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병 말기 증상
또 병이 도졌다.
잊을 만하면 한번씩 나오는 그 '병', 바로 퇴사병이다.
일 년마다 연례행사다.
일 년마다 회사를 옮기는 내 남편은 '이직왕'이다.
어쩜 그렇게 새로운 회사를 잘도 찾는지,
그것도 능력이라면 능력이다.
이사, 결혼, 출산 등의 중대사가 아니고서는
직장을 옮기지 않는 나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한 직장에 오래 다닐수록 더 좋은 게 아닐까?
결혼을 준비하는 시점에도 남편은 퇴사 후 이직을 했고,
임신 초기의 입덧으로 밤새 토하고 출근할 때에도
남편은 구직활동 중이었다.
젖먹이 아이를 억지로 떼어놓고 내가 복직을 할 즈음에도
어김없이 남편은 퇴사를 하고 이직을 했다.
나는 그런 남편에게
'까짓 거 내가 벌게, 오빠 하고 싶은 대로 해!'라고
말해주는 것 외에는 해줄 게 없었다.
늘 믿고, 응원해주고, 지지해주었다고 생각한다.
(남편의 생각은 다를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성실한 사람인지라,
회사를 그만 두면 1~2개월 내에 새로운 직장을 구하기에
딱히 뭐라고 할 수가 없었다.
잠시 일을 쉬는 사이에는
단기 아르바이트라도 하며 생활비를 보탰고,
회사를 다닐 때에도 밤에는 대리운전을 할 정도로
생활력이 강한 사람인 걸 알기에 무작정 믿었다.
하지만 현실은 현실이다.
1년마다 그만두었기에 퇴직금이 쌓일 리 없었고,
본인이 사표를 쓴 것이기에 실업급여도 없다.
경력직 대우를 해준다고는 하지만 급여는 늘 비슷했고,
1년마다 이직 후 새로운 업무를 익혀야 했기에 늘 바빴다.
새벽부터 자정까지,
하루 종일 회사일에 시달리느라 늘 피곤해했다.
거기에 아이까지 태어났으니 잠이 더 부족해졌을 것이다.
참 위태위태한 생활이었다.
아이 돌 즈음 이직을 한 남편은
역시나 두 돌이 돌아올 즈음 다시 이상해졌다.
회사생활이 너무 힘들다는
똑같은 레퍼토리를 시작한 것이다.
하... 나도 한계가 왔다.
남편의 힘듦에 처음으로 공감을 못해주었다.
"오빠, 돈 버는 거 누구나 다 힘들어.
내가 늘 헤헤~ 거리니까 나는 안 힘든 줄 알아?
원래 남의 돈 먹는 게 쉽지 않아.
이제 아이 클수록 돈 드는 일 더 많을 텐데,
우리가 정신 차리고 더 벌어야지. 안 그래?"
내가 한 말 중에 틀린 말은 없다.
그래서 남편도 할 말이 없었을 것이다.
수긍하는 것 같았던 남편이었지만
그 후에도 계속해서 퇴사 뉘앙스를 내비쳤다.
늘 반복되는 패턴에 남편에 대한 실망감이 쌓여갔다.
그리고 그러는 사이 나도 점점 지쳐갔다.
두 돌도 안 된 아이 맡기고 출근하는 거 나도 싫다고,
우리 엄마는 무슨 죄길래 환갑까지 육아를 하겠냐고,
오빠는 내가 바보라서 아무 말 안 하고 그동안 이해해준 줄 아냐고,
이거 완전 TV 프로그램 '안녕하세요'에 나가면 우승감이라고.
점점 나는 남편에 대한 이해는커녕 비난을 쏟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리 가정의 비극이 시작되었다.
그날 이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