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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밍 Oct 14. 2017

당신의 담배

소중한 사람의 소중한 것


 


 할아버지를 싫어했다. 지금은, 잘 모르겠다. 나는 할아버지를 아끼는 것 같기도 하고, 가끔 미워하는 것 같기도 하고, 안타까운 마음도 들지만, 귀찮게 느껴질 때도 있다. 또 어떤 날에는 할아버지에게 내던졌던 모진 말과 무심한 행동들이 죄스러워 한참을 울기도 한다. 할아버지와 나. 우리 두 사람을 떠올릴 때면, 내가 좋아하는 소설가가 이야기했던 '오직 두 사람만이 느꼈을 어떤 어둠' 비슷한 것을 느낀다. 오직 우리 둘 만이 사용하는, 곧 사라질 언어가 있다는 그런 생각이 스친다.


 그런 할아버지가 죽음과 마주한 시간들을 견디고 계신다. 이 세상에서 제일가는 독불장군 같았던 할아버지였는데. 이제는 수척해진 얼굴, 가냘픈 팔다리, 휘청거리는 걸음 같은 것들로 세상에서 제일가는 외로운 모습을 하고 누워계신다. 밥을 먹을 때에도 화장실에 갈 때에도 누군가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하다. 오늘이 무슨 요일인지 방금 전화했던 사람이 누구인지 따위의 것들은 잊어버리기 십상이다.


 나의 병든 할아버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병든 할아버지가 절대 포기하지 않으시는 것 한 가지는 바로 담배. 아주 오랫동안 끊으셨던 담배를 다시 피우기 시작한 것은 칠팔 년 전쯤. 할아버지가 세상을 영영 떠날 생각으로 가방을 꾸리고, 차를 몰고 나가셨던 그 칠팔 년 전쯤의 어느 날일 것이다. 나는 할아버지의 담배가 싫었다. 할아버지가 싫다는 것은 확실하지 않은 사실이었지만, 할아버지의 담배가 싫다는 것만은 아주 확실한 사실이었다. 


 그 담배는 부서지고 일그러진 우리 집을 떠올리게 했다. 내던져지는 리모컨, 이불속에서 숨죽여 울던 어린 날, 꺼내 든 식칼을 목 앞에 들고서 망설이던 작은 손. 그 따위의 것들을 생각나게 만들었다. 아무리 행복하고 밝은 척 웃어보아도 지워지지 않는 얼룩처럼. 그 담배는 나를 따라다니며 괴롭히는 어두운 옛날을 자꾸만 곱씹게 만들었다.


 부엌에서 식탁까지. 그 짧은 거리를 걷는 동안에도 숨을 헐떡이는 나의 작고 병든 할아버지가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붙잡고 있는 것은 그 담배였다. 할아버지의 담뱃재를 버리며 생각한다. 그에게 담배는 무엇이었을까. 질긴 삶을 놓지 않을 수 있도록 도와준 소중한 무언가였을까? 타다 만 담배를 바라보며 생각한다. 이제는 그의 담배가 싫다는 사실마저 확실하지 않아졌다고. 


 살면서 한 번쯤은 담배를 피우고 싶다, 고 늘 말해왔다. 도대체 어떤 맛이길래, 얼마만큼의 중독성을 가지고 있길래. 사람들은 삶의 끝에서까지 손에서 담배를 놓지 못하는 것일까. 그리고 내가 내 인생의 첫 담배를 마주하는 순간은, 소중한 사람이 나의 곁을 떠나는 때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나의 소중한 사람이 소중하게 여기던 것이었으니까. 바로 그때 나는 담배를 피우고 싶어 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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