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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파니 May 22. 2023

나의 첫사랑 소환귀 (5)

5화. 도봉산 처녀보살







시종일관 빠른 걸음을 고수하던 금식은 공방 앞에 정차된 경찰차가 보이자 그제야 뛰기 시작했다.     


“아이고! 황순경 님! 오래 기다리셨죠?! 죄송합니다~~”

“공방장님! 요 앞에서 뛰는 거 다 봤어요.”     


경찰차에서 내리는 황순경은 꼼수를 부린 금식을 그냥 넘기지 않았다.      


“죽어라 뛰다가 잠깐 걸었는데 하필 그때 보셨구나, 하하!”      


금식은 빠른 몸놀림으로 공방 문을 열고는 이불 보따리를 입구 옆 선반장 안으로 밀어 넣었다. 그리곤 황 순경에게 믹스 커피 한잔을 대령했다.     


“커피는 됐고요. 들어가 봐야 돼서 물건이나 빨리 주세요.”


황순경의 거절과 재촉에 뻘쭘해진 금식은 입술을 삐죽이며 입구 앞에 놓인 키높이 스툴 위에 커피를 내려놓았다. 그리곤 공방 안쪽 작업대에서 잽싸게 물건을 들고 나왔다. 적갈색과 진갈색이 고루 섞인 멀바우 집성목(여러 개의 원목을 이어 붙인 목재 )으로 제작한 모니터 받침대였다. 린시드(아마씨유) 오일로 마감을 해 색감이 더욱 선명해져 중후하고 고풍스러운 느낌을 자아냈다.     


“오오~ 묵직하고 색감도 좋은데요.”

“그럼요. 멀바우는 외국에서 고급 내장재로...”

“마음에 드네요.”     


싹퉁머리 없이 말을 잘라먹는 황 순경의 태도에 금식은 배알이 은근히 꼴렸다. 하지만 기다리게 한 죄가 있으니 억지웃음을 지으며 작업대에서 모니터 받침대 네 개를 더 들고 나왔다. 황순경이 받으려 하자 금식은 괜찮다고 사양하곤 경찰자 뒷 좌석에 가지런히 실었다. 일을 마친 금식은 키 높이 스툴 위에 있던 커피를 양손으로 받쳐 잡고 황 순경에게 재차 권했다.     


“이왕 탄 건데 가시면서 드세요.”

“제가 말씀드린 것 같은데....”     


눈살을 살짝 찡그린 황순경은 괜한 긴장감을 조성하다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저는 블랙만 먹습니다.”     


묘하게 재수 없는 황순경의 대답에 금식은 또다시 억지웃음 지으며 알았다는 듯 고개를 까닥였다. 순간, 금식의 손에 있던 커피를 세차게 낚아채 단숨에 털어 넣는 이가 있었으니.     


“크으~ 역쉬! 커피는 설탕 맛이지.”     


동네 점집 처녀보살, 신 선녀였다.     


“아유~ 안 뜨거우세요?!”     


이름과 다르게 전혀 신선해 보이지 않는 그녀가 잔주름 가득한 얼굴을 찌푸리며 금식을 째렸다.     


“식었어.”

“저런, 새로 타 드릴까요?”

“너무 달어.”

“방금, 크으~ 커피는 설탕 맛이라고...”

“당뇨병 걸려서 자리 깔고 누우면 조사장이 수발들 거야?”     


어쩌라는 건지.     


“아우~~ 보살님, 그런 똥 밟는 소리 하지 마세요.”     


선녀에게 밀리지 않겠다는 듯 금식 또한 능글맞게 받아쳤다.


“그래. 니 똥 굵다. 간판이나 내놔!”

“아, 네. 잠시만요.”

“공방장님. 저 갑니다.”     


황순경의 말에 금식은 눈짓으로 가볍게 인사를 건네곤 공방 안쪽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황순경을 흘겨보던 선녀는 그가 공방을 나서려 하자 다리를 걸 듯 말을 걸었다.     


“가게 앞에 가로등 언제 고쳐 줄 거야?”

“거참! 그건 구청 소관이라고 몇 번을 말씀드려요. 알려드린 번호로 민원 넣으시라니까요.”

“놀면서 그 정도도 못 해줘!”

“하! 놀긴 누가 놀아요!”     


선녀의 진상에 황 순경의 언성이 살짝 솟았다.     


“맨날 차 세워 놓고 자더구만! 하여간 민중의 몽둥이란 것들은~! 일제 때부터 사람 잡아다 팰 줄이나 알았지! 국민을 위하는 꼴을 못 봤어!”

“네! 네! 알겠고요. 제가 한 가지는 확실히 말씀드릴게요.”     


선녀를 잠시 응시하던 황순경은 단호하게 말했다.     


“몽둥이가 아니라 지팡이예요.”     


그의 지적질에 열이 바짝 오른 선녀는 잡아먹을 듯 눈알을 희번덕댔다.     


“이런 썩을! 몽둥이든, 지팡이든! 당최 나랏밥 먹는 놈들은 국민을 핫바지...”

