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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파니 May 08. 2023

나의 첫사랑 소환귀 (3)

3화. 부활의 전화번호






    

“오빤 내 스타일인데.”     


세상 찌질하게 주저앉은 금식은 두려운 눈빛으로 안젤리카의 표정을 살폈다.     


“아... 난 우리 프란체스카가 걱정 돼서 이만...”     


머쓱한 분위기를 피해 도망치듯 수봉이 가게로 사라지자 빈자리를 안젤리카가 지긋이 메웠다. 금식은 본능적으로 자신의 양 볼을 두 손으로 감쌌다. 이 모습을 무심하게 흘기던 안젤리카의 입술에서 피식, 웃음이 샜다. 드레스 허리춤에 있는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그녀는 담배를 꺼내 한 개비를 빼물었다. 금식은 공손하게 양손으로 라이터에 불을 댕겨 드밀었다. 담배에 불을 붙인 안젤리카는 속 깊게 연기를 빨아들이곤 밤하늘을 향해 내뱉었다. 금식은 슬그머니 그녀를 곁눈질했다.      


“나도 알아. 삼 등신에 뚱뚱한 텔레토비 같은 안성댁을 누가 좋아하겠어.”

“아니... 뚱뚱은 아니고... 통통... 그리고 안성댁이라기보다는 그...”

“흠, 괜찮아. 마음에 들어.”

“네?”

“안성댁 나오는 시트콤 봤거든. 나름 귀엽던데.”

“그, 그렇죠. 안젤리카 씨가 얼마나 귀여운데요~ 하하!”

“웬 존댓말?”     


안젤리카가 쌩긋 웃어 보이자 금식은 처음 인상과 다른 따듯함을 느꼈다.     


“아까, 꼬락서니가 이게 뭐냐고 물었지.”

“네? 그, 그건... 그냥, 술김에...”

“지겨워서.”     


다시 한 모금, 연기를 깊게 내뱉는 안젤리카의 두 눈에 쓸쓸함이 배었다.     


“난, 언제나 고백을 하는 입장이었거든. 그런데 남자들이 거절할 때마다 ‘넌 차암 착하고 좋은 아인데’ 란 말을 무슨 위로랍시고 하더라고.”     


금식은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항상 거절만 당한 건 아니야. 성공한 적도 있었어.”

“아무렴요! 안젤리카 씨가 얼마나 매력적인 분인데.”

“칫! 꼴값도 안 되는 년한테 무슨 매력이 있으려나~”

“잘 나가다 또 왜 그래요~?!”

“에구~ 에구~ 알았어~”     


39살 금식의 엉덩이를 토닥이는 27살 안젤리카는 의좋은 남매처럼 오순도순해지고 있었다.      


“근데... 모든 걸 다 줘도 얼마 못 가 바람을 피우더라. 하긴 나보다 못난 년이 어딨겠어. 이해해.”

“아이고~! 자비가 넘치시네. 아주 몸에서 사리가 한 사발은 나오시겠어!”

“재밌는 건 걔도 떠나면서 그러는 거야. 넌 너무 착하고 좋은 여자라 자기한텐 넘 과분하다고.”

“이런!! 쌍노무 시끼!!”     


금식의 욕지기에 안젤리카는 대리 만족을 하는 듯 얼굴 가득 미소를 보이다 금세 시들해졌다.     


“그래서... 별로야. 착하고 좋은 여자란 말.”     


싸늘함이 얼굴 가득 차오른 그녀는 바닥에 담배를 마구 짓이겨 불똥을 흩었다.          


“그럼, 독하게 보이려고 일부러 화장을....?”

“흠, 근데 뭐! 내년 되면 이 생활도 쫑이야.” 


안젤리카에게 위로 따윈 소용없음을 금식은 잘 알고 있었다.     


“안젤리카 씨는 정말 강하고 매력적이고 은근 귀엽고 에... 또....”     


위로 따윈 별 소용없다고 생각해 놓고는 금식의 입은 따로 놀았다.


“으으~~ 뭐야?! 오글거려!! 웩!”     


안젤리카는 헛구역질을 하며 몸서릴 쳤다.     


“근데? 오빠, 죽었다던 첫사랑.... 언제 그런 거야?”

“네? 그건 왜....?”

“오래된 것 같은데 아직도 못 잊었나 싶어서. 하긴, 첫사랑이니 그럴 만도.”     


금식은 안젤리카에게 향한 시선을 바닥으로 돌리고는 씁쓸한 미소를 흘렸다.     


“첫사랑은 맞는데....”

“맞는데?”

“.......”     


망설이기만 할 뿐, 금식의 다문 입이 좀처럼 열리지 않자 기다리다 못한 안젤리카가 입을 열었다.     


“오빠. 다시 만나게 해 줄까?! 첫사랑.”

“예에~?!!!”     


다물 고만 있던 금식의 입이 한껏 벌어졌다. 자신을 놀리고 있다는 생각에 불쾌함이 밀려들었다.     


