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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파니 Aug 07. 2023

나의 첫사랑 소환귀 (16)

16화. 걸뱅이 형님(1)







‘쉬이이잉~~’ 테이블쏘(재단기)의 날카로운 회전음과 ‘우우웅~~’ 2마력 집진기의 묵직한 흡입음이 공방 안을 요란하게 메운 가운데 금식은 재단하려는 목재를 길게 세워 들고 넋이 빠져있었다.‘노망이라도 난 거야?!’‘정신줄 놓은 김에 아예 벽에 똥칠까지 하지 그려셔!’ 어머니에게 했던 모진 말들이 부동산 사장이 전해준 집주인 어르신의 이야기와 뒤엉켜 먹먹하게 가슴을 조여왔다. 곧이어 삼킬 듯 덮쳐온 후회가 그의 미간을 사정없이 구겼다. 이때, 금식 뒤로 누군가 살금살금 다가와 재단기와 집진기의 OFF스위치를 눌러 모터음을 잠재웠다.     

“워메~~ 인상 드러운 것 좀 보소~!”     


수봉이었다.     


“어? 어. 왔어.”      


수봉이 말을 걸자 그제야 정신이 든 금식은 들고 있던 목재를 테이블 쏘에 기대 세웠다.     


“왜? 직박구리 폴더가 몽땅 날아갔어?”     


수봉의 시답지 않은 농담에 옅은 미소를 흘린 금식은 스툴을 끌어다 앉았다.     


“일 없어? 틈만 나면 여길 와. 남들이 보면 네가 공방장인 줄 알겠다.”

“아이구. 안 그래도 일 때문에 왔네요. 다루끼 있지?”

“마. 다루끼가 뭐냐? 해방된 지 70년이 넘었는데. 좋은 우리말 있잖아. 소각재!”

“허어~! 그렇게 애국심이 뻗치는 놈이 며칠 전에 횟집 가서 뭐?!‘사장님! 여기 와사비 입빠이요~~’하냐!”

“흰소리 그만하고, 소각재는 왜?”

“요 앞 사거리에 오픈하는 꽃집 있잖아. 가벽 공사 들어와서. 근데, ㅋㅋㅋ. ”     


‘ㅋㅋㅋ’란 웃음에서 수봉의 속내를 가늠한 금식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쯧쯧’ 혀를 찼다. 발그레 상기된 수봉은 입가를 음흉하게 씰룩이며 말을 이었다.     


“꽃집 언니가 공방에 직접 행차하셨거든. 캬햐~~! 몸매가 어찌나 육감적인지. 게다가 가게 이름이 꼬출 든 여자라는 구만! 뭔가, 느낌이 훗끈하지 않냐?! 이 언니 찜!”     


‘꼬출’이 ‘꼬추를’이 아닐진대, 어쩌자고 모든 걸 이따위로 해석하는지.     


“이자식, 도대체 무슨 약을 먹길래 365일 발정이 나 있는 거지?! 카페 누님이랑 네일아트 하는 미란인지 뭔지 한테도 고백하다 까여 놓고 그러고 싶냐?! 그러다 동네 소문나면 쪽팔려서 장사 못 한다.”  

“소문이 날 리가 없지. 카페 누님은 이사 갔고 미란이는 둘만의 비밀로 하겠다고 막걸리 원샷하면서 걸쭈욱~~하게 맹세했는데. 그리고 얘도 곧 고향 내려간데.”

“막걸리? 너 혹시 홍탁집 갔어?”

“응. 미란이가 늘 먹던 거 말고 새로운 별미가 땡긴다고 해서...”     


금식은 기가 찬 표정으로 또다시 고개를 가로저었다.     


“너, 카페 누님도 거기서 고백했지. 홍탁집에서 고백하는 별 미친놈을 만나니 걔가 별미가 댕길만도 하네.”  

“마! 카페누님랑 미란이는 근본적으로 달라! 그날 우린, 그저 그런 시시한 이성 관계를 초월해 그 어떤 강렬한 정신적 교감으로 물아일체의 감정을 느끼면서 성별의 편견을 허문!”      


