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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파니 Jun 12. 2023

나의 첫사랑 소환귀 (8)

8화. 뱀이 허물을 벗듯







수봉은 양말만 신은 채 공방 입구 밖에 비치된 벤치형 스툴에 앉아 전화를 걸고 있었다.       


[전원이 꺼져 있어...]     


통화 종료 버튼을 짓이기듯 누른 수봉은 초조함에 달달달 다리를 떨어댔다. 그의 양말에 인쇄된 앙증맞은 점박이 고양이가 떨리는 다리에 맞춰 정신없이 흔들렸다.     


“아오! 금방 온다는 말을 믿은 내가 빙다리지.”     


툴툴대던 수봉은 저만치 에코백을 메고 걸어오는 크고 선한 눈매의 귀여운 단발머리 여자에게 눈길이 끌렸다. 이내, 그의 입꼬리가 장난스럽게 실룩였다.     


“순희 씨~~!!”     


수봉의 외침을 단번에 알아들은 그녀가 화답하듯 손을 흔들며 발랄하게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햐아~! 맨날 편의점에서 보다 이렇게 밖에서 만나니까~ 가슴이 막! 쫄깃하고 반갑네요. 근데? 야간근무 아니셨나?”

“당분간 점심부터 일하게 되서요...”     


순희는 입술을 삐쭉 내밀었다.     


“저런~ 엄마가 명색이 점장인데 딸내미를 무슨 염전 노예처럼 부려먹고 말이야. 야박하시네~”

“흠, 취업 못 한 게 죄죠 뭐...” 


의기소침해진 그녀의 어깨가 풀썩 내려앉았다.     


“엄마가 유행에 너무 둔감하시다! 요즘 트렌드가 청년실업인 거 모르시나? 걱정 마요. 우리 순희 씨 번듯한 대학 나왔겠다, 조금만 있으면...”

“저. 대학 안 나왔는데요.”     


말을 일거에 잘라먹는 순희의 당당한 솔직함에 머엉~해진 수봉은 멋쩍게 웃었다.     


“하하... 그, 그렇지! 대학 나와 봤자 학자금 대출이다 뭐다~ 졸업하는 순간! 신용불량자거든. 혹시 들어 봤어요? 처녀네 야채 가게라고. 거기 사장이 내 친구에 친구에 누나에 아는 동생인데~ 걔가 고등학교 졸업하고 바로 가락동 가서 성공했다는 거 아니에요! 고졸만 돼도 충분히...”

“훗! 그 정도면 모르는 사람 아니에요. 그리고 저... 고등학교 중퇴했어요.”     


연이어 꽂히는 순희의 명쾌한 솔직함에 수봉의 얼굴이 무겁게 경직됐다.     


“아... 쫌, 노셨구나...”     


완전 착해 보였는데. 반전 있는 그녀의 인생사에 수봉은 사뭇 놀라 알아서 눈을 깔았다.      


“아니에요~ 그런 거. 그땐... 그럴 만한 사정이...”     


순희는 쓸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끝을 흐렸다.     


“아무렴요! 우리 순희 씨가 그럴 분이 아니지!”     


수봉의 말에 밝게 웃어 보이던 그녀는 일순 황당한 기색으로 돌변했다.     


“어머! 신발은 어쩌시고?”     


일찍도 알아챈 그녀의 질문에 수봉은 눈썹을 찡그렸다.     


“쩝, 말하면 길어요...”


안타까운 표정을 짓던 순희는 에코백을 이리저리 휘적이다 검은 비닐봉지 두 개를 꺼내 들었다.     


“발 더러워지니까 이거라도.”

“아이고~ 저 생각해 주는 건 순희 씨 밖에 없네요.”     


수봉은 감격스러워하며 양발에 검은 비닐봉지를 신고는 발목에 봉지 손잡이를 단단히 묶었다.      


“두 분 뭐 하세요?!”     


