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달파니 Oct 09. 2023

나의 첫사랑 소환귀 (24)

24화. 영화 같은 추억






  

행복한 시간은 왜 그리 빠른지, 꽃놀이 후 춘배와 순희가 준비한 조촐한 다과를 하고 나니 어느새 해는 하늘을 붉게 물들이며 저녁을 알렸다.      


“모두들 너무 감사해요.”     


철대문 앞에서 어머니를 부축하고 선 금식이 춘배, 연실, 순희, 주리를 흝으며 고개를 깊이 숙였다. 수봉에게는 말 대신 어깨를 토닥였다. 어머니도 고개를 숙여 떠듬떠듬 고맙다는 말을 하고는 더없이 아쉬워하며 울 듯한 표정을 지었다. 연실, 순희, 주리는 어머니 덕분에 너무나 즐거웠다, 라며 되려 감사하다고 입을 모으곤 소리 내어 웃었다. 이 모습을 잠잠히 바라보던 춘배는,       


“어머니, 이제 새집에서 편히 지내세요.”     


어머니의 손을 포개어 잡으며 말했다. 불의의 사고로 돌아가신 자신의 어머니가 생각나서일까, 춘배의 눈이 촉촉했다. 그의 눈을 마주한 어머니의 눈에도 눈물이 고였다. 분위기가 금세 숙연해졌다.      


“어머니 쉬시게 이제 그만 갑시다요~!!”     


이런 분위기를 못 참는 수봉이 활기차게 말했다. 어머니의 쾌유를 합창하듯 빌며 춘배와 그녀들이 줄을 이어 대문을 나섰다. 그들을 배웅하는 어머니의 표정에 애틋함이 깊었다. 수봉은 남아 금식과 함께 어머니를 부축해 집 현관으로 향했다.     


“자아~ 집안은 어떤 모습일지! 어머니 무척 기대되시죠?!”     


닫힌 현관 앞에서 수봉이 문손잡이를 잡고서는 바람을 잡았다. 수봉의 말투는 마치, 헌 집을 새집으로 개조해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았던 예능프로 러브하우스를 연상시켰다.     


“어머니가 까무러 치실까 겁나지만! 새집을 공개합니다~~”      


수봉이 현관문을 활짝 열어젖히자 예상대로 어머니는 어머나~하며 눈을 땡그랗게 떴다. 금식도 놀라기는 매 한 가지였다. 현관 양옆의 신발장과 수납장은 하이그로시 광택이 나는 흰색 문으로 싹 교체 되어 있었고 바닥에는 펄이 섞인 흰색 모자이크 타일이 빛깔을 뽐냈다.     


“햐아~ 이걸 언제 다 한 거야?”     


감격한 금식은 바닥 타일을 유심히 바라 보고는 수납장과 신발장 문을 어루만졌다. 어머니도 눈을 반짝이며 금식을 따라 했다. 수봉은 놀라기엔 아직 이르다는 듯 한쪽 입꼬릴을 뾰족하게 올리곤 현관과 연결된 좁은 통로를 지나 거실로 나아갔다. 수봉이 거실등을 켜자 뒤따라 들어선 금식과 어머니의 입이 한없이 벌어지며 ‘와아아아~~’ 탄성을 질렀다. 흰색에 가까운 밝은 회색의 깔끔한 실크 벽지가 거실 벽 전체에 도배되어 있었고 기존의 헤링본 원목 바닥은 지저분한 얼룩 등을 말끔히 제거하고 왁스코팅까지, 새것처럼 시공이 되어 있었다. 여기에 더해 전 집에 있던 옷가지며 생활용품, 가구들도 전부 옮겨와 있었다. 표정관리가 안 되게 고마운 금식은 당장이라도 울 것처럼 수봉을 바라봤다. 어머니는 춘배 앞에서 흘리지 못한 눈물을 기어이 떨구었다.   


“아이고~! 우리 어머니, 좋아 우시는 거 보니까, 계획이 성공했네! 하하하하!”     


