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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콤아티스트 유유 Mar 21. 2019

도대체 누구를 위해 살았던 걸까

스물여덟 살에 파혼을 결심했다






스물여덟 살이 되던 생일날, 결혼을 약속한 남자친구와 파혼을 결심했다. 그는 나의 유일한 희망이었다. 지긋지긋한 가족으로부터 탈출하고, 새 삶을 살 수 있는 기회가 그와 함께할 미래에 있을 거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우리는 마음만 앞섰을 뿐, 자립할 힘이 없었다.



이십 대 후반, 동갑내기 커플의 통장 사정이야 뻔하다. 대기업에 다니는 것도 아니고 집안 형편도 다르지 않았다. 3개월 동안 신혼집을 구하러 다녔는데 둘만 있으면 행복할 거란 환상이 깨지기 충분한 시간이었다. 함께 머리를 맞대고 쥐어 짜낸 방법이 고작 부모님께 손을 벌리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의 부모님은 상견례 자리에서 못을 박았다. “저희는 집을 마련할 여유가 없습니다.” 엄마의 다문 입술에 힘이 들어갔지만, 뾰족한 수가 없었다. 우리 집도 예단 같은 격식을 차릴 형편이 아니었으니까. 집으로 돌아오자 엄마가 뒤늦게 분을 터트렸다. 



“달라 빚을 내서라도 너 시집은 제대로 보낼 거야!” 



갈피를 잡을 수 없는 불안함이 밀려왔다.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에 그만 울고 싶어졌다. 나에게는 두 명의 아빠가 있는데 낳아준 아빠는 재혼 사실을 주변에 알리고 싶지 않으니 당신의 지인을 초대할 수 없다고 했다. 비록 어렸을 때 부모님이 이혼했지만 나는 아빠 딸인데……. 



내 결혼이 부끄러운 일이 돼버린 것만 같아 서글펐다. 키워준 아빠는 집을 나간 뒤로 연락이 닿지 않았다. 소식을 들으면 돌아오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축복받는 결혼식을 상상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가족에게 짐이 될 뿐, 누구에게도 진심으로 환영받지 못했다. 



남자친구라도 확신을 보여주길 바랐다. 시작이 조금 모자라면 어때. 그가 내 곁을 든든하게 지켜준다면 모두 이겨낼 수 있어. 이렇게 생각했으니까. 하지만 남자친구는 맥없이 주저앉아 모든 결정을 나에게 떠밀었다. 어느 틈에 결혼은 나 혼자 감당해야 하는 일이 돼 있었다. 행복이 쉽게 찾아왔던 것처럼 절망도 쉽게 찾아왔다. 뻔한 전개지만 비명 한 번 지르지 못하고 휩쓸려 내려갔다. 아쉽게도 반전은 없었다. 나는 절망의 민낯을 보았고, 그것을 혼자 헤쳐나갈 힘이 없었다.      










“나, 이 결혼 못하겠어.”     



이 말 한마디로 모든 것이 정리됐다. 너무 간단해서 이게 꿈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래도 결혼은 해야 한다고 반대하는 사람도, 다시 한 번 생각해보라고 붙드는 사람도 없었다. 남자친구는 모든 것을 체념한 듯 침묵으로 동의했다. 엄마는 “인연이 아니었다고 생각해.” 이 한 마디로 상황을 정리했다. 아빠는 이렇게 말했다. “좋은 혼처는 아니었어. 차라리 잘된 일이지. 더 좋은 사람 만날 거야.” 



파혼은 처음부터 예정되었던 일, 더 좋은 사람 만나려고 생긴 일이 돼버렸다. 내 인생에서 일어난 크고 중대한 사건을 좋을 대로 해석하는 게 우스웠다. 하긴, 그렇게라도 마음의 짐을 덜고 싶었겠지. 아프다고 말하면 진짜 상처받을까 봐 입을 닫았지만 동의할 수 없었다. 굳이 의미를 찾자면 “아무도 내 인생을 대신 살아주지 않는다”는 절망스러운 깨우침밖에는 없었다.      



몸은 어른이 되었지만, 어쩐지 마음 한 조각은 어린아이인 채로 남아 의지할 곳을 찾아 헤맸다. 부모님이 대신 문제를 해결해주길 바랐고, 남자친구가 나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 주리라 기대했다. ‘왜 나를 사랑해주지 않아? 이리 와서 날 일으켜줘야지. 어서 날 보살펴줘.’ 겉으로는 괜찮은 척 행동했지만 속으로는 보채고, 떼를 쓰고 있었다. 행복이 다른 사람에게 달려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들의 말 한마디, 몸짓 하나에도 쉽게 흔들리고 무너졌다. 불행까지 남 탓으로 돌렸다. 행복도, 불행도 스스로 책임질 수 없었던 나는 진짜 어른이 아니었다. 



나 자신으로 사는 방법을 밤새 탐독하고 미움받을 용기를 쥐어짜도 홀로서기는 쉽지 않았다. 여전히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고, 외부의 평가에 휘둘리는 나를 보면서 이제껏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었던 질문이 떠올랐다. 



“도대체 누구를 위해서 살았던 걸까?” 



절망에 휩쓸려 내려갈 때 착한 딸이라던가 성실한 직장인, 사랑스러운 연인이라는 수식어는 허울 좋은 지푸라기일 뿐이었다. 남들한테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는 게 도대체 무슨 소용이야. 나 대신 살아줄 것도 아닌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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