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화. 촤악!!
“날... 왜 불렀어?”
치렁치렁한 머리카락이 금식의 얼굴을 감싸듯 뒤덮은 가운데 그녀가 말했다. 음산하고 축축한 목소리에는 원망이 깊게 베여 있었다. 머리카락이 커튼처럼 드리운 칠흑 같은 어둠 속에 금식은 죽을 만큼 무서워 눈물이 찔끔 났다. ‘집 밖으로 못 나오는 거 아니었나?’ 혼란스러운 생각은 공포를 더욱 증폭시켰다.
“자, 잘못했어... 용서해 줘...”
그녀의 질문에 답할 겨를 없이 금식은 다짜고짜 용서를 빌었다.
“너무 늦었어...”
이 말에 간담이 서늘해진 그는 이마에 맺혀 흐르는 식은땀과 함께 탄식을 뱉었다.
“정말.... 잘못했어. 제발.... 용서해 줘....”
다시금 간절히 용서를 비는 금식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이제 가자. 어서.”
뜬금없이 길을 재촉하는 그녀의 단호한 목소리가 너무도 살벌했다.
“어, 어, 어딜... 가?”
당혹스러운 금식은 입술을 파르르 떨며 물었다. 어버버 더듬대는 금식의 물음에 순간, 표백한 듯 새하얀 눈알 두 개가 어둠 속에서 형체를 들어내며 번뜩였다.
“어디긴! 내가 있던 곳이지!!”
그녀는 새하얀 눈알을 사납게 굴리며 독살스럽게 소리쳤다. 곧이어 새하얀 눈알에 검붉은 피가 카랑카랑하게 차올라 금식의 얼굴로 핏물을 두두둑! 쏟아냈다.
“아아악!!!”
금식은 살고 싶은 절박함에 미친 듯 비명을 질러댔다. 그래서인지, 온몸에 힘이 뻗친 그는 손과 발을 마구 휘저어 댔다. '우지직! 쿠쿵!!' 그의 처절한 몸부림에 야전 침대 다리가 사정없이 휘어져 주저앉았다.
“아흨!!”
허리로 뻐근한 통증이 밀려왔다. 금식은 허리를 부여잡고 어리둥절 주변을 살폈다. 전등은 켜놓고 잔 그대로 사무실을 밝혔고 그녀는 없었다. 꿈이었다.
“하아~~~~”
금식은 안도의 한숨을 길게 내뱉었다. 허리를 받쳐 잡고 엉거주춤 일어나 사무용 의자에 앉아 등받이에 상체를 한껏 기댔다. 입고 있는 런닝복은 땀이 배어 흥건했다. 꿈이라는 걸 알면서도 몸은 그렇지 못한 지 손이 바르르 떨리고 있었다. 그런데 이때, ‘쾅! 쾅! 쾅!’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쾅!’ 소리에 금식의 심장은 ‘쿵!’ 했다.
[금식아! 금식아~!!]
‘쾅! 쾅!’ 수봉이 문을 두드리며 그를 불러댔다.
[마! 안에 있는 거 다 보여! 문 열어!]
부스스한 몰골로 허리를 부여잡고 나온 금식은 흐리멍텅한 눈으로 절뚝이며 공방 문 잠금장치를 풀었다.
“아이구~! 간밤에 한 딱까리 하셨나?! 꼴이 왜 그래?”
수봉의 핀잔에 금식은 응대할 정신이 아니었다. 이내 사무실로 향한 그는 냉장고에서 1.5L 생수 한 통을 꺼내 벌컥벌컥 들이켰다. 뒤따라 들어온 수봉은 다리가 대차게 꺾여 주저앉은 야전침대를 보곤 미간을 찌푸렸다.
“얜! 또 꼬락서니가 왜 이러냐?”
수봉의 질문에 계속 묵묵부답인 금식은 생수 반 통을 단숨에 들이켜고 나서야 눈동자가 말똥말똥 해졌다.
“으~ 끄어헉~! 아유~ 이제야 정신이 드네...”
수봉은 사무실 입구 옆에 있던 스툴을 끌고 와 금식과 마주 앉았다.
“아침부터 왠일이야?”
“웬일?! 아놔~ 이 자식 어제부터 왜 그러실까?!”
“뭐가?”
금식은 짜증 난다는 투로 말하곤 목덜미를 잡고 주물렀다.
“마! 오늘 엉아 공방에 목재 들어온다고 했냐? 안 했냐?! 9시까지 오기로 했음 와야지! 혼자서 죽을 둥! 살 둥! 쐐골! 늑골! 다아~ 빠졌어! ”
9시란 말에 금식은 책상 위 네모난 디지털 탁상시계로 시선을 옮겼다. 11시였다.
“미안하다. 일이 좀 있었어.”
금식의 성의 박약한 매가리 없는 사과에 수봉은 부글부글 끓었다.
“그럼! 전화라도 받아야 할 거 아니야?! 수십 통을 해도 안 받으니까 뒈진 줄 알았잖아!!”
