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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파니 Jun 19. 2023

나의 첫사랑 소환귀 (9)

9화. 꼬르륵





      

“아.... 그래서 이 꼴이 된 거구나...”

“응. 그래도 다행인 건 집 밖으론 안 쫓아 오더라고.”     


엄지와 검지로 여전히 코를 막고 있는 수봉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근데 뭐야? 그 끔찍한 여잔?!”

“아... 그게...”     


난처한 듯 잠시 머뭇거린 금식은 속 시원히 털어놓았다. 자초지종을 모두 듣고 난 수봉은 어안이 벙벙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게 됐다고?! 아니 어떻게... 말도 안 돼....”     


수봉은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자신이 직접 맞닥뜨리고 팬티바람으로 도망치지 않았던가. 수봉은 금식을 향해 눈을 부라렸다.


“야잇! 미친놈아!! 어쩌자고 귀신을 불러내고 지랄... 우웩!”     


격한 마음을 가누지 못한 수봉은 그만 코에서 손가락을 떼었다 이불에서 퍼지는 썩은 똥꾸렁내의 역습에 다시금 코를 막았다.     


“으이구~~! 이 되다 만 인간아~! 이제 어떻게 할 거야?! 부적도 안 통한다며!!!”      


수봉이 코맹맹이 소리로 다그치자 금식의 표정이 침통하게 구겨졌다. 고개를 떨군 금식은 ‘에휴...’ 후회에 쩔은 한숨만 뱉을 뿐, 달리 할 말이 없었다. 어깨를 움츠리고 바닥에 시선을 고정한 그의 모습은 더없이 처량했다. 이 모습에 수봉의 열불난 감정이 조금은 누그러졌다.      


“탓해 뭐 하냐.... 그나저나 어쩔 거야?”     


풀이 죽어 있던 고개를 빳빳하게 세운 금식은 수봉을 향해 눈을 반짝였다.     


“그래, 수봉아. 앞으로 어떻게 할지가 중요한 거 아니겠어. 비록 내가 싼 똥이지만 네가 도와준다면 충분히 치울 수 있어.”     


아니 무슨 부탁을 이처럼 뻔뻔하고 더럽게 한단 말인가. 수봉의 감정에 다시금 불이 붙었다.     


“네가 싼 똥을 내가 왜?!! 못해!! 안 해!!!”     


수봉은 진저릴 치며 강하게 저항했다.     


"너, 특전사 전역 한 거 맞냐?! 죽음을 벗 삼아 훈련 했다며. 그런 놈이 귀신을 무서워하냐?! "

"특전사가 퇴마사냐! 훈련을 아무리 빡쎄게 받았어도 귀신은 무서워!"

"아오~~ 나 공익 나왔다고 놀릴땐 언제고..."

“좋아. 나와 함께 한다면 앞 전에 빌려준 노상 방뇨 범칙금 오만 원은 퉁 쳐주기로 하지. 어때?!”   

“뭣?! 마! 사람을 어떻게 보고!”     


맞다! 그깟 돈 오만 원에 흔들릴... 수봉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이를 감지한 금식은 최후에 일격을 날렸다.     


“널 애타게 기다릴 쪼던을 생각해!!”     


쪼던이 날아와 가슴에 박힌 듯 수봉은 움찔했다. 결국, 회심의 미소를 짓는 금식 앞에 범칙금 오만 원과 아픈 손가락 쪼던을 위해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그런데...? 걔 얼굴은 왜 그런 거야? 팼냐?”

“팼으면. 우리 둘이 이 지경이 됐겠냐. 나타날 때부터 그랬어.”

“하긴... 귀신을 어떻게 패겠어.”      


당연한 말에 수봉은 맥없이 수긍했다.     


“근데? 걘 왜 죽어라 덤비는 거야?”

“몰라. 잔뜩 성질이 나 있더...”     


하던 말을 멈춘 금식은 눈꼬리를 치켜세우며 수봉을 응시했다.     


“잠깐! 네 말처럼... 귀신은 팰 수 없잖아. 영혼이니까. 그런데 함께 굴렀다?!”

