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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파니 Jul 17. 2023

나의 첫사랑 소환귀 (13)

13화. 미안해 아들






  

“엄마! 엄마!”     


15평 남짓한 임대아파트, 현관문을 벌컥 열어젖힌 금식이 다급하게 거실을 지나 안방 문손잡이를 확! 비틀어 댕겼다.     


“에구! 깜짝이야!”     


오동나무로 만든 오래된 양문형 문갑에 두툼한 노란 종이 쇼핑백을 넣고 있던 어머니가 마른 몸을 흠칫 떨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곱게 들어오지! 왜 이리 호들갑이야! 아유~~ 간 떨어질 뻔했네.... 콜록!”

“뭐 하는데 이렇게 전활 안 받아!!”     


금식은 씩씩대며 목청껏 짜증을 분출했다.     


“가게 전화하니까, 사장님은 엄마가 1시에 나갔다고 하는데!! 지금 몇 시인 줄 알아?!!!”      


놀란 가슴을 다독이며 어머니는 벽시계를 향해 고개를 세웠다. 오후 5시였다.     


“어머!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미안해 아들....”      


문갑 위, 골동품 같은 휴대용 레코드 플레이어 옆에는 너덜하게 빛바랜 앤디월리엄스의 앨범재킷이 놓여 있고 바닥에는 해지고 얼룩진 편지 한 장과 사막을 배경으로 폼 잡고 찍은 아버지 사진 여러 장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이 광경을 세심히 훑던 금식은 성의 없이 웃으며 사과하는 어머니의 언행에 짜증을 넘어 부화가 치밀었다.      


“여태 이러고 청승 떨고 있었던 거야? 오늘 무슨 날인지 몰라?”     


최대한 감정을 억눌러 애써 차분히 묻는 금식의 목소리에 불편한 심기가 날카롭게 돋아있었다.      


“응? 오늘?... 음.... 쿨럭!”     


질문의 의도를 아는지 모르는지, 어머니는 답은 않고 다시금 아버지 사진을 지그시 바라보며 볼 발그레한 미소를 지어 보이다 레코드 플레이어로 시선을 옮겼다.      


“근데.... 얘도 나처럼 늙어서 그런지 소리가 영 신통치 않네.”     


레코드 플레이어를 안타깝게 어루만지며 딴소릴 읊조리는 어머니의 모습에 결국.      


“아! 쫌!!!”     


버럭! 꾸욱 눌린 화가 기어이 터져 나왔다.      


“에구! 놀래라! 얘가 오늘따라 왜 이럴까?!!”     


금식의 버럭에 재차 놀란 어머니도 덩달아 언성을 높였다.     


“오늘이 무슨 날이냐니까 딴 소릴 하고 앉았어!!”

“그러니까. 오늘이 무슨 날인데 이 난리야?!”     


금식은 두 눈을 부라리며 아랫입술을 말아 물었다.     


“우리 집 산 거. 오늘 계약서 쓰는 날이잖아.”     


치미는 부화를 어금니로 꽉 물고 애써 차분한 어조로 말하는 금식의 안색은 붉게 열이 오르고 있었다.     


“어머!! 어머!!”     


놀란 토끼 눈이 된 어머니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계약금 찾아서 2시에 부동산에서 보기로 했잖아! 오늘 아침에도 신신당부를 했는데 어떻게 그걸 까먹어?!! ”

“어쩜 좋니! 미안해 아들.... 쿨럭!”     


잔뜩 울상이 된 어머니는 용서를 바라는 죄인 마냥 간절한 눈빛으로 사과를 했지만 금식의 안색은 더욱 붉게 타올랐다.     


“자식은 눈깔이 뒤집히고 있는데, 엄만 속 편하게 분위기 잡고 앉아 혼자 신났네!”

“에휴.....”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닌데, 자식의 빈정거림이 못내 서운하지만 어머니 본인이 생각해도 도무지 납득이 안 되는 자신의 행동에 그저 애달픈 한숨으로 대답을 회피할 뿐이었다.        


“하아~~~”     


허탈한 탄식을 뱉어낸 금식은 망연히 어머니를 응시했다.     


“미안해 아들.... 엄마가 노망이 났나 보다... 에휴....”     


잔뜩 움츠린 채, 속 깊은 한숨과 함께 들썩이는 어머니의 작고 왜소한 어깨가 금식은 순간 안쓰럽게 느껴졌다.    


“1시에 가게 나와서 계속 집에 있었던 거야?”     


날카롭게 솟았던 금식의 목소리가 조금은 누구러졌다.      


“아니. 그게... 엄마가 요즘 허리가 좀 아파서 병원에 갔다 왔는데....”

“2시부터 수십 통을 했는데 진료 끝났음 전활 받아야 할 거 아니야.”

“엄마 귀가 어떻게 됐나 보다... 벨 소릴 못 들었어.”     


들꽃 자수가 새겨진 진갈색 천으로 만든 꼬질꼬질한 토트백에 손을 넣고 이곳저곳을 찔러보던 어머니는 심각한 표정으로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연한 분홍색 핸드폰의 폴더를 열자 20통이 넘는 부재중 전화가 찍혀 있었다.   