수봉은 허문이란 말에 힘을 빡! 주고 눈을 강렬하게 부라렸다.     


“부랄친구로 거듭났다 이 말이야!”     


자신이 대견한 듯 뿌듯해하는 수봉을 보며 지그시 눈을 감은 금식은 오른손을 이마에 철퍼덕! 얹었다.     


“널 어쩌면 좋니. 하긴, 정신승리라도 해야 살지. 그리고 걔도 자기 인생이 소중할 텐데, 너란 놈과 사귈 바엔 심심할 때 데리고 놀 부랄친구로 남는 게 나을 수도 있겠다.”

“넌 항상 모든 걸 색안경을 끼고 보더라?! 이러니 친구라곤 나밖에 없지. 에휴~~ 한심한 놈.”     


수봉의 핀잔에 서슴없이 응수할 금식이지만 웬일로 고개만 차분히 끄덕였다.      


“맞아. 내가 한심한 놈이긴 하지.”     


한심한 놈이란 말이 금식의 기운을 쭈욱 빼내며 어깨를 추욱 가라 앉혔다.     


“뭐지 이 터무니 없는 긍정은. 왜? 집 계약이 잘 안 됐어? 만사장님이 쫌, 얍삽해서 그렇지 일은 칼 같은 분인데. ”

“응.  대따 얍샵하고 좋으시더라고....”

“근데 표정이 왜 그래? 속으로 끙끙대지 말고 시원하게 털어놔 봐! 내가 위로는 못 해줄망정 찰지게 욕은 해주잖아.”     


잠시 생각에 잠긴 금식은 천장을 향해 얕은 숨을 나직이 내뱉곤 수봉에게 시선을 돌렸다.      


“너 어머니랑 여행 간 곳 중에 젤 좋았던 곳이 어디냐?”

“갑자기 웬 여행? 그리고 네 말대로 그 좋은 델 왜 엄마랑 가.”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수봉이었다.      


“왜? 엄니랑 여행 가려고?”

“이번 구정 연휴 때 모시고 좀 다녀올까 싶어서...” 

“커허~~어거야 원! 너마저 사람 구실 하면 나 혼자 어떡하냐~~”

“그래서 아는 데 있어?! 없어?!”

“넌, 마! 사람을 어떻게 보고! 내가 그런 델 알 턱이 있겠어! 가만 보면 넌, 날 너무 과대포장하더라.”     


‘그럼 그렇지.’ 금식의 고개가 절레절레 알아서 흔들렸다.      


“그러게. 너한테 그런 걸 묻다니, 내가 잠시 실성했나 보다. 그리고.”     


말을 하다 만 금식은 수봉의 왼쪽 볼때기를 두툼히 잡아 비틀었다.     


“과대포장이 아니라 평가야.”

“아아~~ 지랄!”

“저기 수압대패 옆에 다루끼, 아니 소각재 보이지? 가지고 얼렁 꺼져.”     


공방 한 귀퉁이, 수압대패 뒤에 세워놓은 소각재를 귀찮다는 듯 턱으로 가리킨 금식이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자 수봉은 볼때기를 어루만지며 의미심장하게 입을 열었다.      


“전국 방방곡곡을 죄에~~ 싸돌아다니며 걸뱅이 마냥 빌어먹고 여행책을 낸 형님이 있는데 말이야. 조선 시대에 태어났다면.... 대동여의도는 아마도 이 형님 업적이 되었을지도. 흐흐...”  

“그런 형님이 있어? 누군데?”     


다소 놀란 반응을 보이며 묻는 금식에게 ‘허허허!’ 너털웃음으로 답한 수봉은 소각재로 다가가 양팔로 감아 않고는 공방 앞에 세워둔 자신의 1톤 트럭에 실었다.       


“누구냐고?”     


조바심에 뒤 따라 나온 금식이 운전석에 올라탄 수봉을 붙잡고 재차 물었다.     


