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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파니 Aug 21. 2023

나의 첫사랑 소환귀 (18)

18화. 자장자장







어머니를 뉘인 이동식 응급 침대가 응급구조사와 간호사들에 둘러싸여 병원 복도를 전력으로 내달리고 이를 놓칠세라 안절부절 울상이 된 금식이 바짝 따라붙었다.     


“엄마.....”


‘어버... 어버버...’이미 안면 근육에 마비가 진행된 어머니는 금식을 향해 무언가 할 말이 있다는 듯 분간할 수 없는 소릴 연신 해댔다. 금식은 뻣뻣하게 오그라든 어머니의 손가락을 꼬옥 감싸 쥐며 뜻 모를 말에 대꾸했다.     

“응. 괜찮을 거야. 아무 일 없을 거야.... 걱정 마. 엄마!”     


응급실 문이 열리며 어머니를 태운 응급 침대가 들어서자 입구 앞에 있던 간호사가 단호한 표정으로 금식을 가로막았다.      


“보호자 분은 여기서 기다려 주세요.”     


닫히는 응급실 문 사이로 양말이 벗겨진 어머니의 왼 발이 보였다. 시선을 떼지 못한 채 꼼작 않던 금식은 문이 완전히 닫히고 나서야 한켠에 마련된 대기 의자에 맥없이 털썩! 주저앉았다. 망연자실, 멍하니 천장 형광등을 바라보다 벽에 걸린 디지털시계로 시선이 흘렀다. 새벽 1시였다. 불현듯 울컥 치솟는 걷잡을 수 없는 감정에 머리를 부여잡고 잔뜩 웅크린 금식은 눈물이 날 만큼 괴로웠지만 왜인지 눈물이 차오르진 않았다. 터널 같은 길쭉한 병원 복도에 홀로 남아 눈물을 대신해 깊은 한숨만 토해내는 그의 모습은 너무도 외롭고 애처로웠다. 그러고 있기를 잠시, 급격히 찾아든 고단함에 저도 모르게 나른해진 금식은 서서히 의식의 끈을 놓았다. 그 틈을 비집고 어릴 적 기억 하나가 꿈속으로 스며들었다.     

 


“금식아! 같이 가아~!!”     


초등학생 금식이 교문을 나서려는데 급우 영철이 그를 애타게 부르며 쏜살같이 달려왔다.       


“젠장! 육성회비, 짤짤이로 다 날렸는데 어떡하지? 이번에 걸리면 엄마가 날 아주 거꾸로 매달려고 할 텐데...”     

심각한 표정으로 투덜대는 영철을 금식은 가벼운 웃음으로 응수했다. 이때 검은색 중형차 한 대가 이 둘 옆으로 다가와 멈췄다.     


“아들!!”     


흰 원피스를 입은 세련된 스타일의 중년 여성이 운전석에 앉아 영철을 불러 세웠다.      


“아들! 어서 타!”

“아! 쫌! 이제 데리러 오지 말라니깐! 나도 6학년이라고!!”


 차로 다가선 영철은 짜증 섞인 목소리로 칭얼댔다.     


“나, 금식이랑 걸어갈 거야. 엄마 먼저 가.”     


영철의 말에 그의 어머니는 쭈볏대며 서 있는 금식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아.... 네가 금식이구나.”     


금식은 말없이 고개만 푹 숙여 무뚝뚝하게 인사했다. 이런 태도가 마음에 안 들었던지 영철의 어머니는 탐탁지 않은 표정을 지으며 아무 대꾸 없이 시선을 거뒀다.      


“일찍 들어와!”

“알았으니까. 빨리 가!”     


영철의 닦달에 시큰둥하게 입술을 삐죽인 어머니는 곧바로 차를 출발시켜 멀어졌다.     


“내가 애도 아니고 말이야. 에잇!”

“너, 애 맞아.”     


금식이 정색하고 말을 받아치자 어이가 없는 영철은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었다.      


“모르는 소리. 난 이미 어른이거든.”

“뭔 소리야?”     


영철은 거들먹거리며 금식의 어깨에 팔을 걸쳤다.     


“너, 아주 옛날엔 장가를 갈 수 있는 나이가 언제인 줄 알아?”

“그거야. 뭐....”

“알 턱이 없겠지. 엉아가 알려 줄 테니 새겨들어라.”     


영철은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금식의 귓가에 은밀하게 속삭였다.     


“꼬추에 털 날 때부터야.”

“진짜?!”     


 뭔 이따위 얘기를 대단한 비밀이라고 귓속말씩이나. 하지만 누가 친구 아니랄까 봐, 금식은 영철의 근본 없는 거짓말을 의심치 않고 믿으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런데 말이야. 이 몸은 이미 5학년 때 장가갈 준비를 마쳤거든! 하하하하!!”

“오오~~!”     


금식의 감탄에 영철은 좁은 어깨를 우쭐하게 쫘악~ 폈다.     