공방 앞에 멈춘 경찰차 운전석에서 황순경이 고개를 내밀고 불쑥 끼어들었다.     


“안녕하세요~”     


순희는 황순경에게도 수봉에게 했듯 발랄하게 인사했다. 반면 수봉은 그를 아니꼽게 응시하며 고개만 까닥였다.     


“와아~ 공방장님! 첫사랑이 정말 간절하신가 보네요.”

“뭔 소리예요?”     


황순경을 티껍게 흘기며 수봉이 물었다.     


“발톱에 봉숭아 물들이려고 봉지 씌우신 아니에요? 근데 발목까지는 좀 오바 아닌가? 하하하하!”
 

수봉의 발 봉지를 대번에 알아본 황순경은 간만에 재밌는지 호탕하게 웃었다. 하지만 이렇게 놀림을 당하고 가만있을 수봉이 아니었다.     


“황순경 님, 생일이 언제예요?!”

“제 생일은 왜요?”

“황순경 님처럼 올곧은 식물 하나 선물해 드리려고요!”

“식물이요?”

“네. 개에~~ 쓉! 싸리(개쉽싸리)라고. 쌰앙! 떡잎 식물인데!”     


삐딱한 미소를 지어 보인 황순경은 빈정대는 투로 말을 받았다.      


“공방장님. 며칠 전에 노상 방뇨 딱지 뗀 거 납부하셨어요? 아무리 만취하셔도 그렇지, 파출소 건물에 대놓고 오줌을 싸시면 안 되죠.”     


‘풉!’ 순희의 입에서 참지 못한 웃음이 삐져나왔다. 그녀를 의식해 일부러 구구절절 설명하는 황순경의 태도에 수봉은 약이 바짝 올랐지만 받아칠 밑천이 없어 울그락붉그락 인상만 구겼다.     


“순희 씨~ 편의점까지 태워 드릴게 타세요!”

“아, 그럴까요. 공방장님 저 갈게요~”

“순희 씨! 잠깐만!”     


수봉은 돌아서려는 그녀를 잡아 세우곤 속삭였다.     


“연실씨랑, 주리씨 있잖아요.”

“네.”

“요즘 황순경이 그 언니들하고 뭔가 꾸리꾸리한 소문이 돌더라고. 하여간 저런 바람돌이가 경찰이니 순박한 언니들이 믿고 당하지. 여하튼 순희 씨도 조심해요.”

“저... 좋아하는 사람 있어요.”     


순희가 사슴 같은 눈망울을 꿈뻑이며 말했다. ‘오오~~’ 수봉은 감탄하며 뱁새눈을 번뜩였다.     


“그래요. 순희 씨. 더 이상 애태우지 말아요. 난 준비 됐으니까.”

“이제 그만 가시죠!”     


수봉의 말장난에 순희는 쌩긋, 가볍게 웃고는 재촉하는 황순경의 옆자리에 올라탔다.     


“공방장님! 앞으론 노상방뇨 하지 마시고. 그냥 속 편하게 바지에 조금씩 싸서 말리세요~”     


그의 염장에 재차 쐐기를 박은 황순경은 입꼬리 길게 미소 지으며 액셀을 밟았다. 멀어지는 경찰차를 보며 수봉은 의미심장하게 중얼댔다.     


“다음엔 오줌으로 안 끝난다.”     


괄약근에 힘을 바짝 실은 수봉은 야비한 미소를 흘렀다. 이때, 경찰차가 사라진 방향에서 금식이 세상 못난 울상으로 미친 듯 뛰어왔다. 런닝복 오른쪽 어깨 소매가 너덜너덜 찢긴 채.      


“왜?! 왜?! 왜?!!”

“허억~! 허억~!”     


당황한 수봉은 자신을 맞잡고 죽어라 헉헉대는 금식에게 놀람도 잠시, 그의 발을 보고 더욱 격하게 당황했다.           

