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수리 Mar 31. 2022

슬픔 위로 뛰어 오른 몸짓

글 쓰는 발레리노에게 

아침에 '다시 무대로'라는 글을 읽다가 기뻐서 좀 울었다. 지난 학기 세사대 강의에서 가르쳤던 학우의 글이었다. 스무 살 인생의 대부분을 춤추며 살았던 발레리노, 열두 살에 이미 주인공으로 무대에 섰고, 유니버설 발레단에서 활동하며 '춤추는 헤르만 헤세'라는 필명으로 브런치에 글을 쓴다. 


내가 그를 만났을 때, 그는 커다란 부상을 당해 재활 치료를 하며 캄캄한 시간을 통과하고 있었다. 다시 춤을 출 수 있을까. 생애 첫 번째 절망, 두렵고 무섭고 우울하고 슬픈 시기에 그는 글쓰기 공부를 선택했다. 열여섯부터 꾸준히 써온 일기는 그를 자기답게 살아가게 해 주었고, 절망이 닥쳤을 때도 그는 글쓰기를 찾았다. 소설로, 시로, 에세이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는 인상 깊은 학생이었다. 예의 바르고 묵묵하고 성실했다. 생각과 질문이 많았다. 작법과 태도 하나를 가르쳐주면, 하나의 동작을 마스터하듯 수십 번 연습하고 익혀서 가져왔다. 당연히 글쓰기는 나날이 좋아졌다. 때때로 짙은 지금을 썼고, 씩씩했던 과거를 썼다. 보여주고 싶은 춤에 대해, 하고 싶은 예술에 대해, 간절한 바람에 대해 썼다. 다시 만날 미래를 썼다. 그는 천천히 단단히 글 쓰며 슬픔 한가운데를 걸어갔다.  


마침내 그가 복귀 무대에 섰다는 글을 읽었다. '첫 문장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쏟아지고 교차되는 생각과 감정이 정리가 되지 않는다. 차분히 한 문장, 한 문장씩 풀어본다.'라며 그는 다시 선 무대와 지난 시간을 쓰고 지우고 쓰고 지우며 썼다. 이상하지. 슬픔 한복판을 지나온 그의 글에는 감사가 넘친다. 어느새 슬픔을 매만지고 공글리며 마주 보는 사람이 된 것이다. 


'다시 춤을 추겠다.'

그가 쓴 마지막 문장에 나는 슬픔 위로 뛰어 오른 아름다운 몸짓을 본다.



춤추는 헤르만 헤세 작가의 글


매거진의 이전글 글 쓰는 할머니가 되고 싶은 당신에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