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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수리 Aug 21. 2023

볕이 아름다운 동네를 떠나는 열차

소설 [까멜리아 싸롱] 2화

별이 빛난다.

중앙홀을 채운 거대한 크리스마스트리 꼭대기에 커다란 황금색 별이 빛난다.      


색색깔 오너먼트와 조그만 알전구가 별빛을 쏟아부은 듯 트리 표면에 반짝거렸다. 아늑한 조도의 조명들이 대리석 바닥과 통유리창에 반사되어 주위를 환히 밝혔다. 설렘과 즐거움을 만끽하는 사람들 사이로 ‘Silent night holy night’ 크리스마스 캐럴이 흐르고 있었다.      


환하고 따뜻했다. 볕다운 볕. 눈을 찌르는 빛이 아닌 온몸에 내리쬐는 볕처럼 환하고 따뜻한 기운이 언제나 마법처럼 이곳을 감싼다. 볕이 아름다운 곳, 백화점은 한겨울이 가장 환하고 따뜻했다.     


“고민이야. 뭐가 나을까.”

“음... 12월엔 좀 더 우아한 무드가 좋겠습니다. 전에 고객님이 구매하셨던 백은 미니멀하고 트렌디한 무드였던 걸로 기억해요. 그렇담 연말에는 우아함이 고객님 스타일을 훨씬 매력적으로 만들어주지 않을까 싶어요. 모두가 떠들썩할 때 오히려 절제되고 클래식한 무게감으로 들뜬 분위기를 그윽하게 눌러 준다면 모두의 눈길이 거기에 머물겠죠. 롱코트에 우아한 토트백 하나, 무심한 듯 간결하게 들어준다면 기품 넘치는 배우처럼 아름다우실 것 같아요.”

“진아 씨라고 했나? 다르네. 마음에 들어.”

“감사합니다.”     


VIP는 흡족한 듯 옅게 웃었다. 설진아는 역할에 충실한 배우처럼 미소 지었다. 두 손은 가볍게 그러모아 등을 곧게 펴고, 입꼬리는 살짝 올려 잔잔하게 미소 지었다. 우아함은 여유에서 나온다. 여유는 돈에서 나온다. 돈은 고객들의 백에서 나온다. 12월은 백에서 돈이 쏟아진다. 부담스럽지 않게 친절해야 한다. 진아의 눈에 그들은 크리스마스트리에 황금별처럼 빛났다. 가까워질 순 없지만 우러러보게 되는 빛나는 존재들. 돈은 품격이었다.     

 

여느 날과 다름없는 아침이었다.

25세, 설진아는 1-1 플랫폼에 서서 첫 열차를 기다렸다.     


정장 치마에 검은색 핸드메이드 울코트를 입고 고급 로퍼를 신은 진아. 이런 옷차림으로 깔끔하게 머리를 올려 묶고 열차 플랫폼에 서 있자면, 어디론가 떠나는 승무원 같아 보였다. 하지만 진아에겐 어울리는 가방이 없었다. 준브랜드 호보백을 들긴 했지만 마음에 들지 않았다.      


검은색 단벌 코트는 진아가 알바비를 모아 세일가로 구매한 브랜드 코트였다. 로퍼도 그랬다. 돈을 모으는 족족 진아는 까맣고 비싸고 고급스러운 의류를 구매했다. 사회생활에서 옷은 일종의 갑옷이었다. 사람들은 고급 옷을 입은 사람은 무시하지 않았다. 질 좋은 클래식 블랙 아이템. 단정한 검은색은 가난을 숨기기에 가장 무난한 색이었다. 때때로 고급스러워 보이기까지 했으니까. 그러나 검은색으로도 가릴 수 없는 건, 신발과 가방이었다.      


백화점 명품관에서 일하는 진아는 명품 신발과 가방을 기호식품처럼 소비하는 고객들을 만났다. 공손한 자세로 세 걸음 떨어져 그들의 말끔한 뒤꿈치와 기울어지지 않은 어깨를 바라보았다. 그럴 때마다 진아는 맨발로 무거운 짐을 질질 끌고 가는 사람처럼 발바닥과 어깨가 저릿했다. 일 인분의 삶을 짊어지고 사는 걸음과 무게가 조금이라도 가뿐해지고 싶었다. 어서 중고로라도 명품백을 사겠다고 마음먹었다. 한겨울에 바지 대신 치마를 입고, 패딩 대신 코트를 입고, 운동화 대신 로퍼를 신은 진아는 환하고 따뜻한 곳으로 출근했다. 호텔, 웨딩홀, 백화점 같은 장소에서 웃으면 조금 수월하게 더 많이 벌 수 있었다. 생계형 미소가 굳어졌다. 진아는 돈을 벌어야 했으므로 배우처럼 우아하게 미소 지었다.     


