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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파니 Aug 14. 2023

나의 첫사랑 소환귀 (17)

17화. 걸뱅이 형님(2)








수봉이 그녀들에게 은근슬쩍 다가와 수작을 걸자 이를 한심하게 바라보던 춘배가 끼어들었다.       


“그래. 다 같은 동네 사람들이니까, 서로 알고 지내면 좋겠다. 여기 이 친구들은 목공방을 운영하고 있는 수봉과 금식.”     


춘배의 소개에 금식은 자리에 앉은 채 고개만 까닥였고 그녀들 곁에 있던 수봉은 90도로 허리를 접어 머리를 조아렸다. 과한 수봉의 행동에 순희는 키득댔고 연실은 마뜩잖은 표정으로 입술을 삐죽였다.       

 

“그리고 여기 숙녀분들은 잘 헤어 미용실 원장님이신 연실 씨, 드루와 편의점 점장님이신 순희 씨.”      


가슴까지 내려오는 스트레이트 펌 긴 생머리에 작고 밋밋한 이목구비를 메이크업으로 돋보이게 위장한 연실이 샐쭉한 표정으로 고개를 까닥인 반면 어깨에 살짝 걸친 단발머리 자갈치 펌에 초롱초롱 빛나는 큰 눈이 매력적인 귀여운 스타일의 순희는 수줍게 웃으며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가재도구 제작이나 수리가 필요하면 언제든 이 친구들한테 부탁하세요. 자기 일처럼 잘해 줄 겁니다.”

“암요. 마님 모시는 머슴이다~ 생각하고 막 부려먹어 주세요~ 하하하!”     


춘배의 말을 받은 수봉은 마님 앞에 머슴처럼 연신 굽신거렸다. "어머! 별말씀을요"라며 손사래를 치는 순희와는 달리 연실의 표정은 연신 뾰로통했다.      


“근데요.... 솔직히, 점장은 엄마고요. 전 그냥 직원이에요. 히히.”

“저도 혼자 일하는데 원장님이라고 소개해 주시니까 쫌 부끄럽네요. 다 알면서 일부러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소개가 문제였을까? 연실은 짐짓 쌀쌀한 기색을 내비쳤다.     


“나쁜 뜻은 없었는데.... 불편했다면 미안해요.”     


당황한 춘배는 얼굴을 살짝 붉히며 겸연쩍게 사과했다.     


“아니에요. 좋게 말씀 주시려고 하신 건데. 괜찮아요.”     


싱긋, 눈웃음 지으며 답하는 순희의 태도에서 평소 이해와 배려가 깊은 성격임을 짐작게 했다. 이런 순희의 모습이 금식의 눈에 유독 담기며 마음에 묘한 떨림이 일었다.      


“난 안 괜찮은데.”     


매서운 표정이 된 연실이 불쾌한 감정을 드러냈다. 그녀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춘배의 표정이 일순 경직됐다. 급랭한 분위기에 금식과 수봉도 눈만 말똥말똥 굴리며 숨을 죽였다. 하지만 순희는 연실의 이러한 행동이 익숙한 듯 말없이 고개만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 죄, 죄송해요. 제가 생각이 짧았네요....”     


날카롭게 째려보던 연실은 쩔쩔매는 춘배의 모습에 풉! 웃음을 뱉었다.     


“언닌, 꼭 그러더라. 적당히 해.”     

 

순희의 일침에도 연실은 저 혼자 신나 큭큭대며 말했다.


“알았어~ 기집애야. 장난 좀 친 걸 갖고 뭘 그래.”     


‘장난?’ 뜻밖의 말에 얼떨떨한 춘배는 이내 안도의 숨을 내쉬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하아아~~ 놀랬네요.”

“뭐 이런 걸로 쫄고 그러세요. 사장님 은근 귀여운 데가 있으시다~~”     


금식은 연실의 어이없는 장난질에 찬웃음이 났지만, 수봉의 마음은 요상하게 달아올랐다.     


“어쨌든 사장님이 사과를 하신다니까.”      


연실은 무언가 원하는 것이 있다는 눈빛으로 춘배를 살갑게 바라봤다.      


“조개탕 서비스 주시면 퉁 쳐 드릴게요.”

“하하. 그래요. 서비스 OK!”     


춘배의 흔쾌한 승낙에 연실이 함박웃음을 짓자 다시금 훈훈한 기운이 감돌았다. 연실의 행동이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는 금식은 눈살을 찌푸렸다. 얹잖은 기분을 누그리며 빈 잔에 소주를 채우려는데 어느새 다가온 수봉이 소주병을 낚아챘다. 그리곤 자신의 잔을 함께 챙겨 그녀들에게로 잽싸게 돌아갔다.      


“와우! 이 하나 된 분위기~! 위 아 더.... 웨, 웰컴... 거시기 어쨌든.”     


수봉은 능글맞은 미소를 흘리며 순희에게 소주병을 비스듬히 들이댔다.     


