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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파니 Apr 18. 2023

대단히 좋은 말씀에는 아재개그를

어차피 딸이 없어서





일감이 쓰나미처럼 밀려와 미친 듯 제작하고 통장을 확인하니 우와아~!!!

하는 상상만으로 흡족하게 파리만 잡던 어느 날, 공방문이 빼꼼히 열리며 남산만 한 똥배가 쑤욱~ 들어왔다.

곧이어 정체를 드러낸 건 50대 중반쯤 되는 남자 고객이었다. 한 손에 불룩한 종이 쇼핑백을 들고 "실례함돠." 인사를 건네는 태도가 어딘지 모르게 껄렁했다. 고객분은 20평 남짓한 공방을 크게 둘러보며 살짝 떨떠름한 표정으로 말했다.


"근데 간판을 왜 이렇게 작게 만드셨어. 이 앞을 겁나 다녀도 공방이 있는 줄 몰랐네."


뭐지? 이 존대 같은 반말은. 60대는 괜찮지만 기껏해야 서너 살 많은 거 같은데 이런 식이면 곤란했다. 그래도 고객에게 불편한 심기를 보일 순 없으니 미소를 머금고 답했다.


"운영 방향이 신비주의라서요."

"에이~ 사업이 장난도 아니고 그러면 쓰나." 


가볍게 웃자고 던진 말인데 고객분은 사뭇 진지하게 받았다. 그러고는 명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대기업 영업사원으로 근무한 이력을 열거하며 "사업이란 자고로~" 교장 선생님 같은 훈화가 이어졌다. 그 옛날 국민학생이 된 듯 정신이 혼미했지만 엘리트의 삶이 오롯이 담긴 말씀을 어찌 허투루 들을 수 있단 말인가.

괄약근에 힘을 빡! 주고 정신을 집중했다.


"유니크한 디자인으로 포지셔닝맵을 구축해서 디퍼런트 스트라테지 마케팅을 해야 컨슈머의 니즈를 액티비티 하게 반영할 수 있고 마켓에서 프라이스 컴퍼티션이 가능한...."


당최 뭔 소린지. 대단히 좋은 말씀 같은데 개뿔도 못 알아먹었다. 평소에 영어공부 좀 할걸.

속상한 마음을 가눌 수 없는 그때, 새끼손가락 한 마디 만한 똥파리가 고객분과 내 주위를 맴돌며 '앵~앵~~'

신경을 긁었다. 고객분은 개의치 않고 말씀을 이어갔지만 난 너어어무 듣기 싫었다. 파리의 동선을 날카롭게 주시하며 왼손에 있던 파리채를 오른손으로 옮겨 단단히 틀어 쥐었다. 똥파리가 내 살기를 느꼈는지 고객분 머리 위로만 선회하며 나와 대치했다.


"구멍가게라도 CEO마인드로 매니지먼트를 해야 레벨 업을 하지, 안 그러면..." 고객분의 이 말 끝에 똥파리가 순간! 내 무릎을 향해 매섭게 파고들었다. 기습이다! 그러나 어림없다! 파리채 끝에 검기를 모아~~

건곤일척!!(운명을 걸고 하는 단번의 승부) '타악!!!' 내 무릎 위로 서슬 퍼런 파리채가 작렬했다. 느닷없는 광경에 벙찐 고객분은 '합!' 입을 다물었다. 살수로 태어난 파리채를 이길 순 없을터, 납작 만두가 된 똥파리를 고객분께 보이며 말했다.


"아오~! 더럽게 앵앵대서요. 놀라셨다면 죄송합니다."


고객분은 머쓱한 표정으로 '쩝' 입맛을 다시며 소리가 크던데 무릎은 괜찮냐고 물었다. 난 아무렇지 않으니 말씀 계속하시라 부탁했다. 고개분은 됐다며 시들하게 답하곤 들고 온 쇼핑백에서 주섬주섬 무언가를 꺼냈다. 대패였다. 목공 하는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동양(일본) 대패였는데 목재의 평을 잡을 때 쓰는 평대패 두 개와 긴 대패 하나였다. 언플러그드 목공(수공구만 사용하여 가구등 목제품을 짜맞춤으로 제작하는 방식)을 유튜브로 시작했다는 고객분은 대패관리의 어려움을 토로하며 대패질이 뜻대로 안 되는 것에 짜증을 냈다. 공방에 온 지 30분 만에 밝힌 방문 목적은 결국, 대패를 손봐달라는 거였다.

