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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파니 Sep 11. 2023

나의 첫사랑 소환귀 (20)

20화. 희생







새하얗게 외관을 도색한 2층 건물 1층, 간판에 ‘꽃을 든 여자’라고 적힌 꽃가게 안으로 수봉이 낑낑대며 들어섰다. 성인 허리 높이 만한 편백나무 화분대를 손수레 싣고.      


“자아~! 이놈이 마지막입니다.”     


가게 안은 수봉이 제작한 원목 집기들로 가득했다.     


“고생하쎄요옹~~”     


콜라병 몸매가 드러나는 롱 원피스를 입은 주리가 살살 녹는 콧소리로 감사를 표했다. 수봉은 그녀의 전신을 그윽하게 흝으며 므흣한 미소를 짓다,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아무래도... 꽃이 안 팔릴 것 같은데요.”

“어머! 왜요용? 여기 목이 좋다고 했는데엥.”      


이마에 손을 짚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던 수봉은 주리를 홱! 노려보며 답했다.     


“주리 씨가 꽃보다 아름다우니까요!”     


수봉은 느끼한 눈빛을 강렬히 번뜩이며 실처럼 가는 눈을 씰룩였다. ‘어디서 개수작이야!’ 란 말로 응징하는 게 당연하지만 주리는,     


“아잉~ 머에요옹~~”     


손끝으로 수봉의 어깨를 가볍게 터치하며 아양을 발산했다. 그녀의 아양에 수봉은 매우 흡족해하며 ‘우움! 하하하하!’ 호탕하게 웃었다. 수봉이 정신 못 차리고 웃는 사이 그녀는 냉장고에서 아이스아메카노가 담긴 맥주잔을 꺼내 들었다.       


"시원하게 한잔하쎄요옹~~”     


주리가 맥주잔을 드밀자 웃음을 뚝! 그친 수봉은 아직 아니라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뭘 하려는 건지, 그녀에게 한 발 물러나 있으라고 손짓을 하고는 엄숙한 표정으로 기마 자세를 취했다. 순간,‘읏쫘아아!!’ 걸쭉한 기합과 함께 손수레에 실린 화분대를 번쩍 들고는 입구 옆 벽 앞에 ‘허잇쫘아아!!’ 내려놓았다.

‘어머머머머머머!’ 눈이 동그레진 주리가 감탄을 길게 뽑아냈다.      


“어쩜! 정말 힘이 장사쎄요옹~~”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그제야 맥주잔을 받아 든 수봉은 이번엔 상남자의 야성을 보여 주겠다는 듯 냉커피를 입속에 왈칵! 때려 넣었다. 검은 물줄기가 턱을 타고 질질, 추접스럽게 흘렀다. ‘으드득!’ 얼음까지 모두 씹어 삼킨 수봉은 ‘크으으으~!!’ 시원하게 포효했다. 그리고는 또다시 ‘읏쫘아아!!’ 하며 허리를 튕기는 주접을 떨었다.       


“화분대, 이까이꺼! 하루에 백개도 들 수....”     


왈칵! 들이켠 냉커피가 수봉의 골을 흔들었다. 관자놀이를 손바닥으로 누르며 수봉이 휘청이자 주리가 그의 어깨를 붙잡으며 몸을 밀착시켰다.     


“괜찮으쎄요옹?!”     


‘꿀꺽!’ 수봉은 느꼈다. 자신의 팔에 닿아 눌리는 탱글탱글하면서도 물컹한 무언가를. 수봉의 실눈이 격하게 벌어지며 단춧구멍 만해 졌다. 콧구멍 또한 팽팽하게 확장해 당장이라도 쌍코피가 터질 것만 같았다. 서른아홉 평생 처음이었다. 엄마 빼고 다른 여자의 것은. 괜찮냐고 거듭 묻는 주리에게 수봉은 읏쫘아아! 가 무색한 여리여리한 표정으로 답했다.     


“그럴 리가요.... 괜찮아질 때까지 잠시만 이대로....”     


수봉은 행복했다. 이 순간이 영원하길 바라며 주리에게 한껏 기댔다. ‘빵! 빵!’ 각종 화분과 모종을 잔뜩 실은 트럭이 가게 앞에 서며 적당히 하라는 듯 경적을 울렸다. 화들짝 놀란 주리는 수봉을 받치고 있던 몸을 와락! 빼내 트럭으로 향했다. 오롯이 기대고 있던 수봉은 매가리 없이 휘청이다 화분대를 붙잡고 철퍼덕! 주저앉았다. 행복한 순간은 왜 이리도 짧은 건지. 화분대에 기댄 채 비련의 여주인공 코스프레를 하고 있는 수봉의 엉덩이에서 ‘웅~~! 웅~~!’ 살 떨리는 진동이 전해졌다.      


“여보세요?”

[어, 나야.]     


금식이었다.     


“삼일 동안 어딜 다녔길래 코빼기도 안 보여. 전화도 안 받고 말이야. 좋은 데면 같이 좀 갑시다.”

[병원이야.]

