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야, 우린 "A"sian이지 "B"sian이 아니란다

한국 엄마가 캐나다 시골에서 살 때의 '짜치는' 현실.

by 약방서가

갑자기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캐나다로 간다고 했을 때 모두가 왜냐고 물었고, 나는 '아이들이 자라기에 한국보다 좋을 것 같아서'라고 답했다. 거짓은 아니었다. 스스로는 꽤나 제도권 교육에 잘 적응했었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 과정이 모두 아름다웠던 것은 아니었기에 혹시 다른 길이 있다면 그쪽을 열어주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 처음 캐나다에 왔을 때는 (교육열이 한국/중국만큼 뜨거운) 유태인이 많은 동네에 살았다. 학교에서 아주 촘촘히 공부를 시켰고, 교육청에서 아예 칸 아카데미의 유료버전 같은 학습 사이트와 제휴를 맺어 숙제도 왕왕 나왔으며 집에서도 따로 학습을 시킬 수 있어 이 정도면 캐나다도 아주 노는 학교는 아닌데,라고 생각했었다.


외노자로 첫 직장에 들어가면서 모든 것이 달라졌다. 처음에는 대개 다소 먼 시골지역을 돌아다니며 비자도 해결하고 경력도 쌓고 그런 법이다. 새로이 정착한 곳은 처음 살던 업타운에서도 두 시간가량 떨어진, 무려 관광마을이다. 누군가한테 지명을 말해주면 거의 어디인지 모르고 (온타리오가 대한민국보다 큼) 안다고 해도 "거기 놀러 가는 데죠?"라고 말한다.


아이들은 학교에 가서 아주 신이 났다. 별 것 하지 않아도 천재 취급을 해줬다. 우리는 한국어를 모국어로 하는 부모로서 집에서는 한국어만 사용하기에 -이중언어 가정의 고충이 다 있다..- 아이들의 어휘력이나 문장력을 걱정하였었지만, 여기 아이들 중에서는 발군의 실력을 자랑했다. 외려 원어민인 부모를 둔 아이들보다도 읽고 쓰기를 더 잘한다고 했다. 한국 아이들은 수학을 원래 잘하니 그쪽은 아예 논의 대상도 아니었다. 뭔가.. 이상한데.. 느낌이.. 이게 아닌데..(-_-)


Kid: “I got an A- on the test!”
Mom: “A-? That’s an Asian F.”
-Asian mom 조롱(?) 밈 중 하나


가만 보니 타운 자체가 아웃도어 특화다. 여름이면 자전거 타기는 기본이고, 호수가 지척이니 수영에 패들보트에 낚시, 거기에 아주 어릴 때부터 동네에서 팀을 이뤄하는 야구까지 액티비티의 축복이 끝이 없다. 겨울에는 스키장이 15분 거리이고 커뮤니티센터마다 스케이트와 하키 수업이 열린다. 봄가을 캠핑하기 좋은 시즌이면 반 아이들의 1/3 정도는 학교에 출석하는 대신 가족들과 캠프를 하러 간다. 아주 거창한 캠핑카는 아니어도 트레일러를 갖춘 집은 꽤 많다. 적어도 아이들이, 특히 어린아이들이, 학교에서 그깟 작문이나 수학을 잘하는 것은 그다지 중요한 일이 아닌 듯하다.


아이들이 좋으라고 선택한 것은 맞지만 이 정도로 놀라고 한 것은 아니었는데. 머릿속에 커다란 물음표가 떠오르며 마음이 타는 것은 오직 나, 뼛속까지 K-장녀인 한국 엄마뿐이다. 약국에 있으면 종종 한국에 영어선생님으로 다녀왔다는 분들을 만나게 된다.

반가워하며 "애들은 잘 적응했어? 여기 사는 것을 좋아하니?" 묻기에,

"그럼! 매일 신나게 놀기만 해!"라고 답했더니

내 대답이 끝나기 무섭게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한국 엄마가 그럴 리 없어!" 라면서.

별 뾰족한 수가 없어서 놀고 있는 것은 맞는데 상대가 저렇게 나오니 괜히 억울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조급한 마음을 들킨 것 같아 머쓱해진다.


호수를 낀 작은 마을이 이렇게 놀기 좋으니, '스스로 자라는 아이들'을 믿고 신나게 노는 우리 가족의 모습을 글로 쓸 수 있다면 얼마나 멋져 보일까 생각한다. 정규분포의 뚱땡이 둥근 선에서 한 치 벗어남 없이 살아온 내게 그 정도 그릇은 가당치 않다는 사실을 매일 깨달으며 결국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외노자 엄마의 고민뿐이다. 지질하고 못난 것이 현실이려니. 설마 나만 그렇겠나. (설마..)


*학업에 뜻이 있는 캐나다 부모님들은 초등 때부터 French Immersion에 주로 보내는 것 같다. 이중언어를 자연스레 배워서 나온다고 한다. 우리는 벌써 ESL 환경에서 자라다가 캐나다에 떨어졌기 때문에 (또, 부모가 French 까막눈) 그것까지는 욕심 낼 처지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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