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치는 사랑 속에서도 못다 한,
생(生)의 이야기들.

황인숙, <못다 한 사랑이 너무 많아서>

by 달밍
내리실 분들이 우르르 달려오는 6호선 열차, 눅눅한 뉴스를 전하는 오후의 조간신문, 태엽 달린 노란 강아지, 아깃적 나를 키워주신 할머니, 37년 다닌 공장 더 다니려고 숨겨온 치매를 기어이 들키고 만 황성자 씨, 말라가는 플라타너스 잎새 위 작은 새, 깰락 말락 꿈에 든 벚나무들, 두근거리다 못해 울렁거리는 바람, 그리고 마지막으로, 체구도 작은 삼색고양이.


황인숙의 시집, 『못다 한 사랑이 너무 많아서』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존재들이다. 그 어떤 부연 설명이나 이야기 없이도, 그저 이 존재들을 나열하는 것만으로도. 어딘가 몽글몽글하기도 또 뭉클하기도 한 그런 감정들이 솟아난다. 시인 황인숙은 이러한 대상들을 아주 가만히 바라본다.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는 삶에도 소설이 있다’는 말처럼, 그녀가 바라보기 이전까지는 그저 스쳐 지나가기만 했을 그 존재들은 모두 시가 되고 이야기가 되고 흐르는 삶이 된다. 황인숙의 바라보기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그녀의 시선에서 흘러나오는 명랑함과 순수함 그 자체이다. 통통 튀는 경쾌함, 생명의 넘치는 활력, 날카롭도록 생생한 감각, 어떠한 상투와 이념을 모두 벗어버린 듯한 백지의 마음. 이러한 그녀 특유의 발랄한 씩씩함이 톡톡 풍겨져 나오는 시를 한 편 살펴보자.



송년회

칠순 여인네가 환갑내기 여인네한테 말했다지

“환갑이면 뭘 입어도 예쁠 때야!”

그 얘기를 들려주며 들으며

오십대 우리들 깔깔 웃었다

나는 왜 항상

늙은 기분으로 살았을까

마흔에도 그랬고 서른에도 그랬다

그게 내가 살아본

가장 많은 나이라서

지금은, 내가 살아갈

가장 적은 나이

이런 생각, 노년의 몰약 아님

간명한 이치

내 척추는 아주 곧고

생각 또한 그렇다 (아마도)

앞으로!

앞으로!

앞으로, 앞으로!



익숙했던 올해를 놓아주고 또다시 새로운 나이로, 새로운 해를 맞이하기 위한 어느 겨울날의 송년회. 시인은 그 자리에서의 유쾌한 대화를 담아내고 있다. 그녀는 마치 여고생이라도 된 듯이 깔깔거리며 웃었던 일을 떠올리고는 다시 그 위에 그녀의 기억을 덧입힌다. 지나온 나의 쉰, 마흔, 서른. 그 과거의 시간들을 주욱 돌이켜본다. 나는 가장 젊었던 시절을 왜 항상 늙은 기분으로 살아왔는가. 그것은 언제나 내가 살던 나이가 나의 젊음이자 동시에 늙음이었기 때문이겠지. 시작으로부터는 가장 오래되었으며, 끝으로부터는 가장 푸릇한 것이 늘 지금 이 순간이라는 인생의 재미난 아이러니. 그 아이러니의 순간을 그녀는 날렵하게 포착하여 우리들 앞에 던져준다.


하지만 어느덧 삶의 반환점을 넘어버린 지금. 시인은 이제는 지나온 날들에 매여 있기보다는 다가올 날들을 향해 걸어가자는 간단한 삶의 이치를 적어 내려간다. 나의 곧은 척추와 (아마도) 곧은 생각만 있다면, 그 무엇이 두려우랴. 더 이상 거리낄 것이 없다는 그녀의 명랑함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이 시는‘앞으로!’라는 씩씩한 단어들의 나열로 끝을 맺는다. 이러한 단어들의 배치와 리듬은 자연히‘지구는 둥그니까­’로 시작하는 흥겨운 동요를 떠오르게 하는데, 우리는 그 노랫말 속에서 순식간에 무방비 상태의 천진한 어린아이가 되어버리고야 만다. 그때 그 시절, 명랑한 동요를 줄기차게 불러대던 어린 날처럼. 앞으로 다가올 나의 가장 예쁠 나날들을, 그 젊음의 세상을 자꾸자꾸 걸어 나가는 시인의 모습이 선연히 펼쳐지는 것만 같다.


황인숙이 이렇게 천진한 언어들을 보여주었다고 해서, 그녀가 삶의 어두운 면을 외면했느냐 하면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어떤 시인이 그 두 발을 현실에 단단히 붙여놓지 않은 채로 읽는 이들의 마음에 울렁거림을 전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녀는 어딘가 붕 떠있는 상태의 대책 없는 희망과 밝음을 노래하는 대신, 삶의 너절함과 비루함마저 남김없이 그리고 아낌없이 사랑하는 길을 택했다. 장마에 들어 천장이 새는 화장실, 구성진 빗소리에 맞추어 살짝 비애스럽고 또 살짝 환멸스러운 노래를 부르는 지하실의 여자, 언제나 어디서나 고요하고 거룩하게 자고 있는 노숙자들, 빛이 없는 메모와 그림자 없는 흰 종이들. 시인은 이러한 모든 것들에 밀착하여 구석구석에 숨겨져 있는 고뇌와 슬픔을 두 팔 가득 껴안는다. 어느 젊었던 날의 여름밤, 나에게 뜬금없는 전화를 건 친구들이 지니고 있었던 그 삶의 무게까지도.