“왜에~! 왜에~!! 왜에~!!! 맨발이냐고!!!!”     


친구 걱정보다 신발 걱정이 더 큰 수봉이었다.     


“허억! 허억! 지... 지베...”

“집에?! 집에 뭐?!!”

“허억! 긔... 긔.. 긔쉐...”

“개세?!! 집에 개세가 있어?!! 어떤 개세야?!!!” 

“허억! 아... 아니...”     


금식을 뿌리치고 공방 안으로 들어간 수봉은 길쭉한 각목을 들고 뛰쳐나왔다.     


“개세! 뒈졌어!!!”     


분기탱천한 수봉을 금식이 붙잡았다.     


“허억! 가, 가지 마... 니, 니가 뒈져...”

“뒈지긴 누가 뒈져! 이래 봬도 군 요원 출신이야~!!”

“허억! 너... 공익 요원...”     


그의 만류에도 수봉은 비닐봉지를 휘날리며 금식의 집으로 내 달렸다. 기진맥진한 금식은 멀어지는 수봉을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1시간쯤 지났을까. 공방 사무실 의자에 웅크리고 앉아 시계만 뚫어 저라 쳐다보던 금식은 수봉 걱정에 좌불안석이었다.     


“이 자식 정말 뒈졌나?! 에잇!”     


박차고 일어나 작업실 한쪽 귀퉁이에 세워놓은 둥그런 목봉을 집어 들고 금식이 공방을 나서려는 순간,     


“으아아아~~”     


수봉이 눈물 콧물 범벅을 하고 달려왔다. 금식처럼 어깨 소매가 찢긴 셔츠와 밑이 뚫려 발목에서 나부끼는 검은 비닐봉지는 기본이요, 이를 능가하는 화룡점정은 분홍색 바탕에 흰 땡땡이 사각팬티 차림이었다.     


“으아~! 으으으으...”

“괜찮아! 괜찮아! 살아서 왔음 됐어!”     


울먹이며 신음하는 수봉을 금식은 꽈악! 벅차게 품었다. 너덜한 런닝복에 맨발인 남자 품에 더한 몰골의 분홍색 땡땡이 팬티 차림의 남자가 애절하게 안겨 흐느끼고 있자니, 이 둘을 보고 놀란 행인들의 표정에선 안쓰러움보다 똥 씹은 표정이 역력했다.       



***     


“우... 우웩!”     


공방 사무실 안. 금식이 덮었던 이불을 어깨에 두른 수봉은 충격의 여파 때문인지 헛구역질을 하며 의자와 함께 덜덜덜 떨고 있었다. 잠시 뒤, 들어온 금식은 흰 비닐봉지와 작업복 건빵바지를 수봉에게 건넸다.      


“고, 고마워.... 우웩!”     


비닐봉지에 대고 구역질하는 수봉을 측은하게 바라보던 금식이 위로하듯 말했다.     


“담력이 쥐젖만 한 놈이 그 끔찍한 걸 봤으니 오죽할까...”

“아... 아니... 그게 아니라 이불에서 썩은 똥구렁 내가...”     


맞다. 충격의 여파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헛구역질을 해댈 나약한 수봉이 아니었다. 금식은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수봉의 목까지 이불을 여며줬다.     


“그럴 리가. 너 비염이잖아.”

“어? 어. 그렇긴 한데 냄새가 코를 뚫고 들어오네. 그리고 이 누런 얼룩... 우웩!”

“수봉아! 지금 이 딴 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그렇지. 그러니까.... 무슨 일이 있었냐면...” 


금식의 꾸짖음에 금세 정신이 팔린 수봉은 손가락으로 코를 막고 진중하게 입을 열었다.     



***     


“어딨써?!! 이 개세!!”     


금식의 집 대문에서부터 수봉은 호기롭게 소리를 쳐 댔다. 현관에 다다르자 기선 제압을 위해  ‘퇑! 퇑! 퇑!’ 들고 있던 각목을 바닥에 거세게 내리쳤다.       


