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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파니 Jul 10. 2023

나의 첫사랑 소환귀 (12)

12화. 유품






  

식탁 의자에 걸터앉아 마저 남은 핫바를 우적우적 씹어 먹던 수봉은 연신 꿍얼대고 있었다.     


“참네~! 무서워서 맨발로 죽어라 뛸 때는 언제고 뒤처리 하는 건 또 죽어라 하고 싶었나 보... 케헥! 쿨럭! 쿨럭!”     


꿍얼대며 씹어 넘기던 핫바에 결국 사래가 걸린 그는 촐싹맞게 자기 등을 마구 두드려댔다.     


“아우~! 쪽팔리게 핫바 먹다 죽을 뻔했네...”     


‘쏴아아~쿠르르~’ 변기 물 내리는 소리가 나직하게 울리자, 수봉의 귀가 쫑긋! 예민하게 반응하며 시선은 자연스럽게 화장실로 향했다.     


“살다 살다. 귀신이 싸고 앉았거덩~~ 당최 현실감이 없단 말이야!”     


‘끼이익~~’ 화장실 문이 늘어진 비명을 지르며 살며시 안으로 당겨졌다. 이내 모습을 드러낸 금식을 향해 수봉은 쓸데없이 진지한 표정으로 그를 응시했다. 화장실이 문이 열리기 무섭게 뛰쳐나온 소라는 ‘다다다닥!’ 요란한 달음질과 함께 이층으로 쌩하니 사라졌다. 손에 쥔 수건으로 젖은 발을 연신 훔치며 다가오는 금식의 야릇한 미소에서 소라의 뒤처리 그 이상의 만족이 있음을 수봉은 직감했다.     


“어떻게? 뒤처리는 별문제 없이.... 좋았냐?!”

“응... 응?!!”     


잘했냐가 아니라 좋았냐라니, 수봉의 저의를 한 박자 늦게 깨달은 금식은 아차 싶었다.     


“에휴~! 어째 생각하는 게 매사가 그 모양이냐!! 넌 이게 좋아 보여?! ”     


강한 부정은 긍정임을 금식은 격하게 높인 언성으로 표출하며 식탁 의자 등받이에 수건을 널어놓곤 털썩! 주저앉았다.       


“발끈하는 걸 보니 맞네~~!”     


꼬투리를 잡았다는 듯 수봉은 신나게 빈정댔다.     


“걔 얼굴을 보고도 그런 말이 나오냐?!! 이 짓을 얼마나 해야 할지 심란해 죽겠구만!!”      


인상을 구기며 식은 밥을 한 움큼 떠 우적대는 금식을 위아래 훑던 수봉은 느물 느물한 표정으로 말을 받았다.     

“아무렴~~ 얼굴은 그래도 첫사랑인데~~ 볼일을 함께 봐야 되니 심란해 죽을 만큼 좋겠지~~~”     


한층 수위를 올린 수봉의 빈정거림에 더욱 가열차게 발끈할 만도 한데 그는 말없이 고개만 가로저으며 밥과 김치를 입안 가득 채워 넣을 뿐이었다.     


“여차하면 목욕시키면서~~ 때도 밀고 등도 밀고~~ 크흐흐흐~”          


계속되는 빈정거림에도 묵묵하던 금식은 순간, 고개를 무섭게 치켜들며 수봉을 강렬한 눈빛으로 쏘아보았다. 그리곤 콧등을 마구 씰룩이다, 버럭! ‘푸하에엨츀!!!’ 거한 재채기와 함께 그의 입에서 뿜어져 나온 걸쭉한 음식물들이 수봉의 얼굴에 반갑게 날아들었다. 특히 미처 닫지 못한 그의 입에 집중적으로.       


“어이쿠! 미안하다! 갑자기 재채기가... 일부러 나왔네!”     


황급히 일어난 금식은 의자 등받이에 널어 두었던 수건으로 천연덕스럽게 수봉의 얼굴을 꼼꼼히 닦아주었다. 역시나 그의 입을 집중적으로. 느닷없이 당한 터무니없는 더러움에 잠시 넋을 잃은 수봉은 자신의 얼굴을 닦고 있는 수건의 정체를 불현듯 깨달았다.     


“잠깐, 이 수건...”

“으응~~ 괜찮아. 니 주댕이보다 깨끗해.”     

“끄아아아 아~~!!!”     


경황없이 연속으로 당한 더러운 응징에 그제야 수봉은 지랄발광, 몸부림을 쳐댔다. 잽싸게 서너 발 물러난 금식은 미친 닭 마냥 파닥이는 수봉을 보며 너무나 흡족하게 입꼬릴 세웠다. 하지만 이대로 당할 수봉일 쏘냐. 지랄파닥을 일순 멈춘 수봉은 금식이 먹던 밥그릇을 두 눈 시퍼렇게 쳐다보더니 냅다, 남은 밥과 김치를 한입에 털어놓곤 마구 우적대며 금식을 두 눈 시뻘겋게 쳐다봤다.     


“(오물오물)금딕아~~ (오물오물) 이디와~~”

“어! 어! 저리 안 가!!”

