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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파니 Jun 26. 2023

나의 첫사랑 소환귀 (10)

10화. VIP 서비스








‘끄르르... 끄륵... 꾸오오~~’ 소라의 위장이 내지른 아우성에 분투하던 분위기는 급 반전되며 묘하게 민망한

기류가 흘렀다.      


“배, 배고픈가 본데...”     


수봉이 어색하게 입을 열었다. 그의 말에 금식은 완강하게 짓눌렀던 그녀의 몸에서 느그적 일어섰다. 기선이 제압당한 소라는 종전의 난폭했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그의 눈치를 살피며 몸을 움츠렸다. 그런 그녀를 바라보는 금식의 눈빛에 측은함이 서렸다. 소라의 끔찍한 피칠갑 얼굴이 문득, 가엽게 느껴졌다. 주눅 든 표정으로 금식과 수봉을 번갈아 보던 소라는 슬그머니 일어나 계단을 향해 천천히 옆걸음질 쳤다. 둘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계단에 다다른 그녀는 지체 없이 이층으로 내달렸다.     


“근데 쟤 언제 불러냈다고 했지?”     


그런 소라를 보던 수봉이 소중이를 살포시 감싸 쥐고 일어서며 물었다.     


“어제 새벽...”     


덤덤하게 답한 금식의 표정에서 씁쓸함이 담겼다.     


“아이고~ 나는 한 끼만 굶어도 위아래가 없어지는데... 쯧쯧”     


수봉은 혀를 차며 소중이에 조금의 자극도 가지 않게 엉거주춤 소파로 향해 엉덩이를 묻었다. 금식은 안방 문 앞, 벽을 등지고 쌓아둔 풀어헤쳐진 박스로 시선을 돌렸다. 수봉도 그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움직였다.     


“먹을 걸 찾고 있었나 봐. 쟤도 참! 무작정 달려들게 아니라, 배가 고프다고 말을 하지. 에휴~~”     


수봉의 한탄에 금식은 소라가 있어 바라보듯 이층 계단으로 시선을 옮겼다. 수봉은 순간 자신이 뱉은 말에 의문이 들어 고개를 갸웃했다.     


“말을... 못 하나...?”     


이층 계단에서 시선을 거둔 금식은 수봉을 차분히 응시하며 말했다.     


“밥 사러 가자.”      



***     


'드루와' 편의점 상호처럼 금식과 수봉이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어서 오... 어머!”     


계산대 안에서 반갑게 인사하던 순희는 금식과 수봉의 얼굴을 보고 두 눈이 땡그레졌다. 찢긴 옷은 말끔히 갈아입은 두 사람이지만 머리채가 잡힌 듯 마구 헝클어진 머리털과 벌겋게 부어오른 뺨, 그리고 얼굴 곳곳에 긁힌 상처가 선명했다.     


“두 분... 싸우셨어요?”

“에이~ 그럴 리가. 얜 나한테 깜도 안 돼~!”     


수봉은 금식을 가리키며 순희에게 너스레를 떨었다. 금식은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입구와 계산대 사이에 구비된 플라스틱 바구니를 양손에 집어 들고 제품매대로 향했다.      


“근데? 두 분 얼굴이... 왜.... ”     


말끝을 흐린 순희의 찡그린 미간에서 진심 어린 걱정이 배었다.     


“하하! 별건 아니고.”     


수봉이 변명 거릴 찾으려 눈알을 굴리는 사이 순희는 무슨 할 말이 있는지 입술을 쪼물거렸다.      


“실은... 황순경 님 차 타고 가면서 금식 공방장님이 맨발로 뛰어가는 걸 봤거든요... 굉장히 심각해 보이던데...”

“응?! 아~~ 보셨구나...”     


수봉은 진중하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맞아요. 금식이한텐... 마음의 병이 있답니다. 그러니까 순희 씨. 오늘처럼 금식이가 맨발로 뛰는 걸 보거든! 꼬옥~ 인근 파출소에 신고해 주세요.”        


수봉의 말에 사뭇 놀란 순희는 큰 눈을 더욱 크게 키웠다.     


“하나밖에 없는 친구 놈이 저러니, 정말 속상하네요...”

“저... 그럼 공방장님도... 마음에 병이....”

“네?! 저요?”     


순희는 얼굴을 엷게 붉히며 머뭇대던 말을 이었다.     


“아까... 팬티만 입고 뛰어가시던데...”

“하아~! 그것도 보셨구나.”     


수봉은 두 눈을 꾸욱 감고 고개를 파르르 떨다 세상 진지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순희 씨.... 그거 반바지예요.”

“반바지요?”

“그럼요~! 설마 제가! 아유~ 저 미쳐도 고옵게 미칩니다. 하하하!”

    

당연히 통할 리 없는 변명에 겉으론 웃었지만 속으론 쪽팔려 울고 싶은 수봉이었다.      


“비켜!”     


금식은 수봉을 밀치며 각종 가공식품과 음료를 바구니 두 개에 가득 담아 계산대에 올렸다.     