“아! 맞다! 보살님한테 민원 들어온 거 아시죠?!”     


금식에게 하듯 말을 싹둑 잘라먹은 황 순경은 이때다 싶게 반격의 카드를 꺼내 들었다.     


“응?”     


모른 척 알아먹은 선녀는 희번덕 대던 눈알을 온순히 내리 깔았다.     


“벌써 세 번째예요. 저희도 더 이상은 묵과할 수가 없어요.”     


아무런 반박도 못한 채 황순경의 시선을 요리조리 피할 뿐인 선녀의 태도가 더없이 궁색했다.     


“어? 아직도 안 가셨어요?”     


‘도봉산 처녀 보살’ 글귀가 시뻘겋게 음각된 나무간판을 들고 나오던 금식이 황순경을 향해 물었다.       


“그, 그러게... 갈 생각을 안 하고 노닥거리네...”     


선녀는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황순경을 비꼬았다.     


“햐아~!! 조사장, 생긴 건 돌 감자 같아도 솜씨가 아주우~ 실하네~!”     


칭찬인지 욕인지. 금식에게 엄지 척을 연신 날리던 선녀는 간판을 마구 어루만지며 딴청을 피웠다.     


“보살님~~”     


얼렁뚱땅 넘어가려는 그녀를 황 순경은 친근한 어조로 돌려세웠다.     


“여기 도봉산이라고 적혀있네요. 웬만하면 굿은 산에 가서 하세요! 부탁 좀 드릴게요.”

“아니, 내 집 놔두고 왜? 산에 겨 들어가?!”

“그러면 낮에 하시던가요. 한밤에 굿을 해대는데 민원이 안 들어오겠어요!”

“밤에 해야 신빨이 선단 말이야!!”     


외나무다리에서 대치하듯 선녀와 황순경은 한 치의 양보도 없었다. 이때, 외나무다리에서 두 사람을 냅다 밀쳐 떨구는 금식의 한마디.     


“와아~! 밤에 굿하면 신발이 서요?!”     


선녀와 황순경이 멀뚱하게 금식을 바라봤다.      


“햐아~ 대단하시네요! 어떻게 신발이 서지?! 세상에 이런 일이에 나가 보세요. 대박 날 거 같은데.”     


방송 출연을 제안한 금식은 선녀를 보며 해맑게 웃었다. 금식의 천진함에 선녀와 황순경의 뇌가 생각을 멈췄다. '빠라 바라빠라밤~!!' 배달 오토바이가 경적을 울리며 공방 앞을 지나가자 정신이 번쩍 든 황순경이 입을 열었다.     


“뭐, 어쨌든. 알아서 하세요! 다음에 또 민원 들어오면 그땐 범칙금 들어갑니다.”

“어떤 년놈이 신고한 거야?!! 이것들, 내가 아주! 급살 맞으라고 치성을 드릴 테니까~!!”

“네~ 그러세요. 그러면 보살님은 살인교사죄가 추가되겠네요.”

“뭐가~! 어째!!! 가뜩이나 신빨 떨어져 숟가락 빨게 생겼는데!”     


신빨 얘기를 뱉어낸 선녀가 아차 싶은지 금식을 쳐다봤다. 그는 반색하며 선녀에게 무언가 말하려 입술을 꼬물거렸다. 그녀는 금식의 입을 검지로 가리키며 아무 말도 말라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 사이 황순경이 날쌔게 경찰차에 올라 시동을 걸었다.     


“자아~그럼! 저는 진짜 갑니다~”     


운전석에서 짧게 인사를 건넨 황순경은 이내 엑셀레이터를 밟았다. 약이 오를 데로 오른 선녀는 멀어지는 황순경을 향해 홀아비로 늙어 죽을 놈이란 악담을 날렸다. 보다 못한 금식이 중재하듯 말했다.     


“보살님이 참으세요. 황 순경님도 중간에서 얼마나 힘드시겠어요.”

“우라질! 차 안에서 퍼질러 자는 놈이 뭐가 힘들어! 내가~ 그 뭐냐? 그래! 다산 꿀 센타에 저놈 신고할 거다!!”     

분을 삯이지 못해 씩씩대는 선녀에게 금식은 혀를 차며 말했다.      


“무슨 양봉장도 아니고, 다산 콜 센터겠죠. 그리고 거기서 그런 신고는 받아주지도 않아요. 그러니까 그냥...”

“잠깐. 조사장... 간 밤에 뭔 일 없었어?”     


금식이 새벽에 한 짓을 알고 있다는 듯 선녀가 정색하고 물었다. 금식은 순간, 섬뜩함을 느끼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무슨....”     


선녀는 당황한 빛이 역력한 그를 관찰하듯 노려봤다.     


“뭔가 냄새가 나는데... 정말 아무 일 없었어?!”     


금식은 그녀의 신통력 있는 후각에 다시금 놀라며 오줌 지린 이불 보따리를 선반장 안으로 더욱 깊게 구겨 넣었다.  


“그, 그럼요. 간밤에 개꿈 꾼 거 말고는....”

“조심해.”     


