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모두 내 선택이었어
나는 ‘너 때문이야’ 교敎의 열렬한 신도였다. 성격이 소심해진 것도, 남들 앞에 서면 눈치를 보는 것도, 가난 때문에 결혼을 포기한 것도 모두 엄마 탓이었다. 매일 무기력하고, 일상의 즐거움을 잃어버린 건 회사 때문이었다. 솔직히 이 생각들이 얼마간 위로가 된 건 사실이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탓할 사람은 많지만 책임질 사람은 나 혼자. 계속 원망해봤자 달라지는 건 없었다. 갈수록 무력한 피해자를 자처할 뿐이었다.
이것은 많은 사람의 이야기다. 남 탓을 하면서 불만과 고통을 견딘다. 현실을 직시하지 않고 자신은 힘없는 피해자라고 믿는다. ‘네가 변하면 나도 바뀔 거야’ 하고 책임을 떠밀고, 누군가가 대신 해결해주길 기대하지만 좀처럼 뜻대로 되지 않는다. 불행뿐만 아니라 행복까지 다른 사람이 쥐고 있으니 계속 눈치를 본다.
그렇지만 다른 사람을 탓하는 건 가장 손쉬운 핑계거리다. 게다가 주의가 온통 바깥으로 쏠리기 때문에 진통제라도 삼킨 것처럼 상황에 둔감해진다. 자신은 피해자이므로 면죄부를 받는다. 현실을 회피할 구실로 완벽하지 않은가? 하지만 반복할수록 나약하고 불쌍한 사람을 자처하게 되고, 끝내 자신을 지킬 힘조차 잃게 된다.
“그래, 모두 내 선택이었어!”
남 탓만 하느라고 잃어버린 힘을 되찾기 위해서 나는 단호한 어조로 또박또박 말했다. 그리고 솔직한 고백이 이어졌다. “더 일찍 집을 나올 수 있었고, 회사를 그만둘 수도 있었어.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 해도 선택은 내가 한 거야. 아무도 나에게 불행을 강요하지 않았어.” 쓰디쓴 현실을 인정하고 나서야 피해자 역할에서 스스로 걸어 나올 수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관계’가 기회의 보고라고 말한다. 하지만 지나치게 의존하면 자신을 잃어버릴 수도 있다. 나는 관계에 얽혀있던 모든 기대와 원망을 내려놓고, 오직 자신에게 집중했던 순간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힘이 내 안을 가득 채웠다. 그것은 완전히 다른 종류의 힘이었다.
스스로 살아내겠다는 굳은 의지.
인생을 책임지겠다는 선언.
그리고 내가 존재하는 한 사라지지 않을 사랑이었다.
나는 믿는다. 우리 모두에게 스스로를 책임질 수 있는 힘이 있다고. 때로는 생의 무게에 압도당하기도 하지만 이것이 나약함의 반증은 아니다. 위태롭게 흔들려도 언제나 나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또 다른 나. 그 존재야말로 평생을 함께할 든든한 내 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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