“응... 대차게 굴렀지.”

“그리곤... 몹시 아파하며 니 바지단을 붙들고 늘어졌다?!”     


금식의 말에 의심이 돋아난 수봉 역시 눈꼬리를 치켜세웠다.     


“보통 귀신은 밤에 나타나고 떠다니는데 걘, 대낮에도 활보하고 옷도 막 잡고 만질 수 있잖아. 게다가 통증까지 느끼고... ”

“흠... 듣고 보니...”     


수봉은 아직도 얼얼한 자신의 소중이에 진중히 손을 올렸다.     


“맞아! 그건 분명... 사람 대가리였어!!”

“그렇지! 그래서 부적도 안 먹혔던 거고. 집안에선 걘 그냥 사람인 거야!!”

“오오~~~!!”     


무슨 대단한 발견이라도 한 듯 수봉은 탄성을 지르며 fist bump(주먹 맞대기)를 하기 위해 금식에게 주먹을 들이댔다. 금식은 수봉의 주먹을 손바닥으로 감싸 쥐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가위, 바위, 보로 이해한 그를 수봉은 멀뚱히 바라보았다.     



***     


화물용 고무 밧줄을 어깨에 맨 수봉과 화물을 덮을 때 사용하는 그물을 손에 쥔 금식이 활짝 열린 대문 안으로 조심히 들어섰다. 현관 앞에 다다르자 조던을 본 수봉은 헐레벌떡 신었다. 금식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신발 신고 들어가게?”

“혹시 모르잖아.”

“그래도 그렇지. 방안에 신발을...”

“마! 또 맨발로 뛰고 싶어?!”     


일리 있는 수봉의 말에 금식도 냉큼 신발을 신었다. 살금살금 거실로 들어서자 수봉의 벗겨진 바지가 덩그러니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수봉은 재빨리 바지를 갈아입고는 금식과 흩어져 세 개의 방을 각각 살폈다. 방 문 앞, 벽에 기대어 쌓아둔 박스들은 내용물이 들쑤셔져 있었고 부엌엔 냉장고와 싱크대 수납장 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아오... 전기세....”     


서둘러 냉장고 문을 닫고 있는 금식을 향해 안방에 있던 수봉이 조심스럽게 다가와 소곤댔다.       


“박스를 죄다 헤쳐 놨는데. 뭐지? ”

“그러게...”     


금식은 고개를 까닥이며 수봉의 의문에 동조했다. 뭔가를 찾고 있었던 것 같은데? 하지만 알 수 없는 의문에 시간을 지체할 필요는 없을 터, 둘은 2층 계단 앞에 신속히 다가섰다.     


“내가 그물을 던져 자빠뜨릴 테니까 네가 고무바로 단단히 묶어. 알았지?”

“알았으니까. 빨리 올라가.”     


수봉의 재촉에 금식은 앞장서 계단을 올랐다. 까치발로 천천히 오르던 금식은 마지막 계단 몇 개를 남긴 채 계단 손잡이와 이어진 2층 난간대를 사이에 두고 머리만 빼꼼히 내밀어 거실과 맞은편 방을 살폈다. 열린 방문 사이로 이삿짐 박스들이 봉긋하게 무너져 있었다. 묘한 낌새를 느낀 금식은 그곳에 시선을 집중했다. 숨소리마저 허락지 않을 긴장된 상황.      


[왔어~왔어~와아았어~~ 전화! 전화!] 수봉의 주머니에서 핸드폰 벨소리가 주책맞게 울렸다.      


“야잇! 꺼!꺼!”     


식겁한 금식은 소곤소곤 절박하게 다그치며 수봉의 정수리 머리털을 한 움큼 잡고 흔들었다. 당황한 수봉은 주머니에서 황급히 핸드폰을 꺼내 발신자를 확인했다. ‘닭갈비 고객님’ 오늘 방문하기로 한 춘천 손님이었다. 받을까? 말까? 수봉의 표정이 급격히 난감해지는 가운데 ‘왔어~왔어~와아았어~’ 벨소리에 맞추기라도 한 듯 방안 무너진 박스 뒤편에서 피칠갑 소라의 얼굴이 서서히 떠오르고 있었다.      