수봉은 어머니를 꼬옥 안으며 토닥였다. 어머니는 수봉 품에서 어깨를 들썩였다. 그러고 있기를 잠시, 수봉이 어머니를 안았던 팔을 풀자 꾹 다문 입술을 파르르 떨던 금식이 다가섰다. 수봉의 뜨거운 우정 앞에 무슨 말이 필요하랴. 이글거리는 눈으로 수봉을 바라보던 금식은 양팔을 활짝 벌려 와락!         


“우쒸! 남자끼리 껴안고 그러면 못써!”     


덮치듯 안으려는 금식을 가까스로 피한 수봉은 두 주먹을 앞세우며 말했다. 그리곤 계좌 찍어 줄 테니, 입금하라고 엄중하게 덧붙였다. 금식은 그런 소린 개나 줘버리라고 말하곤 수봉을 끝내 붙잡아 꽈악 껴안았다. ‘꾸에에엑~!’ 수봉은 돼지 멱따는 소릴 내며 몸부림쳤다.     


미처 정리 못 한 짐은 이층에 있다고 말한 수봉은 대미를 장식할 마지막 이벤트를 금식에게 귀띔해 주고 현관을 나섰다. 부엌, 4인용 식탁에 조촐한 저녁상이 차려져 있고 금식은 된장찌개를 전자레인지에 데워 식탁 중앙에 올려놓았다. 어머니는 저녁상까지 봐놓은 수봉에게 미안해서 어쩌냐며 한숨을 내 쉬었다.      


“엄마, 그냥 맛있게 드시면 돼. 그리고 저녁상은 순희 씨가 차려 놓은 거래.”     


순희가 했다는 말에 어머니는 유난히 반색하며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된장찌개를 숟가락에 담고는 호호 불어 입에 넣었다.     


“마, 마시따....”     


어머니는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많이 드셔....”     


금식은 식탁 가운데 있던 된장찌개를 어머니 앞으로 드밀었다. 어머니는 금식의 눈치를 살피듯 바라보다, 순희란 아가씨는 사귀는 사람은 있냐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글쎄?”     


금식은 시큰둥하게 답했다. 어머니는 낮 동안 내내 자신 곁에서 살갑게 수발을 든 순희를 입에 침이 마르게 칭찬하며 싹싹하고 음식 솜씨까지 좋은 그녀를 어떻게 생각하냐고 재차 물었다.      


“에휴.... 엄마, 내 나이가 내년이면 마흔이야. 순희 씨는 딱 봐도 이십 대 같은데, 욕심이 너무 과한 거 아니야.”     


금식은 어이가 없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어머니는 서글픈 표정을 짓고는 엄마가 미안해,라고 힘없이 말했다.      


“응? 엄마가 왜 미안해?”     


금식의 물음에 잠시 뜸을 들이던 어머니는 가난한 엄마 만나서 그 나이 먹도록 일만 하느라 장가도 못 간 거라며 또다시 눈물을 글썽였다. 오늘 하루 눈물이 마를 시간이 없는 어머니였다.      


“아이고~ 왜 또 울려고 하실까.... 엄마, 나 장가 못 간 게 아니라 안 간 거야. 엄마처럼 참한 여자 있으면 당장이라도 갈 수 있어!”     


금식의 너스레에 어머니는 눈물을 훔치며 축 처진 입꼬리를 세웠다.      


“엄마, 울다가 웃으면 어떻게 되는지 알지? 슬슬 면도기 준비해야겠다.”     


장난기 어린 금식의 놀림에 어머니는 아유~ 징그러, 몸서리치고는 양 볼을 붉혔다.      


“엄마 아들 허우대 멀쩡하겠다, 이렇게 집도 있겠다, 장가 그까짓 거 일도 아니야! 엄마, 내가 약속할게. 올해 무조건 장가간다!!”     


금식이 주먹을 불끈 쥐고 호언장담을 하자 어머니는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금식은 새끼손가락을 걸고 어머니의 엄지에 자신의 엄지로 도장을 찍었다. 어머니는 한시름 놓았다는 듯 환하게 웃었다. 그런 어머니를 바라보며 금식도 함께 웃었지만 눈에는 슬픔이 가득했다.   


“아참, 선물 있는데....”     