겨울은 춥고 어두웠다. 이른 아침도 밤처럼 깜깜해 손바닥만 한 볕조차 들지 않았다. 너무 추워서, 오늘만큼은 고급 착장에 빨간 목도리를 칭칭 감아 둘렀다. 이상하게 버릴 수 없는, 낡고 해진 진아의 유일한 목도리. 역에 내리자마자 물품보관소에 넣어둘 거야. 진아는 두꺼운 목도리에 얼굴을 파묻고 어깨를 움츠린 채 단단히 팔짱을 꼈다. 열차를 기다리며 플랫폼 건너 벽화를 쏘아보았다. 조악한 해 그림을 그려둔 타일 벽화 중앙에 낡은 표지판이 박혀있었다. ‘양미陽美’. 볕이 아름다운 곳.


“얼어죽을.”

싸늘한 혼잣말이 입김으로 퍼져나갔다. ‘볕이 아름다운 동네’ 양미동陽美洞. 토박이는 거의 없고 여기저기서 봄볕 같은 희망을 품고 찾아온 이들이 모여 사는 변두리 동네. 진아는 양미동이 싫었다. 이름과는 달리 그늘진 밑바닥 인생이 가득한 양미동은 너무 추운 동네였다. 설진아는 제 몸을 껴안듯 단단히 팔짱을 꼈다. 추웠다. 얼어죽을 만큼 추웠다. 딱 죽고 싶을 만큼 추웠다.


53세, 박복희는 1-2 플랫폼 벤치에 앉아 있었다. 

빨간 오리털 패딩을 입고 싸구려 배낭을 끌어안은 채 뜨개 모자를 덮어쓴 복희. 아고고. 아이고고. 요즘 혼잣말이 늘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몸 구석구석 안 아픈 데가 없었다. 추운 겨울엔 저리고 시리고 아프고 관절 마디마디 통증이 더했다. 싸늘한 벤치에 앉자 파고드는 한기에 뼛속까지 시렸다. 복희는 마른세수를 했다. 다 터버린 손바닥에 까칠까칠한 얼굴을 비볐다. 퀴퀴한 냄새가 났다. 50년 넘게 살아보니 몸뚱이는 파삭 말라버려 껍데기만 남은 것 같다. 복희는 자신이 시들어 죽어가는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복희는 평생 쓸고 닦고 치우는 일을 했다. 지금보다 젊었을 땐 주방 식모로 이 가게 저 가게 떠돌다가, 용역 청소 업체 계약직이 된 후론 아파트, 백화점, 공공기관을 전전하며 건물들을 청소했다. 복희의 직업은 사회적으론 미화원으로 분류되었다. 어려서부터 똑똑했던 복희는 미화원의 한자쯤 단번에 읽고 이해했다. 미화원美化員. 세상을 아름답게 꾸미는 사람. 본디 아름다움이란 반짝이는 것, 돋보이는 것, 그리고 비싸 보이는 것. 그러려면 지저분한 것들은 죄다 깨끗하게 치워버려야 했다. 미화원 유니폼을 입은 자기 자신조차도. 미화(美化) 일은 눈에 띄지 않으면서도 내내 아름다움을 유지해야 하는 매우 까다로운 일이었다.


오래도록 이 직종에 종사하며 체득한 건 눈에 띄지 않는 법이었다. 복희는 자신을 대형건물 모서리에 투명한 테두리 같은 존재라고 여겼다. 화장실 타일에 방금 바른 실리콘처럼 일했다. 민첩하게 움직일 것. 조용하게 숨죽일 것. 굳건하게 버틸 것. 복희는 눈에 띄지 않으려고 노력했고, 사람들도 복희를 없는 사람처럼 지나쳤다. 쓰레기를 든 복희를 피해 지나가거나 종종 제 손에 든 쓰레기를 복희가 들고 있는 봉투에 버리고 갔다.


더러워지면 다시 쓸고 닦고 치우고 비우고. 다시, 또다시. 아름다운 장소가 아름답게 유지될 수 있도록, 구석구석 부지런히 청소하면서 복희는 쉴 곳을 찾았다.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요즘 들어 부쩍 다리가 아팠다. 잠시나마 복희가 쉴 수 있는 곳에는 볕이 들지 않았다. 게다가 더러웠다. 화장실 청소도구 정리칸이나 지하주차장 배관실 한편이나, 쿰쿰한 물류창고 쪽방이었다. 창문 하나 없는 그런 자리에 쪼그려 앉아 있자면 숨이 막혔다. 눈에 띄면 큰일 나는 바퀴벌레가 된 기분이 들었다. 화장실 청소를 하다가 변기 위에 걸터앉아 잠시나마 쉬는 게 그나마 마음 편했다. 볕을 쬐지 못한 복희는 점점 시들어갔다. 복희의 몸과 마음도 아름답게 꾸밀 수 있다면 좋을 텐데, 그러기에 박복희는 너무 힘들었다. 지쳐버렸다. 그만 마음 놓고 쉬고 싶었다.


75세, 구창수는 1-3 플랫폼에 서 있었다.

