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라면 까야지. 응?”
월요일 아침 회의실은 흡사 단체로 벌을 세우는 교실 같았다. 또각또각. 팀장은 신경질적인 구둣발 소리를 내며 분위기를 짓눌렀다. 나를 포함한 팀원 9명의 이름을 차례대로 호명하고 모두가 보는 앞에서 따끔하게 지적했다.
정시 퇴근은 염치없는 일이 돼버렸고, 야근은 필수인 데다 주말 출근쯤 대수롭지 않은 회사. 하지만 근무 외 수당은 없고, 스케줄이 촉박하다고 불평하면 하극상이 되어버리는 분위기. 새로운 직원이 와도 짧으면 1개월, 길어야 3개월. 대부분 버티지 못하고 회사를 관뒀다. 사람이 자주 바뀌다 보니 누가 오고 가는지 무관심해졌고, 환영 회식과 송별 회식은 생략된 지 오래였다. 나는 그곳에서 삼 년을 버텼고 반갑지 않은 승진을 했다. 월급은 그대로. 책임만 늘어난 말뿐인 대리였다.
나를 사랑하겠다던 굳은 결심은 회사에서만큼은 예외였다. 애초에 나를 위한 장소가 아니었으므로 영혼을 포기했다. 그곳에서 나는 욕을 덜 먹으려고 눈치 보는 월급쟁이일 뿐이었다. 그림은 팀장의 입김으로 완성됐고, 나는 그림에 대한 권한을 잃어버렸다. 매일 그림을 그렸지만 그것들은 먹을 수 없는 차갑고 딱딱한 음식모형 같았고 그래서 부끄러웠다. 그럴수록 스스로 원하는 걸 이뤄주고픈 바람이 높은 탑이 되어 어디서 무얼 하든 선명하게 보였다.
내가 원하는 건 ‘나’를 위해 일하는 것이었다.
결국 사표를 썼다. A4 종이 위에 반듯하게 인쇄된 사표 양식을 두고 한참을 고민했다. 퇴직 사유에 뭐라고 적을까. 마음 같아선 팀장 욕 한 바가지 쓰고, 쥐꼬리만 한 월급에 분노하고, 매사에 속을 뒤집어 놨던 후배 지적질로 마무리하고 싶었지만 고심 끝에 한 단어로 퇴직서를 마무리했다.
‘개인 사유’
아무리 생각해도 이보다 적합한 표현은 없었다. 나에게 사표란 회사를 위해 살지 않고, ‘나’를 위해 살겠다는 선택이었으니까.
프리랜서가 되고 나선 피곤할 정도로 가치를 캐물었다. ‘그래서 얼마나 벌었어?’ 보다 ‘그래서 어떤 의미가 있는데?’ 이 질문이 더 중요했다. 그리고 내 경우에는 정말로 의미가 밥을 먹여줬다.
일러스트 수업을 처음 시작할 때 묻고 또 물었다. “이 강의는 어떤 가치가 있을까?”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돕는 일. 이것이 내가 찾은 가치였다.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쓸 때도 의미를 찾았다. 그림 한 장, 글 한 줄만 가지고 당장 어떤 결과를 기대할 수 없다. 긴 호흡으로 쌓고, 또 쌓아야 한다. 이 과정을 견딜 수 있었던 건 지금 하는 일의 가치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신에게도 기회가 주어진다면 해보고 싶은 일이 있을 것이다. 나는 분명히 그 일이 당신에게 어떤 가치를 선물해준다고 믿는다. 나에게 가치는 일을 가능하게 하는 강력한 원동력이었다. 백분율로 환산된 가능성이나 뉴스에서 알려주는 유망 직종은 중요하지 않았다. 내일이면 또 다른 이슈가 떠오를 테니…….
모든 사람에게 동의를 구할 필요도 없었고,
커다란 성공에 부풀지도 않았다.
사람들의 인정을 받으면 좋지만
그렇지 않아도 괜찮았다.
의미가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했고,
그렇게 일하는 것 자체가 내게는 성공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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