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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파니 Jul 31. 2023

나의 첫사랑 소환귀 (15)

15화. 당부






     

“정말 죄송합니다.”     


금식은 착잡한 표정으로 행원에게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별말씀을요. 오해가 풀려서 너무 다행입니다.”     


행원은 후련하다는 듯 크게 미소 지으며 말을 받았다. 어머니는 넋이 나간 사람 마냥 ‘아닌데... 엄마 아니야...’만 반복하며 울듯 중얼댔다.      


“뭘 자꾸 아니래!! 저 옷을 보고도 그런 말이 나와! 진짜 실성한 거야?! 아님, 쪽팔려서 실성한 척하는 거야?!”     

욱! 하고 치미는 감정을 어금니로 앙다물어 씹으며 어머니를 자근자근 다그쳤다.     


“엄만, 저런 옷이 없어....”     


끝까지 인정하지 않으려는 어머니의 생떼에 금식의 얼굴이 터질 듯 벌겋게 달아올랐다.     


“없긴 왜 없어!! 저거 작년에 내가 사준 옷이잖아!! 정신 좀 차려!! 정말! 노망이라도 난 거야!!!”     


노망이란 말 때문일까, 순간 멍하게 금식을 바라보던 어머니는 둔탁한 물건에 맞은 듯 휘청였다.     


“엄마!!”     


놀란 금식과 행원은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어머니의 팔을 동시에 잡아 부축했다.      


“갈래....”

“응?”

“갈래... 집에....”

“갑자기 무슨.”

“갈래 집에...”     


부축을 받아 겨우 서 계신 어머니는 이번엔 다짜고짜 집에 간다고 생떼였다. 납득하기 어려운 행동들에 당혹스런 금식이지만 당장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은 매한가지였다.     



***     


“자식 하고 쌍으로 개망신당하니까 좋아?! 좋냐고!! 아주 그냥! 정신줄 놓은 김에 아예 벽에 똥칠까지 하지 그려셔!!”     


안방에 들어서자마자 맨바닥에 자리 잡고 누운 어머니에게 금식은 송곳 같은 말을 내뱉으며 문갑을 마구 뒤져댔다. 문갑 깊숙이 두툼한 노란 봉투가 모습을 드러냈다. 봉투를 열어 확인해 보니 수표와 현금 뭉치가 가지런히 들어 있었다.     


“하여간 어디 돌아다닐 생각 말고 잠자코 있어!”     


등을 보이고 누운 어머니는 눈을 감은 채 아무 대꾸도 없었다. 금식은 아랫입술을 깨물곤 마땅치 않게 바라보다 이내 급하게 몸을 돌려 현관을 나섰다.‘띠리릭’ 잠김을 알리는 현관 도어록 멜로디 소리가 들리자 기다렸다는 듯 어머니의 굳게 감긴 두 눈에선 눈물이 콧뼈를 타고 흘렀다.        



***     


“조 사장. 내가 수봉 씨 부탁이라 각별히 신경 좀 섰어요. 이게~~ 전생에 나라를 구한다고 구할 수 있는 집이 아니거덩. 그럼? 조 사장은 도대체 전생에 뭘 구한 건가! 혹시? 삼. 천. 궁. 녀?! 하하하!!”      


부동산 사무실이 휴양지인양, 화려한 하와이안 셔츠에 황비홍 변발 스타일의 중계인 만두만 사장은 근본 없는 말장난을 시전 하며 혼자 좋아 죽었다. 금식은 백발의 노신사인 집주인과 마주 앉아 만사장의 지시대로 매입계약서에 도장을 찍고 계약금을 건넸다.      


“편하게 이체해도 되는데 굳이~~ 정성스럽게 수표를 준비해 주셨네요. 하하!”

“저희 어머니가 옛날 분이라... 어쨌든 어제 일도 그렇고 여러모로 번거롭게 해 드려 죄송합니다.”      


핀잔인지, 칭찬인지 모를 만사장의 말에 금식은 집주인에게 고개 숙여 사과했다. 집주인은 너그러운 눈웃음을 짓고는 괜찮다는 듯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하긴. 이게 또오~ 돈이란 게 손에 쥐는 맛이 있어야지. 통장에서 왔다리 갔다리 하면 공갈빵 마냥 먹어도 안 먹은 것 같은....”

“오래오래 살아주세요.”     


만사장의 세상 쓸데없는 너스레를 새털보다 가볍게 무시한 집주인은 중저음의 예의 바른 어투로 입을 뗐다.     

“네?! 아. 네.”     


인자한 미소를 머금은 집주인은 따듯한 눈길로 금식을 바라보았다.      


“ 저도 앞에 계신 젊은 사장님 나이쯤에 이 집터 사서, 아내와 함께 기초 공사부터 벽돌 한 장 허투루 쌓지 않고 자식 키우는 마음으로 지은 집이랍니다.”

“네...”     


찡한 울림이 금식의 온몸에 번졌다.     


