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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밍 Oct 06. 2017

단 하나의 이야기

이야기의 주인공은 언제나 '나', 그리고 '당신'. 



 좀처럼 찾아오지 않는 아주 긴 추석 연휴였지만, 나는 그 어디에도 가지 않았다. 모두가 고향을 찾아 어딘가로 향하는 동안, 가야 할 곳도 돌아올 곳도 없다는 사실은 왠지 서글프게 느껴졌다. 나는 조용히 방 안에 틀어박혀 일상의 무게감이 느껴지지 않는 하루의 소중함을 부드럽게 껴안았다. 그 부드러움은 분명 포근하고 따뜻한 위로였지만. 그 뒤편에는 오랜 연휴가 끝나고 다시 계속되고야 말 삶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이 가득했다. 


 조금은 궁상맞은 휴식을 끝낸 후 나는 익숙하게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시끄럽게 울려대는 카카오톡 메시지와 SNS의 메시지들, 여러 통의 부재중 전화와 다급한 문자들이 쌓여있었지만 쉽게 손이 가지 않았다. 경쟁이라도 하듯 앞다투어 업데이트되는 지인들의 소식에는 금방 어지럼증이 일었다. 나의 생각과 나의 마음이 채 정리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다른 이들의 삶을 바라보고 마주하고 견뎌낼 용기가 생기지 않았다. 


 세상의 소음을 모두 조용히 접어두고서 이런저런 웹툰을 둘러보았다. 글자를 처음 읽게 된 사람처럼, 그림이라는 것을 난생처음 보는 사람인 것처럼. 허겁지겁 수십 개의 작품들을 읽어 내려갔다. 타인의 삶을 견딜 수 없어서 도망친 나는 우습게도 다시 네모난 화면 속 타인들의 삶에 깊숙이 빠져들어갔다. 작은 화면 안에 살고 있는 이들은 때로는 내 또래의 학생이기도 했고, 판타지 세계의 모험가이기도 했으며, 과거의 나 혹은 미래의 나와 닮아있는 어떤 인물이기도 했다.


 나는 그들의 삶을 열렬히 응원했다. 어떤 웹툰이든 어떤 내용이든 상관없었다. 주인공이 선한 사람이든, 마음속의 어두움으로 인해 어딘가 꼬여있는 사람이든, 커다란 잘못을 저지른 악인이든.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주인공은 그 이야기의 주인이었기에 나는 그들을 응원했다. 나는 그들이 사랑에 성공하기를, 얽혀있는 관계에서 현명하게 벗어나기를, 반짝이는 꿈을 이루기를 아주 간절히 바랐다.


 그렇게 손이 가는 작품들을 여러 편 읽어내고서 다시 눈을 감고 누웠다. 방금 전까지 내가 그다지도 열렬한 응원을 보냈던 이야기 속 주인공들을 떠올렸다. 문득 의문이 들었다. 이 가상의 세계 속 주인공들조차 진심으로 응원하고 지지하며 그들의 삶이 행복하기를 바라던 나는, 왜 가장 중요한 이야기의 주인공인 나 자신에게는 그리도 엄격했을까?


 지나온 장면들을 삭제할 수도, 뱉어버린 대사를 지울 수도 없지만. 그렇기에 더욱 소중하고 값진 한 번뿐인 이야기의 주인공인 나. 가장 뜨겁고 애정 어린 응원을 보내야 할 대상은 불빛이 새어 나오는 조그마한 휴대폰 속 인물들이 아니라, 현실이라는 이야기를 살아가는 '나'였다. 내 삶이라는 이야기 속 단 하나뿐인 주인이었고, 주인이며, 주인일 바로 나 자신이었다. 


 모든 일에 완벽하지 않고, 서투른 모습에 조금은 웃음을 사고, 어린 내 자신에게 속상함을 느끼면 어때. 걸어온 날들이 진흙으로 뒤덮인 길이었으면 또 어때. 나는 계속 행복한 결말을 향해서 걸어나가고 있는걸. 조금 느리게 걷고 또 가끔은 넘어져서 멈춰있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평생을 함께할 오랜 이야기의 주인공이라는 사실만 잊지 않으면 돼, 나는 이렇게 되뇌이며 유난히도 힘들었던 올 가을 역시 잘 버티고 있노라고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이다가 잠들었다 깨어나기를 반복했다.


 닿지 않을 어느 곳에서 현실에 지쳐버린 당신에게 이 글이 전해진다면, 당신도 당신 이야기의 영원한 주인공임을 결코 잊지 말기를. 그리고 내가 당신의 이야기를 아주 간절히 응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주기를.







이미지 출처: 다음 웹툰 <이토록 보통의> 

http://webtoon.daum.net/webtoon/view/NormalLikeTh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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