방한 귀마개를 한 창수는 감색 점퍼 주머니에 양손을 찔러 넣고 움츠린 채 제자리걸음을 걸었다. 추위도 추위지만 만성 졸음이 몰려왔다. 늙어선지 불안해선지 요즘은 푹 잠들기가 어려웠다. 자다 깨다 쪽잠을 자다가 새벽 네 시께부터 뒤척거리다가 눈곱만 떼고 출근하는 길이었다. 창수는 강 건너 대단지 아파트에서 경비원으로 일했다. 일흔이 넘어서도 출근할 수 있는 일터가 있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감사한가. 그러나 묵묵하고 성실한 창수에게도 경비일은 고됐다.


한 평 남짓 경비초소는 여름엔 찜통이고 겨울엔 냉동고였다. 선풍기 하나, 온열기 하나에 기대 사계절을 났다. 아파트 지하 주차장 한편에 마련된 경비원 휴게실은 창문은커녕 화장실도 없고 사방에 석면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 쪽잠이라도 잘라치면 석면가루가 후드득 떨어지고 쥐가 지나가는 통에 휴게실에서 휴식은 불가능했다. 분리수거장 바닥에 걸터앉아 잠시 한숨 돌리는 게 전부였다. 그나마도 가을엔 낙엽 치우고 겨울엔 눈 치우고 명절마다 넘쳐나는 음식물 쓰레기 치우는데 휴게시간까지 전부 써버려야 했다. 바깥 식당에서 점심 먹는 일도 불가능했다. 예고 없이 방문하는 차량과 택배, 언제 울릴지 모르는 인터폰을 상시 대기해야 했다. 냄새가 덜한 몇 가지 찬에 후다닥 먹을 수 있는 도시락을 싸 들고 석면가루가 떨어지는 휴게실에서 눈치껏 먹었다.    


경비원의 주된 업무는 경비 업무가 아닌 쓰레기 처리 작업이었다. 1000세대가 넘게 사는 아파트에선 아침부터 밤까지 쓰레기 처리 작업이 계속되었다. 재활용 분리수거, 폐기물 처리, 불법 투기 쓰레기 관리, 음식물 쓰레기 처리와 아파트 공용 구역 청소까지 쓰레기만 처리하는데 종일 고군분투했다. 정오만 지나도 온몸이 두들겨 맞은 듯 뻐근했다. 겨울엔 면장갑 하나에 의지한 손가락이 꽁꽁 얼어서 깨질 것 같았다. 오늘처럼 추운 날은 찬바람에 흠씬 두들겨 맞은 황태꼴이 될 게 뻔했다.     


그래도 몸이 힘든 게 나았다. 경비일을 시작하고부터 창수는 눈치를 살피는 버릇이 생겼다. 입주민들은 어딜 가나 창수를 보고 있었다. 경비초소에서 밥 먹으면 음식 냄새난다고, 분리수거하다 인터폰을 받지 못하면 아저씨 뭐 하냐고 난리가 났다. 심지어 친절하게 인사하지 않는다고 민원을 넣었다. 무서운 말들이었다. 사소한 민원들이 모여 창수가 해고되는 사유가 될 테니까. 창수가 매일 깍듯하게 고갤 숙이는 입주민 누군가는 창수를 싫어하고 있었다. 입주민들, 입주민 대표와 동대표, 관리소장까지 보이지 않는 눈들이 어딜 가나 창수만 따라다녔다. 창수는 자꾸 눈치가 보였다. 온갖 잡일을 다 처리하고 곤죽이 된 몸으로 경비초소에 잠시 앉아 있자면 눈치도 없이 졸음이 몰려왔다. 늙은 경비원이 존다고 또 민원 들어올 텐데. 창수는 벌떡 일어나 제자리걸음을 걸었다. 구창수는 만성피로와 만성 졸음에도 불구하고 개운하게 잔 적이 없었다. 하루라도 그저 푹 잠들고 싶었다.     


“지금 열차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타는 곳 안쪽으로 한 걸음 물러서 주시기 바랍니다.”


설진아와 박복희, 구창수가 열차에 올라탔다. 모두들 끄트머리 자리를 찾아 떨어져 앉았다. 열차 문이 닫히기 직전, 1-4 칸에 16세, 안지호가 올라탔다. 덥수룩한 머리에 뿔테 안경을 쓴 남학생, 남색 교복 위에 카멜색 더블코트를 걸쳐 입은 지호는 피곤해 보였다. 의자에 앉자마자 CD플레이어를 꺼낸 지호는 줄 이어폰을 끼고 재생 버튼을 눌렀다. 이윽고 비밀스러운 최애 아이돌 노래가 흘러나왔다. 겨울은 아침이 늦게 와서 좋았다. 아예 아침이 오지 않기를 바란 밤이 많았다. 오늘도 빈 교실에서 시간을 보내야지. ‘허공을 떠도는 작은 먼지처럼, 작은 먼지처럼.’ 최애가 속삭인다. 작은 먼지처럼, 안지호는 아무도 모르게 사라져 버리고 싶었다. 눈을 감았다.


열차가 양미동을 떠난다.

새벽을 지나 아침으로 열차가 철교 위를 가로지를 때.

눈송이 하나둘, 첫눈이 떨어지고 있었다.


Silent night holy n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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