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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파니 Sep 18. 2023

나의 첫사랑 소환귀 (21)

21화. 계획 실행







‘쉬이이잉~~! 우우우웅~!’ 재단기와 집진기의 모터 소리가 공방을 가득 메운 가운데 금식은 목재 재단에 열을 올렸다. 길이와 폭이 다양하게 재단된 목재들이 이동식 작업대에 차곡차곡 쌓였다. 작업용 앞치마 포켓에서 a4용지에 인쇄된 도면을 꺼내 치수가 맞는지 확인하는데 이마에 맺힌 땀이 뺨을 타고 흘렀다.

곧이어 ‘ 꾸르르르륵... 꾸륵...’ 배고파 죽다는 듯 위장이 볼멘소릴 냈다. 고개를 돌려 벽에 걸린 시계를 보니 자정이었다. 금식은 재단기와 집진기의 스위치를 off 시키고는 ‘후우~’ 고단한 숨을 길게 내쉬었다.

그러고 보니 한 끼도 안 먹었다. 금식은 며칠 전 동네 삼거리 골목에 새로 생긴 편의점을 떠올렸다. 춘배의 가게에서 인사를 나눴던 순희가 한다는. ‘꾸르르륵, 꾸아아아...’ 당장 거기로 튀어가라고 위장이 소리쳤다.     


삼거리 골목에 들어선 금식 앞에 드루와 편의점이 가로등 마냥 골목을 밝히고 있었다.

자정이 넘은 시각이라 그런지 지나는 사람 하나 없이 고요했다. 금식은 무엇을 먹을지 고민하며 당기시오라고 적힌 편의점 유리문을 밀고 들어갔다. 통성명은 했으니 아는 척은 해야지 하고 계산대를 바라보니 순희는 없었다. 환갑이 족히 넘어 보이는 여자 어르신 알바가 “어, 어서 오세요...” 계산대 안에서 인사를 했다.

그런데 어딘지 모르게 표정이 어색하고 불편해 보였다. 피곤해서 그런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금식은 고개인사를 하고는 곧장 제품 매대로 향했다. 햇반 하나와 컵라면을 챙겨 계산대 앞에 섰다. 제품 바코드를 찍는 어르신의 얼굴을 가까이서 보니 겁에 질린 듯 창백했다. 그 이유를 단박 알았다. 어르신 옆에 하얀 모자를 깊게 눌러쓰고 흰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남자가 웅크려 앉아 있었다. 무언가를 신문지로 둘둘 말아 쥐고.        


“비타 오천 한 박스도 부탁드릴게요.”     


금식은 계산대 벽면 진열대에 있는 비타민 음료를 가리키며 말했다. 어르신은 몸을 돌려 비타 오천 20개입 한 박스를 들어 계산대 위에 올렸다.     


“죄송한데, 시원한 걸로 한 박스 더 부탁드릴게요.”

“네? 시, 시원한 거요? 그거... 냉동실에 있는데....”     


금식의 요구에 어르신은 두려운 표정으로 놈을 내려다보며 머뭇거렸다.       


“저, 급한데. 빨리 좀 부탁드릴게요.”

“네? 네.... 그, 그럼 잠시만....”     


잠시만 이란 말이 마치 놈에게 동의를 구하듯 했다. 낌새를 느낀 걸까. 놈은 왼손에 둘둘 말아 쥔 신문지를 무릎 위로 올려 슬그머니 오른손으로 바꿔 쥐었다. 그리곤 신문지 끝을 비집어 그 속으로 손을 넣었다.

어르신은 계산대 접이식 상판을 천천히 들어 올려 몸을 빼내곤 조심히 상판을 내렸다. 놈은 청각을 곤두세웠다. 냉장고 쪽으로 이동하는 발소리가 들리지 않자 놈의 미간이 험악하게 구겨졌다. 신문지에서 식칼의 손잡이를 말아 쥔 놈의 손이 모습을 드러냈다. 여차하면 가차 없이 휘두르리라. 결단을 내린 놈은 슬며시 엉덩이를 떼며 고개를 들었다. 순간, 험악하게 구겨졌던 놈의 미간이 다리미로 민 것처럼 매끈하게 펴지며 찢어질 듯 두 눈이 벌어졌다. 양팔을 머리 위로 높게 쳐든 금식이 눈을 희번덕대고 있었다.

