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국에서 달리기 시작한 이야기
캐나다에 온 뒤, 새로운 습관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낯선 땅에서 이민자로 살아가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고 자주 불안에 휩싸였기에 그 감정을 다스릴 방법이 필요했다. 하루 11시간씩 서서 일하며 얻은 허리 통증 때문에 코어 근육이 절실하기도 했고. 처음에는 이런저런 시도를 했다. 필라테스도 배워보고, 발레핏도 해보고 (진행 중), 10분만 하면 복근을 만들어준다는 홈트도 빼놓지 않았다. 물론 센터까지 가기 위해 ‘엉덩이 떼기’가 난제인 필라테스가 가장 먼저 탈락. 그러다 문득 집 앞만 나가면 타운 전체를 돌 수 있는 트레일이 있는 환경을 이대로 놓치면 후회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달리기가 대세라는데, 나도 한 번 해볼까?
고백건대 나는 운동과는 거리가 멀다. 체력장이 입시에 반영되지 않아 얼마나 다행인지, 100미터 달리기에 23초! 엄청난 기록의 보유자다. - 매달리기 0.1초 안 비밀. 처음 신발을 신고 집 앞 도로에 나섰을 때, 겨우 몇 분도 채 되지 않아 숨이 차올랐다. 심장은 마구 뛰고 다리는 무겁게 느껴졌다. 벌레라면 질색을 하는 내 앞에 온갖 날것들이 날아들 때는 “왜 시작했을까?”라는 후회가 들기도 했다. 그럴 때 나를 계속 트레일로 불러낸 것은 같은 시간대에 만나는 사람들이었다. 한 손을 들며 "굿모닝" 나누는 사이인데 너도 나도 엉성한 자세로 처음임을 뿜뿜 티 내는 나만의 달리기 동지가 반갑고, 나는 들숨 날숨 어쩔 줄을 모르는데 일정한 속도로 타박타박 달려 나가는 베테랑 러너가 멋있어 보여서 근무가 없는 날 아침마다 운동화를 꺼내 신는다.
캐나다의 달리기 경험은 한국에서의 운동 경험과는 전혀 달랐다. 가장 큰 차이는 환경이었다. 집 근처만 나가도 잘 정비된 트레일이 있고, 호수나 숲을 따라 이어지는 길이 달리기를 자연스럽게 유도했다. 올여름에 비가 거의 오지 않아 아직 우중런의 재미는 배우지 못했지만 곧 단풍국의 계절이 되면 차가운 가을바람을 맞아 볼 생각에 벌써 들뜬다. 소소하게 동물들을 보는 것도 즐거움이다. 숲을 뛰고 있으면 딱따구리가 따다다 다 나무를 쪼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길거리에 호다닥 뛰어다니는 아기 토끼는 일상이다. 어느 날은 웬 갈매기가 작은 담요 같은 것을 패대기치고 있기에 유심히 보았더니 다람쥐를 잡아먹고 있는 거였다. 바다도 없는 곳에 갈매기가 와서 물고기도 아닌 다람쥐를 먹다니.
또 하나의 변화는 내 마음가짐이었다. 예전에는 무언가를 시작하면 성과와 결과부터 생각하곤 했다. 타임라인 못 맞추면 지구가 멸망할 것처럼 안달복달하던 내가 달리기를 시작하고 나서도 불쑥 튀어나왔다. 몇 킬로미터를 뛰어야 잘 뛰는 건지, 얼마나 빨라야 인정받는 건지 스스로 압박을 줬다. 하지만 걸음마 러너로서 이곳에서 달리기를 이어가면서 깨달은 것은 “작은 꾸준함이 결국 큰 변화를 만든다”는 사실이었다. 처음엔 5분 달리기도 버거웠지만, 하루하루 이어가다 보니 10분, 20분이 가능해졌다. 그리고 어느 순간 이제 5km 정도는 너끈히 뛸 수 있는 새싹 러너가 되었다. -주의: 슬로 러너- 그 성취감은 낯선 땅에서 적응해 내는 이주자로서의 나의 삶에도 겹쳐졌다. 저 건너 어디에 빛의 속도로 사회에 편입해 잘 산다는 뫄뫄가 있다는데, 그러라지. 나에게는 내 속도가 있는걸. 제자리인 듯 보이지만 한 발 한 발 내딛으며 결국은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 적응해내고 있다는 자신감이 생길 듯 (말 듯) 하다고나 할까.
달리기는 내게 단순한 운동을 넘어선 삶의 은유가 되었다. 속도보다 중요한 것은 호흡을 잃지 않는 것이고, 다른 사람과 비교하기보다 내 리듬을 찾는 것이었다. 무엇보다도, 멈추지 않고 다시 한 발을 내디디는 용기가 필요했다. 천천히 달리는 시간은 나의 불안을 씻어내고,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조금씩 키워주었다. 이제 고작 몇 달째인 나를 러너라고 부르기는 다소 민망하다. 그러나 매일 새벽 신발끈을 묶으며 마음속으로 다짐한다. “오늘도 나만의 페이스로, 한 발 더 앞으로.” 그 단순한 반복 속에서 나는 점점 더 단단해지고 있다. 무엇보다 밤에 잠들면서 아침에 달리러 갈 생각에 설렌다면, 그걸로 충분한 것 아니겠냐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