까.


요리 하기 싫어요. 먹기만 하는 돼지 같습니다. 그래서 요리를 안 했어요. 그랬더니 쓰레기장이 되었지 뭐예요. 호호


병원에 갔습니다. 의사 선생님이 말할 때마다 코털이 나와요. 약을 먹으라고 합니다. 약을 먹었어요. 졸려요.


남편이 왔어요. 우리 집은 쓰레기장이 되었습니다. 남편은 아무 말도 안 했어요. 미워요.


루이비통을 들고 다녔어요. 한국 사람들은 좋아합니다. 루이비통을 든 나를 좋아해요. 예쁘다고 했어요.


나 돈 많아요. 남편 돈이에요. 빨리 써야 해요. 내가 부럽습니까.


엄마가 보고 싶어요. 엄마는 일본에서 돌아가셨어요. 엄마가 돌아가신 날에요. 나는 일본에 못 갔어요. 엄마 보고 싶습니다.


남편이 바람을 피웠습니다. 근데 내 잘못이래요. 웃기죠. 하하하


목욕을 했습니다. 나는 욕실이 좋아요. 예쁩니다. 나도 예쁩니까.


우리 집 사람들은 나를 무서워해요. 내가 또 죽을까 봐 무섭대요. 나 안 죽었어요.


아무도 나한테 말을 안 걸어요.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했어요. 나는 사랑하니까 보내줘야 합니까. 사랑하니까 호호 할아버지 될 때까지 못 가게 합니까.



마츠코가 사연을 올린 지는 2년이 되었다. 하지만 누구 하나 댓글을 남겨주지 않았다. 마츠코는 하하 호호 혼자서 떠들다. 마츠코는 동그랗게 등을 구부리고 키보드를 하나 하나 꾹꾹 눌렀다. 라디오가 끝나가고 있었다. 마츠코는 어디에도 없었다. 마츠코는 덩그러니 버려졌다. 쓰레기들과 함께 그냥 그곳에 버려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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