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나를 위해 어떤 일을 해줄까?
씨앗은 자신으로 살기 위해
땅에 뿌리를 내린다.
길에 심은 나무는 높게 가지를 뻗고,
새는 하늘을 난다.
두더지는
두더지답게 살기 위해 땅을 파고,
나비는 나비가 되기 위해
고치를 뚫고 나온다.
모두 자신을 위해 살지만
누구도 비난하지 않는다.
‘나’ 자신이 되고 싶다면
한 순간만이라도 나를 위해 살아야 한다.
씨앗과 나무, 새와 나비,
두더지처럼 그렇게……
나에게 뭔가 좋은 걸 해주고 싶은 마음이 날로 커졌다. 하지만 정작 내가 뭘 좋아하는지 알지 못해서 곧 곤경에 처했다. 게다가 비난하고 질책하던 습관은 하루아침에 고치기 어려웠고, 스스로 베푸는 호의는 어색했다. 그래도 끊임없이 나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친절하고 좋은 일들을 고민하고, 또 고민했다. “오늘은 나를 위해 어떤 일을 해줄까?” 이렇게 묻는 게 새로운 습관이 될 때까지.
그 무렵 나는 수첩을 꼭 들고 다녔다. 한 손에 쏙 들어오는 민트색 수첩은 어느 틈에 모서리가 닳고, 종이 끝자락이 나풀거렸다. 책에서 좋은 글귀를 발견하거나, 다른 사람의 경험담을 듣고 나서 ‘나에게도 꼭 해줘야지.’ 하는 일들을 이 수첩에 빼곡히 메모했다. 그리고 수시로 펼쳐보면서 나를 위해 할 일을 찾았다. ‘자기사랑을 위한 To do list’였던 셈이다.
혼자 영화 보기
하루에 한 번씩 칭찬해주기
내가 좋아하는 옷 쇼핑하기
눈치 보지 않고 혼자 밥 사 먹기
자책하기 전에 왜 그랬는지 먼저 헤아려주기
친구 만나서 폭풍 수다 떨기
열 받는 날 주먹으로 베개 실컷 때리기
수고했다고 진심으로 말해주기
엄마가 화낼 때 무조건 내 편 들어주기
미친 척하고 번지 점프하기
기분 나쁘다고 말로 표현하기
아무 생각 하지 않고 하루 동안 푹 쉬기
진짜, 진짜 맛있는 거 사 먹기
속상했던 얘기 스스로 들어주기
싫어요, 하고 부탁 거절하기
나한테 보내는 편지쓰기
미운 사람 시원하게 욕하기
내면아이 꼬옥 안아주기
어떤 일은 처음이라 어색했고, 또 어떤 일은 용기가 필요했다. 높이가 50미터나 되는 점프대 위에 섰을 땐 몇 번이나 뒷걸음질 쳤다. 하지만 나에게 꼭 보여주고 싶었다. 용감하고, 굳건한 모습을. 짧은 모험이었지만 ‘나는 나약하고, 소심하다’는 생각을 깨기에 충분한 경험이었다. 처음으로 작정하고 나를 칭찬하던 날에는 닭살이 돋고, 손발이 오글거렸다. 하지만 하면 할수록 기분이 좋아졌다. 배터리가 빵빵하게 충전되는 기분이랄까? 나중에는 아예 ‘칭찬 노트’를 만들고 하루 한바닥씩 칭찬으로 종이를 가득 채웠다.
작고 낡은 수첩은 내가 나를 사랑한다는 증거이자 역사가 됐다. 한 줄 한 줄 읽어 내려갈 때마다 사진처럼 장면들이 떠올랐다. 오롯이 나에게 집중했던 시간, 스스로 사랑할 수 있으리란 기대에 설렜던 순간, 소박해서 눈에 띄지 않았던 매일매일의 자취들. 평범한 일상의 언어부터 애정이 가득 담긴 행동까지. 하나씩 나열하고 나면 내가 정말이지 소중한 사람이 된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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