“알고 싶나? 그럼 이따 7시에 춘배 형님네서 보세. 간만에 자네가 쏘는 술에 영혼까지 흠뻑 취하고 싶구만.”

“아오~~! 그래. 나도 오늘은 술 한잔 생각나니까, OK. 그리고.”      


금식은 살갑게 수봉을 바라보며 좀 전보다 힘껏 양 볼을 잡아 비틀었다.     


“대동여의도가 아니라, 여지도야.”

“아! 아! 지랄!!”     



***     


‘띠리릭’ 도어록 열림음과 함께 금식이 현관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섰다. 자신이 들어왔음에도 어머니의 인기척이 없자 반사적으로 안방에 시선이 꽂혔다. 빼꼼히 열린 문틈 사이로 돌아누운 어머니의 가녀린 어깨가 힐끗 드러났다. 무심히 바라보던 금식의 입에서 ‘후~’ 짧은 탄식이 비집고 흘렀다. 이내 시선을 자른 그는 옷방으로 들어가 행거에 걸려있는 회색 후드티에 빛바랜 청바지로 환복 후 수납함에서 모양 좋게 개어진 흰 양말을 꺼내 갈아 신곤 현관으로 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이내 뒷덜미가 잡힌 시선은 또다시 안방을 향했다. 금식은 안방 문을 조심스럽게 열어 고개를 들이밀었다.     


“엄마... 자?”     


아들의 부름에도 깊은 잠에 붙들린 어머니의 눈과 입은 얕은 미동만 있을 뿐 고요했다. 곧이어 방바닥을 손으로 더듬어 온기를 확인한 금식은 장롱에서 화려한 꽃무늬 색감의 얇은 누빔 이불을 꺼내 어머니의 여린 어깨부터 살펴 덮으며 발끝에 이르렀다. 순간, 신고 계신 검정 양말에 시선이 쏠렸다. 엄지발가락 부분을 흰 실로 오므려 꿰맨 이 양말, 어제 어머니가 금식에게 억지로 갈아 신긴 그 양말이었다. 이젠 궁색한 형편도 아닌데. 어머니의 얼굴을 못마땅하게 흘기던 금식은 ‘쯥’ 입맛을 다시며 들어올 때처럼 조심히 몸을 세워 방을 나섰다. 어머니는 여전히 고요했다.       



***     


“행니임~~”     


'딸랑!' 소리와 함께 ‘그 시절 포차’라고 적힌 가게 문이 열리며 능글맞게 인사하는 수봉 뒤로 금식이 따라 들어왔다. 아이보리 빛 전구가 온화한 분위기를 자아낸 20평 남짓한 가게 내부는 바 테이블이 에두른 오픈 주방 형태로 입구 맞은편 벽을 가득 메운 진열장엔 LP판이 틈 없이 빼곡했다. 그 한가운데 30년은 족히 넘은 인켈사의 턴테이블과 사람 허리높이의 직사각형 스피커가 양쪽에 가지런히 놓여 있어 7080 감성이 물씬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그리고 이름에서 느껴지는 이미지와는 전혀 상반된 교회 오빠 스타일의 춘배가 주방 안에서 바 테이블에 앉아 있는 앳된 모습의 여자 손님 둘에게 메뉴판과 소주, 잔을 두고 돌아서려다 수봉의 인사에 웃으며 다가왔다.         


“어서들 와.”     


중저음의 매력적인 목소리로 반갑게 맞이하는 춘배에게 금식은 환한 미소로 깍듯이 고개를 숙인 반면 수봉은 ‘춘배!’라고 외치며 경례를 했다. 이를 듣고 있던 여자 손님 둘이 ‘어머’ 하며 나직이 키득거렸다.


“마! 너는 형님 이름 놀려 먹는 게 재밌냐?”     


여자들의 키득거림을 눈치챈 금식이 눈살을 찡그리며 수봉을 쏘아붙였다.      