“장난이 좀, 심하시네요.”     


금식은 정색했다.     


“장난 아닌데.”     


안젤리카도 정색했다.     


“말이 되는 소릴 하세요! 죽은 사람을 어떻게 만납니까?! ”     


안젤리카의 확신 있는 표정이 너무도 어이없는 금식은 자기를 끝까지 놀려 먹으려고 한다는 생각에 속이 부글거렸다.      


"오빠. 올해가 어떤 해 인지 알면 놀라 자빠질걸."     


너나 웃기고 자빠지지 마!라고 금식은 호되게 받아치고 싶은 걸 간신히 참았다.      


"잘 들어. 올핸 개기일식으로 시작해서 금환일식으로 끝나는 해란 말이야. 이 기간에 이승과 저승을 연결하는 문이 살짝 열리거든."     


이승과 저승의 문? 금식은 안젤리카가 안드로메다인처럼 느껴져 당장 너희 별로 돌아가란 말이 목구멍까지 치밀었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요?”     


안젤리카는 금식의 셔츠 주머니에 꽂혀있던 볼펜을 빼 들었다.     


“오빠 손바닥 좀, 펴봐”

“손바닥은 왜?”     


안젤리카는 머뭇거리는 금식의 손을 잡아채 뭔가를 꾸욱 꾸욱 눌러 적었다.     


“아... 아... 앙... 아흥!”     


금식은 요상한 신음을 내며 몸을 배배 꼬았다.     


“이, 이게 뭐예요?”

“오빠의 첫사랑을 소환할 부활의 전화번호.”   

“부활의 전화번호?”     


손바닥에 적힌 전화번호를 확인한 금식은 세상 재수 없음을 느꼈다.       


“444-4444?!”     

“그렇지. 정확히 새벽 4시 44분에 444-4444로 전활 걸어 오빠 첫사랑 이름을 3번 부른 뒤 통화가 끊길 때까지 대기하면 끝. 꼭! 44분에 전화해서 1분 안에 끝내야 돼.”        


안젤리카는 번호가 적힌 금식의 손에 볼펜을 얹고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오빠 살아생전 두 번은 없을 기횐데. 어때?!”     


상식의 경계를 뛰어넘는 초현실적인 방법 앞에 금식은 뒤죽박죽 마음이 어수선했다.     


“글쎄요...? 이게 도무지...”

“술 처먹고 빙신 같이 첫사랑 이름이나 부를 봐엔 함 해보겠다.”     

 

뭉그적거리는 금식을 안젤리카는 한심하다는 듯 흘겼다.      


“어차피 선택은 오빠가 하는 거니까. 하든 안 하든 다아~ 오빠 운명이지.”     


쳇! 이깟게 뭐라고 운명씩이나, 금식은 허무맹랑한 이야기에 괜스레 심각해진 자신이 우스워 입술을 삐죽였다.      


“오작교 건너는 방법은 알려줬으니. 내가 먹은 곱창값은 이걸로 대신할게~”     


안젤리카는 기지개를 켜며 쪼그린 허리를 쭉 펴 일어섰다.     


“안젤리카 씨. 잠시만요.”     


가게를 향해 발걸음을 옮기려는 그녀를 금식은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불러 세웠다.     


“그냥, 돈으로 주시면 안 됩니까? 8인분인데.”     


안젤리카는 미소를 머금고 그의 귀에 속삭였다.     


“난. 오빠 같은 남자 만날 땐.... 지갑 안 갖고 다녀.”     


개뿔! 나 같은 남자가 뭐?!! 금식은 속으로 씩씩대며 인상을 구겼다.     



***     


‘부활의 전화번호라...’ 집을 향해 걷는 금식의 머릿속은 종잡을 수 없이 혼란스러웠다. 이에 맞대어 아침햇살 보다 더 눈부셨던 그녀의 모습이 아련하게 떠올랐다. 깊게 골몰하는 금식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수봉이 그의 옆구리를 쿡! 찔렀다.     


“왜? 안젤리카가 다음에 눈에 띄면 김장독 묻을 때 같이 확! 묻어 버린데?”   

“뭔 소리야?”

“걔랑 단둘이 있고 나서 계속 심각해 보여서 그러지.” 

“그게...”     


잠시 망설이던 금식은 안젤리카가 해준 이야기를 쭈볏대며 실토했다. 평소 같으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온갖 조롱과 야유를 보낼 수봉이었지만 어쩐 일인지 묵묵히 경청만 할 뿐이었다. 이런 수봉을 뻘쭘히 보던 금식은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말 같지도 않은 소릴 엔간히 해야지! 안 그래?”

“아니야. 함 해봐.”

“뭐?”     

"걔가 목사님 따님답게 미모는 완전 할렐루야 였잖아."


개똥 같은 소리라며 일축할 줄 알았는데, 금식은 당황했다.     