“벼, 병원?”     


무겁게 내려앉은 금식의 목소리에서 수봉은 심각한 상황임을 직감했다.     


***     


백세 병원, 4인실 병실로 검정 비닐봉지를 든 수봉이 조심스럽게 들어섰다. 살펴보니 창가 쪽 병상 커튼 사이로 접이식 보호자 침대에 앉아 있는 금식이 보였다.      


“금식아...”     


벌어진 커튼 틈새로 수봉이 다가서며 나직이 불렀다.     


“어, 왔어....”     


느그적 일어나 수봉을 맞이하는 금식의 얼굴은 눈에 띄게 수척했다. 수봉은 안쓰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까닥이고는 금식에게 검정 비닐봉지를 건넸다. 봉지를 받아 든 금식은 어머니가 보일 만큼만 커튼을 걷고는 다시 접이식 침대에 앉았다. 침대 머리맡에 상체를 기대어 앉은 어머니는 파리한 모습으로 산소를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었다. 울컥, 수봉의 마음이 아려왔다. 티 내지 않으려 장난기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과장스런 어투로 말했다.     

“아이고~ 어머니, 아프시다면서 안 그래도 이쁜 얼굴이 더 고와지셨네요~~”      


수봉의 말에 발그레해진 어머니는 소녀처럼 수줍게 웃었다. 그 사이 금식은 묵직한 비닐봉지를 벌려 내용물을 확인했다. 그리곤 떨떠름한 표정으로 읊조렸다.      


“황도....”     


언제 적 병문안 선물인가? 황도 통조림. 요즘 시대에 누가 이런 걸 먹는다고, 에휴.... 역시 수봉답다. 금식은 혀를 차며 황도 통조림을 꺼내놓았다. 그런데 웬걸, 어머니는 황도 통조림을 보고는 ‘와아~!’ 아이처럼 해맑게 좋아했다. 그러고 보니 어머니 시절엔 아파야만 먹을 수 있는 귀한 음식이었으리라. 수봉이 이런 감성을 알고 산 건 아니겠지만 어쨌든 어머니가 좋아하니. 떨떠름한 표정을 지운 금식은 수봉을 올려다보며 멋쩍게 말했다.     

“빈손으로 와도 되는데.... 고맙다. 잘 먹을게.”            


‘흐흐흐...’ 거 봐란 듯 웃음을 흘리던 수봉은 여봐란 듯 미소 지었다.      


“우리 어머니, 황도 드시고 더 이뻐져서 미스코리아 나가는 건 아닌지 몰라~~”      


수봉의 농담에 어머니는 힘없이 손사래 치면서도 좋아라 하는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군데? 이 아뎌띠 느구야?”     


어머니가 금식을 보며 물었다. 놀란 수봉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발음은 그렇다 쳐도 고등학생 때부터 보아온 어머니인데.     


“응... 그냥... 동네 날라리 아저씨야.”     


금식의 말에 수봉은 더욱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런 수봉의 뒤로 남자 간호사와 조무사가 다가왔다. 뇌 mri 촬영을 위해 어머니를 모시러 왔다고 말한 두 사람은 병상 바퀴의 고정장치를 풀었다.      


“엄마. 무섭다고 또 울지 말고 촬영 잘하고 와.”      


금식의 당부에 어머니는 씩씩하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간호사의 안내에 따라 편히 누었다. 간호사와 조무사가 병상의 앞 뒤를 잡고 조심스럽게 각도를 맞추면서 어머니와 함께 병실을 나섰다.


병원 앞 너른 마당. 넝쿨로 뒤덮인 원두막 정자 벤치에 웅크려 앉아 있는 금식 곁으로 캔 커피를 양손에 든 수봉이 다가와 앉았다. ‘딸칵!’ 뚜껑을 따낸 캔 커피를 금식에게 건넸다.      


“수술은 잘 되셨다면서.... 왜?”     


마시지는 않고 손바닥 안에서 캔을 빙글빙글 돌리기만 하던 금식은 입안을 축일만큼만 커피를 삼키고는 혀로 입술을 적셨다.      


“혈관성 치매래. 뇌출혈까지 있어서 증상이 심한 것 같데....”         


어떻게 위로를 해야 할지, 수봉은 말이 입안에서 맴돌았다. 금식은 속이 타는지 캔 커피를 90도로 세워 목구멍에 모두 털어 넣고는 캔을 구겼다.     


“그나마 제 정신일 때도 있어서 조금은 나아....”         


이번엔 수봉이 캔 커피를 단번에 들이켜고는 캔을 구겼다.     


“그래도 살아계시니 얼마나 다행이야....”     


수봉의 위로에 금식은 입꼬리만 살짝 세워 미소 지을 뿐 대꾸하지 않았다. 침묵이 둘 사이를 채웠다. 잔바람이 원두막 정자를 뒤덮은 넝쿨 잎사귀들을 살랑살랑 흔들었다. 수봉은 고개를 조금 돌려 금식의 표정을 살폈다. 목적 없이 떠도는 시선이 공허했다. 담담히 짓고 있는 미소는 쓸쓸했다. 금식은 수봉의 시선을 의식하면서 정면을 응시한 채 입을 열었다.          


