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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파니 Sep 04. 2023

나의 첫사랑 소환귀 (19)

19화. 어머니는 그렇게 아이가 되었다.





    

아버지의 유골함을 받쳐 든 금식과 어머니가 집으로 돌아오니 반지하 현관문 앞에 피부가 검게 그을린 30대 초반 남자 둘이 천으로 만든 직사각형 검은색 여행용 가방을 덩그러니 세워놓고 서성이고 있었다.

여행 가방에 어머니의 시선이 무겁게 꽂혔다. 검정 상복 차림으로 걸음을 멈추고 선 어머니와 금식을 눈치껏 알아본 남자들은 머뭇머뭇 침통한 표정으로 다가와 아버지의 동료라고 자신들을 소개하며 입국이 늦어져 장례식에 참석 못 해 심히 애석하다는 말을 건넸다.

그리곤 회사가 과도한 공사 기간 단축을 위해 야간작업까지 무리하게 강행하다 벌어진 사고라며 묻지도 않은 아버지의 사망 경위를 두 남자는 울분을 섞어 일러바치듯 토로했다. 책임회피는 물론 사망 보상금마저 추락 원인을 조사한다는 핑계로 차일피일 미루는 회사의 비인간적인 행태에 죽은 아버지를 대신해 개만도 못한 놈들이란 욕까지 덧붙였다. 남자들의 말에 어머니는 덤덤한 표정으로 경청만 할 뿐 어떠한 대꾸도 하지 않았다.

침묵을 고수하는 어머니에게 조의금을 건넨 남자들은 공허한 위로와 여행 가방만을 남긴 채 쓸쓸히 발길을 돌렸다.

여행 가방을 망연히 바라보던 어머니는 천천히 가방 손잡이를 잡아끌며 버겁게 방 안으로 들였다. 그 뒤를 유골함을 든 금식이 조용히 뒤따랐다. 방 한가운데 자릴 잡고 가방을 눕힌 어머니는 애잔한 눈빛으로 찬찬히 가방을 더듬었다. 이내 지퍼 고리를 잡고 가방의 배를 과감히 갈랐다. 곁에서 지켜보던 금식의 눈빛이 호기심으로 번쩍였다. 가방 속 내용물 중 가장 먼저 모습을 드러낸 건 투명 플라스틱 포장이 되어 있는 각종 미니카 세트였다. 덤프트럭, 굴삭기, 앰뷸런스, 스포츠카 등 형형색색의 다양한 미니카가 금식의 입꼬릴 한껏 치켜세웠다. 얼굴도 잘 기억나지 않는 아버지를 그리워하며 괴로워하기엔 금식은 너무 어렸다. 어머니는 미니카 세트를 모두 꺼내 금식에게 건네곤 다시 가방 속 내용물에 시선을 돌렸다. 다음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 건 LP앨범과 휴대용 레코드플레이어였다.

영화 모정의 주제곡 ‘lover is A Many Spiendored Thing’을 타이틀로 한 앨범재킷에는 하얀 치아를 은근히 드러낸 앤디월리엄스가 매력적인 웃음을 짓고 있었다. 아버지를 보기라도 한 듯 어머니의 굳은 표정에 반가운 미소가 번졌다.

미소를 머금은 채 앨범재킷과 휴대용 레코드 플레이어를 걷어내자 대충 개어진 아버지의 작업복이 모습을 드러냈다. 미소 띤 어머니의 표정이 다시금 돌처럼 굳어졌다. 어머니는 작업복 상의를 꺼내 방바닥에 널 듯 펼쳤다. 해지고 터진 부위를 서툰 바느질로 덧대고 기운 자국이 가득했다. 떨리는 손끝으로 작업복의 엉성한 박음질들을 세심히 더듬던 어머니는 순간, 아랫입술을 꽈악 말아 물곤 고개를 깊게 떨궜다. 어머니의 갑작스러운 행동이 미니카에 함몰됐던 금식의 시선을 잡아챘다.

숨을 삼키며 그러고 있기를 잠시, 고개를 세운 어머니는 지갑에서 천 원 한 장을 꺼내 금식에게 건넸다. 얼떨떨한 표정으로 돈을 받아 든 금식에게 어머니는 동네 오락실에 가서 놀다 오라고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어려도 금식은 알았다. 어머니가 혼자 있고 싶어 한다는 걸. 천 원을 주머니에 구겨 넣은 금식은 말없이 일어나 신발을 신고 현관문을 열었다. 문밖으로 나온 금식은 문을 닫기 전에 어머니를 돌아봤다. 어머니는 어색하게 웃으며 어서 가라고 손목을 위아래로 주억거렸다.

고개를 돌린 금식은 문을 닫고 1층으로 향하는 계단에 발을 디뎠다. 세 계단쯤 밟고 올라섰을 때 불현듯 스며든 걱정이 어린 금식의 발목을 잡았다. 그대로 계단 통로 벽에 등을 기댄 금식은 고개만 돌려 바깥을 바라봤다. 어둑한 반지하에서 올려다본 하늘은 유난히 밝고 파랬다. 마치 바다 같았다. 그래서일까. 뿌옇게 뭉쳐있는 구름이 고래처럼 보였다. 하늘 바다를 헤엄치는 구름 고래. 금식의 머릿속에 상상의 파도가 넘실 밀려왔다. 이때, 배경음악인 양 ‘lover is A Many Splendored Thing’ 노래가 현관문에서 경쾌하게 흘러나왔다.