“근데 각오해야 될 거야. 영화에서 보면 죽다 돌아온 사람들 모습이 어떤지 알지? 우워어어~ 워어어~~”     


금식을 향해 양팔을 곧게 편 수봉이 머리를 사방으로 기괴하게 꺾으며 잔뜩 일그러진 표정으로 다가섰다.     


“뭐야 그게?!”

“뭐긴 뭐야! 좀비지! 저승 밥 먹고 온 애가 멀쩡하겠어!”

“그래도 그렇지. 좀비에 갖다 대는 건 쫌, 격 떨어지지 않냐?”

“걔 손수건이나 뽀리던 놈이 어디서 격을 따져.”

“뽀리긴! 걔가 준 거라니까. 그리고 세탁이 필요해서 깨끗이 빨아 주려고...”

“그래서 돌려줬어? 계속 쥐고 다니면서 냄새 맡았잖아.”     


어디 내놔도 남 부럽지 않을 쪽팔린 행동이지만 금식에게만큼은 설렘이 물씬한 향기로운 추억이었다.     


“하긴, 손수건은 귀엽게 봐줄 만해.”

“또! 뭘 씹으려고?!”

“기억 안 나? 혜리한테 고백한다고 애지중지 만들었던 연리목(뿌리가 서로 다른 나무의 줄기가 이어져 하나가 된 나무) 반지. 너 그거 들고 혜리한테 고백하러 갔었잖아. 심장 쫄린다고 술 만땅 처먹고.”

“몰라~ 기억 안 나.”     


만취로 인해 명확히 실성한 그날의 기억을 금식은 애써 외면하고 싶었다.     


“몰라?!! 아오~ 진짜! 걔를 만나기는커녕, 꽐라 돼서 반지 잃어버리고 집 곱게 모셔다 준 택시기사님한테 반지 안 찾아 주면 차에 다 똥 싼다고! 엉덩이 까고 진상 부렸잖아! 그 새벽에 너희 어머님 모시고 경찰서 간 걸 생각하면~~!!”      

“허허~ 이쯤 하시게 그게 다 우리 젊은 날의 초상 아니겠나.”

“그러엄~ 넌 진짜, 젊은 날에 초상 치를뻔했지. 이제 와 말하지만....”     


잠시 머뭇한 수봉은 흘깃, 금식의 표정을 살피며 입을 뗐다.      


“네가 그날 고백을 못한 게 난 솔직히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금식은 덤덤히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물었다. 옷 주머니를 주섬주섬 더듬는 그를 대신해 라이터 불을 댕긴 수봉도 담배를 빼어 물곤 위로하듯 함께 불을 붙였다. '후~~' 동시에 연기를 뿜은 두 사람은 어느새 금식의 공방 앞에 다다랐다.         


“너하고 혜리는 어차피 안 될 운명이었어.”

“운명?”

“그래. 누군가의 말처럼 뒤에서 날아오는 화살 같은 거지. 하필 그날.... 혜리가 교통사고로 죽은 걸 보면...”


금식은 담배 연기를 더욱 깊게 빨아 응어리진 한숨을 섞어 토해냈다.     


“너도 잘 알잖냐. 안 되는 건, 온갖 지랄 발광을 해도 안 되는 거. 그리고 솔직히, 서로 좋아한 것도 아니고... 짝사랑이었잖아.”     


짝사랑이란 말에 금식은 순간, 안젤리카의 연애담이 떠오르며 왠지 모를 쓴웃음이 났다. 


“그리고 임마. 걔 그렇게 되고 나서 너! 맨날 술만 퍼먹다, 갑자기 자원입대하니까 얘가 왜 이러냐며 너희 어머니가 날 붙잡고....”

“알았어. 그만해.”     


웃음 짓고 있는 단호한 목소리가 수봉의 말을 막아섰다.     


“그래. 내가 앞으로 더 빡씨게 소개팅 땡겨 볼 테니까, 혜리는 오늘부로 깔끔하게 잊자.”       


수봉이 희망찬 눈빛으로 금식의 어깨에 손을 올리자, 금식 또한 씩씩한 표정으로 눈빛을 반짝였다.     


“고맙다. 수봉아~”

“고맙긴. 이 친구야~! 우린 브뢀 프랜 아닌가. 하하하!”

“그럼, 오늘 술값은...”

“아아아아아~~~~!!!!”     


수봉은 미친 원숭이 날 뛰듯 소리치며 어둠 속으로 쏜살같이 사라졌다.     


“미친놈. 술값 낼 필요 없다고 하려던 건데.”     



***     


‘어차피 선택은 오빠가 하는 거니까. 하든 안 하든 다아~ 오빠 운명이지.’ ‘너하고 혜리는 어차피 안될 운명이었어.’ 침대에 누운 금식은 이들의 말이 머릿속을 휘젓는 통에 도무지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그놈의 운명.”     


결국, 알 수 없는 오기가 끓어 오른 금식은 어금니를 잘근 씹고는 벌떡! 몸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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