“어머! 집에 손님 오시나 봐요?”

“네?! 아, 아니요. 그냥, 한 번에 사두면 편할 것 같아서...”

“아....”     


순희는 눈웃음 지으며 능숙하게 바코드를 찍어댔다. 그사이 수봉은 계산대 위에 있던 얇고 길쭉한 소시지 두 개를 은근슬쩍 끼워 넣었다.     


“남의 밥그릇에 숟가락 그만 꽂고 니 돈 주고 사드시죠.”     


금식이 핀잔을 주자 수봉은 매우 티꺼운 표정으로 입술을 실룩였다.     


“오늘 자네 똥 치우느라 남성성을 잃을 뻔한 친구에게 너무 야박한 거 아닌가?!”

“넌, 말을 해도 꼭!”      


연신 바코드를 찍던 순희가 풉! 하고 짧은 웃음을 터뜨렸다. 그녀의 웃음에 얼굴을 붉힌 금식은 손을 뻗어 수봉의 주둥이를 잡아 뽑으려 했다..     


“오늘 정화조 치셨나 봐요?”       


순희도 장난기가 발동했는지 한몫 거들었다.     


“아, 아니! 그런 게 아니라....”

“도합 8만 7000원 나왔네요.”     


말하지 않아도 된다는 듯 순희는 웃음기 머금은 낭랑한 어조로 금액을 말하며 금식의 변명을 끊었다. 그에게 카드를 받아 단말기에 꽂은 순희는 계산대 서랍에서 무얼 찾는지, 이리저리 뒤적였다. 결재 요청이 끝난 단말기에서 카드를 분리해 금식에게 건넨 그녀는 수봉 쪽으로 소시지를 들이밀며 씽긋 웃었다.     


“이건 서비스예요.”

“캬아~! 이러니 우리 순희 씨! 우리 순희 씨 하지. 이거야말로 진정한 고객 감동 서비스 아니겠어!”     


수봉의 칭찬에 또다시 씽긋 웃어 보인 순희는 비닐봉지에 물품을 담고 있는 금식의 이마를 향해 살며시 양손을 뻗었다.      


“그리고 이건...”     


이마에 난 손가락 한마디 정도 길이의 깊게 긁힌 상처에 일회용 밴드를 붙여 주었다.     


“공방장님 서비스예요.”     


두근! 금식의 심장이 먼저 반응했다. 곁에서 지켜보던 수봉의 입이 살며시 벌어지며 놀란 감정을 드러냈다.       

“저희 vip 고객님이신데 마음 써 드릴 게 이거밖에 없네요.”     

 

아무렇지 않게 반달 웃음 짓는 순희를 보고 있자니 금식은 종잡을 수 없이 얼떨떨했다. 반창고를 붙여준 게 뭐 대수라고. 단골에게 좀 더 살가운 친절을 베푼 것일 뿐, 이라고 생각을 하면서도 왜 이리 심장은 내달리는지. 속내를 들키고 싶지 않은데 금식의 두 볼이 눈치 없이 발그레해졌다.     


“아, 아니요.... 고, 고맙습니다... 그, 그럼.... ”     


순희의 얼굴을 쳐다보지 않은 채 무뚝뚝하게 인사한 금식은 황급히 편의점을 나섰다. 수봉은 금식을 따라나설 생각은 않고 순희를 빤히 쳐다보았다.     


“순희 씨. 아까 좋아하는 사람 있다고 했는데....”     


때마침, 남자 손님 5명이 '우르르' 편의점 안으로 들어왔다. 담배를 주문한 손님들 때문에 뒤로 밀린 수봉은 하는 수 없이 그들을 째려보며 편의점을 나섰다.



***     


금식은 전자레인지에 햇반을 돌리며 라면을 끓이느라 분주했다. 수봉은 식탁에 앉아 서비스로 받은 소시지를 베어 물며 좀 전의 일을 떠올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너한테 마음이 있는 것 같단 말이지. ”

“그만해라. 오는 내내 하더니 질리지도 않냐?!”

“아니 그렇잖아. 피가 콸콸! 쏟아지는 것도 아닌데, 그깟 상처에 굳이 반창고를 붙여 주는 걸 보면... 뭔가 마음이 있는 거 아니겠어.”

“못 들었어? VIP 서비스. 편의점 오픈하고 하루가 멀다 하고 팔아 줬잖아. 그냥, 단골 관리 차원에서 한 거야. 그리고 마음에 있으면 반창고를 붙여 줄게 아니라 말을 했겠지.”

“에해~! 답답한 친구 좀 보소. 그게 인마. 난 너한테 마음은 있지만 모양 좋게 고백은 네가 좀 해주면 안 될까~!라고 반창고를 통해 말한 거잖아. 감이 안 와?!”

“뭔? 양 대가리 놓고 개고기 파는 소리야?! 반창고가 말을 해?!”