수공구 중에서도 대패는 장시간 숙련을 필요로 한다. 초보자가 관련 유튜브를 보고 따라 한들 손질이 제대로 될 리 없다. 고객분의 고충을 헤아려 답했다.


"대패 손 볼 줄 모르는데요."


고객분은 어이가 없는 듯 공방 하면서 대패를 손 볼 줄 모르는 게 말이 되냐, 눈을 부릅떴다. 문득, 이 분과 같은 고객이 떠올랐다. 평소 접하지 못한 원목을 문의한 고객이었는데 관련 목재에 대해 모른다고 하자 공방 하면서 그걸 모르냐며 볼멘소릴 했다. 억울했다. 왜 사람들은 목공방을 하면 수공구부터 원목까지 다 꿰고 있을 거라 생각하는 걸까. 달리기 선수라면 100미터부터 마라톤까지 모두 능해야 됨과 다름없다.

눈을 희번덕이는 고객분께 공방 한 켠에 있는 기계 두 개를 가리켜 보였다.



자동대패 / 수압대패



자동으로 대패질하는 기계였다. 이 기계 때문에 대패를 쓸 일이 없다 보니 손 볼 줄 모른다 설명했다. 고객분은 수긍할 수 없는지, 오냐, 그렇다면 이건 뭐냐라는 듯 각종 공구들이 진열된 벽면, 우측 상단을 콕 집었다. 거기에는 크기다 다른 평대패 두 개가 진열되 있었다. 쓸 일 없는 대패가 버젓이 진열돼 있는 건 왜 인가!? 고객분은 강하게 추궁했다. 그리곤 비겁한 변명입니다!(영화 실미도의 대사)라는 투로 기계 핑계 대지 말고 손 봐 달라 떼를 썼다. 흠, 고객분 입장에선 오해할만하겠다 싶어 명백한 사실을 말했다.


"저거, 장식용인데요."


명백한 거짓 같았나 보다. 고객분은 "돈 드릴게!" 라며 더욱 격하게 손 봐 달라 떼를 썼다. 대패가 아니라 고객분을 손 봐주고 싶었다. 속 내를 숨기고 고객분을 진정시켰다. 그리곤 오해를 풀기 위해 차근히 부연했다.

목공방은 크게 두 종류가 있는데 고객님이 하시는 언플러그드 방식 원목(제재목, 우드슬랩) 공방과 전동공구와 나사못을 적극 사용해 집성목(폭이 좁은 원목 조각 여러 개를 붙여 크기와 두께를 규격화한 목재)으로 제작하는 공방이 있다, 고객님이 방문할 곳은 전자이지 후자인 여기가 아니다, 그리고 진열된 대패는 진짜 장식용이다, 한때는 나도 수공구로 가구를 제작해야 진정한 목수란 생각에 원목공방을 찾아 수강했는데 한 달 넘게 끌과 대패날만 갈며 깨달았다, 나랑 세상 안 맞다는 걸, 적성이 아니니 3개월 만에 때려치웠다, 7년 전 일이다, 이 후로 대패는 손도 안 댔다, 진열은 그냥 있어 보이려고 한 것뿐이다,라고 설명을 마쳤다. 고객분은 찬찬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다는 뜻이겠거니, 홀가분한 마음으로 갖고 오신 대패를 쇼핑백에 넣으려는데....


