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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파니 Oct 02. 2023

나의 첫사랑 소환귀 (23)

23화. 꽃보다 더 고은







“뭐 하러 왔어? 그냥 택시 타고 가면 된다니까....”

“뭔 소리! 어머니 퇴원하시는데 내가 에스코트해드려야지! 어머니, 집에 가니까 좋죠?”          


어머니는 어눌한 발음으로 좋다고 말하며 해맑게 웃었다. 금식은 그런 어머니를 보며 측은한 미소를 지었다. 주차장으로 이동한 세 사람은 어머니의 짐 보따리를 94년식 액센트 트렁크에 싣고 차에 올랐다.      


“와아~ 이게 언제 적 차야? 이런 똥차를 누구한테 빌린 거야? 얘도 주인 잘못 만나 고생이다.”

“춘배 형님한테 토씨 하나 안 빼고 전해 줄게.”     


전방을 주시하며 운전하는 수봉의 표정이 진지했다. 춘배 형님일지라도 할 말은 한다, 금식은 흔들림 없는 눈빛으로 수봉을 향해 고개를 옮겼다.      


“관리 잘하셨네. 눈감고 타면 새 차인 줄 알겠는 걸. 형님이 보통이상 인 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 일 줄이야.... 존경스럽다.”     


수봉은 금식이 보통이하 인 줄은 알았지만 이 정도 일 줄이야,라는 듯 썩소를 날렸다.       


“그냥, 내 트럭으로 모셔도 되는데....”     


금식이 뒷머리를 긁적이며 뻘쭘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마! 주인 잘못 만난 똥차라도 명색이 승용차야. 네 트럭은 짐차고, 어머니가 짐이냐? 트럭으로 모시게. 어머니~~ 차 좋죠?!”       


룸 밀러로 뒷좌석을 보니 어머니는 승용차를 처음 타보는 아이처럼 엉덩이를 신나게 들섞였다.     


“아이고~ 우리 어머니 차 탈 줄 아시네~~ 하하하!”       


수봉이 쾌활하게 웃으며 어머니와 장단을 맞췄다.     


“봐라~ 어머니 얼마나 좋아하시냐!”

“타 본 차라곤 대중교통 아니면 내 트럭뿐이었으니까....”     


고개를 돌려 어머니를 보는 금식의 표정이 서글펐다.     


“근데? 어머니 상태가 면회 가서 뵀을 때랑 별 차이가 없네. 정신이 여전히 왔다 갔다 하셔?”       


수봉의 물음에 금식은 고개를 앞으로 돌리곤 “요 며칠은.... 나도 잘 못 알 보시더라고.” 긴 한숨을 섞어 말했다. 수봉도 뒤 따라 긴 한숨을 내쉬었다. 금식은 옆 차창으로 고개를 옮겼다.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는 금식의 얼굴에 고단한 흔적이 짙었다. 단조롭게 스치는 풍경을 퀭한 시선으로 더듬던 두 눈 위로 눈꺼풀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금식아~ 다 왔어. 일어나.”

“어? 어.”     


잠든 줄도 몰랐던 금식은 어리둥절 눈을 뜨고 껌뻑였다. 뒤를 돌아보니 어머니도 자고 있었다. 수봉은 차에서 내려 뒷좌석으로 향했다. 금식은 뒷목을 주무르며 차문을 열었다. 내리는 순간, 뭐지? 했다. 도착한 곳은 금식이 매입한 집이었다.     


“마! 여기로 오면 어떻게?”     


수봉은 대꾸도 않고 깊은 잠에 빠진 어머니를 조심스럽게 흔들었다. 어머니는 게슴츠레하게 눈을 뜨고는 혼미한 정신으로 주변을 살폈다.     


“집에 다 왔어요. 어머니...”     


수봉이 활짝 웃으며 말을 건네자 어머니는 누구지? 하고 미간을 좁혔다. 흐릿한 시선이 조금 선명해졌다.        

“스, 스봉이.... 아, 아니니?”

“아이구! 어머니! 네, 저 수봉이에요!!”     


놀란 수봉의 언성 치솟았다. 금식도 수봉만큼 놀라 얼른 어머니 곁으로 다가섰다. 갑작스러운 큰 소리에 어머니가 눈을 찡그렸다.       


“아, 아우.... 기, 기청 떠러 지, 지게 따아....”     


수봉과 함께 어머니를 부축한 금식이 휴대용 산소통을 챙겨 들며 물었다.      


“엄마, 나, 알아보겠어?”     


수봉을 알아보는데 아들이야 두 말할 것 없이 당연할 테지만 그래도 금식은 확인하고 싶었다. 어머니는 뭔 뚱딴지같은 소리야,라는 표정을 짓고는 손을 들어 금식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어, 어마가... 우, 우디 아두를 웨.... 모, 모 다라 바....”       