“놀려먹긴! 나는 그냥, 형님 이름이 구수~~ 하니 입에 촤악! 감기는 게 재래식 된장 같고 좋아서 그런 거야. 별 뜻은 없어.”

“형님. 이 자식 옆에 여자들 있어서 더 그런 거 아시죠? 하여간, 심보가 개똥이야!”

“하하! 괜찮아. 수봉이 말처럼 나도 구수한 내 이름이 좋거든.”     


성격 또한 품 넓은 춘배는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참! 금식이 집 샀다며? 축하해~!"


금식은 쑥스러운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에이... 그냥, 코딱지 만해요...." 

"코딱지 파 먹는 소리 하고 있네. 마당까지 있는 단독이래요."  


수봉이 배 아픈 티를 팍팍 내며 끼어들었다.


"그동안 고생 많았어. 집 산 기념으로 안주는 서비스~!"

"와우! 춘배!!"


또다시 경례를 붙인 수봉을 뒤로하고 춘배는 주방 안쪽 다열렌지 앞으로 향했다. 그 사이 금식은 출입문 옆 술장고에서 소주를 꺼내오고 수봉은 소주잔과 강냉이를 익숙하게 퍼 날랐다.      


“자. 한 잔 쭈욱~ 들이키세.”     


소주잔에 술을 채우기 무섭게 단숨에 원샷을 한 둘은 ‘크으으으으~~~’ 괴성을 지르며 비운 술잔을 정수리에 털었다.     


“캬야~~! 하루의 피로가 허벌나게 풀리는구만! 근데? 내 돈으로 사 먹으면 이런 맛이 안 난단 말이야.”  

“피로가 쌓일 만큼 일도 안 한 것 같구만. 엄살은. 그나저나 아까 말했던 걸뱅이처럼 전국을 싸돌아 다녔다는 사람이 누구야?”

“근데, 저기 언니들! 의상이 알록달록하니.... 꽃 같다...”

     

수봉은 여자 손님 둘을 게슴츠레한 눈으로 감상하며 엉뚱한 소릴 해댔다. 그런 그를 무표정하게 바라보던 금식이 무겁게 입을 뗐다.     


“수봉아. 발이 한자로 뭐냐?”

“뭔, 뜬금없이... 발이 한자로 뭐긴, 족이지.”

“그래. 꽃 같은 언니들 보는 넌.... 족 같다.”

“엉?”     


무슨 뜻인지 순간 멍했던 수봉이 격하게 인상을 구겼다.     


“뭐?! 조, 족 같아?!!"

"응. 하는 짓마다 발냄새가 나. 아주~~ 구려~~ 읔! 꼬랑내!"

"아오~~ 이걸 진짜 족으로 함 까줘?!!”  

“수봉아! ”      


두부 김치 볶음을 내 오던 춘배가 끼어들며 짧은 다리로 허공에 발길질만 해대는 수봉을 불러 세웠다.     


“듣기 거북하게 족 까는 소릴 하고 그러냐. 그리고 공익 나온 네가 특전사 나온 금식이 상대가 되겠어? 넓은 아량으로 족도 아닌 네가 참아.”        


춘배, 뒤끝 있다. 금식과 수봉의 실랑이에 이미 웃음에 발동이 걸린 여자 손님 둘은 이내 춘배의 뒤끝 작렬에 빵! 터졌다.      


“아우~!! 형님까지 왜 그래요!! 족! 같다고 해서 족! 까 줄려는 건데!”     


엿 듣고 있던 그녀들이 어깨까지 들썩이며 웃어 대자 이 모습을 넌지시 바라보던 수봉은 기회다 싶게 므흣한 미소로 추파를 던졌다.        


“와우! 너무 즐거워하시니까 제 기분도 함께 널 뛰는데요. 하하하! 이것도 인연인데 어떻게, 통성명이라도.”


수봉은 그녀들을 향해 넉살 좋게 말을 걸며 애벌레 기어가듯 꼬물꼬물 다가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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