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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콤아티스트 유유 May 30. 2019

아주 사적인 공휴일

‘마음 챙기는 날’에는 일을 잠시 쉰다






“저기 불이 나서 연기가 막 솟아오르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야 불을 끄러가야죠. 빨리 119를 부르거나.”


“네 마음에 연기가 나면 어떻게 할 거야?”


“마음에 연기요? 글쎄요. 그건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불이 번지게 그냥 둘 거야?”


“아니요. 달려가야죠. 불을 끄러.”



나에게 타로를 알려주었던 선생님은 선문답 같은 질문을 즐기고는 했다. 그날도 어김없이 생각지도 못한 질문으로 나를 당혹스럽게 했는데 “그래도 역시 달려가야겠지. 연기가 나는 곳으로” 하고 다짐을 하는 나를 발견했다.     



그 무렵부터다. 달력에 ‘마음 챙기는 날’이 등장한 건. 그날은 아주 사적인 공휴일, 연기를 쫓아 마음의 불을 끄러 가는 날이다. 연기가 나는 건 어떻게 알아차릴 수 있을까? 몇 가지 체크리스트를 살펴보면 단번에 알 수 있다. 

    


―해야 할 일을 자꾸 미룬다.

―주어진 일보다 과도하게 스트레스를 받는다.

―해봤자 뭐가 달라질까 싶어서 무기력해진다.

―화가 나거나, 슬픈 감정이 지속된다.     



연기는 어딘가 불이 났다는 걸 알려주는 신호, 마음에 보살핌이 필요하다는 구조요청이다. 타로 선생님은 이런 말을 덧붙였다. “연기가 보이면 신나게 달려가야지. 아, 내가 할 일이 생겼구나! 하면서.” 







‘마음 챙기는 날’에는 일을 잠시 쉰다. 바쁠 때는 하루 중 서너 시간 정도를 할애한다. 보통은 꼬박 하루를 보내고, 길면 일주일이 걸린다. 먼저 깨끗이 씻고, 주변을 정돈하고, 잘 먹는다. 몸이 편해야 마음이 편하다는 말은 언제나 옳으니까. 그리고 마음을 관찰한다. 이 과정은 보통 애정 어린 질문으로 이뤄진다. 



“뭐가 힘들어?” “가장 큰 고민이 뭐야?” “왜 슬플까?” “혹시 뭐가 두려운 거야?” 말 못할 근심과 두려움이 밖으로 나올 수 있게 다정하게 묻고 또 살핀다.      



일러스트 수업을 시작할 때 ‘마음 챙기는 날’을 여러 번 달력에 표시했다. ‘내가 사람들을 가르칠 자격이 있을까?’ ‘아직 준비가 부족한 거 같은데……’ 엄격한 자기검열로 스스로를 몰아붙였기 때문이다. 나는 이 모든 고민들이 마음이 보내는 SOS 신호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진득하게 마음에서 피어오르는 연기를 쫓은 결과, 망설임과 두려움 너머에 있는 진심에 이를 수 있었다. 



그림의 가치와 즐거움을 전하고 싶었다. 타고난 재능이 있거나 미대 졸업장이 있어야만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오해를 풀고 싶었다. 상고를 졸업하고 경리로 일하던 시절, 이런 조건에 꼼짝없이 갇혔더라면 일러스트레이터가 될 수 없었을 것이다. 수없이 고민했던 지난날의 나처럼 망설이는 사람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 



“그림을 좋아하는 마음 하나로 충분해요!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당신의 그림은 세상에 단 하나뿐인 특별한 그림이니까요.” 



진심이 담긴 바람이 투명한 빛처럼 마음을 밝혔다. 이런 마음이었구나. 이 간절한 바람이 세상에 뿌리내리도록 힘껏 돕고 싶어졌다. “계속해서 수업을 만들어! 너의 경험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분명 있을 거야.” 어느새 목소리 높여 자신을 응원하고 있었다. 나는 이 순간을 정말이지 사랑한다. 자신에게 진심으로 이해받고, 지지받는 순간 말이다. 꾸준하게 일러스트 수업을 할 수 있었던 건 대리석처럼 견고하게 자신을 지지하는 마음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때때로 우리는 놀라우리만큼 마음의 문제에 둔감해진다. 나 역시 다르지 않았다. 중요하고, 바쁜 일에 치여 마음은 늘 뒷전이었다. 종이에 손가락이 베이기만 해도 호들갑을 떨면서 연고를 바르고 밴드를 붙이는데. 마음의 시름과 상처는 시간이 약이라고 하면서 그냥 넘어갔다. 



마음은 한 번에 무너지지 않는다. 조금씩 흔들리다가 꺾인다. 가랑비에 축축하게 젖다가 꼬르륵 물속에 잠겨버린다. 그러니까 미루지 말자. 스멀스멀 올라오는 연기가 보이거든 불을 끄러 당장 그곳으로 달려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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