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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파니 Jul 24. 2023

나의 첫사랑 소환귀 (14)

14화. 노란 쇼핑백







서민은행 지하 주차장에 도착한 금식은 곧바로 비상구를 열고 계단을 내달렸다. 벅찬 숨을 고를 여유도 없이 은행 문을 벌컥 열어젖히고 로비에 들어선 그는 다급하게 어머니를 찾기 시작했다. 초조한 표정으로 로비를 휘둘러 살피던 금식을 향해 입구에 서 있던 청원경찰이 조심스럽게 다가섰다.         


“저... 고객님. 어떤 용무 때문에 오셨나요?”

“네?! 아... 저기... 그러니까...”     


경황이 없는 금식은 청원경찰의 질문에 머뭇대며 주위만 살피다, 이내 로비 구석 창가 쪽 고객용 소파에 가냘픈 등을 쪼그린 채 앉아있는 어머니를 발견했다. 잰걸음으로 다가서는 그의 눈에 어머니가 양손으로 다소곳이 감싸 쥐고 있는 종이컵이 겁에 질린 듯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금식이 곁에 다가와 섰음에도 넋을 놓은 채 바닥만 응시하는 어머니의 모습이 더없이 애처로웠다.       


“엄마!”     


조금은 퉁명스러운 금식의 부름에 비로소 정신이 든 어머니는 고개를 황급히 들었다.      


“아, 아들...”     


금세라도 눈물이 터질 듯 울상이 된 어머니는 한 몸처럼 들고 다니는 들꽃 자수가 새겨진 진갈색 천으로 만든 꼬질한 토트백에서 수선스럽게 통장을 꺼내 들었다.      


“엄마가... 돈을, 여기서, 근데 자꾸 아니래! 그래서...”     

 

통장을 펼쳐 든 어머니는 많이 억울했던지 아이처럼 두서없는 말을 쏟아내며 칭얼댔다.     


“알았으니까. 진정하고, 차근차근 말해봐.”     


곁에 앉은 금식은 아이를 달래듯 어머니의 등을 쓰다듬으며 다독였다. 하지만 도무지 진정이 안 되는지 어머니는 중언부언, 횡설수설한 단어들만 나열할 뿐이었다. 그런 어머니를 보고 있자니 금식 또한 조급해져 답답한 마음을 가눌 수 없었다.     


“저... 아드님 되시나요?”     


청원경찰과 함께 반 팔 흰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단정히 맨 깔끔한 외모의 남자 은행원이 어느새 다가와 말을 걸었다.     


“아... 네....”      


얼떨떨하게 대답한 금식은 소파에서 황급히 몸을 일으켰다.     


“어머니께서 많이 놀라신 것 같더라고요.”     


다정한 미소를 머금고 어머니를 챙겨 위로하는 행원의 말에 금식의 답답함이 다소 누그러졌다. 고개를 힐끗 돌려 어머니를 응시한 금식은 조마조마한 표정의 어머니와 잠시 눈을 맞추곤 다시 행원에게 시선을 돌렸다.         

“근데... 저희 어머니가 무슨 일 때문에...”

“네. 그러니까...”     


행원은 난처한 표정으로 뜸을 들이다 입을 열었다.     


“실은 어제 정오경에 어머님이 오셔서 수표와 만 원권 현금으로 3000만 원을 인출해 가셨는데요.” 

“3000만 원?... 아.”     


금식은 매매 계약금임을 한 박자 늦게 인지했다.      


“그런데요.”

“그게...”     


행원이 말을 잇지 못하고 또다시 뜸을 들이자 금식은 답답함에 그를 쏘아봤다. 따가운 시선을 느낀 행원은 금식을 어머니에게서 두어 걸음 떨어져 돌려세운 뒤 낮고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어머님께서 돈을 찾아간 적이 없다고 하시면서 성화를 부리시는 통에 저희도 차암~ 난감한 상황입니다.”

“네?!”     


금식의 눈살이 깊은 주름을 만들었다. 한 걸 안 했다고 떼를 부릴 경우 없는 분이 아니었기에 행원의 말이 당최 믿기지 않았다.     


“아무래도 은행에 방문하신 것 자체를 기억 못 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말인데, 혹시, 어머님께서... ”      

조심스럽게 말끝을 흐린 뒷 내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직감한 금식은 어제, 어머니의 행동이 떠오르며 낯빛이 어두워졌다. 아니다!라고 완강하게 부정하고 싶지만 아닌 게 아닐 수도 있다는 강한 의구심을 떨칠 수 없었다. 그의 낯빛이 더욱 어둡게 굳어졌다.        


