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랑당'과 '불한당'의
간극만큼이나 먼

채만식의 <치숙>을 읽고

by 달밍




보통학교 사 년 겨우 다니고서도 앞길이 환히 트인 ‘나’와 사회주의라더냐, 막걸리라더냐 그걸 하다, 징역 살고 나와서 폐병으로 앓고 누웠는 ‘오촌 고모부.’ 이 두 사람은 <치숙>의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중심인물들이다. 먼저 ‘나’에 대해서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자. ‘나’는 일본인 다이쇼 아래에서 일을 하며 살아가는 스물한 살의 청년이다. 그는 세상을 잘 안다. 적어도, 그가 태어나서 보고 듣고 경험한 세상에 한해서는 말이다. 다이쇼와 이웃 내지인들의 비위를 맞추고 아첨하는 것이 그가 이 땅에서 배운 가장 현명한 세상살이의 방식이다. 그의 조국은 곧 일본이요, 그의 국어가 곧 일본어라는 사실은 다음의 인용구에서도 아주 선명하게 드러난다.



내지 여자가 참 좋지요. 나는 죄선 여자는 거저 주어도 싫어요. (…) 그리고 내지 여자한테 장가만 드는 게 아니라 성명도 내지인 성명으로 갈고, 집도 내지인 집에서 살고, 옷도 내지 옷을 입고 밥도 내지 식으로 먹고, 아이들도 내지인 이름을 지어서 내지인 학교에 보내고 (…) 그리고 나도 죄선말은 싹 걷어치우고 국어만 쓰고요. 이렇게 다아 생활법식부텀도 내지인처럼 해야만 돈도 내지인처럼 잘 모으게 되거든요.


이처럼 일본인들의 돈과 권력 아래에서 기생하는 ‘나’가 가장 한심하게 여기는 사람은 바로 그의 오촌 고모부이다. 그는 서울로 또 동경으로 공부를 한다며 바삐 돌아다녔음에도 불구하고 오 년이나 옥살이를 한 것도 모자라, 불철주야 자신을 돌봐준 아내에 대한 고마움도 모른 채 병들어 누워만 있는, 하루 바삐 죽어야 하고 또 죽어서 마땅한 인물에 불과하다. 밥도, 명예도, 재미도. 그 아무것도 얻지 못하는 사회주의를 한답시고 나서며 아주머니를 고생시키기만 하는 ‘부랑당’이나 다름없는 아저씨. ‘나’에게 있어서 그런 아저씨는 아직도 세상 물정을 모르는 어른일 뿐이다.



그러나 정작 “세상물정이란 건 그야말로 그리 만만한 게 아니”라는 삶의 진리를 꿰뚫고 있는 사람은 아저씨이다. 그는 몸도 마음도 병들고야 만 식민지 시대의 무력한 지식인. 배울 만큼 배웠고, 싸울 만큼 싸운 그에게는 더 이상 아무것도 할 기운이 남아있지 않다. 그가 바라보는 조선의 현실은 부당하고 불합리한 것들 투성이지만. 정작 조선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아무짝에고 못쓰게 길이 들어버리고야 말았다. 사람들과도 그리고 세상과도 도무지 소통할 수 없게 된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고작 방 안에 드러누워 아내에게 의탁해 살아가는 것만이 전부이다.



<치숙>이 그저 그런 수많은 작품들 중 하나였다면. 분명 우리의 ‘무력한 지식인’을 이야기의 전달자로 등장시켰을 것이다. 하지만 채만식은 달랐다. 그는 지식인이 아닌 어린 청년을 이야기의 화자로 내세운다. 그의 작품이 여타의 소설들과 확연히 구분될 수밖에 없는 차이점은, 바로 여기에 있었다. ‘나’는 일제 치하가 아닌 현실을 살아본 경험이 없는 인물이자 동시에 배움의 기회가 결여된 인물이다. 그렇기에 ‘나’는 무지하며 미성숙할 수밖에 없다. 이 어리고 어리석은 화자가 들려주는 이야기 안에서, 독자들은 화자를 향한 감정이입에 실패한다. ‘지금 이 사람이 말하고 있는 내용이 과연 사실일까?’하는 의심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고. 우리는 화자의 말과 행동을 그리고 전체적인 상황들을 한 발짝 멀찍이 떨어져 바라보게 된다. 말하는 이의 주관적인 시선에 완전히 매몰되어 따라가기보다는, 그의 발화에서 어느 정도 비판적인 거리를 유지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했나. 무지한 ‘내’가 도리어 지식인인 아저씨를 한심해하는 장면들을 통해 결국 우리는 채만식이라는 작가가 의도했던 바를 아차-하고 깨닫는다.


1930년대를 살았던 채만식은 무지한 소시민인 ‘나’를 풍자하기 위해 이 작품을 썼겠지만(그렇다고 해서 그가 ‘아저씨’를 열렬히 옹호하며 찬사를 보냈다는 의미는 아니다). 2018년을 사는 나에게는 그저 두 사람이 모두 안쓰럽게 느껴질 뿐이었다. 두 사람의 단절은 그들의 스스로의 잘못으로 인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시대의 문제, 시대의 아픔이 소통의 장벽을 세웠다. 시대가 두 사람 사이의 대화를 가로막았다. 아무리 달려 봐도 결코 넘을 수 없는 어떤 결계가 존재하는 것처럼. ‘부랑당’과 ‘불한당’ 사이에는 차마 매울 수 없는 간극이 있었다. 같은 나라에 살고 같은 언어를 사용하면서도, 같은 마음으로 같은 이야기를 나눌 수가 없다는 건 얼마나 절망적인가. “말을 안 해도 외롭고, 말을 하면 더 외로운 날들이 이어졌다. 그는 자기 삶의 대부분을 온통 말을 그리워하는 데 썼다.”는 어느 소설가의 문장이 떠오르는 밤이다. 이 밤, 그들의 간극은 그들의 의지가 아니었기에. 나는 그저 이 문장으로 그들을 가련히 여길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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