어눌한 발음만 빼면 어머니는 너무도 멀쩡해 보였다. 기쁜 금식은 입꼬릴 길게 세워 웃었지만 눈은 울 것만 같았다. 그런 금식을 보던 수봉이 그의 어깨를 힘 있게 팡팡 치며 무성 영화시대 변사 톤으로.      


“자아~~ 기대하시라 개봉박뚜우~~”      


수봉이 녹슨 철대문을 지그시 열어젖혔다. 말끔한 마당 한가운데, 춘배, 연실, 순희, 주리가 나란히 서서 어머니와 금식을 환하게 웃으며 맞았다. “처음 뵙겠습니다 어머니.” 춘배가 살가운 미소로 인사하자 뒤이어 그녀들이 합창하듯 인사했다. 어머니는 고개를 숙여 수줍게 인사를 받고는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금식도 어머니와 같은 표정을 짓고는 마당 좌우 끝을 번갈아 바라보며 “이게 다 뭐야?” 수봉에게 낮게 속삭여 물었다. 철대문을 기준으로 왼편 그늘진 담벼락 쪽에는 쿠션이 두툼한 사무용 의자와 전신거울이, 오른편에는 담벼락을 따라 길게 조성된 화단 같은데, 얇은 흰 천으로 내용물을 덮어 꽁꽁 가려 놓았다. 수봉은 씨익 이빨이 보이게 웃기만 할 뿐 답하지 않았다. 도대체 뭔 일인지, 금식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입술을 삐죽였다.     


“구, 군데? 여, 여긴.... 어, 어뒤야?”     


어머니가 금식의 소매를 살짝 잡아당기며 물었다.      


“응.... 우리가 산 집이야....”     


우리 집이란 말에 어머니의 입꼬리가 산소마스크 안에서 쑤욱 올라갔다. 촉촉하게 젖어 오는 어머니의 눈을 마주 보며 금식도 따라 웃었다.     


“캬오~! 어머니!! 집 장만 축하드려요!!!”     


수봉이 경망스럽게 소리치며 ‘짝짝짝짝!’ 박수를 쳤다. 다른 이들도 박수치며 기쁨을 함께했다. 어머니의 눈에 고인 눈물이 뺨을 타고 또르르 흘렸다. 금식은 어머니의 눈가에 눈물을 엄지로 부드럽게 쓸어 닦으며 “그렇게 좋아?” 알면서 물었다.      


“자아, 그럼 다음 순서를 진행해 볼까요.”     


미소를 함박 머금은 춘배가 이벤트 사회자처럼 말하며 금식 곁에 다가섰다. 춘배는 이제 자기한테 맡기라는 듯 금식에게 찡긋 눈짓을 했다. 그러고는 휴대용 산소통과 어머니의 손을 넘겨받아 사무용 의자 쪽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우선... 이쁘게 미용부터 하실게요.”     


춘배가 전신 거울 앞 사무용 의자에 어머니를 조심스럽게 앉히자 기다렸다는 듯 가위, 빗 등 각종 미용 도구 홀더를 허리 찬 연실이 상냥하게 웃으며 다가왔다. 주리, 순희도 어머니를 둘러섰다. 그 모습을 금식은 철대문 앞에 그대로 선 채 물끄러미 바라봤다.

입원해 계시는 동안  세수만 겨우 한 어머니의 머리카락은 서로 엉키고, 눌리고, 뭉치고, 난리도 아니었다. 어머니의 목에 커트보를 두른 연실은 분무기로 어머니의 머리를 골고루 적시고는 본격적인 머리 미용에 돌입했다. ‘싹둑! 싹둑!’ 연실이 현란한 솜씨로 가위질을 하는 가운데, 무슨 대화를 하는지, 어머니가 얼굴을 쑥스럽게 붉히며 아이처럼 미소 짓자 다들 하하! 호호! 웃음꽃이 돋았다.

금식은 가슴이 뭉클했다. 그의 표정에서 눈물 나게 고맙다는 티를 팍팍 느낀 수봉이 흐뭇한 미소를 흘리며 스르륵 금식 곁에 붙었다. 그러고는 그의 어깨에 팔을 둘렀다.    


“이럴 필요까지는 없는데.... 다들 고생했겠다....”     


어머니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금식이 마음에 없는 소릴했다.     


“그냥 고맙다는 한마디면 돼.”       


수봉은 '홍! 홍! 홍!' 웃는 주리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대답했다.     


“.... 미안해서 그러지....”     


금식이 머쓱해하며 말했다.      


“이거 다, 춘배 형님이 계획한 거야. 형님, 숟가락 놓는 날까지 매상 팍팍 올려 드려.”     


금식은 사뭇 놀란 눈으로 수봉을 바라보다 춘배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어머니에게 다정하게 말을 붙이고 대화하는 모습이 자신보다 더 자식 같았다. 춘배의 속사정을 알리 없는 금식은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그가 이럴 수 있음에 똥차 관리와는 비교 불가하게 진심 존경스러웠다.

