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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파니 May 01. 2023

나의 첫사랑 소환귀 (2)

2화. 시트콤 그녀들






검은색 드레스와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생머리, 새하얀 뱀파이어 화장, 검은색과 붉은색을 반으로 쪼개 칠한 입술엔 피어싱까지, 70년대 영국 고스(goth) 스타일을 연상시키는 여자 둘이 중세의 어둠을 몰고 소 곱창집에 들어서자, 홀 안의 손님들은 일순 젓가락질을 멈췄다.      


“프란체스카~! 여기! 여기!”     


키 175cm는 족히 돼 보이는 장신의 늘씬한 고스녀가 167cm인 단신의 수봉을 단숨에 알아보곤 무표정을 일관하며 함께 온 고스녀와 함께 스르르 다가와 앉았다. 금식은 실성하려는 자신을 간신히 붙들었다.     


"야아~ 왜 이렇게 수수해. 오늘 컨셉이 청순이야~"

"오빠 친구도 나오는데 예의는 갖춰야죠."     


수수하고 청순이라니. 하물며 예의를 갖췄다는 프란체스카의 말에 금식은 수봉을 불판에 올리고 싶었다.     


"으~ 이 순간이 젤 설렌단 말이야. 자아~우리 언니들 자기소개 한번~"

"안녕하세요. 프란체스카예요.  


금식은 프란체스카란 이름에서 자신의 이마를 냅다 휘갈기는 시트콤 하나가 떠올랐다.      

맞다! ‘안녕, 프란체스카’ 다만 아쉬운 건, 도끼를 들고 있지 않을 뿐.     


"얜, 안젤리카. 뭐 해? 이년아, 인사 안 하고."     


이년 안젤리카는 프란체스카의 소개에 대꾸 없이 핸드백안만 뒤적거렸다. 주섬주섬 꽃무늬로 화려하게 프린팅 된 팔 토시를 꺼내 들며 말했다.     


"레이스에 쌈장 묻잖아. 너도 껴! 이년아~"     


서로를 이년아~로 호명하는 둘의 모습이 어찌나 격조 있고 저렴한지, 금식은 속상한 마음을 달래려 물만 연거푸 들이켰다.          


"안젤리카예요."     


표정 시크하게 톡 쏘며 인사를 하는 그녀는 누가 봐도 ‘안녕, 프란체스카’의 안성댁이었다. 통통하게 살이 오른 것만 빼고 말이다. 금식은 진정한 아름다움이란 마음에 있음을 자가 최면하며 수봉의 발등을 꾸욱~ 즈려 밟았다.        


“으~허헙!... 자아~ 여기는 마이 베스트 브랄 뿌렌! 조 금식이~”     


수봉이 기합 같은 비명으로 금식을 소개하자 프란체스카는 미소를 띠며 인사를 하는 반면 안젤리카는 시큰둥하게 고개만 까닥였다. 금식은 키 180cm에 일반인들 사이에선 나름 꿇리지 않는 외모라 자뻑하고 있던지라 160cm도 안 되는 삼 등신에 통통한 안젤리카의 시큰 뾰로통한 반응이 영 탐탁지 않았다.


“부랄 프렌이란 말이 좀 냄새나긴 하지만... 수봉 오빠 부랄 친구라니까 믿음은 가네요.”     


언어의 냄새를 맡는 초인적 후각과 부랄을 거침없이 입에 담는 프란체스카를 보며 금식은 그녀의 마성에 매력은 이거였구나, 하는 감탄도 잠시,     


“이모~! 여기 모둠 8개랑 두꺼비 4마리!!”     


안젤리카의 인원을 초과한 주문에 금식의 두 눈이 쏟아질듯 커졌다. 이내 수봉의 발등을 또 한 번 즈려 밟았다.     


“으~허헙! 하하... 다, 다 먹을 수 있어? 남기면 오빠 화낼 거야~”

“아유~ 옵빠! 8인분도 못 먹으면 죽어야죠~”

“그럼! 그럼! 그나마 밥 볶을 거 생각해서 8인분 시킨 거예요.”      


걸신 들린 그녀들의 다짐이 금식의 귀에 살벌하게 메아리쳤다.


“이모! 여기 생 간하고 천엽 먼저 줘!”     


안젤리카의 혀는 반 토막인가. 아무리 단골집 이모라지만 환갑은 족히 되는 분께 말끝마다 반말이라니, 금식은 안젤리카의 모든 행동에 바늘이 돋기 시작했다. 소주 4병과 쟁반 가득 생간, 천엽, 밑반찬을 준비한 이모가 원형 식탁을 세팅하며 직접 재배한 거대한 상추를 연신 자랑했다.     


“우와~! 이런 배추 같은 상추를 봤나!”        


수봉의 말에 이모님만 깔깔댔다.     


“너네 엄마 상추 좋아하니까 이따 갈 때 가져 가.”     


이모님이 안젤리카에게 하는 말에 금식과 수봉은 의심의 눈초릴 치켜세웠다. 이모님이 주방으로 사라지자 수봉이 물었다.      