금식은 몸을 일으켜 현관 통로 끝에 위치한 널찍한 방으로 쏜살같이 내달렸다. 후다닥 부엌으로 돌아온 그의 손에는 직사각형 상자가 들려있었다. 바닥에 상자를 내려놓고 내용을 꺼내 식탁 위에 사뿐히 올렸다. 어머니가 애지중지하는 휴대용 레코드플레이어와 앤디 월림스 lp판이었다. 어머니의 눈에서 빛이 났다. 좋아 어쩔 줄 모르겠다는 듯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20년도 더 된 레코드 플레이어의 외관은 지금 막 출시된 제품처럼 광이 났다. lp판도 마찬가지였다. 역시 춘배의 복원 솜씨는 똥차 관리만큼이나 일품이구나, 금식은 생각했다.          


“엄마.... 이거 아버지 유품이었잖아. 뭔가, 잊지 못할 추억이 있는 것 같은데, 오늘따라 무지 궁금하네....”     


금식은 정말 궁금했다. 곧 자신 곁을 떠날 어머니의 추억이나마 간직하고 싶기에. 레코드 플레이어와 lp판을 찬찬히 훑던 어머니는 짧은 한숨을 내쉬곤 입을 뗐다. 금식은 마지막을 예감하며 이야기에 귀를 쫑긋 세웠다.

어머니는 처녀 적에 동네 삼류 극장 매표소에서 일을 했는데 그때 아버지는 그 극장에서 간판을 그리는 보조로 일하고 있었다고. 첫눈에 반한 건 자신이라고 말하곤 어머니는 얼굴을 붉혔다. 큰 키에 이목구가 뚜렷해 마치 영화배우 같았던 아버지는 극장 여직원들 사이에서 인기가 좋았지만 무뚝뚝한 성격 탓에 가까이하기 어려운 남자였다고, 이 말 끝에 어머니는 피식 웃었다. 금식은 냉담한 표정으로 어머니를 바라봤다.


"엄마, 내 얼굴을 보고 그런 말이 나와?"


각설탕 같은 안면 윤곽에 축 처진 밋밋한 눈, 뭉툭한 코를 가진 자신의 얼굴을 가리키며 금식이 말했다.

어머니는 아무렴! 우리 아들도 아빠를 닮아 얼마나 잘 생겼는데! 라며 화들짝 답했다. 금식은 사랑하면 눈이 먼다더니,라고 중얼거리며 혀를 찼다. 여하튼 어머니의 이야기는 계속됐다.

아버지와 거리를 좁히지 못하고 바라만 보던 어느 날, 일하던 극장에서 영화 ‘모정’을 개봉하게 되어 평소 애정 영화 광답게 쉬는 날, 마지막 회를 보러 가게 되었다고. 마지막 회라 그런가, 아니면 애정영화라 그런가, 상영관 안은 텅 비어있었다고. 객석 정 중앙에 자릴 잡고 앉아 사 갖고 온 오징어 다리를 씹고 있자니 불이 꺼지며 영사기가 돌기 시작했는데, 그때 어머니가 앉아 있는 좌석 앞, 열에 웬 남자가 더듬거리며 와서 앉더라고. 남자 혼자 웬 애정 영화람, 생각하며 신기하게 그의 뒤통수를 바라봤다고, 말한 어머니는 눈살을 찡그렸다.

영화의 마지막, 종군 기자였던 남자 주인공의 전사 통보를 받고 그와 추억을 나누었던 언덕에서 그를 떠올리며 흐느끼는 여자 주인공의 애달픈 모습을 끝으로 상영관 안의 불이 켜졌는데 어머니 앞 열에 앉아 있던 남자가 여자 주인공 보다 더 서럽게 울고 있더라고. 물론, 자신도 눈물을 흘렸지만 남자가 애정영화를 보고 오열하고 있으니, 웃음 밖에 안 나왔다고, 말하며 못난 놈이란 듯 어머니는 고개를 저었다.

옷소매로 눈물을 닦는 모습이 하도 지질해 보여 어머니는 손에 쥐고 있던 손수건을 건네기 위해 그 남자의 어깨를 톡톡 쳤는데, 글쎄, 고개를 돌린 남자가 아버지였다고. 눈물 콧물 범벅이 된 아버지의 모습이 지금도 선한 듯 어머니는 소리 내어 웃었다.