위로 쭉 뻗은 금식의 팔을 타고 놈의 시선이 따라 올랐다. 금식의 양손에 시선이 멈춘 놈은 경악했다. 직사각형 비타 오천 박스가 자신의 정수리를 정확히 겨누고 있었다. 엉거추춤한 놈의 다리와 칼을 쥔 손이 파르르 떨렸다. 공포가 숨통을 조여왔다. 희번덕 핏발 선 금식의 눈을 마주하며 놈은 생각했다.

칼이 빠를까? 비타 오천이 빠를까? 사람 머리를 설마? 저걸로...., ‘빡!!!’ 설마가 기어이 사람 잡는 소릴 냈다. 금식이야말로 가차 없었다. ‘아아!’ 어르신은 비명을 뱉는 놀란 입을 손바닥으로 막았다. 놈은 비타 오천을 머리에 이고 그대로 주저앉아 숙면에 들었다. 박스에서 흐르는 비타 오천이 놈의 흰색 모자와 마스크를 누렇게 물들였다. 어안이 막혀 굳어 있는 어르신께 박스테이프가 있는지 금식이 물었다. 어리둥절, 있다고 대답한 어르신은 계산대 수납함에 있는 테이프를 재빨리 꺼내 건넸다. 금식은 놈의 양손목과 발목을 포개 박스테이프로 칭칭 감아 접착했다. 마치 수갑처럼.     


“고마워요! 정말 고마워요! 고마워...”     


안정을 찾은 어르신이 금식의 팔을 붙잡고 울 듯 기뻐하며 고마워를 남발했다. 


“다친 데는 없으시죠? 어서 경찰에 신고하세요.”     


금식에게 연신 고개를 숙이던 어르신은 핸드폰을 꺼내 112를 눌렀다. 떨리는 목소리로 신고를 하는 어르신을 흐뭇한 미소로 바라보던 금식은 어깨에 힘을 바짝 싣고 뿌듯한 표정으로 편의점을 나서려 몸을 돌렸다. 통화를 마친 어르신은 황급히 금식을 팔을 붙잡았다. 감격에 겨운 어르신의 뭉클한 표정에서 뭔가 사례를 하려나 싶던 금식은,      


“마음 쓰지 않으셔도 돼요. 저는 어르신이 무탈하신 걸로 족합니다.”       


금식의 말에 더욱 감동한 듯 고개를 크게 끄덕이던 어르신은 매우 아쉬운 투로 말했다.     


“그래도.... 계산은 하셔야죠.”

“아....”     


벌게진 금식은 햇반과 컵라면, 놈이 머리에 이고 있는 비타 오천까지 계산하곤 미시오라고 적힌 문을 당기며 도망치듯 편의점을 나섰다.     


***     


다음날, 정오의 뜨거운 햇살을 받으며 수봉이 두만 부동산이라 적힌 사무실 문을 벌컥 열었다.     


“사장님~~”     


하와이안 셔츠를 유니폼처럼 챙겨 입은 만사장이 짜장면을 비비다, 뜨끔한 표정으로 수봉을 바라봤다.     


“어.... 왜, 웬일이신가?”

“왠 일은요. 사장님 보고 싶어서 왔쭁~”     


수봉은 손가락으로 하트를 만들며 몹쓸 애교를 떨었다.      


“무, 무섭게 왜 이래....”

“근데? 식사 중이셨나 봐요?”     


테이블 위에는 짜장면 한 그릇, 튀김만두 한 접시, 탕수육 한 접시, 탕수육 소스 한 그릇이 놓여있었다. 막 배달이 왔는지, 짜장면을 제외한 나머지는 랩 포장이 되어 있었다.     


“아직 식전이지?”     