“저, 혹시... 진짜 이모?”

“네. 우리 둘째 이몬데요.”     


안젤리카는 당연하게 대답했다. 뭔가 사기를 당한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건 왜인지. 금식은 배알이 꼴렸다.      


“근데? 소주는 왜 4병을 시킨 겁니까?”

“각자 알아서 마시면 되지. 서로 따라 주고 귀찮잖아요.”     


시비조로 첫 말을 뗀 금식의 질문에 언짢을 만도 한데 안젤리카는 엷은 미소를 흘리며 새침하게 대답했다. 잠시 뒤 윤기 좔좔 탱글탱글, 고소한 곱이 꽉 찬 모둠 곱창이 그 위용을 과시하며 휴대용 가스버너 위에 안착했다. 계산할 금식만 빼고 모두 환호했다.     


“어우~ 이 귀한 것! 아까워서 똥도 못 싸겠다!”     


수봉의 더러운 멘트에도 마냥 즐거운 그녀들과 달리 금식은 배추 같은 상추만 아작아작 씹어대며 불난 가슴을 소주로 식혔다.

어느덧 술자리는 무르익고 금식의 얼굴도 벌겋게 익어갔다.     


“근데? 이름처럼 ‘조, 금식‘ 밖에 안 드시네요.”     


곱창을 먹는 둥 마는 둥 소주만 들이켜는 금식의 행동에 프란체스카가 농을 던지자 안젤리카와 수봉이 키득거렸다. 안 그래도 호구 잡힌 것 같아 꼭지가 돌기 직전인데 이름 갖고 놀리기까지, 술이 오를 때로 오른 금식은 티꺼운 표정으로 그녀를 쏘아봤다.


“아까부터 긍금핸데, 이름이 푸랄제수카면... 교포에여?”     


혀가 제대로 말린 금식이 기어이 꼬장의 포문을 열었다.     


“교포는 뭔 교포야! 취했냐?!”     


난감한 수봉이 끼어들었다.     


“아니, 교포도 아니면서 이름이 왜 그 모양이야~?”     


싸늘해지는 프란체스카의 표정에 수봉은 이러다 앞 전처럼 금식이 또 한 번 발로 싸대기를 맞을까 애가 탔다. 하지만 이미 꼭지가 돈 그를 말리기엔 역부족이었다.     


“도대체, 본명이 뭐에여? 에?”     


프란체스카의 눈이 조준하듯 가늘어 지며 금식의 얼굴에 시선을 고정했다. 이내, 그녀의 가늘고 긴 오른손이 식탁 위로 사뿐히 올라왔다. 이를 감지한 수봉이 잽싸게 끼어들었다.


“마! 동호회에서 닉네임 쓰지 누가 본명 쓰냐!”

“구뤠에~ 구럼 니 뉙네임은 머냐?”     


수봉은 쑥스러운 듯 나지막이...‘가, 가브리...엘.’     


“뭣?! 가브리살?! 아니 소고기 좋아하는 쉐끼가 뉙네임은 왜 뒈지고기냐?! 하기사 지 꼴린 대로 짓는 게 뉙네임이지. 그래도 난, 우리 푸랄제스카 양, 본명이 궁금하네~ ”

“하아~~ 알았어! 이름이...”

“규리예요. 공규리.”     


프란체스카가 수봉의 말을 낚아챘다.     


“공구리?! 아이고~ 아버님이 건축업을 하시나? 어쩌자고 딸내미 이름을 공구리로 지었데~~ ㅋㅋㅋ”     


깐죽이며 저 혼자 즐거운 금식을 차분히 응시하던 프란체스카의 오른손이 드디어 이륙하려는 찰나, 안젤리카가 그녀의 손을 잡아 눌렀다.     


“오빠. 술값 쌩까려고 쇼하는 거면 그만하시죠.”     


안젤리카의 말에 금식이 오호라 이젠 네 차례다, 란 눈빛으로 그녀를 꼬나봤다.     


“그렇지. 우리 완줼뤼카는 본명이 뭔가? 아니야 말하지 마! 내가 맞춰 보께~~! 아안~서엉~대엑~?!!ㅋㅋㅋ”       


찌질함의 극치를 유감없이 선보이는 금식의 꼬장에 수봉은 쪽팔려 죽을 지경이었다.     


“하아... 미안해 언니들~ 내가 대신 사과할게.”


프란체스카와 안젤리카는 수봉의 사과에 다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까닥였다.     


“사과는 뭔 사과!! 안성댁 너 좀 전에 뭐? 내가 술값 쌩까려고 쇼를 해~! 이 눔~ 지지배가...떽! 그럼 니들이 내면 되지!”     


높아진 금식의 언성에 가게 안의 이목이 또다시 집중됐다.


“얌마! 조용히 좀 해!”     


수봉이 황급히 그의 입을 막으려다 콱! 물렸다.     


“악! 미친놈!!”     


