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달파니 May 15. 2023

나의 첫사랑 소환귀 (4)

4화. 추억의 세계지도





         

“아놔! 진짜! 이걸 해! 말어!”     


4시 44분!!!     


“에라잇! 뽕빨나도 GO!!!”      


국번 없이 444-4444...      


“소라야~... 소라야~... 강소라~”     

[휘이이~휘이잉~~~]     

[꺄아아아악!!!]     


고막이 찢길 듯 끔찍한 비명에 금식은 반사적으로 핸드폰을 집어던졌다. 바닥을 치고 튀여 오른 핸드폰이 배터리와 분리돼 나뒹굴었다. 그런데, 배터리가 분리 됐음에도 핸드폰에서는 [꺄아아아악!!!] 비명이 멈추지 않았다. 전율에 휩싸인 금식은 가위에 눌린 듯 몸을 꼼짝할 수 없었다. 끔찍한 비명에 공명하듯 파르르 몸이 진저릴 쳤다. 이내 숨통마저 조여오며 희번덕 대는 눈알을 벌겋게 물들였다. 숨 쉴 수 없는 극강의 공포 앞에 정신이 아득해지려는 찰나, 손목시계의 분침이 숫자‘9’에 와닿자 비명이 단칼에 잘린 듯 뚝! 끊겼다. 45분에 종료되도록 설정된 기계처럼 경악스러운 상황이 일순 멈췄다

곧이어 ‘하아~!’ 금식의 입에서 탄식이 터졌다. 돌처럼 굳었던 몸도 자유를 찾았다. 하지만 그는 ‘헉! 헉!’ 거친 숨을 토해내며 핸드폰만 노려 볼 뿐 꼼짝하지 않았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거실은 너무나 고요했다.

금식은 ‘쓰으흡, 후우~~’ 숨을 깊게 들이켜고 길게 뱉었다.          


“제기랄... 싸, 쌀 뻔 했...”       


말을 끝맺다 말고 가랑이를 살짝 만져본 금식은 눈을 지그시 감고 어금니를 깨물었다.     


“아놔~ 지렸네...”      


‘하아~!’ 또다시 탄식이 터졌다. 세상 쓸데없는 짓을 하곤 소량이지만 오줌을 지린 쪽팔린 후회가 쓰나미처럼 덮쳐왔다. 미간을 사정없이 구긴 금식은 소파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슬금슬금 핸드폰에 다가가 엄지발가락 끝으로 가볍게 툭, 치고는 결의찬 표정으로 오른 다리를 번쩍 들었다. 혹시라도 비명이 들리면 핸드폰을 콱! 밟아 부숴버릴 작정이었다. 핸드폰은 아무 반응이 없었다. 미심쩍은 눈초리로  핸드폰을 바라보던 금식은 주변을 훑으며 배터리를 찾기 시작했다. 그는 거실 창가 앞에서 배터리를 찾아내곤 조심스럽게 핸드폰에 장착했다. 빛을 발하며 액정이 켜지고 부팅이 완료되자 통화목록을 열었다. 꿈을 꾼 건 아닐까? 도저히 믿기지 않아 확인차 열었는데 ‘444-4444’ 통화를 했다. 그런데 통화시간을 확인하고는 눈과 입이 동시에 쩍! 벌어졌다.      


“3초?! 3초라고?!!”     


공포가 또다시 엄습했다. 머리를 부르르 떨던 금식은 ‘어이구! 어이구!’를 연신 지껄이며 번호를 냅다 삭제했다. 이제껏 벌어진 일들을 번호를 삭제하듯 머릿속에서 완전히 지우고 싶었다. 금식은 가슴을 연거푸 쓸어내리며 황망한 마음을 애써 달랬다.     


“꿈일 거야, 그래 이건 꿈이야, 잠깐 졸았던 거야. 정신 차리자!”     


금식은 떨쳐 내듯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며 옷방으로 향했다. 플라스틱 삼단 서랍장에서 체크무늬 사각팬티 한 장을 꺼내 들고는 지린 팬티를 엉거주춤 벗었다. 그런 자신의 모습이 서랍장 옆 전신 거울에 비쳐 보였다.       

“에휴~! 마흔이 코 앞인데 빤스에 오줌이나 지리고... 인생 정말 구리고 좋네, 좋아....”     


자신의 처지가 더할 나위 없이 궁상맞고 처량해 푸념밖에 안 나왔다. 금식은 씁쓸한 입맛을 다시며 안방으로 향했다. 침대 헤드 선반에 핸드폰을 두고 몸을 뉘이자 안락함이 전신에 스몄다. 좀 전의 경악스러운  상황을 말끔히 잊은 채 천천히 눈이 감기려는 그때, 흐릿해진 시야로 어떤 형체가 천장에 붙어 스멀스멀 일렁였다. 반사적인 호기심에 반쯤 감긴 눈을 애써 치켜올리며 초점을 맞추는 순간!!     


“커헉~!!”     


