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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콤아티스트 유유 May 23. 2019

나를 이용하는 방법을 알려 줄게요

난 24시간 열려 있는 편의점이 아니에요






프리랜서로 살다 보면 다양한 클라이언트를 만나게 된다. 그 가운데 전화를 받자마자 다짜고짜 이렇게 물어보는 사람도 있다. “거기 그림 한 장 그리는 데 얼마에요?” 이런 질문을 받고나면 마치 공장에서 찍어내는 물건 취급을 받는 것 같아 씁쓸해진다. 



또 강사로 살다보면 종종 24시간 열려있는 문의 창구가 된다. “띠링~” 문자 알림이 울린다. ‘선생님, 궁금한 게 있어요’로 시작하는 메시지. 뿌리치기 어려운 연락이다. 모름지기 질문에 친절하게 답하는 것이 강사의 도리가 아니던가! 하지만 지금은 토요일 밤 11시. 답장을 미루는 게 초조해서 결국 컴퓨터를 켜고, 자료를 뒤적이며 장문의 답문자를 보낸다. 



엄마는 또 어떤가? 시간을 가리지 않고 전화해서 할 말만 하고 끊는다.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니?” 글쎄요, 궁금하지 않은데요. 이렇게 말하면 서운할까 봐 맞장구를 친다. 전화를 끊고 나면 집중도 뚝 끊긴다. 다시 몰입할 때까지 멍하게 시간을 허비한다.     



직장인으로 살 땐 답답하다고 툴툴거렸지만, 회사라는 공간이 일에 집중할 수 있게 보호해줬다는 것을 프리랜서가 되고 나서야 뼈저리게 느꼈다. 사람들이 아무 때고 찾아오는 공공장소가 된 기분이랄까. 일과 휴식의 구분도 없는 데다 여기저기서 날아오는 질문과 요청까지! 스트레스가 쌓이고 또 쌓이자 한 가지 방법을 궁리해냈다. 바로, 나를 이용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이었다. 






일단 온라인에 공개한 휴대폰 번호를 모두 삭제했다. 그리고 클라이언트가 볼 수 있도록 안내문을 추가했다. 



“작업 의뢰는 이메일로 해주세요.” 



꽤 합리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초초했다. 이메일이 성가셔서 연락을 안 하면 어쩌지? 클라이언트를 놓치면 안 되는데. 하지만 체계적으로 일하는 회사는 이메일로 소통한다. 정확한 자료와 근거를 남기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반대로 흔히들 말하는 ‘간 보는 상황’일 때, 누군지 밝히지 않고 전화로 ‘얼마냐?’하고 물어보는 경우가 많다. 나는 ‘이메일을 이용하라’는 규칙을 실속 없는 클라이언트를 일차적으로 걸러내는 수단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일러스트 강의 문의는 블로그 댓글로 답변하기로 했다. 모든 포스팅 끄트머리에 안내문을 추가했다. “더 궁금한 점은 블로그 댓글로 문의하세요 :)” 전화나 문자로 바로바로 응대하는 게 더 친절해 보이지 않을까? 잠시 고민했다. 하지만 속도보다 정확성이 중요했다. 시간이 걸리긴 하지만 질문을 주의 깊게 읽고, 정확한 답변을 할 수 있어서 만족스러웠다. 자칫 어긋날 수 있는 소통이 텍스트로 정돈되니 이보다 좋을 수가! 짧은 질문도 신중하게 답변하는 모습을 신뢰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일러스트 수업 첫 시간에 ‘강의실 이용 방법’을 설명하면서 ‘강사 이용 안내’를 덧붙인다. 실제로 강사 이용 안내라고 정확히 지칭한다. 부디 나를 잘 이용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다. “주말에는 일하지 않아요. 평일에는 오전 10시부터 6시까지 일해요. 질문은 온라인 카페를 이용해주세요. 답변하는 데 며칠이 소요될 수 있습니다. 전화와 문자 연락은 원활하지 않습니다.” 



좋은 강사가 되려면 작품 활동에 충실한 작가가 돼야 한다. 작가로서 경험하고 깨우친 것이 곧 커리큘럼이 되고, 교재가 되니까. 안내의 효과는 놀라웠다. 단 몇 줄의 규칙이 강의와 작품 활동의 균형을 되찾아 주었으니까.






엄마도 예외는 아니었다. “일할 때는 전화를 받을 수 없어요” 하고 상황을 설명했다. 갑자기 집에 찾아오겠다고 하면 “해야 할 일이 있어서 오늘은 어려워요” 하고 거절을 하기도 했다. 마음이 상하지 않도록 “적어도 하루 전날에 연락해주시면 좋아요” 하고 친절한 설명도 덧붙였다. 



알고 있다. 세상 정 없이 보이는 거. 내색은 안 했지만 엄마는 속으로 얼마나 서운했을까. 하지만 집이 곧 작업실이기 때문에 일과 생활을 구분 짓기 어렵다. 스스로 규칙을 만들지 않으면 일의 흐름이 끊기고 집중할 수 없다. 겉보기에는 냉정한 거절이지만, 꾸준히 일하기 위한 간절한 노력이다.      



지금은 당연한 일이 됐지만, 새로운 규칙을 추가할 때마다 사람들의 시선이 신경 쓰였다. 유난스러워 보이려나. 건방지다고 생각하진 않을까? 이상한 사람처럼 보이면 어쩌지. 주변을 둘러봐도 자신을 이용하는 방법을 내건 사람은 나밖에 없었으니까. 



그래서 나는 이상한 사람이 됐을까? 아니다. 뜻밖에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고, 프리랜서 8년 차가 된 지금까지 규칙을 유지하고 있다. 물론 예외도 있다. 급한 용무는 바로 통화하거나 문자를 주고받는 융통성을 발휘한다. 그런데도 속으로 의아해하거나 불편해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서서 난색을 표하는 사람은 없었다. 



이토록 자연스러운 이유는 뭘까? 시작부터 분명하게 말했기 때문이다. 화내거나, 비난하거나, 싸우지 않았다. 구구절절 설명하거나, 미안해하거나, 눈치 보지도 않았다. 다만, 말했을 뿐이다. 필요한 규칙이 무엇인지 스스로 충분히 생각한 뒤에 이렇게 말이다. “저는 여기부터 여기까지 이용할 수 있습니다.”     



도로에 차선이 없다고 생각해보자. 상상만 해도 아수라장이 떠오른다. 인생길은 도로보다 훨씬 복잡하게 얽혀있다. 신호등과 차선이 없다면 사고는 필연적으로 일어난다. 언제까지 “괜찮아요, 괜찮아요” 하며 뒷걸음질 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쾅! 사고가 나기 전에 소리 내서 말하자. “넘지 마세요!” 알다시피 사고는 예방이 최우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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