“자아~ 일단 한잔씩 받으시고~~”     


쑥스럽게 잔을 받는 순희에게는 한 손으로 따라준 반면 연실에게는 그윽한 눈빛을 발하며 양손으로 깎듯이 소주병을 잡고 잔을 채웠다. 곧이어 자신의 차례라는 듯 그녀 앞에 소주병을 놓으며 빈 잔을 드밀었다. 그런데 연실은 뭐 어쩌라는 표정으로 그의 얼굴만 덤덤히 올려다볼 뿐, 따라주려 하지 않았다. 뻘쭘해진 수봉은 들고 있는 잔과 소주병을 눈짓으로 가리키며 제발 좀 잔을 채워달라는 애절한 눈빛을 보냈다. 보다 못한 순희가 소주병을 들었다.     


“제가 따라 드릴게요.”

“아이고~~ 감사합니다~~”     


잔을 채운 순희가 ‘으이그!’ 하는 표정으로 연실에게 눈을 흘겼다.      


“자아~~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한잔 쭈우욱~ 하시죠!”

“네. 반갑습니다~~”     


수봉이 들이민 잔에 순희는 역시나 상냥하게 호응하는 반면 연실은 또다시 새초롬하게 눈을 추켜올렸다.      


“전, 안주 없으면 술 안 마시는데요. 그리고 그쪽을 보니까.”     


잠시 수봉을 빤히 쳐다보던 연실은 춘배를 향해 외쳤다.     


“사장님! 조개탕 말고 데친 오징어 부탁드릴게요!”     


자신을 빗댄 안주라고 단연코 생각지 않는 수봉은 반색하며 ‘짝! 짝! 짝!’ 박수를 쳤다.     


“와우! 뒈에친 오쥥워어~~! 안주 선택도 어쩜 이렇게 탁월하신지. 때마침 저희 자리엔 두부김치가 마련되 있는데. 그러지 말고, 거국적으로 합석을 해서 서로의 안주를 콜라보해보심은 어떨지.... 켁!!”      


수봉의 뒤로 다가선 금식이 그의 목을 감아 잡았다.      


“초면에 실례가 많았습니다. 두 분 편히 드세요.”     


갑작스러운 금식의 격한 행동에 순희는 괜찮다며 말렸지만 연실은 그 모습이 고소한 지 끌려가는 수봉을 향해 안녕하듯 손을 흔들었다. 제 자리로 복귀한 금식은 그제야 수봉의 목을 풀었다.      


“어우~! 경추 나갔다! 왜 그러냐?! 다 넘어왔는데!”     


수봉은 엄살을 부리며 뒷목을 잡고 좌우로 느그적 거렸다.


“넘어와? 하여간 눈치 더럽게 없어.”

“뭐래. 마! 기회가 있을 때마다 대가릴 들이대야 연애를 하지. 백날 기다려 봤자 관 뚜껑 밖에 안 닫혀.”

“들이대는 건 남자 사람이 하는 거고, 너 같은 데친 오징어가 아니라.”

“우쒸이! 내가 왜 데친 오징어야?!! 나도 몸 좀 만들고 쫘악! 빼 입으면 가수 비 뺨쳐! ” 

“비 뺨쳐? 넌 그러다 인생 종 쳐! 됐고, 아까 하던 얘기나 마저 하시죠. 백수봉 씨.”     


수봉의 잔에 소주를 가득 채우며 금식은 단호하게 눈을 부라렸다. 꿍얼대던 수봉은 소주잔을 들어 단번에 꺾어 들이켰다.     


“크으으~~ 달다~~! 자아~ 그럼, 팔도를 구걸로 여행하며 책까지 쓴 걸뱅이가 누구냐?"

     

수봉이 얄밉게 뜸 들이며 빈 잔을 들이밀자 고깝게 눈을 흘긴 금식은 다시금 술을 따랐다. 또다시 단번에 들이켠 수봉은 잔을 내려놓곤 계산대에 기대어 있는 책 한 권을 가지고 와 금식 앞에 툭 던졌다. 짙은 보라색 바탕에 배낭, 카메라 삽화가 흰색 선으로 단출하게 그려진 삶은 여행이란 제목의 책이었다.     


“넘겨봐.”     


수봉이 시키는 대로 표지를 넘기자 DSLR카메라를 목에 걸고 카우보이 밀짚모자를 쓴 춘배가 저자를 알리는 사진 안에서 헤벌쭉 웃고 있었다.     


“어! 형님이었어?”     


금식은 다열렌지 앞에서 오징어를 데치고 있는 춘배가 다시 보였다.     


“역쉬~ ‘삶은 여행’이란 제목에서 뭔가 가슴을 적시는 뭉클함이 느껴지네!”