“엄마.”     


어머니는 자신을 부르는 아들의 차분한 음성에서 깊게 베인 서늘함을 느꼈다.      


“.....”     


아들의 냉담한 표정에 대꾸할 엄두를 못 낸 어머니는 겁먹은 아이처럼 금식의 눈치를 살폈다.     


“통장 줘봐.”     


차갑고 건조한 말투가 어머니로 하여금 반사적으로 눈을 반쯤 내리깔고 슬며시 통장을 건네게 만들었다. 금식은 통장을 펼쳐 들고 빠르게 훑어 넘겼다. 이 모습을 곁눈으로 응시하던 어머니의 시선에 불안이 감돌았다. 곧 그 불안은 현실이 됐다. 통장을 훑던 금식은 어제 12시 15분 3000만 원 출금내역을 기어이 확인하곤 ‘하아~!’ 탄식을 토했다. 어머니의 문제가 아닌 은행 측의 잘못이길 바라는 마음은 순진한 바람이었다. 통장이 들린 오른손을 맥없이 떨구며 착잡한 표정으로 어머니를 바라봤다.     


“아니야~~! 엄만 진짜 돈을 찾은 적이 없어!”     


낌새를 단박에 알아챈 어머니는 엉덩이를 마구 들썩이며 미치고 팔짝 뛸 억울함을 토로했다.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은 금식도 마찬가지였다. 막무가내로 떼를 쓴다고 버젓이 찍힌 출금 내역이 해명될 리 만무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엄마가 아니라는데. ‘후우~~~’ 숨을 길게 몰아내 쉰 금식은 행원을 향해 돌아섰다.  


“ 죄송한데요... 혹시 저희 어머니를 응대한 직원이 어느 분이신지?”

“네? 그건 왜?”

“돈을 인출한 사람이 저희 어머니가 확실한지 확인을 할 수 있을까 해서요.”     


‘아드님마저 그러시면 어떡하세요.’라는 듯 행원은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통장을 보셔서 아시겠지만 본인이 아니면 출금 자체가 되지 않기 때문에 굳이 직원 확인이 필요하실지...”     

행원은 난색을 표했다.     


“그렇긴 한데... 그래도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이러한 요구가 무리한 생떼임을 알면서도 금식은 속절없이 인정하고 싶지는 않았다. 고개를 숙여 가며 부탁하는 아들의 모습에 죄스런 마음이 든 어머니는 말없이 깊은 한숨만 연거푸 내쉬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잠시만.”     


행원은 하는 수 없이 업무창구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금식은 어머니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시선을 마주한 어머니는 당장이라도 울 것만 같았다.     


“아들... 엄만 진짜 어제 은행에 온 적이 없어...”

“알았어! 알았으니깐, 칭얼대지 말고 그냥 잠자코 있어!”      


같은 말만 반복하는 어머니의 변명에 짜증이 치민 금식은 열이 오른 언성으로 매몰차게 다그쳤다.     


“어쩌죠. 어머님을 응대한 직원이 오늘 휴가라고 하네요.”     


창구를 다녀온 행원이 난처한 표정으로 말을 붙였다.     


“네? 휴가면...”

“그래서 연락을 취해 봤는데 전화를 받질 않아서요.”

“아...”

“일단 댁에 가셔서 출금하신 돈을 찾아보고 계시면 직원과 연락이 닿는 데로....”

“죄송합니다. 제가 그럴 여유가 없어서요...”

“그럼... 어떻게...”     


그러게 어떻게 해야 할지, 애끓는 마음에 은행 내부를 이리저리 훑던 금식의 시선이 천장 곳곳에 부착되어 있는 CCTV에 닿아 멈췄다.      


“죄송한데 CCTV 녹화한 것 좀 볼 수 있을까요?”

“네?!”     


당황함을 감추지 못한 행원은 놀란 토끼 눈이 되어 눈꺼풀을 빠르게 깜빡였다.      


“아... 그건...”     


친절한 표정을 유지하던 행원의 미간이 꾸깃, 구겨졌다.      


“CCTV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이번만큼은 아드님께서 양해를...”

“업무도 바쁘신데 너무 죄송합니다. 그런데 응대하신 여직원 분하고는 연락도 안 되고 어머니는 자꾸 아니라고만 하시니깐요. 부탁드리겠습니다.”     


행원의 단호한 거절에 금식은 허리를 굽실대며 정중히 부탁했다.