“이런데도 내가 애냐?! 뭐 하긴, 너 같은 뻔데기 꼬추가 뭘 알겠어.”     


그 나이에 걸맞은 세상 유치한 얘기로 열띤 대화를 이어가던 둘은‘떼거지 왕갈비’라고 적힌 고깃집 앞에 이르자 금식이 발길을 망설였다. 그리고는 고깃집을 끼고 들어서는 골목 안을 흘깃거렸다. 골목 중간쯤, 고깃집 뒷문 옆, 연탄아궁이에 불판을 올려놓고 돼지 껍데기를 굽고 있는 후줄근한 흰색 티셔츠 차림의 여성이 흥건히 젖은 수건으로 얼굴과 목에서 흐르는 땀을 연신 훔치고 있었다. 어머니였다. 금식이 골목을 들어서지 않고 그대로 지나치려 하자 이미 골목에 들어선 영철이 큰소리로 외쳤다.     


“금식아!! 어디가?!!!”     


영철의 외침에 금식은 흠칫 걸음을 멈췄다. 껍데기를 굽고 있던 어머니는 자식의 이름에 본능적으로 골목 초입을 향해 반가운 시선을 던졌다. 영철을 사이에 두고 금식은 어머니가 자신을 보고 있음을 느꼈지만 못 본 척, 영철의 부름도 못 들은 척 정면만을 응시한 채 골목을 지나쳤다. 그런 아들을 잠잠히 바라보던 어머니는 엷은 미소를 짓고는 이내 굳은 표정으로 껍데기를 집어 불판에 올렸다.      


“야! 왜 맨날 지름길 놔두고 돌아가?!!”     


뒤를 쫓으며 소리치는 영철의 외침에 인상을 구기며 어금니를 앙다문 금식은 눈을 질끈 감은 채 달리기 시작했다. ‘야아~! 같이 가! 금식아! 금식아~~!!’미처 따라붙지 못한 영철의 목소리가 저만치 아련해지며 어떤 여자의 나직한 음성이 줄을 댔다.     


“...... 보호자님? 보호자님!”     


더욱 또렷해진 여자의 음성에 꿈은 쫓기듯 의식 뒤편으로 달아났다.      


“아.... 네, 네!”     


비몽사몽, 반사적으로 대답하며 고개와 허리를 반듯하게 세운 금식은 황급히 앞을 바라봤다. 엄숙한 표정의 응급실 당직 여의사와 간호사가 다소곳한 태도로 눈을 맞추고 서 있었다.      


“환자분 아드님 되시죠?”     


간호사 곁에 있던 여의사가 한 발짝 다가서며 물었다.      


“아, 네.”     


금식이 벌떡 일어나며 대답했다.     


“어머님께서 위급한 상황은 넘기셨습니다.”

“하아.... 감사합니다.”      


금식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머리를 깊게 숙였다.     


“근데? 뭣 때문에?”

“급성 뇌경색으로 추측됩니만....”

“뇌, 뇌경색이요?!”     


낯빛이 어두워진 금식의 입술이 바짝 타들어 갔다.     


“네. 우선 아드님께서는 여기 간호사의 안내에 따라 입원수속을 진행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어머니 좀 잘 부탁드립니다.”     


금식이 또다시 머리를 깊게 수그리자 엄숙한 눈빛으로 친절한 미소를 지어 보인 여의사는 고개를 끄덕여 답례하곤 응급실로 걸음을 옮겼다. 간호사의 안내에 따라 수납창구에서 입원 수속을 마친 금식은 어머니의 입원 용품을 챙기려 병원을 나섰다.

버스정류장으로 향하는 길, 어느새 태양이 어둠을 밀어내며 기지개를 켜고 있었다. 정류장에 도착하자 집 방향 버스가 때마침 들어섰다. 버스에 몸을 싣고 보니 첫차여서 그런지 승객이라곤 금식뿐이었다. 맨 뒷좌석 창가에 여유롭게 자릴 잡고 바깥 거리풍경을 멍한 눈빛으로 흘려보내길 몇 정거장쯤, 정차한 버스에 다섯 살 정도의 남자아이와 앳되고 초췌한 모습의 여자가 내용물이 꽉 차 보이는 여행 가방을 버겁게 둘러메고 버스에 올라탔다.

자연스레 금식의 시선이 그 둘을 쫓았다. 여자는 아이를 앞세우고 출구 쪽 2인 좌석에 앉으며 힘겹게 가방을 내려놓고는 ‘후우~~~’고단함에 절인 한숨을 짙게 내쉬었다. 곁에 아이는 반듯이 앉아 반쯤 감긴 눈을 두어 번 비비며 하품을 연거푸 해댔다. 이른 아침이라 잠투정을 부리며 짜증을 낼 만도 한데 아이는 이런 상황이 익숙한 듯 너무도 태연했다. 금식은 그런 아이가 대견하면서도 한편으론 안쓰러워 마음 한구석이 저릿했다. 이내 여자는 말없이 아이의 머리를 살포시 감싸 자신의 무릎에 누이고는 어깨를 자장자장 토닥였다. 여자와 아이에게 어떤 사연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들의 모습에서 금식은 뜻 모를 서글픔을 느끼며 가슴이 시려 왔다. 문득, 원치 않는 과거의 기억 하나가 또다시 뾰족하게 돋아났다.      