“만사장님께 조건을 걸었어요. 개발이나 투기로 웃돈이나 챙기려는 사람은 절대 안 된다고 말이죠. 그런데 온통 그런 사람들뿐이라 낙담하고 있던 차에 이렇게 좋은 분을 만나게 되어 정말 기쁘네요. ”     


금식은 만사장이 자신에 대해 온갖 썰을 풀었을 것이라 충분히 예상은 했지만 그럼에도 집주인의 호의가 다소 과하게 느껴져 조금은 부담스러웠다.


“아, 아닙니다. 어르신. 저야말로 이런 좋은 집을 시세보다 싸게 주셔서 과분할 따름입니다.”

“그럼! 그럼! 여기 집터가 거의 청와대 급이잖아. 그러니~~~ 온갖 똥파리들이 돈 싸 들고 와서 서로 사겠다고 지랄! 바알광들을 하는데! 그래도 내가 누구야! 그 지랄 다아~~ 받아 가며 우리 성사장을 기다렸다는 거 아니야! 어찌 알고? 난 알지! 어렸을 때부터 신기가 으리으리했거덩!! 오죽하면 동네 사람들이 저놈은 귀신 눈깔 파먹을 놈이라고...”

“사장님. 여기 물 좀 채워 주시겠소.”     


기회만 있다 하면 비집고 들어와 어쩜 그렇게 주둥이를 털어대는지, 집주인이 테이블 위 녹차 티백이 담긴 빈 종이컵을 들이밀며 말꼬릴 싹둑 잘라내자 겸연쩍게 웃던 만사장은 소파에서 엉덩이를 떼 정수기로 향했다.     

“얘긴 익히 들었습니다. 내 집 하나 갖기 위해 얼마나 많은 것들을 포기하며 살았을지. 게다가 홀어머니까지 모시고.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어요.”

“과찬이십니다. 그냥 주어진 대로 열심히 살다 보니....”     


집주인의 칭찬에 쑥스러워진 금식은 뒷머리를 머쓱하게 쓸었다.     


“제가 이 사람이면 집을 팔아도 되겠다, 선택한 이유 중 하나가 젊은 사장님 직업 때문이었어요.”

“네?”

“솜씨 좋은 목수시라고.”

“아. 아닙니다. 솜씨랄 것도 없이 미천합니다.”     


집주인은 손사래를 치며 부끄러워하는 금식을 흡족하게 바라보았다.      


“나이 들수록 입이 무거워야 하는데 젊은 사장님 얼굴을 뵙고 보니 너무 믿음직스러워 말이 많아졌네요.”

“별말씀을요. 전혀 개의치 마시고 말씀 편히 주세요.”      


만사장과는 완전히 상반된 격조 있는 인품에 금식은 머리가 절로 숙여졌다.

이때, 진지하게 대화 중인 두 사람의 눈치를 살피던 만사장이 입술을 잔뜩 말아 물곤 물을 가득 채운 종이컵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으며 슬그머니 소파에 앉았다. 그리곤 또다시 두 사람 눈치를 살피며 종이컵을 집주인 앞으로 재빨리 들이밀다 물이 넘쳐흘렀다. ‘어이쿠!’ 당황한 만사장은 촥!촥!촥! 요란스럽게 각티슈를 뽑아 흘린 물을 허둥지둥 닦다 집주인과 눈이 마주쳤다. 근엄한 눈빛으로 쏘아보는 의중을 단박에 알아챈 만사장은 축축한 휴지를 양손에 말아 쥐곤 다소곳이 몸을 돌려 앉았다. 집주인은 온화한 눈웃음을 지으며 금식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집도 사람 같아서 나이를 먹으면 손이 많이 간답니다. 목수시니까, 소중한 사람 챙기듯 잘 보수해서.... 오래오래 살아주세요.”     


누구에겐 그저 의례 하는 부탁일 수 있겠지만 금식에겐 비범한 당부로 가슴에 꽂혔다. 비록 집수리 전문 내장 목수가 아닐지라도.     


“네. 명심하겠습니다.”     


진정성이 담긴 힘 있는 대답에 집주인은 금식에게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금식도 머리가 테이블에 닿을 듯 허리를 깊게 접어 답례 인사를 하자 뻘쭘히 곁에 있던 만사장도 덩달아 고개를 조아렸다.      


“우리 젊은 사장님하고는 오늘이 마지막 대면이겠네요.”

“네? 아직 잔금이....”

“이후 절차는 만 사장님께서 저를 대신해 진행해 주실 겁니다.”     


집주인의 말끝에서 피로함이 진하게 묻어났다. 그러고 보니 안색도 좀 전보다 더욱 창백해 보였다.     


“그럼, 전 이만 일어나 보겠습니다.”     


집주인이 천천히 몸을 세우려 하자, 만 사장이 잽싸게 다가가 보조를 맞췄다. 금식도 함께 일어나 사무실을 나서는 그를 배웅했다. 집주인은 부동산 앞에 세워둔 검정 세단 운전석에 올라 천천히 액셀을 밟았다. 저만치 차가 멀어지자 그제야 사무실로 들어온 만사장은 소파에 털썩 주저앉아 후덕한 배를 두드렸다.     


“근데? 어르신 어디 편찮으신가요? 안색이....”