“나오라고!!”     


현관에 들어서자 마구 뒤섞인 신발들 틈에 조던이 아무렇게 널브러져 있었다.      


“오~ 마이! 쪼던!”     


수봉은 조던을 집어 애지중지 얼굴에 비비곤 한켠에 가지런히 모셨다. 이내, 인상을 험악하게 구기며 성큼성큼 거실 한가운데로 나아갔다. 이방 저 방 둘러본 수봉은 드디어 이층으로 향했다. 위압감을 주기 위해 일부러 ‘쿵! 쿵!’ 대며 계단을 올랐다.     


“하여간 내 손에 잡히면 살아도 죽은 거야!!!”     


꺼드럭대며 2층에 발을 딛자마자 거실 한가운데 서 있던 피칠갑 그녀와 수봉은 대번에 눈을 맞췄다.     


“커헉!!”     


수봉이 죽게 생겼다. 숨통을 조여 오는 전율이 등골을 타고 온몸을 진동시켰다.      


'퉁! 타탕! 퉁탕! 투퉁! 떼구르르르...' 수봉도 금식처럼 극강의 공포 앞에 힘이 풀려 각목을 계단 아래로 떨구고 말았다.     


“아, 아... 아무도.... 어, 없네...”     


못 본 척 천연덕스럽게 등을 돌린 수봉은 핸드폰 진동처럼 떨며 계단을 살며시 내려 밟았다. 하지만 이따위 짓이 통할 리 없다. 수봉이 다음 발을 내려 딛는 순간! ‘다다닥!’ 달려든 그녀가 그의 어깨를 와락! 움켜잡았다.      


“으아아아!!!”     


수봉은 비명을 지르며 팔을 마구 내저었다. 그녀는 결코 놔주지 않겠다는 듯 그의 어깨 소매를 거세게 틀어 쥐었다. 수봉 또한 지지 않겠다는 듯 필사적으로 발버둥 쳤다. ‘쫙!’ 어깨 소매가 찢기며 휘청한 수봉은 균형을 잃고 계단 아래로 고꾸라졌다. 어깨 소매를 움켜쥐고 있던 그녀 또한 덩달아 쏠려 계단 밑으로 굴렀다.     

'우당탕! 쿠쿵! 쿵쾅!' 나뒹굴며 1층 거실에 먼저 당도한 수봉이 ‘철퍼덕!’ 천장을 향해 대자로 뻗었다. 뒤이어 굴러온 그녀가 '퍽!' 그의 소중이에 본의 아닌 강력한 헤딩을 시전 했다.      


“으헉!!”     


터진 건가. 숨도 못 쉴 통증에 수봉은 자신의 소중이를 두 손으로 모아 잡고 새우처럼 몸을 말았다. 계단을 구른 것에 더해 소중이의 고통까지, 수봉은 도저히 몸을 가눌 수 없었다. 하지만 살아야 한다는 생존본능은 육체의 한계를 극복하게 만들었으니, 아랫입술을 말아 문 수봉은 현관을 향해 포복을 감행했다. 한편, 그녀 또한 계단을 구른 탓에 몸을 움직일 수 없는 건 피차일반이었다. 수봉은 안간힘을 다해 기면서 그녀의 동태를 살폈다. 엎어져 신음하고 있을 뿐 어떠한 행동을 할 상황이 아닌 듯했다. 그는 이때다 싶게 포복에 박차를 가했다.

수봉이 그녀와의 거리를 한 팔 정도 벌리는 찰나, 그녀가 손을 뻗어 그의 바지단을 꼬나쥐었다.      


“으아~! 으아~! 으아~! ”


바지단이 잡힌 수봉은 비명을 구령 삼아 더욱 맹렬히 포복했다. 어느새 그의 밴드형 면바지가 뱀이 허물을 벗듯 스르륵 벗겨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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