수봉이 씨익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만사장은 ‘아이구, 저런.’을 중얼대며 안쓰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그럼.... 빨리 가서 먹고 와. 바쁘다고 자꾸 끼니 거르면 속 버려....”     


마음 써 챙겨주는 만사장의 자상함이 너무도 벅찬 수봉은 썩소를 흘렸다.       


“뭘 먹고 와요. 요즘에 입맛도 없어요. 저 신경 쓰지 마시고 편히 드세요.”     


신경 쓰지 말라는 말이 더 신경 쓰인 만사장은 짜장면을 마저 비벼 한 젓가락 오물오물 씹으며 수봉을 예의 주시했다.     


“무슨 일로 왔어?”

“아.... 그게요... 부탁드릴 게 있어서요....”     


어두운 표정으로 뜸 들이던 수봉은 너무도 자연스럽게 튀김만두 접시를 집어 들곤 랩을 벗겼다. 만사장의 두 눈이 부릅!! 그러거나 말거나 수봉은 튀김만두 두 개를 연속으로 입안에 욱여넣고는 몇 번 씹지도 않고 꿀떡 삼켰다. 위기감을 느낀 만사장은 테이블 가운데 있던 탕수육을 자기 앞으로 바짝 당겼다.      


“그래서, 부탁할게 뭔데?!”

“실은.... 제 친구 금식이한테 중개해 주신 집 있잖아요....”     


운을 뗀 수봉은 금식 어머니의 위독한 상태를 전하며 하루라도 빨리 그 집에서 살게 해 드려야 됨을 엄중하게 피력했다.     


“어허... 사정이 안타깝긴 한데.... 계약한 입주 일보다 한 달이나 앞당기는 건 쫌... ”     


수봉은 허리를 수그려 테이블을 짚고는 만사장에게 닿을 듯 얼굴을 들이밀었다.     


“집 샀다고 얼마나 좋아하셨데, 하늘도 무심하시지.... 지금 당장 그 집으로 들어가도 얼마나 사실지.... 그래도 살다가셔야 여한이 없을 실 텐데.... 사장님, 부탁 좀 드릴게요...”     


수봉은 침통한 표정으로 비통하게 사정했다. 난감해하던 만사장은 평소에 볼 수 없는 진중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소파에서 일어나 사무용 책상 서랍을 열고는 열쇠 한 개와 네 자리 번호가 적힌 쪽지를 빼내 도로 앉았다.     


“집주인 어르신도 이해하시겠지. 자, 대문열쇠랑 현관문 자물쇠 비밀번호.”

“와~~ 사장님, 정말 감사합니다! 이 은혜 진짜 잊지 않을게요!”     


수봉은 연거푸 고개를 숙이고는 만사장이 당겨 놓은 탕수육을 당연하게 집어 들어 랩을 벗겼다. 또다시 만사장의 두 눈이 부릅!! 하지만 어쩌랴. 나잇살 먹고 이딴 걸로 쪼잔하게 굴 순 없으니. 만사장도 탕수육 소스 그릇을 들고 랩을 벗기며 물었다.      


“부먹이야? 찍먹이야?”

“아흐~~ 탕수육은 무조건 찍먹....”     


만사장은 소스를 탕수육에 냅다 부어버렸다.     


“이 걸 어쩌나?! 난 부먹인데! 하하하!”


회심의 미소를 짓던 수봉은 탕수육 세 점을 손가락으로 한 번에 집어 들며 말했다.     


“말씀을 끝까지 들으셔야지. 탕수육은 무조건, 찍먹이던 부먹이던 다아 맛있죠~~”     


룰루랄라~ 우걱우걱 씹어대는 수봉을 보며 만사장은 소리 없이 입술만 꾸물거렸다. 입 모양새가 마치 ‘ㅅ...ㅂ...’ 같았다.     


***     


“어, 수봉아.”     


수봉의 전화를 받고 바 테이블 주방에서 김치를 볶던 춘배의 표정이 밝게 빛났다.      


“열쇠를 받았다고?! 휴우... 다행이다. 그럼, 네가 말한 그 꽃집 사장님한테 주문 넣고 계획대로 진행하자.”         