“웬만하면 저희도 응해 드리고 싶죠. 그런데 녹화 장비가 금고 안에 있어서 규정상 일반인은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삼십, 삼백도 아니고 삼천인데, 조금만 선처를 해주시면 안 될까요?”

“죄송합니다. 아무래도 규정이 그래서요.”     


금식과 행원의 한 치의 양보 없는 설왕설래에 점점 은행 안에 있는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기 시작했다.       


“김대리! 김대리!!”     


창구 안쪽 지긋한 나이의 남성이 행원을 호명하며 빠르게 손짓했다. 행원과 금식이 동시에 그를 바라봤다.      

“저분이 점장님이신데 일단 말씀 한번 드려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행원이 점장에게로 신속히 걸음을 옮기자 어머니는 슬며시 고개를 세워 금식의 눈치를 살폈다.     


“아들.... 아무래도 엄마가....”     


어머니는 자신의 실수임을 인정하고 작금의 소동을 빨리 끝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잠자코 있으랬지.”     


벌겋게 상기된 얼굴로 금식이 매섭게 흘겨보자 잔뜩 위축된 어머니는 처량하게 고개를 바닥으로 떨구곤 꿍얼대기 시작했다. 꿍얼대시건 말건, 금식은 핸드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했다. 벌써 1시였다. 기다렸다는 듯‘따르릉!’ 핸드폰 벨이 울렸다.     


“네! 사장님!”

[ 2시에 오시는 거 맞지요?]

“그럼요! 꼭 시간 맞춰 가겠습니다!”

[그래요. 오늘도 빵구내면 정말 파토야. 집주인 뿔난 거 겨우 달래 놨단 말이지. 그럼 믿고 기다릴게요.]

“네. 사장님. 감사합니다.”     


전화를 끊은 금식은 ‘후~~’ 한숨을 깊게 뱉었다. 변화 없는 표정 속에 초초함이 짙게 베어났다. 저만치 점장과 심각한 대화를 끝낸 행원이 밝은 표정으로 빠르게 다가왔다.     


“점장님께서 허락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금식은 어머니를 부축해 행원을 따라 창구 안쪽 깊숙이 위치한 금고로 향했다. 육중한 강철문이 천천히 부드럽게 열렸다. 살다 살다 은행 금고 안에 들어와 볼 줄이야. 금식과 어머니는 저도 모르게 입이 벌어졌다. 금고 입구 바로 옆, 5평 남짓한 작은 방으로 행원이 안내했다. 방안에는 모니터 다섯 대가 놓여 있는 테이블을 중심으로 2mm는 족히 돼 보이는 거대한 컴퓨터 서버가 벽면을 빙 두르고 있었다. 행원은 곧바로 테이블에 앉아 마우스를 능숙하게 움직여 어제 날짜 CCTV 녹화 분을 모니터 화면에 띄웠다. 정오를 갓 넘긴 시각, 화려한 꽃무늬 패턴이 들어간 블라우스를 입은 중년 여성이 은행 안으로 들어섰다.      


“어머님이 맞으신 것 같은데요.”     


화질이 또렷하진 않았지만 행원의 말대로 어머니임을 단박에 알아본 금식은 어금니 잘근 씹으며 뒷목을 잡았다.       


“아니야! 아니야! 저거 엄마 아니야!!”     


어머니는 버젓이 자신임을 알아봤을 텐데도 또다시 생떼를 쓰며 마구 손사래를 쳤다.     


“쫌. 가만있지 못해.”       


어금니를 꽉 깨문 채 입술을 살짝 버린 나직한 목소리로 금식은 격한 분을 표출했다. 그리곤 부산스럽게 손사래 치는 어머니의 오른 손목을 거칠게 낚아 쥐었다. 어찌나 세게 움켜쥐었던지 손이 아찔할 정도로 저려와 어머니는 눈살을 찌푸리며 신음했다. 하지만 이 보다 더 아픈 건 마음이었다. 이내 밀물처럼 밀려든 서글픔에 마음이 아려온 어머니는 두 분이 촉촉이 젖어들었다. 이런 마음을 알 리 없는 금식은 모니터에 온 신경을 쏟으며 집중했다. 행원이 녹화 시각 12시 15분으로 화면을 빨리 감아 돌리자 창구에 앉은 어머니가 담당 행원에게 인출한 돈을 차곡차곡 노란 종이 쇼핑백에 담고 있었다.‘잠깐. 저 노란 쇼핑백?’ 순간, 어제 어머니가 문갑에 넣고 있던 쇼핑백이 금식의 뇌리에 선명하게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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