아름답고 낭만적인 노래에 흥이 난 구름고래가 금식을 태우고 하늘바다를 자유롭게 헤엄쳤다. 어머니에 대한 걱정은 어느새 천진한 웃음이 되어 금식의 입꼬릴 추켜세웠다. 그렇게 상상만으로 즐거운 금식의 귓가에 순간, 울부짖는 절규가 사랑을 찬미하는 노래에 실려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현실로 돌아온 금식은 추켜올린 입꼬릴 내리며 웃음을 지웠다.

어머니는 참고 참았던 슬픔을 한꺼번에 게워내는 듯 비명 섞인 울음을 끊김 없이 쏟아냈다. 문에 가로막히고 노래 뒤에 숨어도 어머니의 울부짖음은 곁에서 듣는 듯 귓가에 생생했다. 금식은 고모들이 들이닥쳤을 때처럼 질끈 눈을 감고 귀를 막았다. 노래가 끝나면 어머니의 슬픔도 끝나겠지 하고.     

'Yes, true love's a many splendored thing~~'을 끝으로 자신의 역할 다 했다는 듯 앤디 월리엄스가 노래를 멈췄다. 하지만 어머니는 멈추지 않았다.     


   

버스에서 내리고도 여전히 옛 기억을 놓지 못한 금식은 어느새 현관문 앞에 도착해 있었다. 그가 문을 열고 들어서자 거실등이 환하게 거실을 밝히고 있었다. 곧이어 안방으로 향하니 역시나 환했다. 다급한 상황에 전등을 끌 경황이 없었으리라. 금식은 안방 문 바로 옆에 위치한 전등 스위치로 손을 뻗었다. 그러다 문득, 어머니에 대한 또 다른 기억 하나가 스위치를 누르려는 그의 손 끝을 멈춰 세웠다.

어머니는 홀로 계실 때면 밤에도 전등을 켜지 않았다. 어두운 집안을 그나마 밝히고 있는 건 거실에 놓인 29인치 tv였다. 금식은 자신이 귀가해야 불을 켜는 어머니에게 그깟 전기세 갖고 궁상 좀 떨지 말라며 짜증을 있는 대로 부렸다. 그러면 어머니는 불을 꼭 켜 놓겠다고 다짐하곤 역시나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던 금식은 불이 꺼져 있는 족족 어머니에게 욱한 감정을 쏟아냈다.

전등을 끄지 않고 스위치에서 손을 거둔 금식은 골똘한 표정으로 눈살을 찡그렸다. 자신이 귀가해야 비로소 전등을 켰던 어머니의 마음을 정확히 표현할 수 없지만 알 것 같았다. 돌이킬 수 없는 후회가 그의 가슴을 묵직하게 눌러 긴 한숨을 짜냈다.

긴 한숨은 시선을 옮겨 금식이 어머니께 덮어 드렸던 꽃무늬 누빔 이불로 이어졌다. 이불은 형태를 알 수 없게 구겨져 있었다. 어둠 속에서 홀로 사경을 헤매며 만들어낸 어머니의 흔적이 금식에게 책임을 묻는 듯했다. 수봉을 만나지 말고 곧바로 귀가했다면? 아니, 좀 더 일찍 병원에 모시고 다니며 신경 썼더라면?      


“알아서 하겠다고 내버려 뒀더니....”     


답 없는 생각 끝에 저도 모르게 뱉어낸 말은 좀 전의 후회가 무색한 짜증이었다.

도돌이표처럼 또다시 후회가 밀려왔다. 금식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곤 이불을 개려 다가섰다. 이불 양쪽 끝단을 잡고 머리 위로 높게 올려 펼치자 무언가 ‘툭’하고 떨어지며 가벼운 마찰음을 냈다. 이불을 반으로 접고 바닥을 확인하니 흰 실로 엄지발가락을 오므려 꿰맨 검정 양말 한쪽이었다.

응급실 문이 닫히는 순간 보았던 어머니의 왼쪽 맨발이 북받치듯 떠올랐다. 이불을 천천히 바닥에 내려놓은 금식은 양말에 눈길을 모으곤 맥없이 무릎을 꿇었다. 양말을 주시하는 그의 눈빛이 처연했다. 여태껏 얼음송곳 같은 말들로 어머니의 마음을 마구 찔러댔던 순간들이 머릿속에 가득 차올랐다.

어제, 은행에서 벌어진 일로 “정신줄 놓은 김에 아예 벽에 똥칠까지 하지 그려셔!”라고 했던 것과 그 전날, 일을 그만두지 않는 어머니께 “그게 다아~ 연탄가스 중독 때문이라고!! 젠장!! 풍 맞고 기저귀 차고 싶어?!!”라고 했던 것이 방금 한 듯 선명했다.