“여보세요....”     


수차례 끄라는 금식의 말을 무시하고 수봉은 최대한 목소릴 낮춰 전화를 받았다.      


“미쳤어?! 꺼! 끄라고!”     


금식은 수봉의 정수리 머리털을 또다시 움켜쥐고 흔들며 거듭 몰아붙였다.     


“아... 기다리고 계신다고요. 아이고. 죄송합니다. 제가 지금...”     


머리가 마구 흔들리는 와중에도 수봉은 음정의 기복만 있을 뿐. 암씨롱 않게 소곤소곤 통화를 이어갔다. 금식도 해보자는 듯 수봉의 머리를 더욱 가열차게 흔들어 댔다. 그렇게 금식이 정신 팔린 사이 어느새 소라가 난간대로 바짝 다가왔다. 서늘한 낌새에 금식이 난간대로 천천히 고개를 돌리자 난간대 살 사이로 그의 코에 닿을 듯 발가락들이 삐죽 튀어나와 있었다. 이내 온몸에 전율이 뻗친 금식은 수봉의 머리를 흔들다 일순 멈췄다.     


“네. 네. 제가 그럼 시원하게 10% DC를...”     


통화에 열중인 수봉은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당최 감을 잡지 못했다. 고개를 원상태로 돌린 금식은 그의 등허리에 대고 짧은 발길질을 다급하게 날렸다. 수봉은 금식의 행동에 짜증이 난 나머지 자신의 머리를 살포시 쥐고 있던 그의 손을 거세게 뿌리쳤다.     


“알았다고! 쫌만 기다...” 


 소곤소곤한 짜증과 함께 비스듬히 금식을 올려 다 본 수봉은 드디어 난간대를 짚고 서 있는 소라와 살벌한 눈인사를 나눴다. 두 번째 만남이건만 도저히 적응할 수 없는 피칠갑 소라는 다시 봐도 오금이 저리게 끔찍했다. 이내 수봉 또한 당연히 뻗친 전율에 온몸을 파르르 떨면서도 핸드폰을 귀에 갖다 댔다.     


“고, 고객님... 제가... 자, 잠시 뒤에... 사, 살면... 전화 드, 드릴게요...”          


수봉은 손가락을 떨며 통화종료 버튼을 눌렀다. 소라는 두 남자를 예리하게 응시하며 눈동자를 사납게 굴렸다. 금식과 수봉은 눈을 깔고 벌벌 떨고 서 있을 뿐, 고무바와 그물로 그녀를 포획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금식은 손으로 슬근슬쩍 수봉의 등허리를 쿡쿡 찌르며 내려가라는 신호를 보냈다. 알아먹은 수봉은 태연하게 계단을 내려 밟았다. 발맞춰 금식도 내려 밟으려는 순간, 소라가 와락! 팔을 뻗어 금식의 정수리 머리털을 덥석! 움켜쥐었다.     


“끄악~!!”     


실성하게 놀란 나머지 금식은 비명을 지르며 엉겁결에 수봉의 정수리를 또다시 움켜쥐었다.     


“우왁~!!”     


소라, 금식, 수봉 순으로 머리털을 잡고 있는 모습은 실로 웃픈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금식이 수봉에게 한 것과 똑같이 소라도 그의 머리털을 쥐고 대차게 흔들어 댔다. "끄악~~!" 비명과 함께 금식의 몸이 그녀가 흔드는 방향으로 맥없이 요동쳤다. 금식에게 머리털이 잡힌 수봉도 한 몸인 양 나란히 물결쳤다.     


“끄악~! 우왁!!”     


둘의 비명이 집안에 명쾌하게 울려 퍼졌다. 좁은 계단 통로에서 마구 휘둘리던 금식은 손에 쥔 그물과 수봉의 머리털을 팽개치고는 머리 위로 두 팔을 뻗어 소라의 손목을 힘껏 잡았다. 머리털이 놓인 수봉은 혼미한 정신을 챙길 새도 없이 금식이 팽개친 그물에 다리가 걸려 또다시 계단 아래로 ‘우당탕! 쿵쾅!!’ 1층 거실에 대자로 뻗었다. 그의 어깨를 이탈한 고무 밧줄도 ‘또르르...’ 길게 풀려 수봉 옆에 나란히 누웠다.        