금식이 초등학교에 들어갈 무렵, 어머니는 전기구이 통닭집에서 일하며 통닭을 포장해 오셨는데, 비닐봉지에 담긴 통닭은 제 모습을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심하게 훼손되어 있었다. 아무리 좋게 봐도 잔반을 모아 온 것이 분명했지만 그래도 그땐 통닭구이를 먹을 수 있다는 것이 고된 가난을 잊게 해 준 유일한 낙이자 잔칫날이었다. 그날도 금식이 어머니와 둘만의 잔치를 벌이려 쟁반에 잔반 통닭을 펼쳐 놓고 한점 집으려는 찰나,

‘우당탕! 쾅!!’ 창이 달린 알루미늄 현관문을 요란스럽게 열어젖히며 고모 셋이 반지하 단칸방에 들이닥쳤다.     

“어쭈, 이년 봐라?! 돈 없다면서 통닭 처먹을 돈은 있나 보네!!!”      


어린 조카가 있건 말건 이미 눈깔이 뒤집힌 그녀들은 굶주린 맹수인 양 어머니를 향해 사납게 달려들었다. 그녀들의 구둣발에 밟히고 채인 닭 조각들이 사방으로 튀고 나뒹구는 가운데 머리채와 가냘픈 어깨를 억세게 드잡힌 어머니의 옷과 몸이 마구 뜯기며 흔들렸다. 고모 둘이 어머니를 맹렬히 공격하는 사이 남은 고모 하나가 혹시 모를 돈을 찾기 위해 세간살이를 집요하게 헤집었다.     


“사업하다 말아먹었음 우리 돈부터 갚아야지!! 썅!! 잠수 타면 다야!!! 솔직히 말 안 해!! 이 새끼 어딨어?!!!”     

툭하면 쳐들어와 빚 독촉과 아버지의 행방을 캐물을 때마다 당신들 오빠가 그 빚 갚으려 먼 타국 사우디에서 건설 노동을 하고 있다, 어머니가 아무리 토로해도 그녀들에겐 비루한 변명에 불과했다. 돈 앞에선 남보다 못한 것이 혈육이었다. 그렇게 인륜을 저버린 그녀들에 의해 어머니가 만신창이가 될 때면 민방위 훈련 대피 요령처럼 금식은 능숙하게 비닐로 만든 간이 옷장에 지퍼를 반쯤 열고 들어가 눈을 감고 귀를 막았다. 하지만 귓바퀴를 아무리 짓눌러 막고 두 눈을 질끈 감아도 어머니가 겪고 있는 가혹한 상황은 귓가를 파고들어 두 눈에 생생했다.      


“어디 내빼기만 해 봐! 애새끼까지 확! 콩밥을 먹게 해 줄 테니까!!”

“너희 년놈들, 우리 돈 갚기 전엔 죽을 생각도 하지 마!!!”        


미친개처럼 날뛰던 그녀들은 저열한 악담을 퍼붓고는 현관을 나서며 부서져라 있는 힘껏 문을 쳐 닫았다.

‘콰광!! 와장창!!!’ 충격을 견디지 못한 현관문의 유리창이 기어이 박살 나며 날카로운 파편들이 방 안으로 튀어 들었다. 박살이 난 현관 창 너머로 독살스럽게 어머니를 응시하던 그녀들은 희희덕 이죽거리며 의기양양 발길을 돌렸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평온이 스며들자 비닐 옷장 안에 숨어있던 금식이 빼꼼히 고개를 내밀어 어머니를 살폈다. 방 한가운데 덩그러니 앉아 너덜너덜 누더기가 된 모습으로 깨진 현관 창문에 시선을 고정한 어머니의 표정은 너무도 담담했다. 늘 그랬다. 분하고 원통해 서럽게 울 법도 한데 어머니는 일말의 슬픈 기색조차 흘리지 않았다.

어머니의 담담한 표정은 몇 달 뒤, 건설 현장에서 추락사한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도 흔들림 없이 한결같았다. 오직 고모들만이 장례식에 걸맞게 울며불며 ‘내 돈! 내 돈!’ 핏대를 세운 돈타령으로 비통한 분위기를 살렸다. 어머니 곁에 멀뚱히 앉아 있던 금식은 그녀들의 볼썽사나운 짓거리에 눈을 떼지 못했다. 어머니는 그런 금식을 돌려 앉힌 뒤 머리를 보듬어 무릎에 뉘어 귀를 막았다. 그리곤 남은 한 손으로 자장자장 금식의 어깨를 토닥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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