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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코치 Jan 01. 2022

새해 첫날이니까

한 해의 마지막 날은 항상 자정을 넘기고 잠든 것 같다. 사실 야행성이라는 이유로 365일 중 350일 이상은 자정 넘어 잠들곤 해서 12월 31일에 자정 넘기는 건 별로 어려운 일은 아니었는데, 아직 작년이라 부르기 어색한 2021년엔 수면 목표시간을 23시 취침, 7시 기상으로 바꿔보면서 자정 전에 잠드는 날이 많아졌다. 그래도 12월 31일은 평소 일찍 잠드는 많은 사람들이 자정 시간을 넘기고 새해를 맞이하지 않을까 싶다. 나도 늦은 밤, 시계를 보며 새해를 기다리고 있었다.


23시 59분에서 0시로 시간이 바뀌고 함께 티브이 보고 있던 엄마와 새해 인사를 주고받고 마시던 맥주를 마저 마셨다. 이미 밖에서도 친구와 맛나게 마시고 온 맥주인데, 집에 와서도 한 해의 마지막 날이라는 핑계로 혼자 또 마셨다.



1시가 좀 넘고 잠들었는데 엄마 폰에 울리는 카톡 소리가 계속 들려 눈을 떴다. 8시 50분, 이미 아침이었다. 전 날 마신 맥주 때문인지 피로감이 상당했다. 쉬는 날이니 더 잘 수도 있었지만 '새해 첫날이니 다른 쉬는 날보단 일찍 일어나자.'라는 마음이 들어 억지로 눈을 떴다. 오늘은 새해 첫날이니 자기 전에 절대 맥주를 안 마셔야지라는 다짐도 했다.


새해 첫날이니 고양이들 특식 좀 챙겨주고, 간단히 씻고 밖에 나갈 준비를 했다. 매일 아침 씻고 나가 햇빛을 잠깐 보며 커피를 사 오며 하루를 시작한다. 문을 열고 건물을 나서니 5~6살 정도 돼 보이는 여자아이가 나를 보며 "안녕하세요~"라고 밝게 인사한다. 나도 습관적으로 아이들에게 쓰는 톤으로 바꾸어 밝게 "안녕하세요!" 인사하고 "추운데 어디 가니?" 물었다. "저는 엄마랑 교회 가요. 아줌마도 교회 가요?", "아니, 아줌마는... 마트 가는데." 커피 사러 나가면서 왜 마트 간다고 거짓말을 했는지 모르겠다. ㅡ.ㅡ 어쨌든 교회 가는 건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나 보다. 그 후에 그 아이는 엄마가 불러서 엄마에게 뛰어갔다. 아침부터 모르는 아이에게 인사도 받고 짧은 대화도 한 것이 뭔가 기분좋게 느껴졌다. 그리고 카페로 걸으며 '아줌마'라는 말에 자연스럽게 반응한 것을 나도 모르게 여러 번 곱씹었다.


얼죽아답게 영하 7도 날씨에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사들고 동네 한 바퀴를 천천히 돌았다. 기온은 낮지만 햇빛이 따뜻하고 좋았다. 20분 정도 돌아 집 근처 골목에서 눈부신 해를 보며 '새해 첫 해, 반가워!'라는 생각을 했다. 문득 아침 여러 단톡방에서 새해 첫 일출을 보러 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본 게 생각나, 나 같은 늦잠꾸러기는 10시 30분 하늘 위에 다 뜬 해에 인사한다는 사실이 조금은 웃겼다.


집에 돌아와 잠깐 쉬며 오전 중에 할 요가 루틴을 골랐다. '움직이기 귀찮아.' 약간의 숙취와 요새 들어 몸에 피로가 상당해서 너무 하기 싫었다. '그래도 새해 첫날이니까.'라는 마음으로 요가매트를 펼쳤다. 올해도 '주 1회 30분 요가하기'를 새해 목표에 담았다.




확실히 몸의 컨디션이 평소랑 다르긴 한지 요가하는 내내 많이 고통스러웠다. 몸이 느끼는 곳곳의 피로를 풀려면 30분으론 부족했지만 무리하지 않기로 했다.


그 후엔 책을 좀 보다가 엄마와 배달음식으로 점심을 먹고 피곤해서 잠들었는데 3시간이나 낮잠을 잤다. 간밤에 7시간 30분이나 잤는데 이렇게나 또 자다니. 대체 왜 이리 피곤한 건지.. 그래도 잘 쉰 것 같아 좋다. 틀어놓은 티브이에서 놀면뭐하니가 방송되고 있었다. 티브이에서 서로의 토정비결을 이야기하길래 나도 궁금해서 매년 보던 금융사 토정비결을 찾아봤다. 이름, 생년월일과 태어난 시를 입력하니 이름 옆에 '여자, 37세'라고 보여서, 깜짝 놀랐다. 아 맞다! 나 나이 먹었지.... 토정비결을 매년 돈 주고 봤었는데 매 번 몇 월쯤 생긴다던 남친이 안 생겨서 올해는 진짜로 안 보기로 다짐했다. 다짐해봐야 심심하면 또 보겠지만..(ㅋㅋ)


과하게 먹은 점심이 소화도 안된 것 같은데, 엄마가 해주신 김치찌개를 저녁으로 맛있게 먹고 자취방으로 돌아왔다.








나는 새해 첫날에 정말 많은 의미를 두는 것 같다.


- 새해 첫날이니까 자정 이후에 잤고

- 새해 첫날이니까 늦잠 안 자려고 피곤한데도 일찍 일어나고

- 새해 첫날이니까 고양이 특식 챙겨주고

- 새해 첫날이니까 하늘 위 해한테 새해 첫 해라며 반갑다고 인사도 하고

- 새해 첫날이니까 하기 싫은 요가를 억지로 하고

- 새해 첫날이니까 혼자 있기 싫어서 엄마 집에 간 것도 같고 (엄마가 혼자 계시는 것도 좀 싫었던)

- 새해 첫날이니까 오늘은 맥주를 안 마시겠다 다짐하고

- 새해 첫날이니까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보너스로 새해 되었으니 금융사 토정비결도 한 번 봐주고...


...


평소에도 거의 모든 행동에 의미를 두는 편이지만 '새해 첫날이니까'에는 뭔가 수동적인 느낌이 드는 것 같기도 하다. 새해 첫날이기 때문에 했던 일들이 내가 진정하고 싶어서 한 것들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달까? 마치 억지로, 기계적으로 한 기분. 물론 고양이 특식을 주고 요가를 할 때의 과정은 나름 행복하고 뿌듯했지만 '새해 첫날이니까 꼭 해야만 해'라고 스스로에게 무언의 압박을 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위에 '새해 첫날이라'한 일들은 사실 평소에도 잘하는 일들인데..



그래도 새해 첫날 해내면 앞으로 남은 한 해동안 더 잘 해낼 것 같은 첫 단추 같은 기분은 든다. 그래. 너무 깊게 생각하지 말아야겠다. 어차피 뒹굴거리며 쉬고, 자는 시간이 더 많았으니 이 정도면 만족!! 밤이 깊어지니 맥주 한 잔 당기지만 참아봐야지. 새해 첫날이니까. 올해는 최대한 안 마시고 싶으니까! 일주일에 딱 두 번만 마셔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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