곧이어 방송국, 껍데기 맛집 촬영을 어머니가 거부했던 이유에 대해 자존심에 쪽팔려서라고 일갈했던 순간이 꼬리를 물고 떠올랐다. 그리고, 껍데기를 굽고 있는 어머니가 창피해 못 본 척 도망친 어린 자신의 모습이 뒤를 이었다. 어머니가 촬영은 거부 한 건 자존심에 쪽팔려서는 결코 아니었으리라. 불을 켜지 않던 어머니의 마음처럼 정확히 표현할 순 없지만 알 것 같았다. 어머니가 입에 달고 살던 “미안해 아들.”에 답이 있다는 걸.      

“다... 나 때문이었어...”     

 

엄마를 이렇게 만든 것도...라는 말은 입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머릿속에 고였다. 고인 말은 결국 금식의 눈을 통해 눈물이 되어 흘렀다. 왜, 항상 잃고 나서야 깨닫게 되는 건지. 양말을 움켜 쥔 금식은 홀로 고통에 몸부림쳤을 어머니를 느끼며 잔뜩 웅크린 어깨를 들썩였다. 그리고 홀로 슬픔을 게워내던 어머니처럼 흐느꼈다. 방안 전등 불빛과 창문으로 쏟아지는 아침 햇살이 멈출 줄 모르고 신음하는 금식을 위로하듯 밝혔다.     



‘따르릉! 따르르릉!’ 핸드폰 벨소리가 울다 지쳐 잠든 금식을 깨웠다. 얼마나 잠들었을까? 어리둥절 창밖을 보니 하늘이 붉게 물들고 있었다. ‘따르릉! 따르르릉!’ 핸드폰이 통화를 재촉하며 연거푸 울어댔다.      


“여,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이숙자 님 보호자 되시죠? 백세병원 응급실인데요...]

“아... 네, 네! 안 그래도 막 가려던 참이었습니다.”

[죄송한데 되도록 빨리 와주셨으면 해서요...]     


간호사의 목소리에서 다급하고 난감한 표정이 느껴졌다. 금식의 심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어디가 잘못되셨나요? 오전에 담당선생님께선 위험한 고비는 넘겼다고 하셨는데...”

[위급하신 건 아니고요. 그게... 어머님께서 자꾸 우시면서 집에 가시겠다고 하셔서요....]     


어머니의 황당한 행동에 평소 같으면 벌컥 역정부터 냈을 금식이지만 어쩐 일인지 그런 감정은 조금도 없었다. 최대한 빨리 가겠다고 간호사와 통화를 마친 금식은 어머니의 입원 용품을 챙기는 것도 잊은 채 서둘러 집을 나섰다.      


***


응급실 문이 양 옆으로 쪼개져 열리자 금식이 헐레벌떡 들어섰다.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담당 간호사가 안도하며 구석 끝 자리에 있는 침대로 금식을 안내했다. 다가서며 바라보니 다른 간호사가 어머니를 달래려 애쓰고 있었다. 그 덕분인지 어머니의 모습은 전화로 들었을 때보다는 조금은 안정돼 보였다.      


“엄마....”     


금식이 걱정스러운 투로 어머니를 부르며 간호사 곁에 섰다. 간호사가 눈치껏 자리를 내어 주며 말했다.


“어머님이 아드님을 얼마나 찾으셨는지 몰라요.”

“네... 빨리 왔어야 하는데 죄송합니다...”     


간호사가 쌩긋 웃으며 어머니를 향해 말했다.     


“아드님 왔으니까 이제 집에 간다고 때 쓰시면 안 돼요.”      


샐쭉한 표정이 된 어머니가 마지못한 듯 고개를 까닥였다. "감사합니다." 금식이 간호사 둘에게 감사를 전하자 가벼운 목례로 답한 그녀들은 응급실 문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금식은 어머니를 내려다보며 자상하게 물었다.     


“왜? 무슨 일 있었어?”   

“안늬...녀기 있눈데...따람들이 아쁘다거...마악...쏘듸 띠고...울거...”       


뇌경색 후유증이리라. 말을 갓 배운 어린애처럼 어눌해진 어머니의 발음에 금식의 가슴이 욱신하게 저려왔다.     

“사람들이 막 아프다고 소리치고 울고 그랬어? 응급실이니까 그렇지....”     


금식은 부드러운 어조로 다독이듯 말하며 어머니의 가녀린 등을 어루만졌다.      


“그래서.... 무서웠어?”


샐쭉했던 어머니의 표정은 울 준비를 하듯 울상이 되었다.     


“응. 무뎌웠떠... 딥에 갈레... 딥에 가자...”     


어머니는 금식의 팔 소매를 붙잡고 간호사가 말한 대로 때를 쓰며 기어이 울기 시작했다. 금식은 그런 어머니의 머리를 자신의 복부로 당겨 감싸 앉았다. 어머니의 눈물이 금식에게 흘러들어 그의 눈가를 적셨다.       


“아이고... 울 엄마 애처럼 왜 그러실까...”     


어릴 적 어머니가 해주었듯 금식도 어머니의 등을 자장자장 토닥였다. 그렇게 어머니는 아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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