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힘으로 어찌하나요.
세상이란 그렇지요."

이광수의 <무정>을 읽고

by 달밍



지난주 내내. 나의 신경을 온통 빼앗아버린 것이 두 개 있었다. 그것은 개강 한 달째의 묘한 긴장감도, 교생실습을 앞둔 떨림도, 다가오는 봄기운을 향한 설렘도 아니었다. 분주한 나의 일상 속 작은 틈을 비집고 들어와 잠시도 눈을 뗄 수 없게 만들었던 것들. 그것은 바로 이광수의 《무정》과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 1》였다. 1910년대의 우리나라를 배경으로 한 장편소설과 1990년대의 뉴욕을 배경으로 한 TV 드라마. 전혀 연관성을 찾아볼 수 없을 것만 같은 이 두 작품 사이에는, 가장 커다란 연결고리인 ‘사랑’이 있었다. 소설과 드라마 속의 주인공들은 누군가를 떠올리고 그리워하며 헤매었다. 혼자 혹은 여럿이 모여 사랑 때문에 울고 웃고 끙끙대기를 반복했다. 두터운 시공간의 벽을 뛰어넘어 언제나 우리 모두를 몰입하게끔 만드는 유일한 무기는 바로 사랑이었다.


누군가 나에게 《무정》에 대해 묻는다면, 나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아주 재미있는 연애소설’이라고 대답하고 싶다. 물론 소설에 등장하는 인간 본성에 관한 서술, 억압적이고 불평등한 여성에 대한 인식, 교육과 계몽을 향한 불타는 희망 등등 수많은 이야깃거리가 있겠지만. 500페이지가 넘는 이 방대한 분량의 소설을 쉼 없이 읽어 내려갈 수 있도록 만드는 가장 강력한 힘은 등장인물들의 아슬아슬하고 미묘한 관계로부터 비롯되기 때문이다. 영채를 ‘구원하리라고, 구원하여서 사랑하리라’고 다짐하는 전반부의 형식과, 굳게 믿어왔던 형식에게 더 이상 기댈 수 없어 대동강에 몸을 던지려는 영채. 그런 그녀를 포기하고 이내 약혼자가 된 선형을 생각하며 ‘전신이 아프도록 기쁨을 깨달았다’는 형식. 그리고 “나를 사랑합니까?”라는 형식의 물음에 눈이 둥그레지다가도 사랑의 질투를 배우고야마는 선형까지. 소설 곳곳에는 그들을 중심으로 한 진솔한 사랑의 조각들이 녹아들어 있다.


혼자서 북을 치다가 장구를 치다가. 하루, 아니 단 몇 분 사이에도 갈대처럼 오락가락하는 생각들. 이 사람과 저 사람을 재어보고 따지는 다소 오만하면서도 솔직한 속마음. 내가 이 사람을 사랑하기 때문에 함께 있는 것인지, 사랑하기 위하여 함께 있는 것인지 고민하며 지새우는 밤. 나를 지나갔던 사람과 내 곁에 남은 사람, 그리고 내게 다가올 사람을 떠올려보는 시간들. 우리들은 그 속에서 형식이기도 했다가, 선형이기도 했다가, 때로는 영채가 되기도 하면서 이들이 남겨놓은 적막한 사랑의 파편을 가만히 따라간다. 그들의 것이기도 동시에 우리의 것이기도 한 이 잔해들은 합리성이나 인과관계, 규칙이나 질서 따위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다.


합리적이지도 논리적이지도 못한. 원인과 결과라고는 도저히 찾아볼 수도 없는 우리들의 사랑. 그러나 오히려 엉망진창이기에 그 모습 그대로 더 아름답고 애틋한 사랑의 무질서. 무정한 세상 속 수없이 무정한 사람들의 틈바구니에서도, 나에게만은 오롯이 정다울 수 있는 단 한 사람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고군분투하는 우리들. 그 안에서 자꾸만 무엇에든 기대고 싶고, 누구에게든 안기고 싶은 우리들의 마음. 하지만 도저히 사람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운명 앞에서 사랑이라는 독균에 취해 괴로워하는 우리들의 모습까지. 1917년의 조선과 1990년대의 뉴욕 그리고 2018년의 지금을 아우르며 모두를 강렬하게 사로잡는 단 한 가지이자, 동시에 우리가 《무정》으로부터 읽어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러한 사랑에 대한 섬세하고도 예리한 묘사가 아니었을까.


한편 아쉬운 부분도 있다. 결말에서의 다소 급격하고 당황스러운 마무리가 대표적이다. 등장인물 모두가 마주하게 된 기차 안에서 극도로 고조되었던 긴장감은 허무하리만큼 간단하게도 ‘계몽에 대한 의지와 동질감’ 하나에 의해 눈 녹듯이 사라지고야 만다. 이전까지 전통과 신문물 사이에서 방황하며 천천히 주체성을 찾아나가던, 사랑에 고뇌하고 아파하던 자유로운 개인들은 순식간에 그 자취를 감추게 된 것이다. 생물학과 수학이 정확히 무엇을 배우는 학문인지도 모르면서, 그 배움이 어떻게 사람들을 구제할 수 있을지도 전혀 모르면서. 그들은 대뜸 “교육으로, 실행으로.”를 울부짖는다. 그들이 이제껏 보여주었던 개인적인 갈등들이 사회와 나라 전체를 위한 아주 추상적인 계몽에 대한 열망 단 하나로 귀결된다는 점은, 앞부분의 입체적이고 다양한 심리 묘사와는 매우 대조적이기까지 하다. 이는 어쩌면 개인이 사회로부터 온전히 독립적일 수 없었던 시대상의 한계가 아닐까 생각해보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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