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온전한 휴식을 선물하기
언젠가 짧지만 선명한 꿈을 꿨다. 친구랑 여행을 갔는데 다툼이 생겼고, 평소와 다르게 언성을 높여 화를 냈다. 친구는 그때까지도 내가 화내는 걸 본 적이 없었다. 늘 배려하는 모습만 보여줬으니까. 그러자 친구가 주변 사람들을 붙잡고 나에게 손가락질을 했다.
“여태 날 속인 거야? 이게 네 진짜 모습이냐고!”
나는 의외로 덤덤하게 친구를 똑바로 쳐다보며 대꾸했다.
“그동안 너한테 맞춰준 거야. 그런데 이렇게 화내는 것도 나야. 내가 가진 모습 가운데 하나일 뿐이라고.”
아침에 눈을 뜨니 속이 개운했다. 꾹 막혀있던 가슴이 서릿발 같은 물길에 씻겨 내려간 것 같았다. 꿈에서 가장 두려워했던 상황을 만났고, 미처 알지 못했던 사실을 깨달았다. ‘상냥하거나, 화를 내거나 모두 나의 일부분일 뿐이다. 애써서 감추거나 포장할 필요가 없다. 어떤 모습이든 당당하게 표현해도 괜찮다.’
나는 용기를 냈다. 더욱 나답게 살기로. 그러자 예전엔 미처 몰랐던 면면이 밖으로 드러났다. 소심한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컴플레인의 귀재였다. 불편사항을 요목조목 얘기하는 데 망설임이 없었다. 듣기 싫은 대화는 칼같이 거절할 줄도 알았다.
몸에 맞지 않는 억지 친절은 자제하고, 이해심 많은 척 오지랖을 피우는 일도 줄어들었다. 점점 까칠한 데다 예민한 모습이 드러났다. ‘나’라고 믿었던 이미지와 어긋나는 모습에 놀라지 않았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기뻤다. 날 것의 나를 발견할수록 가볍고 자유로워졌으니까.
3년 전 겨울, 모든 일을 멈추고 방학을 선언했다. 그동안 틈틈이 짧은 휴가를 보냈지만, 5년 동안 열심히 일한 나에게 온전한 휴식을 선물하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과 ‘만남’에 대한 능동적인 거절이 필요했다. 미진하게 일을 미루기보다는 깔끔하게 의사를 밝히고 싶었다. 선택에 괜한 죄책감을 덧칠하고 싶지도 않았다. 3개월은 족히 지낼 수 있는 생활비를 준비하고, 진행 중인 프로젝트와 강의를 일시 중단했다. 가족한테는 ‘당분간 혼자 지낼 것’이라고 미리 말해두었다. 전기장판을 준비하고, 창문마다 암막 커튼을 달았다. 그리고 겨울잠을 자는 곰이 되었다.
겨우내 특별히 한 일은 없다. 식료품은 온라인으로 주문하고, 주전부리가 생각나면 근처 편의점에 갔다. 외출은 사나흘에 한 번, 가끔은 일주일씩 집에만 있어도 전혀 불편하지 않았다. 읽고 싶던 책을 읽고, 드라마를 몰아 봤으며, 실컷 잠을 잤다. 연말연시 모임은 참석하지 않았고, 제야의 종소리가 울릴 때도 자고 있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나만 있으면 충족되는 날들이 만족스러웠다.
이야기가 이쯤 흘러가면 “은둔형 외톨이가 된 건가?” 걱정될 것이다. 은둔한 건 맞는데 외톨이는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선택이었으니까. 그리고 곧 봄이 왔다.
2월부터 서서히 일러스트 강의를 준비했다. SNS에 소식을 올리고, 강의 자료를 만들었다.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고, 밀린 청소를 했다. 꽃피는 3월, 나는 시원하게 기지개를 켜면서 동굴 밖으로 나왔다. 활기차게 두 팔을 걷어붙이고, 기꺼이 일을 환영했다. 좋아, 와 봐. 와보라고! 내가 아주 멋지게 해치워 줄 테니. 크르렁!
강의는 열의에 넘쳤고, 만나는 사람마다 반가웠다. 엄마와 동생의 안부를 진심으로 물을 수 있었다. 정말 궁금해서, 이것저것 자세히 물었다. 여전히 건강하구나. 잘 지내서 다행이야. 기뻤다.
혼자 보낸 시간은 자신과 더욱 가까워지는 시간이었다. 배고픈 나를 위해 식사를 준비하고, 심심한 나를 위해 산책을 한다. 오롯이 나에게 집중하는 하루하루가 쌓이고, 또 쌓이면 선명하게 ‘나의 존재’를 느끼게 된다. 나의 말에 항상 귀 기울이고, 자신을 위해 살고 있음을 경험하는 것, 내면의 목소리와 필요에 점점 민감해지는 과정은 그 누구도 줄 수 없는 힘과 자존감을 선물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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