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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약방서가 Jan 20. 2023

One step at a time- w. 그릿 Grit

버스커 버스커의 노래 ‘벚꽃엔딩’을 '벚꽃연금'이라 부르는 것처럼 연초가 되면 약속이나 한 듯 '새해연금' 책들이 등장한다. <그릿>, <아주 작은 습관의 힘>,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과 같은, 주로 새해를 맞아 마음가짐을 새로고침 하고 싶은 의지가 엿보이는 컬렉션이다. 나름대로 목표한 바는 끝까지 이루어내는 듯 한, 굳이 말하자면 반푼어치 그릿의 소유자라 자부하는 나도 이번에는 그릿을 재독했다.

그릿Grit이란 무엇인가? 


한마디로 줄이면 열정과 결합된 끈기이다. 우리는 때때로 ‘프로시작러’를 만난다. 열정에 불타올라 이것저것 시작은 하지만 그 흥미가 지속되지 못하는 경우들이다. 당연히 어떤 일에든 흥미를 가지고 일단 시작해야 한다. 시작조차 하지 않으면 그것이 진짜 관심 있는 일인지, 지속할만한 일인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자는 성공하는 사람들은 일을 시작하는 추진력에 더해 시작한 일을 지속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관심거리를 심도 있게 파고들며 흥미를 유지하는 방법을 아는 것이다.


호기롭게 시작했으나 실패한 나, 그릿에 무슨 문제라도?!


그것은 경우에 따라 다르다. 관심이 그저 관심에 그치는 이유를 알아야 한다. 내가 관심을 가진 모든 일로부터 나의 최종 목표를 골라내야 한다. 일단 최종 목표를 설정하고 나면 그 목표만큼은 변함없이 추구해야 한다. 반면, 최종 목표를 향해가는 도중의 작은 하위 목표들도 있을 수 있다. 이것들은 하다가 안되면 실패하기도 하고, 중간에 계획이 변경되면 다른 것으로 대체하기도 한다. 그릿이 있는 사람들은 오히려 하위목표의 실패에 연연하지 않으며 대체 가능한 다른 하위목표들을 새로이 달성하고자 노력하는 방식으로 최종 목표에 도달하려 한다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내가 말하는 열정은 단순히 관심 있는 일이 있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것은 동일한 최상위 목표에 변함없이 성실하고 꾸준하게 관심을 둔다는 의미다. - 열정은 우선순위를 확실하게 만든다.
끈질기게 상위 목표를 추구하려면 목표 체계 내의 하위 목표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의 유연성이 필요하다는 역설적인 현실을 잘 보여준다. 자신의 상위 목표가 무엇인지 알 만큼 인생을 어느 정도 살고 고민도 거친 후에, 상위 목표는 잉크로 쓰더라도 하위 목표는 연필로 써야 한다. 그래서 때에 따라 수정하거나 혹은 전부 지우고 새로운 하위 목표를 대신 쓸 수 있어야 한다.


그릿은 타고나는가? 


그릿이 만약 선천적인 특질이라면 이 책이 150만 부나 팔렸을 리 없을 테니 안심해도 된다. 저자가 제안한 그릿을 키우는 방법은 분명한 관심, 질적으로 다른 노력의 시간, 높은 목적의식과 회복 탄력성을 갖는 것이다.


하나. 관심사를 분명히 해야 한다. 그저 관심을 갖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관심거리에 대한 흥미를 지속시키고, 심화시켜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찾아보지도 않고 어떻게 아는가? 노력을 기울여 갈고닦을 관심사를 먼저 찾아보자. 그리고 ‘미세한 차이를 알아보는’ 전문가가 될 때까지 흥미를 유지하며 발전시키는 것이다.


둘. 질적으로 다른 연습을 해야 한다. 전문 피아니스트의 연습시간이 평균 1만 시간이었다고 해서 1만 시간 (혹은 10년)을 투자하면 해당 분야의 전문가가 된다는 표어가 한동안 유행이었다. 이에 해당 연구자가 직접 밝힌 바, ‘평균’은 실제와 많이 다르고 (평균을 계산해 보면 그 값이 이상치에 얼마나 크게 영향을 받는지 알 수 있다), 탁월한 전문가는 그저 오랫동안 연습하는 것이 아니라 ‘의식적인’ 연습을 한다고 지적했다. -사실 '1만 시간의 법칙'이라는 통념은 통계적 결과를 잘못 해석한 문장으로 유명하다. 무작정 1만 시간만 해서는 전문가가 될 수 없다는 말이다. 나는 글을 잘 쓰고 싶기 때문에 벤저민 프랭클린의 일화가 기억에 남는다.

벤저민 프랭클린도 의식적인 연습을 통해 글이 좋아졌다고 말한다. 그의 자서전에 의하면 프랭클린은 제일 좋아했던 잡지인 <스펙테이터>에서 최고로 잘 쓴 글들을 모아 두었다고 한다. 그는 그 글들을 메모해 가며 읽고 또 읽은 다음에 원문을 서랍에 넣고는 다시 써보았다. "그리고 내가 쓴 글과 원문을 비교해서 잘못 쓴 부분을 찾아내고 정정했다."


