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상섭의 <만세전>을 읽고
(<만세전>의 원문에서 인용한 부분은 굵은 글씨로 표시하였습니다.)
익숙한 곳에서 낯선 곳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일은 늘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나를 둘러싸고 있던 익숙함으로부터 벗어나는 그 순간, 그간 억눌려있던 모든 생각과 마음들이 한껏 활개를 치기 시작한다. 그렇게 우리는 낯선 곳으로 향하는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스스로의 내면을 가만 응시하고 헤아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응시와 헤아림은 관념적인 일상에서 벗어나 현실을 직시할 수 있는 더 넓은 시야를 선물하기도 한다.
《만세전》의 ‘나’는 동경에서 칠 년 간 생활해온 조선인 유학생이다. 하지만 그는 조선인이라고 당당히 말하기에는 조선의 실정을 전혀 알지도 못하는 책상 도련님이다. 그는 심지어 ‘조선’이라는 두 글자가 여인의 운명에 검은 그림자를 던져 준 무슨 주문이라도 되는 것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조선인도, 그렇다고 해서 일본인도 아닌. 식민지의 지식인이라는 희한한 처지에 놓인 ‘나.’ 그는 한 번도 깊숙이 고민해본 적 없던 스스로의 모순적인 정체성에 대해 되뇌기 시작한다. 바로 그가 아내의 병세를 알리는 전보를 받고 하숙집을 떠나오는 그 순간부터 말이다.
귀국길에 오른 ‘나’는 발이 이끄는 대로 가다가도, 걸음을 멈추어 서서는 자꾸만 자신을 되돌아본다. ‘내’ 가 보는 여자들, 목욕탕의 사람들, 형사와 파출소를 통해서 수면 위로 떠오르는 ‘나’의 생각들을 한참 들여다본다. 그는 사뭇 객관적으로 스스로의 내면을 성찰하지만, 이는 결국 자기 합리화로 귀결되기 일쑤이다. 끊임없는 성찰과 합리화의 반복 끝에 그가 맞닥뜨린 것은 곧 진짜 조선인들의 삶이었다. 값싼 공상과 로맨티시즘에 빠져 지내던 자신과는 달리, 땀과 피를 쏟아부어봤자 결국에는 받을 품삯이 ‘주림’뿐인 참혹한 생활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된 것이다. 마비되어있던 그의 정신은 그제야 열악하기 짝이 없는 고국의 현실을 제대로 바라보기 시작한다. 아내의 죽음을 앞두고도 다른 여자에게 선물할 목도리를 고를 만큼 메말라있던 ‘나’는, 어느새 조선인들의 생활을 떠올리며 눈물을 흘리기까지 한다.
그러나 우리가 한 가지 주목해야 할 사실은 과연 그의 마지막 행선지가 어디였느냐 하는 사실이다. 아내의 장례를 치르고 난 뒤 ‘나’는 도망치듯 조선을 떠나 동경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왜 그는 다시 일본으로 돌아가고야 말았을까? 그가 흘린 눈물에는, 그가 느낀 분노와 동정과 연민에는 아무런 의미도 없었던 것일까? 그가 다시 원래의 생활로 돌아가고야 만 이유는 아마도 그가 생각했던 ‘조선인’의 범주 속에는 스스로가 포함되어 있지는 않았기 때문이지 않았을까. 그가 바라보는 조선의 하층민들은 철저한 관찰과 평가와 분석의 대상, 경멸하고 부끄러움을 느끼는 대상일 뿐. 결코 자신과 동일 선상에는 놓일 수 없는 존재들이었다. 끝내 그가 구원하고자 하는 대상 역시 오로지 자기 자신일 뿐, ‘조선’이라거나 ‘조선인’이 될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는 구더기가 끓는 무덤과도 같은 이 땅을 떠나기만 하면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으리라 믿으면서 조선을 뒤로한다. 거듭된 자기반성과 치열했던 현실의 재인식에도 불구하고, 그의 여정이 종국에는 출발점으로 되돌아가고야 만 것이다. 조선 땅에 만세가 울려 퍼지기 직전이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차가운 결말이다. ‘나’는 어쩌면 스스로를 걸어도 걸어도 결코 빠져나올 수 없는 무덤 속에 갇히도록 만든 것은 아니었을까. 일본으로 돌아간 그는 과연 스스로를 구원하는 데 성공했을까, 아니면 그 자신 역시 조선인이라는 인식에까지 도달하지 못한 채로 영원한 질식 속에 갇히게 되었을까.
이토록 묘연한 ‘나’의 행방은 우리에게 질문 하나를 슬며시 남겨 놓는다. 2018년의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우리는 어떠한가? 이곳은, 이제는 더 이상 공동묘지가 아닌 것일까? 우리는 우리의 나라를 되찾았고, 더 이상 소학교의 선생님이 환도를 차고 교단에 오르지도 않지만. 결국 이곳 역시 또 다른 모습의 공동묘지가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 연애를, 사랑을, 결혼을, 아이를, 직업과 생활을 모두 포기하고서. 돈에, 술에, 카페인에, 니코틴에, 하룻밤의 가벼운 만남에. 영원히 기댈 수만은 없는 것들에게 자꾸만 기대고 싶어 하는 우리들과 타국에 휘둘리며 1920년대를 살아가던 조선 사람들은 과연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일까.
그런 질문을 떠올리면, 마치 무덤 속에 갇힌 시체가 되어버린 것처럼 숨이 덜컥 막혀온다. 어딘가가 결여된 이방인의 자세로 삶에서도 그리고 조선이라는 땅에서도 한 발짝 멀찍이 떨어져 있는 듯한 ‘나’를 보고 있노라면. 어쩐지 결코 들여다보고 싶지 않은 내 속의 나를 정면으로 맞닥뜨리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나는 과연 ‘나’와 얼마나 다른 사람인가? 숨이 막힌다. 숨이 턱턱 막혀오는 무덤 속의 질식에서 벗어나 ‘꽃의 서울’에서 호흡하고 춤출 수 있는 날이, 과연 우리에게도 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