“내가 왜 죽어?”
“몰라 묻냐? 5개월 전에...”
“지난 얘길 뭘 또 꺼내.”
수봉의 말을 싹둑 잘라낸 금식은 역정을 내며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할 말은 해야겠다는 듯 수봉은 두 눈에 힘을 바짝 주며 입을 열었다.
“그래서 하는 말이야. 어머니 돌아가시고 너, 어떻게 했어? 한 달 동안 방안에 처박혀 술만 퍼먹다 쓰러졌잖아. 아오~! 그때, 내가 발견 못 했으면.”
수봉은 말을 맺지 않고 ‘쩝’ 씁쓸하게 입맛을 다셨다. 금식 또한 그때의 기억이 곱씹히는지 대꾸 없이 사무실 창문 너머 조립실 한켠으로 시선을 던졌다. 목자재 보관대 옆에 프렌치 스타일의 서랍형 콘솔 화장대가 먼지 쌓인 흰 천에 반쯤 덥혀 구석진 자리를 쓸쓸히 지키고 있었다. 금식이 한 곳을 응시한 채 눈빛이 흔들리고 있음을 감지한 수봉은 그가 바라보는 방향으로 시선을 겹쳤다.
“아들이 만든 화장대도 쓰시면서 누리다 가셨으면 좋았을텐데...”
“수봉아. 너한테 정말 고마운데... 앞으로 우리 엄마 얘긴, 그만하자...”
나지막이 말하는 금식의 표정에서 안타까움을 느낀 수봉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미안하다. 근데? 정말 무슨 일이야?! 잠깐! 발에 붕대까지 했네!”
수봉의 말에 금식의 표정이 사뭇 심각해졌다.
“너 안젤리카 전화번호 알지?”
“전화번호는 왜?”
“급하게 물어볼 게 있어서.”
“지금 한국에 없는데.”
“뭔 말이야? 한국에 없다니.”
“안젤리카, 프란체스카랑 어제 유럽으로 배낭여행 떠났어.”
“이런! 씨이~ 왜 하필 지금!”
답답한 마음을 가눌 수 없는 금식은 오만상을 쓰며 어금니를 앙 다물었다.
“걔네 내년에 선생 되면 못 가니까 ... 근데? 진짜 뭔 일인데 그래?!”
“해외 나가도 핸드폰 로밍 같은 것 해 놨을 거 아니야.”
금식은 수봉의 물음에 아랑곳없이 그녀들에 대해 캐물었다.
“여행에 집중하고 싶다고 핸드폰 두고 갔는데.”
하아~! 금식은 한숨 밖에 안 나왔다.
“언제 오는데...?”
“한 달 예상한다고 그러던데.”
“한 달이면? 육십일?!!”
수봉은 오른쪽 콧볼을 검지 손톱으로 가볍게 긁으며 금식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렇지. 일 분은 육십 초. 한 시간은 육십 분. 한 달은 육십일. 음, 일관성 있네.”
정신이 여전히 메롱한 금식은 뭔가 와르르! 무너져 내림을 느꼈다. 그 기간을 도대체 어떻게 버티란 말인가!
“그럼! 연락할 방법이 전혀 없는 거야?”
금식의 목소리에 힘이 쭈욱~ 빠졌다.
“아니. 급하면 메일 보내라고 하던데. 시간 되면 확인한다고.”
“급해 죽겠는데 메일을 보내라고, 뭔 말이야?! 게다가 시간 되면 확인한다니?! 급한데?!! ”
힘 빠진 목소리에 부화가 치밀어 오르며 언성이 높아졌다.
“화내지 말고.... 뭔 일인지 속 시원히 말해봐.”
수봉의 물음에 금식은 대꾸 없이 런닝복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부적이 부스럭 소리를 냈다. 그 소리에 수봉의 귀가 쫑긋했다.
“뭐야? 사탕이냐? 엉아 입에 하나만 꼰질러봐라~ 요즘에 단 게 왜 이렇게 땡기냐~!”
“수봉아. 집에 다녀올 테니까 공방 좀 잠깐만 봐주라.”
“안돼~! 이따 춘천에서 손님 오기로 했어!”
“금방이면 돼.”
금식의 단호한 어조에 수봉은 꼬리를 내렸다.
“1시간 안에 와라. 안 오면 그냥 간다.”
“그래. 그럼 신발 좀 벗어봐.”
수봉의 눈이 땡그레 졌다.
“신발은 왜에...?”
“뭐가 왜야. 나 지금 맨발에 붕대 감은 거 안 보여?!”
“그러니까~ 무슨 일이냐고? 아니다. 내가 대신 갔다 올게. 그게 났겠다!”
스툴에 앉아 있는 수봉을 냅다 자빠뜨린 금식은 그의 복부에 올라타 옴짝달싹 못하게 제압한 후 신발을 벗겨냈다.
“왜에~ 그래에~~ 쥔짜아~!!! 그 신발 조던 리미티드 에디션이란 말이야!!”