“(오물오물) 그덤 못 떠~~ 이디와~~ 어서!!!”     


어서!! 란 호령과 함께 수봉이 양팔을 날카롭게 치켜들고 점프를 하려는 찰나, '왔어! 왔어! 와아았써어~~ 전화! 전화!'  수봉의 전화벨이 금식을 살렸다.     


“(오물오물) 녀어~! 똭! 기둘려~”     


핸드폰 발신인을 확인한 수봉은 흠칫 놀라 걸쭉하게 씹어놓은 음식물을 꾸울꺽! 한숨에 삼켰다. 금식도 안도의 한숨을 삼켰다.     


“아이고~ 어쩐 일이에요~ 우리 순희 씨가 전활 다 주시고~~”

[% # @ * !~~]

“아... 그래요. 아니 그런 건 아니고. 전화기가 꺼져 있는지 몰랐나 보네...”

[% # @ * !~~]

“네. 잠깐 자릴 비웠는데... 제가 찰떡같이 전달해 드릴 테니까 속 시원하게 말씀해 보세요~”

[% # @ * !~~]

“금식이 공방에 들리신다고요? 아니 그런 걸뱅이 소굴엔 뭐 하러?”

[% # @ * !~~]

“아... 그래요?!”      


순희에게 무슨 얘길 들었는지 수봉은 살짝 놀란 눈치였다.     


"네. 알았어요~ 그나저나 꽃집 언니하고 미용실 언니랑 간만에 다같이 모여 쐬주 한잔해야 하는데~”

[% # @ * !~~]

“그러죠. 조만간 춘배 행님 포차에서 뵈요.”

[% # @ * !~~]

“아무렴요. 이번엔 금식이도 꼭 끌고 갈께요.

[% # @ * !~~]

"네~~ 순희 씨! 들어가세요~~”     


어딜 들어가라는 건지, 등을 보이고 통화를 하던 수봉은 전화를 끊자마자 휙! 몸을 돌려 금식을 째려보았다. 그의 입에 음식물이 없음에도 몸을 휙 돌린 수봉의 행동에 반사적으로 긴장한 금식은 뒷걸음질 쳤다.      


“우이쒸! 오지 마! 다가오면...”

“순희 씨한테 화장품 준다고 했냐?!”

“응?”


훅! 하고 들어오는 질문에 잠시 당황한 금식은 이내 대수롭지 않은 표정으로 뒷걸음을 멈추고 식탁 의자에 다가와 앉았다. 수봉의 입술이 꼬물거리며 빈정거릴 준비를 했다.     


“하여간 똥 묻은 개가 부뚜막에 먼저 오른다고~~ 뒷구녕으로 할 짓은 다 하고 있었구만! 어째 반창고를 살갑게 붙여주더라니.”

“네가 생각하는 그런 거 아니야... 그리고...”     


수봉을 위아래 훑던 금식은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며 말을 이었다.     


“똥 묻은 개가 아니고 얌전한 고양이야.”  

“이~봐! 이~봐! 말 돌리거 보니 맞네 맞아! 뭐 어쨌건 화장품을 받겠다는 걸 보니 순희 씨도 너한테 맘이 있는 게 확실하네.”     


금식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빈 그릇들을 정리해 겹쳐 들고 싱크대로 자릴 옮겼다. 그리곤 고무장갑을 끼고 설거지를 시작했다.     


“근데, 선물을 줄 거면 뭔가 로맨틱한 분위기에서 서프라이즈 하게 줘야지. 딱 까놓고 화장품! 하고 주는 놈이 세상에... 아~~ 여깄 지. 쯧쯧!”      


한심하게 혀를 차는 소리에도 묵묵부답, 금식은 설거지에 열을 올렸다.     


“이런 일 있을 땐 꼭 엉아하고 상의 좀 하자. 내가 그래도 너보다는 여자 마음을  쪼매~~ 간을 봐서 아는데, 그거 그렇게 막 하는 거 아니다.”     


금식은 얕은 숨을 내 쉬며 무겁게 입을 열었다.     


“엄마거야...”

“뭐?”     


더욱 거세게 야유하며 놀려 먹으려는 심산이었데, 당황한 수봉은 덤덤히 내뱉는 그의 대답에서 날카롭게 솟은 감정을 느꼈다. 되도록 어머니 얘긴 하지 않으려 조심했건만, 의도치 않은 상황에 미안함과 후회가 밀려왔다.

설거지를 마친 금식은 고무장갑을 벗고는 싱크대의 물기를 행주로 잠잠히 닦아 냈다. 물기를 흥건히 머금은 행주가 금세 질척였다. 그런 행주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금식의 마음도 질척였다. 수봉이 머쓱하게 웃으며 말을 건넸다.


“하하... 그, 그랬구나. 에이... 그래도 줄려면 새 걸 주지. 어머니 쓰시던걸...”

“새 거야.”     


행주를 비틀어 짜내며 답하는 금식의 목소리가 조금은 홀가분했다. 꽉 짠 행주가 팍! 팍! 허공에 마찰음을 내며 그의 손에서 반듯하게 펄럭였다.      