아버지는 자신의 이런 모습을 절대 발설 하지 말 것을 애걸했는데 의도치 않게 약점을 잡게 된 어머니는 이를 빌미로 앞으로 영화를 함께 보자, 협박을 가장한 고백을 하게 됐다고.  말한 어머니는 그러고 보면 엄마도 참 앙큼해, 라며 금식을 향해 장난스런 표정을 지었다.

어머니는 표정을 유지한 채 말을 이었다. 일하던 극장에서 애정영화를 할 때면 다른 직원들의 눈을 피해 몰래 만나 함께 마지막 회 영화를 보면서 연애를 시작하게 됐다고. 둘 다 형편이 어려운 탓에 극장 밖에서의 연애는 주로 아버지의 사글셋방에서 했는데, 결국, 식도 올리지 않은 채 그곳이 신혼방이 되었다는 말과 함께 어머니는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어머니는 레코드플레이어와 음반을 손끝으로 더듬으며 말을 이었다. 혼인신고 하는 날, 이 순간을 있게 한 그날을 기념하기 위해 레코드 플레이와 영화 '모정'의 음반을 구입한 거라고. 그리고 아버지가 돈을 벌기 이해 사우디로 떠날 때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기 위해 가져간 거라며 나름 영화 같은 추억담을 마쳤다. 어머니의 표정에 아버지의 그리움이 짙게 드리웠다.


"엄마, 아버지가 첫사랑이었어?"


잠잠히 듣고 있던 금식은 아늑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그리고는 지금이 타이밍 이란 듯 레코트 플레이에 lp판을 장착하고 바늘을 올렸다. ‘Love is a Many Splendored Thing’ 앤디 윌리엄스 매력적인 목소리가 힘차게 흘러나왔다. 어머니는 수줍은 웃음으로 답을 대신하고는 지그시 눈을 감았다. 감미로운 목소리와 아름다운 선율에 몸을 맡긴 듯 어머니의 상체가 살랑살랑 흔들렸다. 감은 두 눈에 아버지의 웃는 얼굴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너무나 보고 싶은 얼굴.     


“미숙아....”     


갑작스런 아버지의 부름에 어머니는 놀라 눈을 떴다. 맞은편 금식이 앉아 있던 자리에 아버지가 있었다. 돌아가시기 전 모습 그대로. 혼란스런 어머니는 눈만 껌뻑였다. 그런 어머니를 안쓰럽게 바라보던 아버지는 어머니의 손등에 자신의 손을 포개었다.  


“그동안.... 고생 많았지....?”     


아버지의 따듯한 다독임에 어머니는 걷잡을 수 없는 눈물을 주르륵 흘렀다.  


"이제 오면 어떡해? 난, 쭈그렁 할머니가 다 됐는데...."


어머니는 젊은 모습의 아버지 앞에서 늙어 버린 자신이 부끄러운지, 투정 부리듯 말하곤 고개를 숙였다. 식탁 위로 두두둑, 눈물이 떨어져 식탁보에 둥근 얼룩을 만들었다.  


"흠…. 여전히 이쁜 걸…."


아버지의 눈에 비친 어머니의 모습도 처녀 적 모습 그대로였다. 아버지는 손을 뻗어 어머니의 뺨을 어루만졌다. 그러고는 어머니의 고개를 살며시 세워 흐르는 눈물을 훔쳤다. 아버지의 손을 양손으로 부여잡은 어머니는 뺨을 기대었다. 손의 촉감에서 아버지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멈출 줄 모르는 어머니의 눈물이 아버지의 손바닥 안으로 흘러들었다. 금식은 자신의 손에 뺨을 기댄 채 감은 두 눈으로 한 없이 눈물 흘리는 어머니를 보며 숨죽여 울었다. 얼마뒤, 어머니는 입버릇 처럼 하던, "미안해.... 아들." 이란 말만 남긴 채 아버지 곁으로 떠났다.  







이전 24화 나의 첫사랑 소환귀 (23)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