선녀는 사뭇 엄정한 표정으로 경고했다.     


“네? 뭘...?”

“자네 몸에서 황천 냄새가 나.”

“황천... 냄새요?!”

“저승 기운이 느껴진다고.”     


저승기운! 금식은 심장이 벌름거리며 이마에 송골송골 땀방울이 맺혔다.     


“손각시가 붙은 것 같단 말이지.”

“소, 손각시요?”

“그래, 처녀 귀신 말이야.  지금 조사장 안색이 너무 안 좋아. 아무래도...”     


뭔가 잡았다는 듯 금식의 눈을 똑바로 주시하며 선녀가 다가섰다. 금식은 두려움에 상체를 뒤로 뺐다.     


“몸이 허한 것 같아. 이렇게 매가리 없으니 귀신이 달라붙지. 기다려봐.”     


선녀는 자신의 회색 법복 바지 안쪽 고쟁이를 뒤적였다.      


“음, 마침 여기 한 장 있네.”     


그녀는 노란 부적을 하나 꺼내 금식에게 내밀었다.     


“이, 이게 뭐예요?”

“뭐긴 뭐야! 조 사장을 지켜줄 퇴귀부적이지!”

“요즘 세상에 무슨 귀신이에요.”     

 

말은 이렇게 해도 그의 손은 이미 부적을 넘겨받았다.


“항상 몸에 지니고 다녀.”

“네. 마음 써 주셔서 감사해요.”          


금식이 깍듯이 고개를 숙이자 선녀는 별것도 아닌 거 갖고 뭘 이라며 손사래를 쳤다.


“나도 제 때 시집갔으면 조사장 만한 아들이 있었을 거야. 엄마 같은 마음으로 준 거 거니까 너무 부담 갖지 말고. 그럼 난 이만...”       


선녀가 인정머리 없이 쌀쌀맞게 말은 해도 마음은 차암~ 따듯한 사람이구나~라고 훈훈해 함도 잠시, 금식은 간판을 들고 나서려는 그녀를 주차장 차단기처럼 팔을 뻗어 막았다.     


“에이~ 보살님~! 또 왜 이러실까아~?”

“응? 뭐가?!”

“간판값은 주셔야죠~!”

“받았잖아.”

“뭘 받아요?”

“요고, 요고.”     


선녀는 주둥이로 금식이 손에 쥔 부적을 가리켰다.     


“그냥 주시는 거 아니었어요?”

“조사장, 곧 머리 벗겨지겠네! 세상만사 공짜가 어딨어! 내가 그거 쓸려고 얼마나 신기를 소진했는데! 값을 매길 수 없이 영험한 거야!”   

“영험이요?! 이거~ 딱 봐도 프린트한 거 구만! 에잇~! 가져가요! 가져가!”     


그럼 그렇지. 짜증이 확 난 금식은 부적을 거칠게 팔랑이며 그녀에게 들이밀었다.     


“어.... 조, 조사장? 뒤, 뒤에...”     


선녀는 불현듯 금식의 뒤를 가리키며 두 눈을 찢어질듯 벌렸다.. 금식은 선녀에게 건네려던 부적을 황급히 회수했다. 설마 새벽에 그 귀신이 여기까지 쫓아온 건가?!! 온몸의 신경이 곤두서는 싸늘한 공포가 엄습했다. 금식은 두 눈을 찔끈 감은 채 부적의 영험함을 믿고 과감하게 뒤로 돌아섰다. 그리곤 부적을 가열차게 뻗으며 외쳤다.     


“귀신은 물렀거라~!!!”     


1분 정도 지났을까. 귀신이 나타난 것 치고는 너무도 평온했다. 금식은 감은 눈을 천천히 떴다. 앞엔 아무것도 없었다. 이내 몸을 돌려 선녀를 바라보는 순간! 아아아~!! 심장이 철렁했다. 그녀 대신 입술이 시뻘건 수봉이 서 있었다. 그는 스크류바를 깊숙이 입에 물고 시계방향으로 돌리며 금식을 한심하다는 듯 흘겼다.    


“귀신? 뭔 지랄이냐?”

“보... 보살님은?”

“보살? 아까 웬 스님처럼 입은 아줌마가 간판 들고 죽어라 뛰던데. 그분인가?”

“아놔! 진짜! 이 아줌마! 답없네...”

“왜? 스님 아줌마가 뭔 짓 했어?!”

“아니야. 아무것도.... 근데 왜 왔어?”

“뭘 왜와?! 월넛 제재목(통나무를 적당한 두께로 켜놓은 목재) 싸게 들어왔다고 준다며.”

“아... 그랬나?”     


잠시 멍 때리고 있는 그를 수봉은 걱정스레 바라봤다.     


“넋이 겁나 빠져 보이는데. 정신 차려.”

“쩝. 정신 차려야지.”     


기지개를 크게 켠 금식은 선녀가 말한 것들이 그저 간판을 날로 먹으려는 수작이란 생각에 한편으론 마음이 놓였다. 그는 쥐고 있던 부적을 망설임 없이 구겨 쓰레기통에 던져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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