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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콤북스 김희영 Nov 05. 2022

엄마는 네가 이기적으로 자랐으면 좋겠다.

순한 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바람

우리 으누는 태어날 적부터 순했다. 

신생아실 선생님께서 배고플 때만 우는 아이라고 말씀해주셨다. 쉬야나 응가를 해도 울지를 않으니 제때 갈아주지 않을까 봐 초보맘은 신생아실을 지나갈 때마다 우리 오복이 좀 잘 봐달라고 부탁드렸다.


조리원 퇴소를 하고 도우미 이모님이 오셨을 때도 같은 말씀을 해주셨다. 참 많은 아이를 키워봤지만 순둥이로는 TOP이라고 하셨다. 엄마 아빠 힘들지 않게 잘 자고, 잘 먹고, 잘 싸는 것만으로도 이 나이 때 할 수 있는 최고의 효도라고 말씀해 주셨다.




정말 그랬다. 그때 당시의 초보맘이라 서툴러서 힘들었던 것 빼고는 으누를 키우면서 힘든 적이 없었다. 돌아보니 그렇다.


우선 으누는 잠을 정말 잘 자는 아가였다. 생후 40일경부터 밤수를 끊고 5시간 통잠을 자더니, 100일이 지나자 8~10시간씩 통잠을 잤다. 그 후로는 쭉쭉 밤잠이 늘어서 12~14시간을 거뜬히 잤다. 아이가 잠을 잘 자니 나도 금방 루틴을 찾을 수 있었고, 잠시 스쳐갔던 산후 우울증도 금방 지나갔다.


먹는 것 또한 잘 먹는 아가였다. 태어날 때부터 모유와 분유를 혼합해서 먹였는데 단 한 번의 거부도 없었다. 결국 내가 힘들어서 5개월 만에 중단한 모유도 한 번에 잘 끊었다. 이유식, 유아식으로 넘어가면서도 그 어떤 음식도 가리는 것 없이 잘 먹었다.


그리고 낯가림도 한 번도 없었다. 덕분에 생후 8개월 만에 복직을 할 수 있었다. 그 시간 동안 으누는 할머니는 물론 이모할머니들과도 시간을 잘 보냈다. 할머니가 일이 있으신 날은 외삼촌이랑도 잘 있었다. 그 누구에게 맡겨도 낯가림 없이 잘 지내는 그런 아가였다. 엄마 아빠와 떨어지기 싫다고 단 한 번도 운 적이 없다. 엄마 아빠와 1박을 떨어져 있어도 '그런가 보다~'하고 잘 있는 그런 아가였다.


으누는 아침잠이 많아 잘 못 일어나는 엄마를 위해 울지 않고 기다려주었다. 그러다가 엄마가 눈을 뜨면 생글생글 웃으며 반겨주었다. 신생아 때부터 그러더니, 좀 크고서는 혼자서 책을 보며 기다려주었다. 지금 생각하니 말이 되나...? 싶다. 하지만 정말 그랬다. 돌 전부터 엄마가 일어나기 전까지 책을 보며 기다리는 으누였다. 효자 그 자체!




그런 으누를 보면서 모두들 나에게 '복 받았다'라고 말해 주었다. 전생에 유관순이었냐는 말까지 들었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육아가 편해서 너무 다행이었다. 이 정도라면 둘도, 셋도, 넷도 낳아서 키울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도 생겼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그런 으누가 마음 아팠다. 

전형적인 '순한 아이' 기질이었던 으누가 속상했다. 책에서 순한 아이 기질 부분을 읽을 때마다 눈물이 맺혔다. 순하지 않아도 좋으니, 엄마를 귀찮게 해도 좋으니 자기감정표현을 잘하는 아이로 자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진심으로 이기적인 아이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남에게 피해를 주면서 자기밖에 모르는 그런 이기적 말고...

자신의 감정을 먼저 생각하고 잘 표현하는 그런 아이로 자라길...


평생을 착한 아이 콤플렉스 속에 살았던 나의 어린 시절과 겹쳐졌다. 육아를 하면서 마음속 꽁꽁 숨겨두었던 나의 내면 아이와 마주한 것이다. 어린 시절의 나는 좀 더 남 눈치 안 보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살고 싶었나 보다. 착한 딸이 되는 것이 가장 큰 목표였는데, 그게 아니라 좀 더 '나 자신'을 위한 삶을 살고 싶었나 보다.


우리 으누는 그렇게 자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효자 아니어도 되니까, 키우기 까다로운 아이어도 되니까, 다른 사람 배려를 좀 덜 해도 좋으니까, 그보다는 '자기 자신'을 최우선으로 두기를! 그렇게 바라고 바랐다.






엄마는 네가 좀 더 이기적으로 자랐으면 좋겠다.

엄마 아빠에게 착한 아들 말고, 

주변 사람들에게 마냥 좋은 사람 말고.

좀 더 너의 마음을 돌보고 너의 마음에 귀를 기울이는 

그런 아이로 자랐으면 좋겠다.


어른들의 말에 무조건적으로 순응하는 아이가 아닌

아닌 건 아니라고 분명히 말하는 아이로 자랐으면 좋겠다.

그래서 나이나 권위에 굴복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다른 사람이 하라는대로 하는 아이가 아니었으면 좋겠다.


어려도 당돌하게 할 말 다 하는 아이로 자랐으면 좋겠다.

무조건적으로 착하고 예의 바르고 순응적인 아이보다는

본인의 목소리를 잘 내는 아이로 자랐으면 좋겠다.






한 치 앞도 모르던 3년 전의 나의 육아일기 속 문장들...


이때의 나의 바람을 잊지 말자! 

5살이 된 으누는 점점 엄마의 바람대로 자신의 목소리를 낼 줄 아는 아이로 자라고 있으니, 본인의 고집대로 엄마 아빠를 이겨먹는 아이로 자라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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