“이거 놔아~!!”     


손목이 잡힌 소라는 금식의 완력에 난간대 너머로 몸이 쏠리자 그의 말대로 머리털을 내치듯 놓아버렸다. 금식 또한 휘청, '우당탕! 쿵쾅!’ 계단을 굴러 대자로 뻗은 수봉을 향해 날아들었다. 착지를 목전에 둔 찰나, 금식의 머리가 하필.     


“뜨어어헉!”     


정녕 수봉은 고자가 될 운명이란 말인가. 기가 차게 소중이에 또다시 헤딩을 당한 그는 눈을 까뒤집었다. 수봉의 소중이가 또다시 쿠션이 되어 준 덕분에 금식은 신속히 정신을 챙겼다. 오늘 수봉이 여럿 살렸다.     


“수, 수봉아... 괜찮아?!”     


금식은 삭신의 통증을 감내하며 버겁게 수봉의 상체를 일으켜 안았다. 말 못 하게 아픈 수봉은 금식의 품에서 흐느꼈다.       


“수봉아 정신 좀 차려봐! 눈은 왜 무섭게 까뒤집고 있어?!”     


몰라 묻냐라는 듯 수봉은 금식의 멱살을 틀어 쥐었다.      


“알았어! 널 두고 가지 않아!”     


금식은 자신의 멱살을 쥔 수봉의 손을 꼬옥 감싸 잡고 북받쳐 오른 감정에 그를 와락 끌어안았다. 기회만 있으면 신파를 찍고 자빠져 있는 금식 뒤로 터벅터벅 계단을 내려온 소라가 1층에 당도했다.      


“뒤... 뒤에...”     


수봉은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소라가 왔음을 알렸지만 금식은 두려운 기색 없이 여유롭게 미소 지었다.     


“수봉아. 겁먹을 필요 없어. 여기선 쟨 그냥 사람일 뿐이잖아.”       


각성한 금식은 수봉을 곱게 뉘이곤 결연한 표정으로 일어나 그녀를 향해 몸을 틀었다. 그는 검지로 소라를 가리키며 단호하게 외쳤다.      


“결코! 널 용서치 않겠... 뜨앗!!”     


같잖은 소리 말라는 듯 그녀가 일거에 달려들었다. 금식은 맹렬히 달려드는 소라를 무작정 끌어안고 거실 바닥에 나뒹굴었다. 몸만 여자일 뿐 그녀의 힘은 금식을 압도할 만큼 억셌다. 부둥켜안고 엎치락뒤치락 구르다 서로를 번갈아 올라타기를 몇 차례 이내,    


“이읔!!”     


수봉 위로도 올라타 굴렀다.      


“수봉아!!”     


소중이를 붙잡고 괴로워하는 수봉의 모습에 격한 감정이 분출한 금식은 순간, 불끈한 힘이 온몸에 뻗쳤다. 그녀 위로 다시금 올라탄 금식은 야생마처럼 튕겨대는 소라의 허리와 양팔을 강하게 찍어 누르며 소리쳤다.     

 

“가만있어!!!!”     


야수의 포효를 방불케 하는 그의 일갈에 단단히 놀란 소라는 일순 발광을 멈췄다. 곁에 있던 수봉도 놀라 입을 반쯤 벌리고 금식을 바라봤다. 방금의 난장판이 어색하게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금식은 거친 숨을 토하며 핏발 선 눈으로 소라를 쏘아봤다. 그의 강렬한 시선에 다시금 제압당한 그녀는 찍소리 못하고 눈을 깔았다. 하지만 그녀의 위장은 할 말은 해야겠다는 듯 소리쳤다.     

'꼬르륵! 꾸룩! 꾸르륵!!' 음식을 갈망하는 아우성이 경망스럽게 메아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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