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원,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을 읽고
으레 ‘소설’을 읽는다고 하면, 우리는 책장을 여는 바로 그 순간부터 펼쳐질 흥미로운 사건들을 내심 기대하게 된다. 나와는 다른 세상에서 다른 삶을 살고 있는, 그러나 어딘가에 분명 존재하고 있을 법한 누군가. 그이의 삶을 향한 궁금증이 마음속 저 깊은 곳에서부터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것이다. 하지만,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은 어딘가 달랐다. 작품을 읽는 내내. 소설이 아니라 마치 누군가의 ‘일기장’을 몰래 훔쳐보는 기분이 들었다. 여기에는 점차 고조되는 갈등도, 미래를 향한 넘실거리는 희망도, 남몰래 비참한 눈물을 흘리는 주인공도 없었다. 단지 소설가 구보(仇甫)의 흘러가는 내면, 그 자체가 오롯이 하나의 소설을 이루고 있었다.
직업도 아내도 없이. 밤낮으로 책이나 읽고 글이나 쓰며 줄곧 어머니를 걱정시키기만 하는 스물여섯의 구보. 그의 할 일은 하루 종일 경성 시내를 하릴없이 배회하는 것뿐이다. 구보는 도시의 사람들을 가만 관찰하고 따라가다가, 이내 밀려오는 외로움에 벗을 찾아 헤매인다. 사실, 그가 가장 찾고 싶어 했던 것은 행복. 그러나 막상 집을 나선 그에게는 모두가 그의 갈 곳이라서 한 군데 갈 곳이 없었고, 그는 전차 안에서도 제자리를 찾지 못하였고, 그가 들고 있는 한 손의 단장과 또 한 손의 공책 중 어느 곳에서도 자신의 행복을 찾을 수 없었다. 그는 도대체 스스로가 얼마를 가져야 행복일 수 있을지, 참말로 자기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알 수가 없다. 구보는 벗들의 편지가 그토록 보고 싶고, 명랑을 가장하기 위해서라도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는 사람 그리고 자신을 기억하고 알아봐 주는 사람을 찾기를 원했지만. 구차한 이 나라에서 구보가 만날 수 있는 이들이란 가난한 시인에 불과하거나 온통 황금을 찾아, 찾아 나서는 사람들뿐이었다.
끝내 사랑하는 여인에게도, 벗에게도, 경성의 거리 혹은 그 어느 곳에도. 구보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행복은 없었다. 스스로의 삶에 행복을 들이기 위해서는 우선 생활이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1930년대에 직업도 아내도 없이 소설을 쓰는 구보에게, 그리 쉽게 생활이 생길 리가. 사람들은 돈과 성욕에 눈이 멀어버렸고, 상품이 아닌 예술은 더 이상 아무런 가치도 갖지 못하는 시대이다. 세속적인 글쓰기에 의지하지 않고서는 당최 생활이란 것을 가질 수가 없는, 서정 시인조차 황금광으로 나서는 이 병든 도시에서. 가난한 소설가 구보는 철저히 소외되고야 만다. 그런 구보의 몸과 마음은 쇠약하고, 고독하고, 피로하고, 어둡고, 공허하고, 적막하고, 외롭고, 애달프고. 모두가 환자이고 정신병자인 세상 속에서, 경성의 영원한 주변인으로 머물 수밖에 없는. 감히 생활도 행복도 가질 수가 없는 우리의 구보는 오래된 습관처럼 ‘3B 수(水)’를 복용할 뿐이다.
구보와 같이 ‘3B 수(소설 속에서 주인공 구보가 복용하는 신경 안정제의 명칭)’는 아니었지만. 방학을 기점으로 나 역시 약을 먹기 시작했다. 학기 내내 모든 노력을 쏟아붓고서 내 안의 것들을 모두 소진해버린 나에게는 새로이 무언가를 시작할 열정도, 기운도, 의지도. 그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래서 나에게는 생활이 없었다. 그저 눈을 뜨면 책을 읽고 문장을 끄적이다가, 이내 깊은 잠에 들기를 반복했다. 구보와 다를 바가 없는 삶이었다. 생활이 없는 나는, 우울했다. 80여 년이 흘러도 변치 않은 황금광 시대의 도시에서. 행복한 표정으로 거리를 걷는 이들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내가 가지지 못한 행복을 훔쳐보며 부러움을 느끼고. 그런 나에게는 갈 곳이 없었고, 꼭 해야 할 일이 없었고, 반드시 만나야 할 사람이 없었다. 끝도 없이 자꾸만 밑으로 가라앉는 일 빼고는 도무지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다시 학교를 다니며 원래의 패턴대로 천천히, 나의 생활을 갖기 시작하자. 우울은 조금씩 걷혀가고 있다. 이제 나는 생활이 주는 힘을 안다. 가끔씩은 지겹고, 지루하고, 단조로울지라도. 매일 해야 할 일이 있고, 가야 할 곳이 있고, 만나야 할 사람이 있다는 것이 주는 커다란 의미를 이해한다. “이제 나는 생활을 가지리라. 생활을 가지리라. 내게는 한 개의 생활을, 어머니에게는 편안한 잠을.”이라며 되뇌던 가난한 도시의 소설가 구보에게도 마침내 생활이 머물고, 우울이 걷히기를. 그가 그렇게나 원하던 행복을, 매일의 일상에서 느끼는 소소한 행복들을 끝내 찾았기를 멀리서 빈다. 물론 그가 다짐했던 대로 생활을 가지는 데 성공했을지, 그래서 끝끝내 행복을 발견했을지는 그 누구도 장담할 수가 없다. 아니, 오히려 그는 생활을 가지는 데에 실패했으리라. 구보는 황금을 찾아 떠나는 사람들 틈에서 ‘모더닐로 지’를 하는 소설가에 불과했으니까. 그럼에도 언젠가는 일렁이는 마음으로 경성을 유영하던 구보에게도 부드러운 잔잔함이 깃들기를, 그 무엇보다도 더 간절히 바라게 되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