춘배의 눈빛에 결의가 반짝였다.      


***     


금식이 프렌치 스타일의 서랍형 콘솔 화장대 제작에 들어 간지도 3일이 지났다. 선 주문 된 일을 하며 틈틈이 제작하다 보니 완성이 더뎠다. 어머니가 퇴원하시기 전에 제작을 마쳐야 하는데, 금식은 조바심이 나기 시작했다. 끝으로 갈수록 좁아지는 목봉 형태의 화장대 다리를 사포로 감싸 쥔 금식의 손이 정신없이 오르내리길 반복했다.  ‘따르릉! 따르르릉!’ 핸드폰 벨 소리에 사포질을 멈춘 금식은 발신인을 확인했다. 간병 여사님이었다.     

“네, 여사님.”

[어쩌면 좋지요? 내가 웬만하면 어머니 퇴원할 때까지 간병해 드리려고 했는데.....]        


간병 여사님의 난처한 기색이 목소리에 역력했다. 금식의 미간이 좁아지며 주름을 만들었다.     


“무슨 일로 그러시는데요.”     

[그게.... 아유... 솔직하게 말할게요.]


어차피 욕먹을 거 숨겨 뭐 하냐란 투였다.      


[어제 새벽에 어머니가.... 그, 뭐냐? 그래, 링게루 줄을 팔에서 억지로 잡아 빼고 병실을 나갔지 뭐에요....]     


‘하아....’ 금식의 입에서 조건 반사 적으로 탄식이 터졌다.      


[피 흘리고 복도를 돌아다니면서 집에 간다고 울고 불고 난리가 났었거든요.... 낮에는 얌전한데 밤만 되면 심해지시네.... 그렇다고 내가 한숨도 안 자고 지킬 수도 없고....]        


금식의 주름진 미간이 더욱 깊게 파였다.     


“저희 어머니 때문에 고생이 많으셨네요.... 죄송합니다....”

[아유.... 아니에요... 제가 더 신경 썼어야 했는데.... 그래서 말인데요. 간호사 말로는.... 아무래도 아드님이 와계서야 될것 같다고....]      


‘하아....’ 탄식 밖에 안 나왔다. 일도 밀렸는데, 화장대도 만들면서 어머니 간병까지. 금식은 아랫입술을 말아 물었다. 고개를 돌려 벽시계를 보니 오후 4시였다.     


“여사님, 죄송한데 제가 6시까지 가겠습니다. 그때까지만 부탁드릴게요.”

[그래요... 저도 참 미안하고 그렇네요....]     


전화를 끊고 멍하니 천장을 올려다보던 금식은 순간, 모든 것이 버겁게 느껴졌다.      


***     


병실에 들어선 금식을 보자마자 어머니는 울상이 되더니 이내, 착용하고 있는 산소마스크를 비껴서 눈물이 흘렸다.     


“어, 어뒤 갔따 이, 이제 왔떠...”     


금식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어머니의 등을 달래듯 쓰다듬었다. 그리고 곁에 있던 간병 여사님에게 고마움과 죄송함을 머리 숙여 표했다.      


“아들 왔으니까, 오늘은 울지 말고 얌전히 잘 주무셔. 알았죠? 나, 가요...”     


어머니의 손을 꼭 잡고 작별인사를 살갑게 건넨 간병 여사님은 몸을 돌려 병실을 나섰다. 금식도 여사님을 뒤 따랐다.     


“계좌 주시면 간병비 바로 입금해 드릴게요. 그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병실 앞에서 간병 여사님과 얘기를 나누고 있는데 복도를 지나던 담당 간호사가 금식을 보고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 계좌를 건네주고 금식과 간단히 인사를 마친 간병 여사님이 걸음을 옮기자 간호사가 입을 뗐다.     


“교수님이 그러시는데... 주말 지나서 월요일에 퇴원하시게 좋을 것 같다고 하시네요.”

“퇴, 퇴원이요?”     


어머니 상태가 저런데 퇴원이라니, 금식은 불편한 기색을 드러내며 간호사의 눈을 똑바로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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