“어머! 진동으로 해놓고 몰랐네.... 미안해 아들.... 쿨럭! ”

“하아~~ 그놈의 미안하다....”     


또다시 짜증이 밀려온 금식은 지겹다는 듯 뒷목을 잡고 고개를 젖혔다.      


“그래서. 의사가 뭐래?”

“응? 으응. 디스크래. 심각한 건 아니고 물리치료 열심히 받으면 된대... 쿨럭!”     


금식은 냉담한 표정으로 멋쩍게 웃고 있는 어머니의 오른손을 노려봤다.     


“손은?”

“손?”  


핸드폰을 쥐고 있는 어머니의 오른손은 금식이 방문을 열고 들이닥치기 전부터 '달달' 떨리고 있었다.       


“그럼 기침은?”     


작정했다는 듯 조목조목 따져 묻는 기세에 어머니는 흠칫 당황했다.     


“아유~~ 별거 아니야. 그냥 약 열심히 먹으면....”

“술은 냄새도 못 맡는 양반이 알콜 중독자처럼 손 떨고 폐병 환자처럼 계속 기침을 해대는데 별개 아니야?!!”     


기어이 또 터져버린 금식의 버럭에 어머니는 쭈볏쭈볏 왼손으로 오른손의 떨림을 잡아 누르며 목구멍을 치고 나오려는 기침을 꾸욱 눌러 삼켰다.     


“얘는 괜찮다는데 난리야... 약 먹고 하면...”

“하아~~!!!”     


더욱 깊은 한숨이 목구멍을 헤집고 터져 나왔다.     


“그러게 일 그만두라니까! 왜 말을 안 들어?!! 정말 연탄불 앞에서 돼지 껍데기만 굽다 관뚜껑 닫을 작정이야?!! 오늘처럼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것도 그렇고, 봐! 봐! 지금 꼴사납게 손 떨면서 기침하는 것도 다아~ 연탄가스 중독 때문이라고! 젠장!! 풍 맞고 기저귀 차고 싶어?!!”     


금식은 야박하다 못해 독하게 다그치며 어머니를 몰아붙였다.        


“아유~~ 의사 선생님이 그것 땜에 그러는 거 아니래. 엄마 나이 되면....”

“아니라고?!”      


금식은 또 다른 꼬투리를 잡았다는 듯 험하게 눈을 번뜩였다.     


“연탄불 앞에서 20년 넘게 껍데기 굽고 있다고 의사한테 얘기했어?!”

“아니.... 그런 얘길 굳이.....”     


속내를 들킨 어머니는 난감한 표정 되어 시선을 바닥에 떨구었다.      


“엄마! 솔직히. 그거 자존심 때문이잖아!”

“얘는! 무슨?!”     


당황한 기색을 발끈 드러내며 금식을 올려다본 어머니는 아들의 완고한 눈빛에 시선은 다시 바닥을 향했다..     

“기억 안 나?! 껍데기 맛집으로 방송국 촬영 나왔을 때, 엄마가 별 이유 없이 촬영 거부하니까! 가게 사장님이 나한테 전화해서 엄마 설득해 주면 시급도 올려주고 보너스까지 준다고 했는데! 그렇게 돈돈돈 하는 사람이 왜 그랬겠어?! 쪽팔려서 그런 거잖아!"     


속을 제대로 뒤집어 놓을 작정으로 지난 일까지 들춰내는 금식의 야멸찬 질책에 어머니는 ‘끙’ 앓는 한숨과 함께 등을 돌리며 아버지의 사진과 편지, LP판을 주섬주섬 정리하기 시작했다. 금식이 융단 폭격처럼 말을 쏟아내면 어머니에 최선의 방어는 늘 상 침묵이었다. 아무런 대꾸 없이 정리에 몰두하는 어머니의 뒤태에서 말 못 할 속상함이 고스란히 묻어났다.       


“그러니까 일 그만두면 서로 이렇게....”

“알았어. 엄마가 알아서 할게.”     


어머니는 항상 이런 식이었다. 참다못하면 맥락 없이 매섭게 말을 잘랐다.       


“또 그 소리! 알아서 하긴 뭘 알아서 해!! 이젠 내가 버는데, 도대체 무슨 미련이 남아서 못 그만두는 거야?!! 아주 그냥 오늘 말 나온 김에 끝장을.”     


'따르릉! 따르르릉!' 금식의 핸드폰 벨이 다시금 벌겋게 달아오른 감정을 막아섰다.      


“네에~~~ 고객이임~~~!”     


우락부락 꼭지가 돌기 일보 직전이었는데, 금식은 변검 수준으로 안색을 바꾸곤 세상 상냥하게 전화를 받았다.     


“아이고~~ 별말씀을요~~ 예쁘게 봐주시니 그저 뭉클하게 감사할 따름이죠~~ 하하하!”     


이 모습을 곁눈질하던 어머니는 샐쭉 히 입술을 내밀며 고까운 심기를 드러냈다. 엄마에게도 고객 대하듯 하면 좋으련만.      


