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말에, 해외 사는 친구가 연락이 되지 않으면..

feat. 될 일은 된다.

by 약방서가

나는 서울에서 태어나서 서울에서 자랐다. 대학에 가서야 처음으로 만나게 된 '서울에 살지 않는 친구들'이 낯설어, 방학에 집에 간다는 '부산' 친구에게 "시골가?"라고 묻던 천진난만한 서울 '촌사람'이었다. 도시 밖의 삶은 상상도 해보지 않았다. 더욱이 외국 땅에서 라니, 이것이 꿈이라면 영원 무궁히 낯선 곳을 헤매는 악몽이라고 여겼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규직 풀타임' 자리를 덥석 잡은 것은 회사의 달콤한 약속, '비자 연장' 때문이었다.


캐나다는 캐나다 내에서 학위를 이수하면 학업에 소요된 기간에 따라 워크 퍼밋, 소위 '일 할 허가'를 부여한다. 진위는 모르겠지만 이런 식으로 외국인 노동자에게 노동 허가를 부여하는 나라는 없다고 들었다. 캐나다 내에서 경력을 쌓으려면 그쪽이 가장 쉬운 길이었다. (최근 너무 많이 바뀌어 과거가 되었다..) 다만 이는 평생 한 번 주어지는 기회이고 나는 이미 그 기회를 1년 비자로 날려버렸으므로 나의 신용을 보증해 줄 고용주를 찾아야 했던 터였다.


사연 없는 영주권은 없다지만 이 '신용을 보증해 주는 고용주'의 역할이 무시무시한 탓에 악덕 고용주의 이야기를 쉽게 들을 수 있다. 또 고용주의 입장에서 보면 이렇게 '보증'을 서주기 위해서 세금 납부 이력을 포함한 회계 기록은 물론, 고용된 인력 상황까지 낱낱이 오픈해야 하는 부담을 지게 되므로 단순히 선의로만 제공하기는 어려운 혜택이다. 본래도 해준다는 고용주를 찾기가 힘들다고 들었고, 대기업은 (내가 고용된 기업이 나름 캐나다 내에서 가장 큰 식품/약국 체인) 거의 해주지 않는다고 했다. 그렇지만 나는 입사 당시 약속을 받은 데다, 구두로만 한 약속은 믿지 않는 직업적 성향 탓에 굳이 이메일을 보내 서면으로도 받아두었는걸?


그런데 이게 웬일인지. 비자 만료일이 3개월 앞까지 다가왔는데 일에 진행이 없는 거다. 디렉터한테 나는 국제이사를 해야 하니 안 해줄 거면 지금 얘기하라고 협박성 전화를 넣어야 하나, 회사가 고용한 법무법인 담당자를 닦달해야 하나, 이도저도 내 마음대로 되는 일은 없으니 속이 바짝바짝 탔다. 5월이면 황금 같은 날씨가 시작되어 이 녹음을 누리지 않으면 손해 보는 느낌마저 드는 타운에 살면서, 내 마음이 지옥이니 그 어느 것도 보이지 않았다. 한국에 계시는 부모님과 아이들한테 내색하지 않으려고 얼마나 발버둥을 쳤는지. 한밤중에 숨이 막혀 일어나 앉으려니 내가 여기서 왜 이러고 있나 자괴감마저 들었다.


아마 당시에도 글을 남겨보려 노력했던 것 같은데, 물론 중단되었었다. 해외 사는 친구가 갑자기 SNS에 보이지 않으며 연락이 뜸해지면 비자를 연장하는 시기라는데. 겪고 보니 왜 그런지 알 것 같다. 한국에 가는 선택지도 물론 고려할 수 있겠지만 온 가족이 나와있는 상황에서 갑작스러운 변화는 가능한 한 피하고 싶은 마음이기도 하고. 뭐가 되었든 '실패'하는 느낌도 싫고, 불안정한 상황도 싫고, 온갖 부정적인 에너지의 소용돌이에서 괴로웠다.


매일 일희일비하며 신경질과 절망, 불안을 오갔던 것 대비 실제 비자 연장은 어느 날 갑자기 해결되어 버렸다. 한여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 같던 어느 낮시간에 갑자기. 이제껏 받은 어떤 비자보다 더 긴 기간으로 나왔다고 하여 실소하기까지 했다. 기쁜데 허망한 마음이라 해야 하나. 게다가 내가 원했던 것은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하기 위해 국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한 허가 서류' -소위 LMIA라고 알려진- 뿐이었는데, 이유는 모르겠지만 회사가 그 허가를 받는 대신 면제*받는 루트를 찾아 나의 고용 허가뿐 아니라 가족 전체가 캐나다 내에 머무는 비자까지 전부 받아주었다.


경계성 불안장애(?)인 내게 이 일은 큰 의미로 다가왔다. 그간 있었던 일들을 찬찬히 되돌아보니 마음 졸이며 해결하려고 덤볐을 때 보다 자연히 흘러 보냈을 때 마치 원래 그 시기가 오려고 했던 것인 듯 자기 자리로 돌아온 일들이 더 많았다. 물론 내가 기대하지도 않았던 도움도 많이 받았다. 법무법인 변호사가 누구나 택하는 길을 가지 않고 굳이 다른 방법을 찾아 처리기한 1년을 일주일로 단축시켜 준 것처럼. 그리하여 지금도 역시 쉽지 않은 시간을 보내고 있으나 1년 전보다는 아주 약간 더 성숙해진 마음으로 결핍에 집중하는 대신 감사를 더 채우려 노력하고 있다.

그러니까, '될 일은 된다'라고.


*(혹시나 정보를 기대했던 분들을 위한 기록) 특정 면제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면 LMIA (Labor Market Impact Assessment)라는 것을 반드시 받아야 근로 비자 (work permit) 신청이 가능합니다. 제 경우에는 C10 exemption이라고 해서, 캐나다 내 거주민에게 유의미하게 유익할 것으로 생각되는 사람에게 주는 LMIA exemption이었어요. 구체적인 자격 기준은 IRCC (이민부)가 명시하지 않고 있다네요. 현재 기준 LMIA 승인까지 4-12개월 소요되고 (심지어 신청이 불가능한 경우도 있고), work permit 신규/연장을 위해서는 4-6개월을 더 기다려야 합니다. 제 개인적인 경험은 전체를 설명하기에 매우 제한적입니다. 실질적인 준비를 위해서는 꼭 전문가와 상의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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