수봉을 물고 나서 더욱 의기양양해진 금식은 풀린 눈에 힘을 바짝 주었다.     


“내가 큰 오뽜 같은 맴으로 하는 말인데, 니들 27살이나 쳐드시고 꼬롹서니가 그게 머냐? 엉? 딴 애들은 먹고살겠다고 아둥~바둥~ 취업준비에 알바에 쎄빠지는데, 걔들 보면 뭐 느끼거 없냐?!"    


꼰대 마저 빙의된 금식은 진상의 절정에 오르고 있었다.


“미친놈아! 언니들 임용고시 패스하고 내년에 초등학교 선생님 돼!!”

“뭐? 션쉥니임~~! 아이고, 몰라 봬서 죄송함돠~~”     


갑자기 태도가 돌변한 금식이 비틀대며 일어나 허리를 깍듯이 수그리다 획! 쳐들었다.     


“뭐! 이뤌줄 알았냐? 이 눔~ 지지배들이 학교 쌤이나 돼 갖고 나이 든 오뽜들 홀딱 베껴먹을 생각이나 하고 말이야! 오늘 먹은 곱챵~ 값이면 의자를 몇 개를 만들어야 되는지 니들이 아냐?”  

“금식아! 너무 빙신 같다. 일어나서 바람 좀 쐬고 오자. 어서!”

“그래요. 빙신 오빠. 바람 좀 쐬고 오세요. 아, 그리고 갔다 오면서 계산도 부탁드려요.”     


프란체스카의 말에 금식을 일으켜 세우려던 수봉은 넌, 왜 또 염장이야, 란 듯 그녀를 쳐다봤다. 금식은 그녀의 말에 수봉을 뿌리치며 도로 뭉개고 앉았다.     


“빙신 오빠? 계산? 못 해! 안 해! 아오~! 첫사랑만 안 죽었어도~~! 꼴 값도 안 되는 년들한테 이런 수모는 안 당할 텐데~! 아이고~! 보고 싶다! 소라야~!!”     


안광을 번뜩인 안젤리카가 배추 같은 상추를 한움큼 길게 쥐고 '촤악! 촤악!' 금식의 양 뺨을 매섭게 휘갈겼다. 발 싸대기에 이어 상추 싸대기까지, 또다시 길이 남을 흑역사를 창조한 금식은 흩날리는 상추 파편들과 함께 여한 없이 뒤로 나자빠졌다. ‘우당탕!!’ 놀란 가게 손님들은 이구동성 나지막한 비명을 질렀다.

안젤리카는 너덜너덜해진 상추를 식탁 위에 다소곳이 올려놓고 후련한 듯 ‘후우~’ 숨을 뽑아냈다.


“나, 화장실 좀.”     


안젤리카가 가게 밖으로 나가자 뻘쭘히 지켜보던 수봉이 금식을 일으켜 세웠다.     


“대체 무슨 일이래?! 괜찮아요? 총각!”     


시끄러운 소리에 주방에서 달려 나온 이모님이 금식의 머리와 얼굴에 붙은 상추를 안쓰럽게 떼어 주었다.     


“죄송합니다...”     


처량하게 사과하는 금식을 이모님은 따듯하게 다독였다.     


“괜찮으니까, 나가서 바람 좀 쐬고 와요.”     


이모님의 말에 수봉은 금식을 데리고 가게 밖을 나왔다. 두 사람은 가게 옆 주차장 한 귀퉁이에 쪼그려 앉아 담배를 꺼내 물었다.        


“자, 한 대 피우고 정신 좀 차리자.”     


수봉이 담배에 불을 붙여 건네자, 한 모금 깊게 빨아 들인 금식은 땅이 꺼져라, 연기를 토해냈다.    


“젠장....”     


서글픔이 깃든 외마디에 수봉은 그의 어깨를 감싸 안고 토닥였다.     


“괜찮아. 이게 다 술 때문이지 네가 뭔 잘못이겠냐?”

“괜찮긴!! 네가 안성댁을 데리고 와서 그런 거 아니야!!”  

"안성댁? 그게 누구야?"

"안녕 프란체스카에 나오는 안성댁! 몰라?!"   


금식은 미간을 확! 구기며 어깨를 감싼 수봉의 팔을 뿌리쳐 걷어냈다.     


“아, 모르겠고. 나나 같은 스타일이 좋다고 해서 삼 등신에 통통한 애로 어렵게 신경 썼구만, 새삼 지랄이네!”

“뭔 소리야?! 애프터스쿨 나나가 언제부터 삼 등신에 통통했어?!”     


깜짝 놀란 수봉은 이제야 깨달았다는 듯 자신의 이마를 탁! 쳤다.     


“아~ 그 나나였어?! 난 텔레토비 나나인 줄.”

“아놔~ 진짜!! 여하튼! 걘 내 스타일 아니니깐, 오늘 술값은 반띵이다!!”

“오빤 내 스타일인데.”     


불쑥, 침범한 안젤리카의 목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란 금식은 그대로 주저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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