“잠깐. 어디 보자, 어이쿠! 벌써 시간이 2시가 넘었네. 조 사장 아직 식전이지?”     


만사장은 딴청을 부리며 되레 물었다.     


“네. 아직....”

“아주 오래된 단골집인데, 짬뽕 맛이 완전 깡패야! 쓰흡~~ 어떻게? 오늘 짬뽕 국물로 혓바닥 다구리 한번 당해 볼텨?!”     


금식의 의사는 듣지도 않고 대뜸 짱깨루라고 적힌 이쑤시개 각을 테이블 밑 선반에서 꺼내 들곤 소파 뒤편 책상 위에 놓여 있는 유선 전화기를 짧은 팔로 힘들게 뻗어 집었다.     


“잠시만요. 제가 속이 좀 안 좋아서요. 그냥 사장님 것만 시키시면 될 것 같아요.”     


전화기 버튼을 누르려던 만사장은 심각한 표정으로 금식을 바라봤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쏘는 사람 놔두고 어떻게 나만 먹나.”

“아니요. 저는... 네? 아. 제, 제가 사는 거였군요. 하하...”     


뭐지? 이 호구 잡힌 기분은. 하지만 어쩌랴, 금식이 그토록 바라던 집을 중계해 줬으니.      


“진짜 안 먹어?”

“네. 저는 괜찮습니다. ”

“아. 이럼 곤란한데...”     


만 사장은 또다시 심각한 표정으로 금식을 응시했다.      


“하나만 시키면 만두 서비스가 없단 말이지.”

“원래 두 개 시켜도 만두 서비스는 없잖아요.”

“오늘 오픈해서 이벤트 중이거덩.”

“오늘 오픈? 아니 아깐 오래된 단골집이라고...”


만 사장은 갑자기 테이블 위 신문을 돌돌 말아 허공에 대고 위협적으로 휘저었다.     


“어디서 파리 새끼가 자꾸 앵앵거리지!!”     


맞다. 기필코 먹고 말겠다는 의지 앞에 자꾸 앵앵거려 무엇하랴.  


“네. 그럼 전 짜장으로...”

“오케바리~! 짜장바리~!”     


신이 난 만사장은 짱깨루에 전활 걸어 해맑게 삼선짬뽕 두 개를 주문했다.     


“사장님! 전 짜장인데요!”

“에헤~! 여기 짜장이 얼마나 구린지 알아? 웩! 동네 개도 안 먹어!”  

“오늘 오픈했다면서 짜장맛을...”

“아까 뭐 물어봤지? 아. 어르신. 크으~! 이 양반 인생사가 완전 신파야~~”     


원하는 바를 이룬 만 사장은 이제야 집주인에 대해 입을 열었다.      


“이 양반이 지금 췌장암 말기거든, 그래서 암 환자들 가는 요양원 들어가려고 집을 내놓은 거란 말이지.”

“아....”     


창백한 안색과 이후 매매 절차를 만사장에게 위임한 연유가 퍼즐 조각처럼 맞춰졌다.      


“자녀분들은 없으시나요?”

“그렇지. 사모님이 좀, 병약하셨거든. 임신만 하면 유산하셨으니까. 그래서인지 사모님께서 아이들 돌봄 봉사를 엄청 하셨어. 동네 애 있는 주민치고 이 분 손 안 탄 사람 없을걸.”

“그럼, 어르신 요양원 들어가시면 사모님은?”

“뭔 소리. 사모님은 작년에 돌아가셨지. 치매로.”


치매란 이 짧은 단어가 순간 금식의 가슴에 무겁게 담겼다.      


“대기업 임원 될 때까지 일만 하느라 사모님 하고 여행 한번 못 가봤다고 퇴직하면 해외여행 계획까지 다 세워놨는데 쯧... 근데 보통은 치매 요양원에 입원시키잖아. 돈이 없는 것도 아닌데 말이야. 그런데 굳이~~ 집에서 손수 돌보시더라고. 집 보러 갔을 때 봤겠지만 현관문 앞 뒤로 자물쇠 달아 둔 것도 그 때문이거든.

속사정이야 어쨌든, 그렇게 5년을 수발들다 사모님 보내고 얼마 안 가 말기 암 진단을 받은 거지. 인생... 참!”      


‘인생... 참!’이란 말이 금식의 마음을 유난히 흔들었다. 이내 씁쓸히 고개를 떨군 그의 시야에 짱개루 이쑤시개 갑에 붙어있는 전단 스티커가 시선을 잡아끌었다. ‘동일 메뉴 두 개 주문 시 군만두 서비스’


“조 사장은 어머님 모시고 여행 좀 다니나?”


금식의 시선을 알아챈 만 사장은 둘둘 말았던 신문지를 펴 이쑤시개 갑을 덮고는 약삭빠르게 관심을 돌렸다.      

“그냥, 뭐... 아직은....”

“바쁜 거 아는데. 어머니랑 자주 여행도 다니고 그래. 있을 때 잘해야지, 어르신처럼 후회 말고.”     


‘여행....’을 나직이 되뇌는 금식의 입가에 아련한 미소가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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