"왜 그러셨어. 끝까지 했어야지. "


고객분은 매에우 아쉬워하며 내 손에 있는 대패를 뺏들어 도로 내려놨다. 홀가분한 마음에 불길한 기운이 스몄다. 설마?.... 아니겠지.... 가 아니었다. 또다시 교장 선생님으로 빙의한 고객분은 진정한 목수 되기 인생 계획으로 훈화를 시작했다. (나도 다시 파리채를 쥐었다)  

우선, 유명 미대 목조형 가구학과에 입학해 학력과 인맥을 쌓을 것, 그래야 네임 밸류가 생겨 공방창업 시 이 걸 보고 사람들이 믿고 올 테니까. 이런 배경을 무기 삼아 사업을 안정적으로 꾸려 종국엔 '소목(전통가구) 장인'이 될 거라 했다. (의외로 말씀이 짧아 똥파릴 못 잡았다)

와! 오십이 넘은 나이에 대학을. 게다가 장인이 목표 라니. 역시, 엘리트의 포부는 뭐가 달라도 달랐다. '오~~'

엄지를 들어 존경을 표했다. 고객분은 별것도 아니라는 듯 손사래를 쳤다. 그리곤, 적성타령하며 안 맞는다 회피만 하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 늦지 않았으니 장인이 되기 위한 인생플랜을 새롭게 세팅해라, 될 자격이 차고 넘치는 사람이다, 눈을 반짝이며 격려했다. 가슴이 뜨거워지는 대단히 좋은 말씀이었다. 하지만...안타깝게도 난, 애초에 자격이 안됨음을 담담히 밝혔다.


"어차피, 딸이 없어서 장인은 못 됩니다."

   

고객분은 나를 멀뚱히 바라봤다. 이내 조용히 대패를 챙겨, 들와 왔을 때처럼 남산만 한 똥배를 앞세워 신속히 퇴장했다. 건곤일척 파리채도 그렇고, 아마도 날 상또라이라 생각할 것이다. 고객분에게 한 언행이 죄송스럽긴 하다.

나도 고객분처럼 인생계획을 세우고 목표를 향해 개 발에 땀나게 전력을 다하던 시기가 있었다. 그런데 인생 참, 미치고 팔짝 뛰게 계획대로 안되더라.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건 안되더라. 그래서 바뀌었다. 목표만 바라보며 현재를 희생하기보다 지금을 살며 나를 즐겁게 하기로.

목공을 선택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없는 걸 있게 만드는 창작이 너무도 재밌었다. 재밌으니 좋아졌고 좋아지니 더 재밌고 즐거웠다. 즐거움을 지속하려 목공방을 차렸다. 앞으로 뭘 어쩌겠단 계획은 당연히 없다. 그저 눈앞의 일을 즐겁게 할 뿐. 비록, 수입은 근근이 버티는 정도지만 말이다. (맞벌이해 주시는 마눌님께 정중히 대가리 박고 감사드린다) 지금, 나를 즐겁게 하는 건 글쓰기다. 아직은 후덜덜해도 창착하는 재미는 목공, 저리 가라다.


누가 들어도 고객분 말이 유익하고 정답 같다. 포지셔닝 맵 어쩌고 해서(하나도 못 알아먹었지만) 돈도 벌고 소목 장인도 되고, 얼마나 빛나고 좋은가. 그런데 이렇게 되게끔 판을 깔아줘도 안될 놈은 안된다. 그게 나다.

난, 고객분이 아니니까. 무엇보다 이런 삶은 나를 즐겁게 할 수 없다. 살 날 보다 죽을 날이 가까워지는데 더욱 자신이 원하는 삶에 집중해야지, 빛나는 삶이 좋다고 뱁새인 내가, 황새인 고객분을 쫓다가는 가랑이가 쫙! 찢어지면서 'ㅅㅂ! 이럴 줄 알았어!' 쌍욕 하며 후회 밖에 더 하겠는가.

딸이 없어 장인이 못 되는(아들도 없어 시부도 못 되는) 나란 사람의 이러한 속내도 모르면서 인생 훈화를 해주시니 상또라이가 되어 아재개그를 할 밖에. 그러니 대단히 좋은 말씀은 충분히 교감하고 소통한 뒤에 해주시길. 그때까지는 각자의 삶은 각자 알아서 사는 걸로.

설사, 거지 꼴을 못 면해도 말이다!라고 되게 있는 척 마무릴 짓고 싶지만 솔직히... 거지꼴은 면하고 싶다.

(요즘 들어 마눌님 눈을 똑바로 볼 수가 없다)

  


장식용 대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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