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달밍 Oct 14. 2017

소설이라는 위선

나의 글쓰기라는 세계



 너도 알겠지만, 나는 버스 타고서 학교에 오잖아. 하루는 비가 조금씩 부슬부슬 내리는 날이었어. 나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왼편 창가 자리에 앉아있었는데, 버스가 다리 밑을 지나갈 때 어떤 할아버지 한 분을 봤어. 버려진 종이랑 박스 같은 것들을 주워다 파시는 할아버지. 그 할아버지가 비를 피해서 다리 밑에서 서 계셨고, 그 종이들은 이미 잔뜩 물에 젖어있더라고. 참 신기했던 게 뭐였냐면, 할아버지 표정이 너무 덤덤한 거야. 나였다면 분명 갖은 울상을 다 짓고는 비가 언제 그치려나 하늘만 쳐다봤을 텐데. 어떤 기분인지,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 전혀 추측이라고는 할 수 없을 정도로. 우두커니 서 계시는 그 할아버지를 보고 있으려니까 마음이 참 복잡해지더라고.


 문득 내 머릿속에는 '비 오는 날 폐휴지를 줍는 노인'에 대해서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스쳤어. 추적추적 내리는 비에 어느새 흠뻑 젖어버린 종이들을, 마치 자신의 삶의 무게처럼 힘들게 끌고 걸어가는 할아버지에 대한 소설을 말이야. 그렇게 이리저리 할아버지의 생활을 상상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내 모습이 너무 역겨운 거 있지. 할아버지의 기분은 할아버지밖에 모르는 거잖아. 사실 할아버지는 힘들지 않을 수도 있고, 오히려 비가 와서 쉴 수 있다니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계실 수도 있지는 않을까. 어쩌면 아무 생각 없이 멍하니 비 오는 하늘을 바라보고 계실지도 모를 테고. 그런데 감히 내가 뭐라고 할아버지의 아픔을 멋대로 상상하고 꾸며내고 있었던 걸까.


 대학에서 문학이라는 걸 배운다는 어쭙잖은 위선으로, 내가 겪어보지 않은 삶을 함부로 재단하고 있던 내 모습이 우스워졌어. 다른 사람의 생활에 이리저리 이름표를 붙이고선 마치 대단한 예술 작품이라도 창조한 듯이 으스댈 자격이 나에게 있는 걸까. 평생 글을 쓰면서 살고 싶다고 다짐했던 순간이 처음으로 후회되는 순간이었어. 글쓰기가 무서워졌어. 나의 노력이나 감정, 다른 사람들의 애정과 믿음, 심지어 내가 살아있다는 사실까지.


 그 아무것도 기댈 곳이 없는 이 세상에서 내가 마음 놓고 믿어볼 만한 건 오직 이야기 하나뿐이었는데. 그래서 아무것도 사랑할 수 없다면 글을 쓰는 것을, 글을 읽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렇게 다짐했던 건데. 이제는 그것마저도 정면으로 마주할 용기가 사라지고 만 거야. 목표가 없는 생활의 파도 위에서 나는 둥둥 떠서 흔들리기만 해. 한참동안 소설을 쓰다가 지우다를 반복할 뿐이야. 나는 언제쯤 다시 소설을 쓸 수 있을까?

매거진의 이전글 당신의 담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