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 쌉싸름한 첫인상

저한테 왜 그러세요? feat. 캐나다 시골약사

by 약방서가

학생도 인턴도 아닌 꿔다 놓은 보릿자루로 3개월, 무급이면서 애매한 포지션으로 보낸 2개월여의 시간 동안 막연히 상상만 했었다.


"약국에 있는 건 어떤 느낌일까?"


한국에서는 심지어 남편이 약국을 열었어도 거기 와서 일 좀 도와달라고 할까 봐 지문 등록조차 거부했던 나였기에, 첫 직장에 대한 기대보다 불안이 더 컸다. 게다가 나의 입사 전까지 몇 달을 혼자 고군분투하던 매니저는 왓츠앱 (북미에서 많이 쓰는 카카오톡스런 메신저) 연락처를 받자마자 나의 3개월치 근무 스케줄을 미리 보내 당황스러움을 더했다. 당연히 본인과 겹치는 날은 단 하루도 없고, 첫날 월요일부터 혼자다.


당시 매니저는 얼굴이 동글동글한 웃는 인상의 파키스탄 사람이었다. (과거형이다.) 본인도 파키스탄에서 날아와 컬리지를 졸업하고 받은 PGWP로 약사 면허까지 연결한 이력이 있는 데다 신분이 불안정하긴 매한가지여서 여러모로 나를 이해해 주는 듯했다. ('듯'에 방점) 웃는 얼굴로 작은 약국이라 큰 일은 없으니 아침에 20분 정도 일찍 나오면 본인이 문 여는 법 정도 알려주겠다고 하기에 이미 동공지진. 그 정도로 되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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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을 수 없는 10월 1일 월요일, 대 재앙이 시작되었다.


약국에서만 의약품을 취급하는 구조에서 대개 마찬가지일 텐데, 한국으로 치면 심평원 같은 곳에 내 면허를 등록해야 일을 시작할 수 있는 거였다. 물론 나는 금시초문이었고, 파키스탄인 그도 설마 내가 아예 초보인줄은 몰랐던 것 같다. 어찌어찌 약국 문은 열었는데 보내는 처방마다 "No Pharmacist ID logged in"이라는 에러 메시지가 뜨면서 넘어가질 않는다. 그 심평원 같은 곳에 부랴부랴 전화를 해서 정보를 전달했음에도 일주일쯤 걸리며, 따로 알람도 가지 않으니 매일매일 시도를 해보란다. 역시 캐나다는 호락호락한 나라가 아니다.


학생 때는 있는 줄도 몰랐던 일들이 어디선가 튀어나와 한껏 어리바리해졌다. 영어는 꼬이지, 일은 서툴지, 엉망진창이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 나를 짓눌렀던 것은, "Don't look for your mama"라고 윽박지를망정 모르는 일은 물어보고 책임도 슬쩍 넘기면 되었던 나의 인턴 평가자도 없고 "Ask me anytime"이라며 이상한 환자가 나를 붙들라치면 가만 다가와 대신 응대해 주던 나의 사수님도 없이 모든 것이 내 책임이라는 '중압감'이었다. 하루아침에 처지가 너무나 뒤바뀌지 않았나. 단 하나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없던 날들이 길었는데 이제는 사소한 것 하나까지도 그날 하루는 내 결정이 전부라니.


자기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생판 처음 보는 약사가 들어와 낯선 억양으로 말을 건네며 일을 하고 있으니 "너 말고 다른 남자 약사는 어디 있냐"라고 묻는 사람들이 속속 나타나며 마음이 타들어갔다. 나는 열심히 하고 있는데 느리다는 타박에 괜스레 눈치가 보여 거북이 등껍질 같은 것을 달고 다니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다. 뒤통수로까지 눈치를 보다가 안 되겠으면 숨기라도 하고 싶었다.


11시간 근무가 끝나고 집에 돌아와 눈물이 쏟아졌다. 몇 달 버티지도 못하고 잘리면 어떡하냐면서.

그래서 이 초보약사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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