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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수리 Oct 01. 2021

펭귄처럼, 우리들도 '허들링'

온기와 배려가 깃든 연대로 다 함께 살아남는 방법

퇴근길 만원 전철을 타게 되었다. 두 정거장만 지나면 도착이었지만, 커다란 가방과 짐을 들고 다섯 살 쌍둥이 형제를 데리고 탄 터라 몹시 걱정되었다.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전철 한가운데 거의 끼인 상태가 되었을 때, 내려다보이는 아이들은 새삼 너무 작았다. 겨우 어른들 허리춤에 닿는 눈높이에선 사방에 다리밖에 보이지 않을 것이다. 아이들도 긴장했는지 내 옷자락을 꽉 붙들었다.


덜컹. 전철이 움직일 때마다 균형을 잡으려고 애썼지만 쉽지 않았다. 가까이서 지켜보던 한 아주머니가 자리를 양보하려 했다. “괜찮아요. 저희 다음 정거장에 내려요. 감사합니다.” 곧 도착할 텐데 부산스러울 것 같고, 도무지 이 인파를 헤치고 내릴 자신이 없어서 마다했다. 이윽고 정거장에 다다랐을 때, 다행히도 사람들이 길을 열어주었다. 보폭이 좁은 아이들이 넓은 승강장 사이를 안전하게 내릴 때까지 기다려주었다. 덕분에 우리는 무사히 내렸다. 휴우. 그제야 안도하며 아이들과 웃었다. “잠깐이었지만 우리들, 펭귄이 된 거 같았어.”


황제펭귄들이 혹독한 추위와 눈보라에서 어린 새끼와 알을 지켜내는 방법이 있다. 펭귄들의 허들링. 동그랗게 겹겹이 꼭 붙어 기대어 서로의 체온으로 추위를 견디며 안쪽에 가장 약한 새끼와 알을 보호한다. 안에서 몸을 데운 펭귄은 밖으로 나가고, 밖에서 추위에 떨던 펭귄은 안으로 들어온다. 그렇게 쉼 없이 둥글게 돌면서 온기와 배려가 깃든 연대로 펭귄들은 다 함께 살아남는다.


나는 알고 있었다. 만원 전철에서 이름 모를 아저씨가, 회사원이, 청년들이 작고 약한 우리가 넘어지지 않도록 동그랗게 에워싸고 버티고 있었다. 그들이 쉼 없이 균형 잡으며 안전한 공간을 내어준 것도, 말없이 키 작은 아이들을 지켜보았던 것도 알고 있었다. 타인들의 허들링 속에 우리는 보호받았던 것이다. 어린 시절 엄마와 장을 보고 돌아오던 나에게도 꼭 같은 기억이 있었다. 만원 버스에서 자리를 양보하고 짐을 들어주고 안전한 공간을 내어주었던, 우리를 동그랗게 에워싸고 지켜주었던 어른들의 허들링.


‘한 사람이 어른이 돼서 세상을 살아갈 때 힘이 되는 것은 어린 시절에 받은 사랑과 지지다. 사랑받고 존중받고 보호받았던 기억. 그 기억이 살면서 겪어야만 하는 힘든 고비를 넘게 한다’던 김중미 작가의 말처럼, 오늘 우리는 보호받는 존재였지만, 훗날 우리는 누군가를 지켜주고 사랑해주는 존재가 될 것임을 틀림없이 믿는다. 역사 밖에는 소나기가 내리고 있었다. 잘 살아남아 씩씩하게 떠나는 기분으로 펭귄 셋은, 아니 우리 셋은 비를 맞으며 힘차게 세상 밖으로 뛰어나갔다.





오늘자 동아일보 [관계의 재발견] 칼럼을 썼습니다. 작은 사람이 되어 보면 배울 것들이 보입니다. 우리를 에워싸고 버티며 아이들을 내려다 보던 전철 안 아저씨의 얼굴을 기억합니다. 누군가의 아버지의 얼굴이었지요. 작고 약한 존재를 지켜주고 사랑해주는 어른. 그런 어른이 되고 싶은 10월의 첫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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