머리 미용이 끝나니, 머리를 감을 수 있게 세수 대야가 장착된 세로로 길쭉한 원목 구조물을 춘배가 어머니의 뒷목에 위치시켰다.     


“저거, 내가 만든 거다.”     


수봉이 세숫대야 구조물을 가리키며 우쭐하게 말했다.     


“흠.... 고맙다.”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금식이 말했다. 수봉은 이까짓것 갖고 뭘, 이란 표정으로 한마디 했다.      


“오만 원이다.”      


금식과 수봉이 이러는 사이, 어머니의 젖은 머리를 드라이로 말리며 연실은 스타일을 잡아갔다. 결혼식 올림머리를 끝낸 연실은 곧바로 메이크업에 착수했다. 20분 뒤, 미용을 풀서비스로 받은 어머니는 한마디로 딴 사람이 되었다. 전신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어머니도 놀랐는지 두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어머니~ 너어무~ 고우세요~”     


어머니의 미모를 모두가 입을 모아 칭송했다. 금식 곁에 있던 수봉이 ‘와우!’ 탄성을 지르며 어머니에게 달려가 “악! 너무 빛나서 눈을 못 뜨겠어요~!!” 라며 호들갑을 떨었다. 어머니는 손사래를 치면서도 즐겁고 기쁜 내색을 숨기지 않았다.        


“엄마, 진짜 이쁘다....”     


어느새 다가선 금식이 그윽한 눈으로 말했다.     


“지, 진짜?”

“응.... 진짜 이뻐...”     


어머니는 천진하게 웃으며 몸을 꼬았다. 누구의 칭찬보다 아들의 칭찬이 더 기쁜 어머니였다.     


“자아~~! 이게 끝이 아닙다요~!”     


수봉의 말이 신호인 듯 춘배와 주리가 잰걸음으로 오른편 담벼락을 향했다. 둘은 화단의 양 끝에 서서 덮어 놓은 흰 천의 끝단을 잡았다. 수봉이 휴대용 산소통을 들고 순희가 어머니를 부축해 화단 앞으로 천천히 걸음 옮겼다.     


“어머니를 위한 메인 이벤뚜우~!!”     


수봉의 멘트와 함께 춘배와 주리가 천을 단번에 걷어 냈다. 형형색색의 꽃들이 조화롭게 각자의 아름다움을 뽐내며 어머니의 눈에 가득 담겼다. 어머니는 벅찬 표정으로 함박웃음을 지었다. 어머니를 부축한 순희가 화단을 따라 한발 한발 내딛으면 주리가 꽃에 대해 설명을 곁들였다. 이때, 남보라색 꽃송이를 가리키며 수봉이 아는 척을 했다.      


“어머니 이 꽃 이름이 뭔지 아세요? 글쎄! 큰 개불알 꽃이래요! 무슨 꽃 이름이 개에~부랄...”

“수봉 씨가 말한 건 열매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 고요. 보통은 봄 까치 꽃이라고 불러요.”     


주리가 수봉의 말을 냅다 자르며 설명했다. 수봉은 벙찐 표정을 짓고는 주리를 째렸다. 어머니는 참 예쁜 이름이라고 감동하며 꽃송이들을 어루만졌다. 그렇게 꽃 하나하나를 눈에 새기고 손끝으로 느끼며 꽃들 사이에서 행복해했다. 천을 말아 들고 집안으로 향한 춘배가 콤팩트 카메라를 챙겨 나왔다. ‘찰칵! 찰칵!’ 셔터가 쉬지 않고 울리며 어머니를 담았다. 금식은 마당 한가운데 서서 행복해 하는 어머니를 바라보며 크게 미소 지었다. 그리고 춘배, 수봉, 연실, 순희, 주리를 찬찬히 훑으며 눈시울을 붉혔다.      


“어머니! 잠깐, 저 좀 보시겠어요?”     


춘배가 카메라의 뷰파인더를 눈에 밀착시키며 말했다.       


“어머니, 화단 안으로 한 발짝만 더 들어가 보시겠어요?”     


춘배의 지시에 어머니를 부축해 화단 안으로 한 발짝 들어간 순희는 자세를 잡게 도와 드리곤 주리와 눈치껏 자릴 피했다. 꽃들 속에서 꽃처럼 웃고 있는 어머니를 중심으로 앵글을 잡던 춘배가 눈에서 카메라를 때며 정색했다.     


“수봉아, 자리 좀 비켜 줄래.”     


휴대용 산소통을 들고 어머니 옆에 멀뚱히 서 있던 수봉은 ‘아차!’ 하며 산소통을 조심히 내려놓곤 잽싸게 자릴 피했다.       


“햐아~~ 어머니, 꽃보다 더 고우세요~”     


춘배의 말에 어머니는 부끄러워하며 또다시 몸을 꼬았다. 꽃들 사이에서 어여삐 웃고 있는 어머니의 얼굴은 화창한 날씨보다 더 눈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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