전신이 새까맣 사람 형체가 천장에 붙어 흉측하게 일렁이고 있었다. 모든 게 끝난 줄 알았는데 시작이었다.     

“아... 아... 아...”     


또다시 돌처럼 굳은 몸에선 단발적인 신음만 토해낼 수 있을 뿐이었다. 사람 형체의 흉물이 중력을 무시한 채 금식을 향해 서서히 내려앉고 있었다. 코앞까지 당도한 흉물은 긴 생머리에 얼굴의 반은 피칠갑이 된 끔찍한 몰골의 여자였다. 칠흑 같은 머리칼을 펄럭이며 죽일 듯 노려보는 그녀의 시뻘건 안구와 마주한 금식은 눈을 까뒤집고 파르르 몸을 떨었다.      


“헥!”     


숨넘어가는 단말마와 함께 금식은 정신을 잃었다. 그의 하체를 덮고 있던 하얀 이불 위로 노란 물이 광활하게 스며들었다.         



***     


하늘이 땅에 내려앉은 것처럼 이곳은 푸른빛 천공을 머금은 광활한 소금사막 같았다. 그곳 한가운데 금식은 덩그러니 서 있었다. 광활한 대지의 공기가 온몸을 감싸는 듯 안락한 평온함이 느껴졌다.     

‘죽었나? 아님... 꿈인가?’  지금 이 상황을 정확히 가늠할 순 없지만 온몸을 에워싼 포근한 충만감에 금식은 깊게 숨을 들이켰다. 숨과 함께 흡입된 신묘한 기운은 황홀한 향을 풍겼다. 기운과 향에 취함도 잠시 저 멀리 사람의 실루엣이 보이자, 금식은 본능적으로 그것을 향해 무작정 달리기 시작했다. 매우 멀리 있다 느꼈지만 공간이 접힌 듯 금세 그것 앞에 도착했다. 검고 긴 생머리에 흰 원피스, 분홍색 니트 카디건을 입은 여자가 뒤돌아 서 있었다.  그녀에 낯익은 뒤태를 알아본 금식의 심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소라...’  금식의 생각을 읽었는지 그녀가 천천히 돌아섰다.

스무 살 그대로의 소라가 눈부시게 웃으며 금식과 눈을 맞췄다. 자신은 곧 마흔을 바라보지만 시간이 멈춘 소라는 여전히 죽기 전 모습 그대로 아름다웠다. 고백 못한 가슴속 응어리진 짝사랑도 사랑일까. 생이별한 연인을 만난 듯 금식의 눈엔 서러운 눈물이 북받쳐 올랐다. 그의 슬픔이 소라의 눈에도 스며들어 눈물을 고이게 했다. 그녀는 오른손을 지긋이 뻗어 금식의 볼을 어루만지며 이내 터져 나온 그의 눈물을 닦아 주었다.

금식은 자신의 볼을 매만지는 소라의 손을 양손으로 조심히 모아 잡고 얼굴을 기댔다. 살아선 결코 느낄 수 없었던 그녀의 감촉은 벅찬 환희였다. 꿈이라면 이대로 죽어 깨고 싶지 않았다.


이런 금식을 측은히 바라보던 소라는 자신의 오른손에 눈을 감고 기댄 그의 얼굴을 왼손으로 살며시 들어 올렸다. 금식이 눈을 떠 바라본 소라의 표정엔 기쁜 듯 슬픈 감정이 안타깝게 배어있었다. 따듯한 시선으로 응시하던 소라는 그의 얼굴에서 손을 거둬 오른 손가락으로 곧게 편 왼손 약지를 가리키며 무언가 말을 했다.     

‘응?’  그녀는 더욱 또박또박 입 모양을 내어 말을 했지만 금식의 귀엔 당최 들리지 않았다. 금식은 들리지 않는 혜리의 말 대신 그녀의 오른 손가락이 가리키는 왼손 약지에 집중했다.      


‘아니... 어떻게?!’  그녀의 약지엔 금식이 고백하러 간 날 꽐라가 돼 잃어버렸던 자줏빛 연리목 반지가 끼워져 있었다. 놀란 토끼 눈을 한 금식은 반지와 소라를 번갈아 보며 어리둥절했다. 진정이 안 된 금식의 얼굴을 또다시 어루만진 소라는 애절한 표정으로 또다시 들리지 않는 말을 했다. 입 모양을 보고 알만도 하지만 워낙에 둔한 금식은 전혀 알아먹지 못했다. 답답해하는 금식의 얼굴에서 그녀가 손을 떼자 그는 직감했다. 소라가 떠나려 한다는 걸.


‘안돼!!’  금식의 외침과 동시에 지면이 갑자기 물렁하게 변하며 그의 몸이 잠기기 시작했다. 발버둥을 칠수록 더욱 깊게 빠져드는 늪처럼 헤어 나올 수가 없었다.      

‘안돼!!’ 금식의 간절한 외침에도 혜리는 그저 서글픈 눈으로 지켜볼 뿐이었다.      