셋. 높은 목적의식을 갖는다. 저자는 이 책에서 목적 개념이라 함은 ‘우리가 하는 일이 자신 외의 사람들에게도 중요하다는 생각’이라고 했다. 나의 관심으로부터 시작하여 질적으로 다른 연습을 통해 연마해 가는 그 행위가 타인의 행복에도 기여할 때 열정과 결합된 끈기, 즉 그릿이 생긴다는 것이다. 당장 타인의 행복에 기여할 방법이 생각나지 않아도 괜찮다. 우리는 자기본위로 태어났기에 나에게 좋은 것을 먼저 찾은 후에야 그것으로 타인에게 기여할 방법을 찾을 수 있다.

대부분의 사람은 먼저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끌리고 나중에야 개인적인 관심사가 어떻게 타인에게 유익할 수 있는지 인식한다. 다시 말해 상대적으로 자기중심적인 관심에서 출발해 절제하며 연습하는 법을 배우고 마지막으로 타인중심의 목적으로 통합되는 순서가 일반적이다.


넷. 다시 일어서는 자세, 희망을 갖는다. 나는 희망보다 더 구체적인 지침을 내포한 단어인 회복탄력성으로 해석했다. 저자는 (윤리적으로 가능한 실험인지 알 수 없는) ‘포기하지 않는 개’ 실험을 인용하여 모든 고통이 같은 무게를 지니는 것이 아니라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고통을 겪을 때 무력감을 학습한다고 말했다. 본래 긍정을 타고났더라도 고통은 겪는다. 그 고통을 어떻게 대하는지가 중요하다고 말하고 싶은 것 같다. 지금 겪는 부침은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일시적인 역경이라고 대하는 자세가 ‘역경을 딛고 낙관으로 나아가는’ 그릿을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더하여, 우리가 어떤 문화/조직에 속해있는지가 그릿의 형성에 관여한다는 주장이 흥미로웠다. 나는 5년간 같은 모임에서 아침을 보냈다. 운동이 무진장 싫은 탓에 초반 3년간 리더친구에게 잔소리를 들었고, 솔직히 그것 때문에 하지 말까 고민한 적도 있다. 5년이 지난 지금은, 이렇게까지 글로 인정하기는 싫지만 아침에 일어나서 움직이지 않으면 어쩐지 찜찜하다. 유튜브에서 다만 10분짜리 운동이라도 매일 하고 있다. 벌써 나의 정체성이자 습관으로 인이 박힌 것이다. (어쩐지 분함...)

내가 가장 흥미를 느낀 것은 문화가 장기적으로 우리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영향을 미친다는 견해였다. 적절한 상황하에서 시간이 갈수록 우리가 속한 집단의 규범과 가치는 우리 자신의 것이 된다. 집단의 규범과 가치는 내면화되고 우리와 늘 함께한다. 그 집단의 일 처리 방식과 이유는 점차 내가 일하는 방식과 이유가 된다. 정체성은 우리의 모든 특성에 영향을 미치지만 그릿과는 특별한 연관이 있다. 그릿, 즉 투지를 발휘할지 말지 판단해야 하는 결정적 순간, 예컨대 한 번 더 일어설 것인가, 이 무덥고 지치는 여름날에 끝까지 계속할 것인가, 혼자라면 5 킬로미터만 뛰었을 거리를 팀원들과 함께 8킬로미터까지 뛸 것인가의 결정은 다른 어떤 요인보다 우리의 정체성에 의해 좌우될 때가 많다. 대체로 우리의 열정과 끈기는 여러 방안의 득실에 대한 냉정하고 계산적인 분석에서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가 스스로를 규정한 모습이 우리 힘의 원천이 된다.

그러니 부족한 그릿을 염려하는 분들은 그릿 충만한 모임에 속해보시면 좋겠다.


나는 두 아이의 엄마이기 때문에 아이들의 그릿을 키우는 방법에도 매우 지대한 관심이 있었지만, 저자는 이에 관해서는 연구가 더 필요하다는 말로 일축하였으므로 참고만 하기로 한다. (참고: 허용적이고 방임하는 부모보다는 권위적인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고 기준을 세워주는- 부모, 그러면서도 자녀를 사랑으로 지지하는 부모가 그릿을 키워준다고 한다. 아이를 키워본 분은 다 아시겠지만 세상 어려운 일이다.)


저자의 마지막 질문이 인상적이었다. “우리가 아인슈타인이 될 수없다면 물리학을 공부할 자격이 없는가? 우사인 볼트가 될 수 없다면 오늘 아침 달리기를 하지 말았어야 하는가? 어제보다 조금 빨리, 조금 오래 달리려고 노력하는 것은 쓸데없는 일인가?”- 맞다. 이것들은 모두 어리석은 질문이다. 그릿은 그저 한 걸음씩 계속 나아가는 것이다. 올해 나의 모토가 ‘One step at a time’인데. 나의 무의식 속에 그릿이 남아있어서 이런 모토를 정한 것이 아닐까 속으로 뿌듯해하며.


매일 걷는 걸음은 지리하고 이렇게 걸어서 어디로 닿을지 모를지라도, 한 걸음씩 나아가는 그릿 충만한 우리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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