“사드린 그대로 포장도 안 뜯고 모아 뒀더라고...”     


충분히 이해한다는 듯 수봉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다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금식을 바라봤다.     


“근데? 괜찮겠어...?”

“뭐가?”

“몇 개 안 남은 어머니 유품인데...”     


유품이란 말에 금식의 입가에 엷은 미소가 쓸쓸히 흘렸다.     


“갖고 있음 뭐 해... 아깝잖아...”     


짧은 변명 속에 아픔이 길게 묻어났다. 금식을 숙연히 바라보던 수봉은 미간을 집게손가락으로 꼬집어 잡고 속상한 듯 아랫입술을 말아 물었다.     


“울 엄니는 끼니때마다 화장품을 드시는지 어제도 장바구니 한가득 사 들고 오시더라고... 에휴~! 이젠 제발 그만 드시고 피부에 양보 좀 하라고 말씀드리면 그렇게 발로 까신다!”      


금식은 자신을 달래려 어머니까지 동원한 수봉의 말장난이 왠지 모르게 고마워 가볍게 웃어 보였다.      


“너도 붕어빵이라 잘 알겠지만 너희 어머니 머리가 좀 크시니. 남들보다 두 세배 더 쓰신다고 너무 타박 말고 생활비 좀 올려 드려.”     


뭔 이딴 소릴 차분한 어조로 진정성 있게 말하는지. 수봉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밥통으로 다가가 뚜껑을 열어 밥 한 숟가락을 크게 떴다.     


“아까 하던 거마저 하세~”

“험! 화장품이 이층에 있었지 아마...”     


금식은 쏜살같이 이층 계단으로 향했다. 수봉은 간다고 소리치곤 현관을 나섰다. 2층에 올라 소라가 어디에 있나 둘러보니 역시나 그녀는 처음 기어 나왔던 방안 허물어진 잡동사니 박스 사이에 웅크린 채 잠들어있었다. 새근새근, 곤한 숨소리에 맞춰 그녀의 가슴이 여리게 들뜨고 가라앉았다.

방 문에 기대어 그녀를 바라보던 금식의 입에서 깊은 한숨이 나직이 새어 나왔다. 그 한숨의 의미는 후회와 연민이 당연했다. 자른 듯 시선을 돌린 금식은 베란다 창가 쪽에 쌓아둔 박스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녀가 깰까 조심스럽게 포개져 있는 박스를 내리며 하나둘씩 펼쳐 놓기를 몇 차례, 어머니의 유품이 담긴 박스가 6개월 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박스를 열자, 휴대용 산소호흡기를 착용하고 곱게 화장을 한 어머니가 형형색색 꽃들 사이에서 꽃처럼 웃으며 그를 반겼다. 사진 속 어머니의 웃음이 전염됐는지 그의 입가에도 미소가 번졌다. 사진을 다소곳이 내려놓은 금식은 박스 맨 밑에 깔려 있는 화장품 상자를 꺼내기 위해 어머니의 손때 묻은 일상용품을 하나둘씩 꺼내 들었다.

낡디 낡아 천을 덧댄 동전 지갑과 안경집, 빗살 부러진 머리빗, 이빨 빠진 손톱 깎기 등 어머니의 삶을 대변하는 듯 뭐 하나 멀쩡한 것이 없었다. 그중에서도 뒷면이 백지인 달력을 수첩 크기로 잘라 삐뚤빼뚤 스테이플러로 찍어 만든 공책은 소라에게 느꼈던 후회와 연민의 한숨을 다시금 내뱉게 했다.

달력 공책에는 당일 해야 될 일은 물론 누구와 통화를 했는지,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 그리고 집 안 곳곳에 수납된 물건과 평소 사용하는 가재도구들의 위치등 기억을 붙들어 매기 위해 안달 난 흔적이 역력했다. 한글을 갓 익힌 아이 같은 어눌한 글씨체로 꾹꾹 눌러쓴 사소하고 세세한 매일의 기록. 그 빼곡한 기록들 사이, 빨간 밑줄이 그어진 신경과, 신경외과, 내과 진료일, 하루 일곱 번의 처방 약 복용시간들.      


“맨날 미안하다, 미안하다...”     


가슴에 차오른 서글픈 푸념이 입 밖으로 떠밀려 나왔다. 달력 공책을 쥔 손에 묵직한 힘이 흐르다 맥없이 끊겼다. 이제와 무슨 소용이랴. 금식은 체념 어린 표정으로 다시 박스 안을 훑었다. 70년대 출시된 손잡이가 달린 휴대용 레코드 플레이어와 겉표지가 너덜한 빛바랜 LP판이 시선을 잡아끌었다. LP판은 영화‘모정’의 주제곡 ‘Love is a Many Splendored Thing’이 타이틀 곡인 앤디 윌리엄스의 음반이었다. 탄식 같은 콧숨을 낱게 뱉어낸 금식은 그날, 어머니에 대한 기억을 다시금 짙게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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