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역만리타국에서 살아남기란.
내가 Job offer를 받은 지역은 토론토에서 북쪽으로 2시간 반 거리의 소도시였다. T자 도로의 중앙 지점으로서, 왼쪽은 겨울 관광지로 스키장이 있고 오른쪽에는 여름 관광지로 호수를 끼고 있는 상업 도시라고 하며 근방에서는 꽤 번잡하고 큰 도심지역이라는데 서울에서 온 내 입장에서는 두 발로 걸어도 반나절이면 돌아볼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생경한 작은 마을로 여겨졌다. 이제부터 내 삶의 터전이 될 이 작은 도시에서 나는 어디에 정착하게 될까?
한국과는 달리 rent를 구할 때 내가 살고 싶은 집주인에게 Offer를 넣고 승인을 기다려야 한다. 선착순이 아니라 집주인이 세입자를 고를 수 있는 시스템이다. (물론 경쟁이 있는 집에 한해서) 유학생일 때 나를 그렇게 애태웠던 신용도가 Job offer letter와 함께 급상승하여 이제는 내가 집을 골라 들어갈 수 있으니 감개무량하다. 게다가 이번에는 지긋지긋한 층간소음에서 벗어나 측간소음을 선택... 아니 이건 아니고 semi detached라는 주택의 한 형태를 골랐기에 꽤 기대도 되었다. 드디어 내가 '캐나다스러운' 집에서 살아보는구나! 작은 텃밭도 만들고 뒷마당에서 아이들하고 신나게 놀아야지! (꿈이 컸다...)
이제 이사만 남았다. 당연히 캐나다에도 이사 업체가 있다. 한인들이 운영하는 업체도 있다고 들었다. 한국에서도 쉽지 않은 '좋은' 이사 업체 찾기가 불가능한 지경이라 또 불안해졌다. 가만 우리 짐들을 추려보니 가구랄 것이 책상 하나, 식탁 하나, 그리고 책장만 두 개다. 언제고 떠나게 될지 모른다며 소파 하나 없이 살다 보니 애들이 이케아만 가면 소파마다 앉아보던 시절이었다. 나의 무지도 한몫했다. 스무 살 때부터 자취방을 옮겨 다니던 알콩씨와 달리 나는 부모님과 함께 살아온 온실 속 화초라고나 할까. 우리 이렇게 짐이 없으니 그냥 우리끼리 옮겨도 되지 않을까?
한국에서도 1톤 트럭 빌리듯, 여기도 그런 업체가 있다. 가장 많이 사용하는 업체는 U-Haul이라는 곳이다. 자동차 뒤에 고리처럼 거는 컨테이너부터 집업트럭도 가능하고 아주 커다란 화물 트럭도 빌릴 수 있다. 놀랍게도 우리가 빌리는 정도의 트럭은 (아마도 2.5톤) 우리의 기본 면허로도 운전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신이 났다. 귀중품은 우리 승용차에 실어 내가 운전하고, 큰 짐은 트럭에 실어 알콩씨가 운전을 해보기로 했다. 한 땀 한 땀 유홀 트럭 예약도 끝나고 픽업 장소도 확인하고 가장 큰 부피를 차지하는 책(... 유구무언..)들까지 넣었으니 끝난 거 아니냐며.
때로 이 ‘기본’이라는 지나치게 확고한 단어는, ‘기본’ 바깥 사람들의 저마다 다른 맥락과 상황을 쉽게 지우기도 한다. (중략) 기본 소양이라는 게 때 되면 어딘가에서 뚝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나이를 먹듯 세월 따라 저절로 생기는 게 아닌데, 그것을 배우고 갖추기 위한 시간과 에너지와 환경이 확보되어야 하는 건데, 그런 확보가 모두에게 똑같이 주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기본’으로서 누군가를 판단할 때 배제되기 쉬운 불리한 어떤 입장들에 대해 잊고 있었다. 설사 같은 조건이라고 해도 사람마다 적성과 성향, 강점과 약점은 얼마나 다른가. - <다정소감>, 김혼비
평소 나를 관찰해 오던 이웃집 언니가 나의 발랄함을 눈치채고 선뜻 형부와 함께 나서줬다.
"이사 끝나면 밥이나 사줘"
이 쿨한 부부님 덕분에 살았지 그러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출발도 못할 뻔했다. 나는 해맑게도 이삿짐 박스도 아니고 정리상자에 옷가지며 그릇을 담아 내가 중요한 것들만 달랑달랑 옮길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이삿짐이란 게 그렇게 그냥 들고 옮길 수 있는 것이 아니구나?! 이삿짐 싸기에 도가 텄다는 자취경력 1N 년 출신 부부님들께서 목장갑으로 무장을 하고 스카치테이프를 둘둘 감아가며 마치 업체처럼 도와주시는데 입이 떡 벌어졌다. 그래, 피아노도 있고 일단 책이 한 짐이며, 매트리스도 있는데, 짐이 없기는 뭐가 없냐고. 아이고 바보 멍청이. 그나마 인복이 있어서 다행이라며 나를 위로한다.
설상가상 트럭 운전은 처음인 알콩씨가 차를 받자마자 당황하기 시작했다. 당연히 트럭 뒤에는 짐칸이 붙어있으니 룸미러로 뒤가 아예 안 보일뿐더러 사이드미러로도 주로 몸체만 보이는 거였다. 브레이크를 일찍 밟는다고 밟아도 체감상 승용차의 두 배는 미끄러지고 나서야 멈추는 것 같았다. 거꾸로 속력을 내야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 트럭을 몰고 콘도 주차장으로 들어서는데 위에서 와그작 소리가 난다. 짐도 싣기 전인데. 심장이 내려앉는 줄 알았다. 내 주특기인 호구처럼 보험 들기가 그때처럼 다행인 적이 없다. - 보험 덕분인지 1달러도 더 청구되지 않고 끝났는데 생각해 보면 그거 없었어도 확인 안 했을 위치였을 수 있다는 점. - 그날 도로의 민폐 차량은 아마 우리였을 것이다. 트럭을 앞세우고 2년을 운전해도 초보와 다름없는 내가 뒤를 쫓아갔으니까 뒤차들이 꽤나 답답했겠지 싶다.
아침부터 시작했으나 밤이 되어서야 도착한 낯선 동네에서 우리는 냉동 피자를 찾아 박스만 펴고 한참 늦은 저녁을 먹었다. 팔다리가 후들거리고 입이 바싹 마를 때쯤 짐 옮기기가 끝났으니 한 번은 가능하되 두 번은 절대 없을 일이다. 나중에, 나중에서야 웃으며 이야기하게 되겠지. 우리 이런 일도 해봤다면서.
그날의 교훈.
1. 4인 가족의 셀프 이사, 가능은 하지만 시도는 하지 말자.
2. 트럭 앞/뒤/양 옆에 붙어 가지 말자. 아예 얼씬도 하지 말자. 진짜 안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