“뭉클함은 개뿔. 삶이 무슨 여행이냐? 삶은, 계란이지~”     


‘오와~~ 데친 오징어!!’ 춘배가 안주를 내 오자 삶은 그저 계란 일 뿐인 누구 들으라는 듯 연실은 일부러 목청을 높였다. 목소리에 반응한 수봉이 연실을 향해 고개를 돌리자 초장에 듬뿍 찍은 오징어를 한입 가득 넣고 잘근잘근 씹는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이때를 놓칠 리 없는 수봉은 소주잔을 살짝 들어 올리며 느끼한 시선을 강렬히 담아 추파를 던졌다. 일말의 여지없이 훡! 고개를 돌린 연실은 춘배를 가까이 불러내고선 무언가를 조잘조잘 속닥였다. 얘기를 가만히 듣던 춘배는 수봉을 슬쩍 흘겨보며 웃었다. 수봉은 분명 자신의 얘기를 하는 것 같아 온 신경을 집중해 귀를 쫑긋 세웠다. 그래 봤자 들릴 리 없었다. 이내 찝찝한 기분을 뒤로하고 금식을 바라보니 ‘와~’‘오~’ 감탄사를 연발하며 책에 흠뻑 빠져 있었다.     


“여기가 주점이지 서점이냐! 그만 보고 한잔하지.”     


수봉과 잔을 부딪친 후 소주를 털어 넣으면서도 금식은 책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글도 그렇고 사진도 그렇고 햐아~~ 이 정도면 전문 작가로 전업하셔도 되겠는데.” 

“고마워.”     

 

한 접시 더 준비한 오징어 숙회를 스텐 쟁반에 받쳐 들고 춘배가 화답하며 다가왔다.      


“그리고 수봉아.”     


숙회 접시를 테이블에 올려놓은 춘배는 수봉을 친근하게 부르며 스텐 쟁반으로 그의 뒤통수를 ‘댕~!!’        


“걸뱅이 구걸 여행이 아니라 무전여행이라고 하는 거야.”     


그 말을 언제 들었는지. 춘배는 뒤통수를 감싸 쥐며 ‘아욱!’ 신음하는 수봉을 가볍게 응징하곤 금식을 향해 다정하게 물었다.      


“여행 가려고?”

“아, 네.”

“누구랑?”

“음.... 어머니하고요...”

“오~~ 그래?! 그럼 어머님이 좋아하실만한 곳으로 추천 좀 해드려야겠다. 일단, 함께 다녔던 여행지를 알 수 있을까? 혹시 겹치면 안 되니깐.”

“.....”     


잠시 머뭇하던 금식은 잔을 들어 단번에 꺾어 마셨다.     


“없어요....”     


잘 못 들은 건가? 춘배는 미간을 좁혔다. 


“응? 없어? 여행간 적이?”     


금식은 한쪽 입꼬릴 살짝 세우며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집 살 때까지 한 푼도 쓸 수 없다고 저하고도 여행 한번 간 적 없어요. 아주우~~ 염전 같은 놈이라 죽으면 썩지도 않을 거예요!”     


수봉이 끼어들며 비꼬자 "너랑 안 가는 건 당연한데...."라고 말을 흘린 춘배는 금식을 측은하게 바라봤다.     


“그래. 형이 여행지 리스트 뽑아 놓을게.” 

“네. 감사해요.”

“감사는 무슨,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말해.”     


이 말이 왜 이렇게 든든한지. 금식은 춘배가 친형처럼 느껴졌다.      


“저....그럼, 여행지 뽑으실 때....”

“어...”

“어머니가 꽃을 좋아하셔요....꽃놀이 할 수 있는 여행지로 좀....”

“그래. 내가 알고 있는 최고의 장소로 뽑아 놓을게.”     


푸근한 웃음으로 돌아서던 춘배는 다시 몸을 돌려 수봉에게 다가가, ‘댕~!!’ 뜬금없이 날아든 쟁반세례에 수봉은 또다시 머리를 감싸 쥐며 ‘아욱!’ 신음했다.     


“또 왜 그래요?!”

“너 홍탁집에서 고백하다 차였다며.”

“아니 그걸 어떻게....?”     


생물학적 성별을 초월한 부랄친구 미란이가 결코 발설하지 않겠다던 맹세를 저버렸단 말인가? 수봉은 혼란스러웠다.  


“연실 씨가 거기서 봤데. 그리고 앞 전 엔 카페하시는 분한테도 차였다며.”

“아니 그건 또 어떻게?!”  


수봉의 실눈이 찢어질 듯 벌어지더니 단춧구멍 만해 졌다. 


“홍탁 집 이모님한테 들었데. 동네에서 제발 그러지 좀 마라. 사방팔방 침 묻히고 다닌다고 소문 다 났데!”      

연실이 시종일관 수봉에게 까칠하게 군 이유다. 다시한번 수봉의 머리로 쟁반이 ‘댕~!!!’     


“아욱!!”     



***     


자정이 다 된 시각, ‘띠리릭’ 금식이 현관문을 열고 거실로 들어섰다. 거실은 밤을 그대로 머금은 듯 어두웠다. ‘아직도 주무시나?’ 중얼거리며 금식은 더듬더듬 거실 스위치를 찾아 불을 켰다. 그리곤 안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문 손잡이를 비틀어 빼꼼히 낸 문틈 사이로 형광등 빛이 따라 들며 어두운 방안을 은은히 밝혔다. 순간, 금식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엄마!!!!”


혀가 말린 듯 어버버 신음하는 어머니가 숨을 버겁게 허덕이며 온몸을 부르르 떨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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