“울 엄마.... 죽는데....”     


 잔바람이 거세지며 넝쿨 잎사귀들을 요란하게 흔들었다.      



***     


“폐섬유증?”     


바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주방 쪽에서 수봉을 내려다보던 춘배가 놀라 물었다. 수봉은 소주잔에 소주를 가득 채워 단숨에 꺾었다. 소주의 쓴 맛이 유난히 진했다.     


“네.... 산소마스크를 왜 하고 계시나 싶었는데.....”

“가망이 전혀 없으신 거야?”

“.... 늦어도 너무 늦었데요....”     


춘배는 천장을 올려다보며 다시금 한숨을 길게 내뱉었고 수봉도 다시금 잔에 소주를 가득 채워 꺾었다. 두 사람의 어두운 표정만큼이나 가게 안의 공기도 무겁게 흘렀다.      


“금식이가 죄송하다고 전해달래요.”

“뭐가?”

“형님, 여행지 리스트 뽑느라 고생하셨을 텐데, 아무래도 어머니랑 여행은 못 갈 것 같다고.”     


춘배는 이해한다는 표정으로 고개만 끄덕였다.     


“그리고 이거.”     


수봉은 바테이블 밑에 두었던 자신의 백팩에서 휴대용 레코드 플레이어와 앤디 월리암스 LP판을 꺼내 춘배에게 내 보였다.     


“햐아~ 이게 언제 꺼야?”     


춘배는 경이로운 표정으로 레코드플레이와 LP판을 요리조리 살폈다.     


“금식이 어머님 건데요. 소리가 잘 안 난다고... 혹시, 손 볼 수 있으세요?”

“그럼, 되고말고.

“다행이네요... 안 그래도 형님 가게에 lp판이 가득해서 수리는 일도 아닐 거라 생각했는데, 금식이가 좋아하겠네요.”       


금식을 위해 무언가 해 줄 수 있다는 것에 둘의 표정이 조금은 밝아졌다. 춘배는 레코드 플레이와 LP판을 잠잠히 보며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그러고 있기를 잠시,     


“수봉아. 금식이 새로 산 집에 마당 있다고 했지?”

“네....”

“그럼... 이렇게 해보는 건 어떨까?”     


전구에 불이 들어온 듯 춘배의 두눈이 쨍하게 빛났다.  

 


***     


“엄마, 여사님 말씀 잘 듣고 있어. 내일 아침에 일찍 올게.”     


어머니는 입꼬릴 추욱 늘어 뜨리고는 고개를 힘없이 끄덕였다. 금식은 60대 초반, 후덕한 체형의 간병인에게 자신의 전화번호를 알려준 후 잘 부탁드린다는 말을 하곤 병실을 나섰다.      


‘띠리릭’ 디지털 도어록의 잠금쇠가 열리며 금식이 집안으로 들어섰다. 며칠째 병원을 오가며 경황없이 지낸 탓에 집안은 아무렇게 널려 있는 옷가지와 물건들로 어수선했다. 부엌 싱크대 설거지통에는 음식 찌꺼기가 말라붙어 얼룩진 그릇들이 뒤엉켜 있었다. 휘, 둘러보던 금식은 집안 풍경이 새삼 낯설게 느껴졌다. 그리고 깨달았다. 집안은 언제나 단정하고 정갈했음을. 거실, 방, 부엌, 세탁기를 바삐 오가며 청소하고 설거지하고 빨래하는 어머니의 쉼 없는 희생이 눈에 보이는 듯했다. 입고, 먹고, 자고, 당연하게 누렸던 집안의 모든 것들이 어머니의 희생이었다.

금식은 팔소매를 걷어붙였다. 곳곳에 널브러진 옷들을 주워 세탁기에 넣고 작동시킨 후 청소기를 잡았다. 곳곳의 먼지를 빨아들이며 물건들을 정리했다. 그렇게 거실을 완료하고 안방에 들어가 청소기를 밀어대다, 낡은 문갑 위 샘플 투성인 화장품들과 작고 동그란 탁상용 거울에 시선이 멈췄다. 늘 보았다. 낡아 빠진 문갑 앞에 앉아 화장을 하던 어머니의 구부정한 등을. 안쓰러웠지만 미뤘다. 시간이 충분한 줄 알았으니까. 금식은 숨을 깊게 들이켜고는 창밖을 바라보며 짙게 뱉었다. 어느새 하늘이 붉게 물들고 있었다. 금식의 눈동자에 노을이 영글었다. '아름다웠구나....' 항상 곁에 있어 몰랐던 소중함들이 가슴을 물들었다.    


공방에 들어선 금식은 사무실로 들어가 곧장 컴퓨터를 켰다. 3d 프로그램을 실행하고는 쫓기듯 빠른 손놀림으로 화장대 도면을 그리기 시작했다. 밤이 깊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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