‘제발!!!’  완전히 잠겨 깊은 심연으로 낙하하던 금식은 소라의 모습이 점이 되어 사라지자 또다시 울컥 눈물이 솟았다. 눈물은 기포가 되어 반짝이며 흩날렸다.     



***  

  

 “아... 안돼~~!!!”     


침대 위에서 발버둥 치던 금식은 소리치며 벌떡! 상체를 일으켰다.     


'헉! 헉!' 가뿐 숨을 몰아쉬며 허둥지둥 주위를 살폈다. 침대 머리맡 창가 커튼 사이로 옅은 빛이 새어들었다.       

“후우~~~ 꿈인가?”     


맥이 쭈욱 풀린 금식은 침대 헤드에 상체를 기댄 채 새벽일을 곱씹었다. 끔찍한 무언가를 보고 기절한 것 같은데. 도대체 어디까지가 꿈인 건지. 불현듯 이불이 덮인 하체 쪽에서 기분 더러운 축축함이 전해졌다.      


“아닐 거야... 그럴 리 없어~~”     


울상이 된 금식이 이불을 살포시 걷어내자 그의 가랑이 사이로 수문이 열린 듯 침대보가 흥거언~ 했다. 실로 30년 만에 그려 본 추억의 세계지도였다.  다시 이불을 살포시 덮은 금식은 침대가 부서지게 몸을 튕기며 지랄발광 속상해했다.     


“왜?!! 왜?!! ”


[따르르릉! 따르르릉!] 핸드폰 벨소리가 그의 발광을 멈춰 세웠다. 침대 헤드 선반에 둔 핸드폰을 확인하자 발신자에 ‘황 순경’이 떴다.     


“네~ 황 순경님! 아침부터 어쩐 일이세요?”

[예?! 아침이라뇨. 지금 한시인데.]        

“한시요?!”           


손목시계를 보니 한시가 조금 넘었다.     


“아이고~ 벌써 시간이... 근데 무슨 일로?”   

[무슨 일이라니요? 오늘 한시까지 모니터 받침대 찾으러 오라면서요.]     


뒤늦게 사태 파악이 된 금식은 민망함에 얼굴이 달아올랐다. 신뢰를 목숨처럼 생각하던 그였기에 지금 같은 실수는 자신에게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아이구~!! 죄송합니다! 제가 그럴 사람이 아닌데! 그게 간밤에 오줌을...”

[네? 오줌이요?]

“아니! 아니! 그게 아니라! 여하튼 팬티만 갈아입고!!”

[팬티요?]     


몹시 당황한 금식은 엉겁결에 치부를 실토하고 말았다.         


[크으~ 공방장님! 어젯밤에 꼭지가 돌게 달리 셨나 보네요~ 기다릴 테니까 팬티는 갈아입고 오세요~ ㅋㅋㅋ]  


전화를 끊은 금식은 망신을 자초한 자신의 주둥이를 타박하며 날쌘 몸놀림으로 침대보와 이불을 둥글게 말아 부엌 한켠에 위치한 다용도실로 내달렸다. 다용도실의 문을 열며 발목까지 사각팬티를 내리는 순간, 그는 깨달았다.     


“아, 맞다! 세탁기 없지.”     


하얀 엉덩이를 드러낸 채 메롱한 머리를 감싸 쥐고 괴로워하는 금식의 뒤태가 한없이 청승맞았다.     


“에잇! 이사한답시고 괜히 팔았네... 젠장!”          


투덜대며 침대보에 이불과 팬티를 보따리처럼 말아 묶고 옷방으로 향한 금식은 외출복으로 잽싸게 환복 했다. 나갈 채비를 마친 뒤 2층 계단 통로 앞을 지나려는데, 무언가 예사롭지 않은 기운을 느낀 그의 육감이 뒷덜미를 잡아챘다. 강렬한 의구심에 촉각을 곤두세워 2층을 올려다봤다. 아무런 기척도 없었다. 새벽에 한 짓과 꿈 때문에 쓸데없이 예민해진 거라 생각한 금식은 보따리를 짊어 메고 신속히 현관을 나섰다. 작은 마당을 지나 칠이 벗겨진 녹슨 대문 앞에서 신발 끈을 다져 묶었다. 그리곤 다다닥~! 촐싹맞게 제자리 뛰기로 준비운동을 했다. 골목 끝에 위치한 그의 집에서 공방까지는 버스로 한 정거장 거리였다.     


“읏차!! 5분 안에 끊어보자~!”     


금식은 타오르는 투지로 100미터 육상선수가 된 양 출발선 자세를 거창하게 취하곤 무서운 기세로! 빨리 걷기 시작했다. 엉덩이를 상스럽게 씰룩이며 골목 어귀를 나서는 금식을 그의 집, 2층 거실 창가 커튼 뒤에 숨은 웬 여자가 무심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피칠갑된 끔찍한 몰골로.





이전 04화 나의 첫사랑 소환귀 (3)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