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ESG - 거실에서 살아도 되는 사람은 없다.
저녁 밤이면 아빠가 읽어주는 동화책을 자장가 삼아, 나와 두 언니들은 옹기종기 침대에 누워 서로를 마주 보며 발가락 움직이는 것까지 서로를 따라 하곤 했다.
낮에는 주로 내가 언니들을 쫄랑쫄랑 따라다녔고 우리들의 방을 아지트 삼아 이 침대, 저 침대로 뛰어놀곤 했다.
그리고 몇 해 지나지 않아 조금 머리가 굵어졌을 무렵에는 시위를 했다.
내 방을 달라고. 나에게도 사생활이 있다고.
처음 점거한 방은 바로 엄마아빠의 침실이었다.
시위를 한답시고 안방에 내 짐들을 몰아넣고, 비상식량을 두둑이 챙겨 문을 잠가버렸다.
나는 내 방이 필요했다. 이사를 가고 방이 3개가 되었을 때부터 나는 당연히도 내 방을 가질 수 있었다.
내 방에는 밝은 나뭇결이 돋보이는 책상과 볕이 잔뜩 들어오는 큰 창문이 있었고 다른 한편에는 도날드덕이 그려진 침대가 있었다. 철마다 책장을 뒤집고, 내 구미에 맞게 이런저런 학용품들로 책상을 꾸몄었다.
내 방은 뚜렷하게 기억이 난다. 쌍둥이 자매인 언니들은 늘 한 방을 썼다. 책상 두 개가 이어져 있고 서로의 침대가 마주 보고 있던 그 방도 기억이 난다.
그런데, 엄마의 방은 기억나질 않는다. 엄마는 대부분의 시간을 거실에서 보냈다. 엄마는 TV와 함께 움직였다.
그동안 나는 엄마에게 방이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하질 못했다.
엄마는 거실에서 사는 사람이었지만 거실은 공용공간이었다.
나는 친구들과 주고받은 편지를 내 서랍 첫 번째 칸에 넣어두었는데 엄마는 소중한 물건을 어디에 보관했을까?
나는 친구들과의 사진을 책꽂이 가장 밑의 보물상자에 넣어두었는데, 엄마의 추억상자는 어디에 있을까?
나는 부끄럽게도 엄마에게 사적인 공간이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냥 거실 책꽂이, 거실 테이블 위. 모든 공개된 장소가 있을 뿐이었다.
3년 전, 큰언니와 내가 독립을 하고 나서 엄마는 드디어 엄마의 방이 생겼다. 엄마의 방에도 TV가 들어갔다. 그리고 엄마만의 작은 서랍장도 갖추어졌다.
엄마는 거실에서 TV를 볼 수도 있지만 엄마만의 방에서 볼 수도 있다. 개인적인 물건들은 엄마의 서랍장에 넣어 두기도 한다.
아직까지도 나는 엄마의 방이 마치 공용공간인 것처럼 마구 들어가 버린다. 심심하면 주인 없는 방의 서랍도 한 번씩 열어보곤 한다. 내 방이 뒤져졌으면 눈꺼풀을 까 뒤집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을 텐데 말이다.
엄마에게 엄마의 공간을 지켜주자.
거실에 있어도 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제 엄마에게도 비밀이 생겼으면 좋겠다. 내가 머리가 굵어지자마자 내 공간을 요구했던 기억을 떠올려 보며, 이제는 기필코 엄마의 공간을 사수해 드려야겠다.
최근에는 엄마에게 읽을 책을 빌려줬는데, 며칠 뒤 다 읽었으니 방에서 챙겨가라고 하셨다.
그 책들은 침대 위, 머리맡 배게 사이에 놓여있었다. 이제 엄마의 책상이 필요한 때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