“아~! 잠깐 들리신 다고요?! 아무렴요! 딱 준비해 놓고 기다릴 테니까 맘 편히 조심히 오세용~”       


자본주의 비음으로 닭살 돋게 전화를 끊자마자 급 냉담한 표정으로 돌변한 금식은 싸늘히 어머니를 바라봤다. 다시 팽팽한 긴장이 감돌았다.      


“엄마.”     


오늘은 정말 이대로 넘어가지 않겠구나,라고 생각했던 목소리가 너무나 차분하다. 몸을 살짝 돌린 어머니는 조마조마한 눈초리로 금식을 올려다보았다.     


“담엔 나랑 같이 가.”

“응?”

“병원.”     


뜬금없는 제안이 당황스러운 어머니는 말똥말똥한 눈으로 금식의 표정을 살폈다.      


“얘는~~ 바쁜데 그럴 거 없어. 아직까진 엄마 혼자서 잘 다니니까, 신경 안 써도 돼!”     


어머니는 정색하고 손사래를 쳤다.     


“아니야. 무릎도 안 좋은 양반, 버스 타고 다니는 것도 마음에 걸리고. 여튼 앞으론 편하게 차로 모실께.”     


말로 채찍을 휘두를 땐 언제고 이젠 자상함을 살짝 곁들인 당근이다. 끝장을 볼 것 같던 불같은 감정이 고객과의 통화로 인해 한풀 꺾인 것도 있지만 실은 어머니의 지병을 이대로 방치했다간 더 큰 화를 불러올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컸다.     


“아유~~ 괜찮대도 그러네....”     


말은 이렇게 해도 딱 잘라 거절하지 않음으로 대답을 대신한 어머니는 입가에 번지는 미소를 숨길 수 없었다. 금식의 모진 말에 상처를 받긴 했지만 그래도 자식밖에 없다는 생각이 마음에 훈풍을 채우며 냉랭했던 어머니의 양 볼에 연분홍 생기를 차올렸다. 별것도 아닌 말에 티 없이 밝아진 어머니의 모습이 마치 아이 같아 짠한 마음이 든 금식은 ‘쩝’ 입맛을 씁쓸히 다셨다.     


“바빠도 할 건 해야지. 그리고 계약서 쓰는 건 낼 2시로 다시 잡아 놨으니까 잊지 말고.”

“낼 2시 부동산!”     


꼬질한 토트백에서 달력으로 만든 공책을 꺼내 든 어머니는 소리 내 복창하며 갈피에 꽂혀 있던 삼색 볼펜의 빨간색으로 꾹꾹 눌러 받아 적었다.     


“엄마가 내일은 정신 똑바로 차리고 갈게! ”     


결의 찬 눈빛으로 다짐을 하는 어머니가 당최 미덥지 못하지만 어쩌랴.     


“알았어요. 나 오늘 늦으니까 저녁 기다리지 말고 드셔.”     


금식은 말이 끝나기 무섭게 현관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러지 말고 잠깐 들러서 먹고 가.”

“됐어. 한 끼 굶는다고 안 죽어.”     


현관까지 쫓아 나온 어머니는 작업화를 신으려 앉은 금식의 등을 안쓰럽게 매만지다, 아들이 신고 있는 검정 양말 엄지에 구멍이 나 발가락이 튀어나와 있음을 보고 황급히 말렸다.     


“아들. 잠깐만.”

“아, 왜? 나 빨리 가봐야 돼.”       


잰걸음으로 옷방을 향한 어머니는 새 양말을 챙겨 나와 건넸다.     


“갈아 신고 가.”

“아! 바빠!”

“갈아 신어~~”


어머니는 대뜸 금식의 발목을 잡고 양말을 벗겨냈다.     


“아아! 알았어! 내가 할게!”     


갈아 신은 양말을 짜증 섞게 내던진 금식은 부리나케 걸음을 재촉했다.        



***     


다음날.     


“감사합니다. 기사님 덕분에 수월하게 내렸네요.”     


공방 입구 한 켠에 10장 정도의 집성목재를 기사와 함께 트럭에서 모두 내린 금식은 비타민 음료를 건넸다.      

“별말씀을. 돈 벌게 해 주시는데 이 정도는 쏴아~비스지. 하하하! ”      


넉살 좋게 웃으며 트럭 운전석에 오른 기사는 시동을 걸며 차장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자아~~ 그럼, 안목(안전목공) 하시고. 이만 갑니다.”

“네. 살펴 가세요!”     


트럭이 떠나자 금식은 급하게 공방 안으로 들어와 벽에 걸린 시계를 확인했다. 오후 1시를 갓 넘긴 시각, 곧바로 핸드폰을 꺼내 들자 ‘따르릉!’ 타이밍 좋게 벨이 울렸다.     


“뭔 일이래? 안 그래도 엄마한테...”

[아들!! 여기 은행 왔는데!! 아유~!! 어떡해!!!]     


숨넘어가는 어머니의 목소리에 금식의 심장이 마구 요동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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