“어이구~! 그러셔~!”
칭얼대는 수봉을 향해 금식은 자신이 입고 있는 런닝복 상의를 그에게 디밀었다.
“넌! 리미티드 조던이고. 난! 돼지 조돈이냐?”
칭얼칭얼 발버둥 치던 수봉은 이내 금식을 향해 정중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어서. 신발을 신어보렴. 다행히, 발 사이즈가 같아 불편하진 않겠구나.”
“으이그~! 도대체 이런 옷은 어디서 사 갖고 오는 거야?”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란다. 그 옷도 나름 세계적인 브랜드라 할 수 있어.”
수봉은 시종일관 정중한 태도를 유지했다.
“뭔 개똥 같은 소리야! 이런 짝퉁이 무슨?”
“몰랐어? 싸우스게이트(south gate)라고. 외국 관광객들이 무조건 찾는 핫한 브랜든데.”
“싸우스... 게이트?”
수봉은 해맑게 답했다.
“으응! 남대문!”
“에잇! 이 자식아!”
‘톽!’ 금식은 조던 신발로 그의 머리통을 상큼하게 내리쳤다.
“내 맘은 오죽했겠냐! 그런데 어떡해!! 조던 사고 나니까 돈이 모자란걸!!!”
“그래도 그렇지! 브뢀 친구 선물을! 남대문! 조돈! 에흐~ 씨!”
금식은 조던 신발로 재차 수봉의 머리통을 '톽!' 상큼하게 내리쳤다.
“공방 잘 보고 있어. 금방 갔다 올 테니까.”
조던을 신고 공방을 나서는 금식의 뒤태를 향해 수봉은 뱁새눈을 아니꼽게 치켜뜨곤 열불 나게 꼬나봤다.
***
'끼긱, 끼기긱~' 거슬리는 마찰음과 함께 녹슨 철재 대문이 틈을 벌렸다. 그 사이로 빼꼼히 머리를 들이민 금식은 마당에서부터 긴장을 늦추지 않고 주위를 살폈다. 현관문에 다다르자 주머니에서 드디어 부적을 꺼내 들었다. 그는 천천히 현관문을 반쯤 열어 또다시 고개만 들이민 후 집안의 동태를 살피며 킁! 킁! 냄새도 살폈다. 아무런 낌새도 냄새도 없자 조심히 신발을 벗고 사뿐사뿐 거실 한가운데로 나아갔다. 금식은 우선 식탁 위에 놓아두었던 핸드폰부터 챙겼다. 수봉에게서 온 전화만 30통이 넘었다.
“무슨 스토커도 아니고...밧데리 다 닳았네.”
기가 찬 수봉의 전화질에 짜증도 잠시, 공방 열쇠를 챙기기 위해 금식은 살금살금 옷방으로 향하려다 고개를 돌려 2층 계단을 바라봤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그는 2층 계단 앞으로 살며시 다가가 위를 올려다봤다. 2층 창가로 들어온 햇살이 층계참까지 화창히 비추고 있었다. 쨍하게 들이치는 햇살에 마음이 놓인 금식은 열쇠가 우선이란 생각에 뒤돌아서 옷방으로 향했다. 닫혀 있는 옷방 문을 살며시 열고 들어와 다시 문을 반 정도 닫은 후 그는 전날 입었던 바지를 뒤지기 시작했다.
“역시, 대낮엔 안 나타나나 보네.”
'끼이이익~~' 금식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반만 열어둔 옷방 문이 지긋이 열렸다. 뒤통수로 섬뜩한 기운이 싸하게 전해졌다. 덜덜덜, 손을 떨며 벗어둔 바지 주머니에서 열쇠를 찾아 거머쥐고는 천천히 일어났다. 쥐고 있던 부적을 가슴팍에 올려 들고 서서히 뒤돌아섰다. 그녀가 옷방 문 앞에 서 있었다.
“허헉!”
밤낮을 가리지 않는 그녀의 등장에 금식은 미치고 팔짝 뛰게 경악을 금치 못했다. 하지만 이젠 괜찮다. 부적이 있지 않는가! 뜨거운 용기가 온몸을 휘감았다. 이런 금식의 의기를 알리 없는 그녀는 그를 향해 큰 눈을 부라리며 성큼성큼 다가섰다. 거리가 한발 앞으로 좁혀지자, 금식은 그녀를 향해 기세 높게 소리치며 부적을 펼쳐 뻗었다.
“귀신은 물렀거라!!!”
면상에 닿을 듯 부적을 갖다 대자 그녀의 행동이 일순 멈췄다. 오~~ 신발을 세우는 보살님의 신기가 구라는 아니었구나,라고 생각하며 흥분을 감추지 못한 금식은 경탄을.... '촤악!!!' 펼쳐 든 부적의 반이 매섭게 찢겨나갔다.
“으헉!!”
금식은 명치를 정확히 가격 당한 듯 신음을 토했다. 부적을 낚아채려다 반 토막을 낸 그녀는 그의 경탄을 도탄에 빠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