그 젊었던 날의 여름밤

새벽에 전화벨이 울렸다

자냐고, Y가 물었다

아니, 전화 받고 있어

내 대답에 그는 쿡쿡 웃더니

그냥 나한테 전화하고 싶었다고 했다

무슨 일 있냐고 묻자

그냥, 그냥만 되풀이하다가

그냥…… 살고 싶지가 않아……라고 했다

그리고 그는 울고

나는 그 울음소리를 들었다

울다가 그는

툭,

전화를 끊었다

아직 젊었던 날의

계절은 기억나지 않지만 또 한 새벽에

전화벨이 울렸다

나, K인데……

오래 사귄 애인과 헤어졌다는 K는

어린 여자에게 가버린 애인에 대해

K를 못마땅해하던 애인의 가족에 대해

지운 아기에 대해

물거품이 돼버린 그림 같은 집과

토끼 같은 자식들에 대해

설움과 분노를 토했다

그리고 울먹이면서

죽고 싶다고 했다

잠 못 이루다 새벽에

전화로 나를 찾았던 Y와 K는

둘 다 별 연락 없이 지내던

먼 친구였다

그 뒤 Y와 K가

어떻게 살았는지

나는 모른다

지금까지 살아 있다는 건 안다

나도 살아 있다

우리를 오래 살리는,

권태와 허무보다 더

그냥 막막한 것들,

미안하지만 사랑보다 훨씬 더

무겁기만 무거운 것들이

있는 것이다



'그냥' 살고 싶지가 않아서 말없이 눈물만 주룩주룩 흘리던 Y, 오래 사귄 애인과 헤어지고 함께 꿈꾸던 분홍빛 미래가 암흑처럼 달려들어 죽고 싶다고 말하던 K. Y와 K, 두 사람이 그 젊은 날의 아픔을 어떻게 이겨냈을지, 그 이후로 숱한 시간들을 어떻게 견뎌냈을지. 새벽에 깨어나 그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를 묵묵히 들어주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던 나는 알지 못하지만, 그리고 우리는 여전히 아는 것이 없지만. 단 한 가지 사실만은 분명하다. 어찌 되었든 우리 모두가 지금까지도 살아있다는 것. 우리는 여전히 계속해서 이 비루한 땅 위에 살아가고 있다.


넘치는 사랑과 행복, 그리고 소망만이 우리를 살게 하는 것은 아니다. 이것들보다도 훨씬 무겁기만 무겁고, 권태와 허무보다도 막막하기만 한 것들. 넌더리 나는 삶의 이상한 순간과 감정들이 바로 우리를 오래 살게끔 한다. 그리고 그 살아감 속에서 너와 나는, 다시 말해 우리 모두는 “연약하고 슬픈 존재”일 수밖에 없다. 사람들은 나약하고 현실에는 해결책이 없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답이 없는 현실이 우리를 계속해서 살아가도록 만드는 것이다. 달리 설명할 길 없는 이 살아감의 우스움. 이 헛헛한 웃음을 주고받으며 질기게 살아가는, 바스라지기 쉬운 존재들의 외침. 그 중심에서 울려 퍼지는 “나도 살아 있다”는 시인의 내뱉음은 마치 어떠한 선언과도 같은 힘을 가지며 쿵 내리 꽂히고야 만다.


이 선언 속에서 우리는 Y를, K를, 시인을, 칠순 여인과 환갑내기 여인네를, 당신을, 그리고 스스로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이 바라봄과 마주봄의 순환 고리 속에서 이토록 모진 세상의 모든 존재들은 마땅히 불쌍하고 마땅히 사랑받아야 하는 존재로 둥실 떠오르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황인숙은 다시 신물 나는 삶을 딛고 살아가는 모든 나약하고, 아프고, 슬프고, 괴롭고, 경쾌하고, 명랑하고, 사랑스러운 것들을 위해서 계속 시를 쓴다. 그런 그녀의 시는 도무지 과장하거나 부풀릴 줄을 모른다. 줄줄 흘러내리는 눈물을 쥐어 짜내지도, 고름처럼 터져 나오는 아픔을 격렬하게 내보이지도 않는다. 그녀는 오히려 일상의 순간들을 조곤조곤하게 담백하고 평범한 말들로 풀어낸다. 그리고 어느 순간에 우리는 “운명의 힘”처럼 신기하게도 그 일상의 언어들 사이에서 더욱 커다란 모습으로 다가오는 우리의 생활과 마주하게 된다.


나는 명랑을 잃지 않으려고 애를 쓴다.
그것마저 잃으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어서.

마지막 남은 ‘명랑’을 잃지 않으려고 애쓴다는 어느 소설가의 말처럼(김금희, <센티멘털도 하루 이틀>). 그녀 역시 붙잡을 것 없는 이 세상의 낭떠러지에서 가장 끝자락에 남아있는 명랑을 붙들고 살아가는 시인이 아닐까. 명랑이라는 이름의, 순수와 사랑이라는 이름의 가장 강력한 무기를 내세운 채 이 땅 위에 굳건히 발 딛고 살아가는 시인 황인숙. 그녀가 조심스럽게 잡아채는 일상의 순간들 속에는 한없는 애정의 눈빛이 스며들어 있다. 따스하고 유쾌한 애정으로 삶의 바닥까지를 가만히 들여다보는 시인. 그러한 시인이 시집 속에 적어 놓은 단어 단어들마다 뚝뚝 흘러넘치는 명랑한 애정이 내 마음까지도 물들인 듯하다. 그녀가 계속해서, 우리에게, 넘치는 사랑 속에서도 다 하지 못했던 사랑의 이야기들을 들려주기 바라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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