“아니! 반창고가 말을 하는 게 아니라~!! 순희 씨가 너한테 신호를 보낸... 아오~!”     


복장 터진 수봉은 소시지를 한입에 욱여넣었다.      


“됐고! 반창고가 말을 하든 말든 난 아무 감정 없으니까.”      


금식의 말에 수봉은 입안 가득 씹고 있던 소시지를 급하게 삼키곤 말했다.      


“허이구~! 근데 얼굴은 왜 그렇게 붉히셨을까~?!”

“아~~ 몰라! 그만 나불대고 이층 올라가서 소라나 데려와!”

“뭘 데려와? 벌써 와 있구만.”     


수봉의 말대로 소라는 계단 말미에서 부엌을 향해 기웃대고 있었다. 음식 냄새가 자연스럽게 이층까지 올라갔을 터였다. 햇반과 라면 그리고 김밥과 군것질거리 등을 그릇에 오밀조밀하게 담아 식탁 위에 정갈하게 상차림을 마친 금식은 소라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그가 다가서자 소라는 경계를 하는 것이 역력한 눈빛으로 계단 중간 층계참까지 뒷걸음질 쳐 올랐다.      


“이리 와. 밥 먹자.”     


금식은 최대한 부드럽게 말을 건넸다. 하지만 소라는 그의 말을 전혀 이해 못하는지 고개만 갸웃거렸다.      


“배 안 고파? 밥 먹어야지.”      


손으로 밥 떠먹는 시늉을 하며 다시금 말을 걸어보지만, 그녀는 여전히 경계를 늦추지 않은 채 고개만 갸웃거릴 뿐이었다. 이를 지켜보던 수봉이 찝찔하게 혀를 찼다.     


“맞네. 쟤... 여태껏 행동을 보면, 죽기 전 기억이 싹 다 지워진 게 분명해. 봐. 말귀도 못 알아먹잖아. ”

“흠...”     


금식은 착잡한 표정으로 소라를 응시했다.     


“그냥, 따로 차려 주는 게 어때?”     


그의 말에 잠시 생각에 잠긴 금식은 직사각형 길쭉한 원목 트레이에 밥과 라면 그리고 밑반찬 몇 가지를 음료와 함께 담아 계단 말미에 놓아두고 식탁으로 돌아와 앉았다. 무심한 척 금식과 수봉이 식사를 하자 층계참에서 슬금슬금 내려온 소라가 트레이에 담긴 음식에 코를 대고 냄새를 맡기 시작했다. 함께 놓아둔 수저의 용도를 모르는지 그녀는 손가락으로 밥을 움켜쥐었다.     


“앞으로 어떡할 거야?”

“글쎄...”     


수봉의 질문에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솔직히 금식은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일단 안젤리카한테 메일은 보내놔. 소라를 돌려보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리고 되도록... 아니. 무조건 전화 달라고 해.”

“그래. 수신자 부담으로 부담 없이 전화하라고 네 번호 남겨 놓을게. 근데? 연락이 언제 올 줄 알고 마냥 기다려? 급한 대로 그 스님 아줌마한테 도움을 청하는 게 낫지 않겠어?”

“스님 아줌마?”

“그 왜~ 간판 들고 죽어라 뛰던.”

“아....”     


효염없는 부적 따위로  간판값을 사기 친 신선녀의 면상이 떠오르자 금식의 표정이 언짢게 변했다.     


“우선, 들어온 주문부터 마무리 짓고 생각해 볼게.”

“괜찮겠어? 그동안 쟤 뒤치다꺼리하려면...”     


말을 잇다 말고 소라를 바라본 수봉의 표정이 잔뜩 구겨졌다. 그녀가 사방으로 음식물을 흩뿌리며 양손으로 마구 집어 먹고 있었다. 인상을 구긴 수봉의 표정에 금식은 몸을 일으켜 소라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머리카락이며 옷에 음식물이 난리도 아니었다. 금식은 말없이 몸을 원위치시켰다. 그는 소라의 모습에 망연했지만 그래도 남은 밥을 먹기 위해 숟가락을 들었다.       


“으~~ 우리 멍순이도 저렇게는 안 먹는다.”     


수봉의 말에 간당간당했던 식욕마저 사라진 금식은 숟가락을 덤덤히 내려놓았다.     


"너, 예전에 우리 멍순이 하루 봐주고 죽겠다고 징징댔잖아. 애완견 보살피는 거랑 차원이 완전 다를 텐데... 잠깐, 쟤는 귀신이니까... 애완귀가 맞겠네. 애완귀! 하하!”     


대단한 발견이라도 한 듯 수봉은 신나게 나불대며 금식을 바라봤다.      


“우리 수봉인 이 상황이 즐겁나 봐?!”     


눈을 부라린 금식의 한마디에 깨갱한 수봉이 다시 소라에게 시선을 돌린 순간,      


“어? 쟤?! 어어!!”     


뭔가에 놀란 수봉은 그녀를 가리키며 손가락 끝을 파르르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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